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생장에 도착했다. 대구에서 서울로, 서울에서 인천으로, 인천에서 파리, 바욘을 지나 생장에 도착했다. 프랑스길을 시작하는 순례자들이 순례길의 시작을 위해 가장 먼저 들리는 곳. 이곳 생장에 도착했다는 걸 알리는 안내방송을 따라 배낭을 멘 모두가 다 같이 내렸다.
그리고 다 같이 길을 잃었다. 생장 역에 내린 모두가 똑같은 반응이었다.
생장 역에 내리기만 하면 순례자 사무소나 노란 화살표가 있을 줄 알았다. 생장에만 도착하면 길이 보일 거라고 누가 그랬는데 그 누군가를 너무 믿었나 보다. 하지만 다른 순례자들이라고 나와 다르지는 않아 보인다. 내리자마자 다 같이 두리번거리면서 길을 헤매고 있었다. 그중 한, 두 명이 남쪽 방향으로 성큼성큼 발을 내디뎠고 다른 순례자들은 어미새 따라가는 새끼처럼 영문도 모른 채 졸졸 따라가게 되었다. 혹시 이 길이 아니더라도 내 가방엔 침낭과 옷가지가 있으니 어떻게 노숙이라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어쨌거나 다수가 가는 방향으로 다 같이 걸어갔고, 배낭을 메고 있으면 다 순례자겠거니 하면서 걸음을 재촉했다. 건물이 여러 채 있는 곳에 도착해서 사람들이 몰려있는 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알고 보니 이곳이 말로만 듣던 순례자 사무소였다.
언어 때문에 프랑스인은 왼쪽, 외국인은 오른쪽으로 안내받았다. 프랑스에서 외국인인 나는 다른 순례자들과 함께 안경을 쓴 할머니 앞으로 가서 순례길 중 하나인 프랑스길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생장에서 처음 출발하는 순례자들은 이곳에서 크레덴시알(순례자 여권)을 발급받아야 한다. 산티아고에 도착하기 전 매일매일 하루에 2~3번 이상 세요(스탬프)를 찍을 여권이다. 한 달이 넘는 기간 동안 알베르게(게스트하우스와 유사한 단체 숙소. 순례자 여권인 크레덴시알을 보여주면 숙박이 가능하다.)와 카페, 레스토랑 등에서 부지런히 세요를 찍으면서 산티아고에 도착하게 되는데, 최종 목적지인 산티아고 순례자 사무소에서는 크레덴시알의 세요를 기준으로 몇 km를 걸어왔는지 인증해준다. 크레덴시알을 발급받고 내 이름을 영문으로 크레덴시알 제일 앞 페이지에 적었다. 어떤 목적으로 왔는지, 어떤 방법으로 가는지 등을 적은 후 사무실에 제출하니 첫 번째 세요를 찍어 주었다. 이 세요는 생장에서 시작했다는 공식 증표가 된다.
크레덴시알을 발급받고 소정의 기부를 한 뒤 가리비(순례자의 상징)를 챙겼다. 사무실에서는 내게 프랑스길 전체 지형의 높낮이를 알 수 있는 고도표와 순례자가 숙박할 수 있는 알베르게 목록을 주면서, 순례길 첫 번째 날인 피레네산맥을 넘는 두 가지 방법을 설명해주었다. 설명이 끝난 뒤 질문할 게 없냐는 말에, 당장 오늘 잘 알베르게는 어떻게 잡으면 되는지 물어보았다. 대답은 간단했다. 가서 물어보란다. 알베르게라고 적힌 곳에 가서 문을 두드리고, 오늘 잘 침대가 남아있는지 직접 물어보란다. 미리 예약을 해도 되긴 하지만 일단 그냥 가서 물어보란다. 자리가 없으면 다른 알베르게에 가서 또 물어보란다. 그렇게 해도 자리가 없으면 다음 마을까지 걷는 것도 좋다고 한다. 왜냐면 우리는 모두 순례자니까. 직접 몸으로 부딪히고 하나씩 깨달으면서 걷는 게 순례길의 시작이라고 한다.
순례자 사무소에서 나온 순례자들은 다들 뿔뿔이 흩어졌다. 비교적 저렴한 공립알베르게로 가는 순례자들도 있었고, 순례자 사무소 바로 앞의 알베르게로 가는 순례자들도 있었다. 나는 다음날 피레네산맥을 넘어야 하는 걸 감안해, 피레네로 가는 길과 가장 가까운 알베르게의 문을 두드렸다. 43번 알베르게였다.
