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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규림 Mar 29. 2023

따뜻한 아이스크림

좋은생각 생활문예대상 입선작


아이스크림을 맛있게 먹고 있는 두 딸을 바라보다 갑자기 생각이 났다. 아 맞다! 경비 아저씨!

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오기 전, 둘째가 태어나기 전의 일이다. 똑같은 브랜드의 모빌이 두 개나 생겼다. 하나는 첫째 때 사용하던 것이고, 다른 하나는 둘째 출산 전에 지인에게 물려받은 것이다. 출산을 앞두고 짐정리를 하던 중 모빌 하나를 버리기로 하고 잠시 문 앞에 놔뒀다. 나중에 모빌 위에 쪽지 하나가 붙어있는 것을 발견했다.

"반갑습니다. 아침에 순찰 돌다 발견했는데 이 모빌 버리실 거면 제 딸이 출산 2개월 됐는데 주려고 합니다. 9/10(목)이 제 근무인데 여기 두시면 제가 가져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출산한 지 얼마 안 된 딸과 손주가 생각난 경비아저씨의 마음이 느껴져서 괜히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얼른 모빌을 다시 집안으로 가지고 들어왔다. 모빌에 매달린 인형들을 하나하나 떼어냈다. 건전지 상태를 확인하고 모빌 몸체 여기저기를 자세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나도 물려받은 것이라 새것은 아니지만 내가 쓰는 것보다 더 좋은 상태로 만들어서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지근한 물에 과탄산소다를 풀어 인형들을 조물조물 빨고 건전지를 새로 끼워 넣고 장난감 소독제를 뿌려 구석구석 닦았다. 뽀송하게 마른 인형들이 팽그르르 돌아가고 동요와 자장가가 은은하게 울렸다.

모빌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니 한 번도 보지 못한 경비 아저씨의 손주와 내 뱃속의 둘째가 침대에 누워 이 모빌을 보고 있는 모습이 그려졌다. 아기에게 가장 좋은 눈 맞춤은 자기를 바라보는 엄마의 시선이겠지만 모빌을 쳐다보며 작은 세상을 꿈꿀 아기들의 꼬물거림이 얼마나 아름다울지를 생각하니 가슴이 뜨거워졌다.

딸과 손주를 향한 경비 아저씨의 마음을 통해 부모의 마음을 생각하게 되었다며, 새것은 아니지만 깨끗하게 손본 상태이며, 더불어 우리 아파트를 위해 성실하게 일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내용을 담은 짧은 편지와 함께 새 단장한 모빌을 문 밖에 내놓았다.

다음날 경비 아저씨가 찾아오셨다. 마스크를 뚫고 느껴지는 인자함이 집 바깥의 차가운 공기를 덮었다. 종이 가방을 내밀며 수줍게 말씀하셨다.

"우리 딸이 그러더라고. 출산하고 나면 찬 거 잘 못 먹는다고."

종이 가방 안에는 아이스크림 한 통과 쪽지가 들어있었다. 모빌을 찾으러 왔다가 마음이 따뜻해졌다며, 이 따뜻함으로 한동안 안 좋은 일도 녹일 수 있을 것 같다고, 우리 손주에게 좋은 선물 줘서 고맙다고, 둘째 순산하길 바란다고 하셨다. 나는 그날 처음으로 아이스크림이 따뜻한 음식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둘째가 백일 되던 날 떡을 들고 경비실을 찾았지만 경비 아저씨는 그만두셨다고 하셨다. 그리고 얼마 후 나도 이사를 갔지만 지금도 경비 아저씨가 주신 따뜻한 아이스크림이 그립다. 오늘 내 옆에서 아이스크림을 먹는 아이들을 보니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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