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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마지막

by 금채

23년 크리스마스는 발리에서 보냈다면 24년의 크리스마스는 포르투갈에서 보냈다. 사실 한국의 크리스마스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크리스마스를 왜 기념해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는데 무언가 파티를 해야 할 것만 같고 하지만 어딜 가든 사람이 너무 많다. 너무너무. 그래서 23년부터는 크리스마스를 해외에서 보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번 크리스마스는 왜 포르투갈이냐 하면, 유럽 여행을 많이 다닌 친구가 유럽 중에서 포르투갈이 가장 낭만적이라고 말한 후로 꽂혔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런 연유로 포르투갈로 향하게 됐다.


리스본에서의 숙소는 게스트 하우스를 선택했다. 영어를 잘 하진 못 하지만 외국인들과 대화를 하면 갑자기 늘 것만 같은 이상한 자신감이 있었다. 하루는 투어를 갔다가 저녁을 간단하게 먹으려고 마트에서 장을 봐서 공용 공간에서 저녁을 먹었다. 공용 공간에는 큰 테이블이 한 개 있는데 거기 앉으면 자연스럽게 다른 게스트들과 대화를 하게 된다. 그런데 대화를 재밌게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 자신감과는 달리 내 마음처럼 말이 나오질 않았다. 식당이나 잠깐의 생존 영어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사람과 대화라는 걸 하려니 한국말처럼 자연스럽게 되지를 않았다. 못 하는 영어로 말하려니까 너무너무 답답하고 영어만 잘했으면 더 재밌는 시간이 됐을 거 같아서 아쉬웠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그들은 영어가 모국어라 내가 한국어로 말하듯이 말하는 거일 텐데 나는 한국어가 세계공용어가 아니라서 쥐어짜 내서 말해야 한다는 현실이 억울하면서 분하기도 했다.

유럽 여행하면서 든 생각은 확실히 동양인들이 서양인보다 머리 회전 속도가 빠른다는 것이다. 나는 그래도 머리 자체는 빨리 굴러가는 편이고, 한국에서는 어디 가서 말로 기죽지 않는데 영어를 못하니까 쪼그라드는 게 억울했다. 그래서 새해에는 정말로 영어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발리 여행 후에는 '외국인이랑 대화하려면 영어공부해야겠다~'라고 좀 즐겁고 가벼운 마음으로 생각해서 그 후로 영어공부를 안 했는데 이번엔 좀 분한 마음으로 이런 생각이 드니 열정이 불타올라서 새해엔 진짜 공부할 계획이다. 아무래도 나의 원동력은 분노인가 보다. 영어를 마스터하고 나면 세계를 제패하겠다는(?) 욕심도 올라온다.


여행 마지막 날, 북대서양이랑 이어지는 타구스 강가에 앉아 한참 동안 노을을 봤다. 어릴 때 여행 많이 다니라는 소리를 듣던 대학생 때는 방학마다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바빴고, 회사 합격 후 이때 여행 가야 한다는 소리를 듣던 때는 모아놓은 돈을 취업 준비하며 다 써서 갈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 난 언제쯤이나 여행 다닐 수 있을까 생각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누구보다 더 여행을 잘 다니고 있는 내가 됐다. 장시간 비행이라든가 오래 걷고 짐을 들고 다녀야 하는 순간에는 왜 어릴 때 여행 많이 다니라는진 알겠지만, 여행에 때는 없다는 게 더 맞는 말이라고 본다. 우리나라는 나이에 대해 이런저런 말들이 너무 많다. 하지만 막상 유럽에 가보니 카페에서는 할아버지가 에클레어 서빙해 주시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서로 손 잡고 카페 가서 브런치 즐기고 있고, 노부부들 잘만 여행하고 돌아다니신다. 아무튼, 언제 이렇게 자라서(?) 혼자서도 뚝딱뚝딱 지구 반대편까지 여행할 수 있게 됐나 생각하니 감회가 새롭고 괜히 센치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나의 5년 후 그리고 10년 후가 더더욱 기대가 된다.


* 2024년 주간생각은 이 글을 마지막으로 마무리합니다. 2025년에는 새로운 주제로 찾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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