알베르게 안으로 들어갔다. 떨리는 마음으로 로비에 섰는데 아무도 나를 맞이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크게 헛기침을 하고 ‘bonjour!’’를 외쳤다. 흰 수염이 덥수룩하고 덩치가 큰 할아버지가 알베르게 안쪽 방에서 나왔다. 프랑스어로 내게 뭐라 말씀하셨다. 무슨 말인지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어 잘 모르겠다는 제스처를 취하니 ‘bed?’라고 되물으신다. ‘오늘 하루 자고 갈 거니?’라는 뜻인 것 같아 ‘yes!’를 외쳤다. 안쪽으로 들어오라며 손짓하는 할아버지를 따라 침실로 향했다. 침실 앞에 있는 신발장에 등산화를 벗어놓고 안으로 들어갔다. 할아버지는 짧은 영어와 손짓으로 화장실과 빨래터를 알려주셨고, 식사시간이 적힌 안내문을 읽어보라고 하시고는 금세 사라지셨다.
침대 위에 짐을 풀고 옷을 갈아입은 뒤 다시 거리로 나왔다. 순례자가 할 일이라곤 걷고, 먹고, 자고 이 세 가지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저녁시간 전에 마을을 구경하기로 했다. 그렇게 걷게 된 생장은 정말이지 너무 예뻤다. 예쁜 강 위에 햇빛이 반짝였고 거리 곳곳에는 순례를 시작하는 순례자들로 넘쳐있었다. 프랑스 특유의 문화를 그대로 간직하면서도 여행자들이 지나는 마을인 만큼 편의시설이 갖춰져 있었다. 알베르게뿐만 아니라 순례자들을 위한 미사가 열리는 성당과 순례길에서 사용할 지팡이를 파는 가게, 생장과 관련된 물품을 파는 기념품 숍도 있었다. 슈퍼마켓에서 내일 피레네산맥을 넘을 때 필요한 간식거리와 마실 물을 사고 나니 이제 진짜 시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거리를 돌아다니는 동안 19시가 다 되었고, 다시 돌아온 알베르게에서는 호스피탈레로(알베르게의 호스트)가 순례자들을 위한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알고 보니 내가 있던 43번 알베르게는 퀘벡 주에서 오신 부부가 운영하는 알베르게로, 프랑스인들이 스페인으로 넘어가기 전 프랑스식 식사를 하기 위해 많이들 들리는 곳이라고 한다. 호스피탈레로에게 저녁 식사에 대한 감사 인사를 전한 뒤 참석자들의 자기소개 시간이 이어졌다. 한 명씩 돌아가면서 이야기를 하는데 모두 프랑스어로만 말하고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호스피탈레로를 보니 이 상황이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한 듯한 표정이었다. 알고 보니 여기서 숙박하는 순례자들의 대부분이 프랑스인으로, 프랑스어 외에는 다른 외국어를 전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다행히 퀘벡에서 온 노부부 중 한 분이 영어를 조금 하셔서 어떻게 소통은 되었는데, 내가 앉은 테이블이 하필 프랑스어만 할 줄 아는 분들만 계셔서 적당히 눈치껏 웃으며 식사를 해야만 했다.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아도 무언가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나는 카메라를 꺼내들었고, 사진을 찍자고 하니 모두 기분 좋게 포즈를 취해주었다.
식사를 마치고 잠이 들기 전에 조금 시간이 남아 다시 거리로 나왔다. 22시가 다 되어도 해가 지지 않는 한여름의 프랑스는 21시가 넘어가면서 하나, 둘 가게의 불이 꺼졌다. 노을이 지는 걸 멍하니 바라보다 다시 알베르게로 돌아왔다. 침낭 안에 들어가 눈을 감고 누워 있으니 색다른 기분이었다. 생각만큼 편하지는 않았지만 작고 어두운 나만의 공간이 생긴듯한 묘한 기분이 들었다. 유럽에는 베드버그가 있기 때문에 베드버그 방지를 위해서라도 침낭을 쓰고 스프레이를 꼭 뿌려야 한다고 하던데, 나는 어딜 가도 벌레에 잘 물리는 체질이기 때문에 오히려 마음을 비우고 스프레이를 가져오지 않았다. 그래도 벌레는 안 물렸으면 좋겠다.
잠에 들기 전까지 내일 할 일을 생각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서 든든하게 아침을 먹고, 미리 사둔 버터와 빵으로 내일의 점심을 만들어 가야겠다. 아마 피레네 위에서 먹게 되지 않을까. 내일은 부디 날씨가 좋아서 피레네 전경이 잘 보였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