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예쁜 생장을 뒤로하고 순례길을 출발했다. 걱정 반, 설렘 반을 안고 잠든 알베르게를 떠나 드디어 첫걸음을 내디뎠다. 같은 알베르게를 썼던 언니와 시작 시간이 비슷해 같이 출발하게 되었는데, 올라가는 동안 한국인처럼 보이는 다른 분들과도 인사를 했다. 순례길에서는 한국인, 외국인 할 것 없이 모두가 미소와 함께 기분 좋은 인사를 한다. 하지만 다들 각자의 길을 걷기 위해 온 이곳에서 다소 긴장한 눈치다.
중, 고등학교 때 세계지리 시간이나 사회과 부도에서만 보던 피레네산맥을 내가 실제로 넘고 있다. 피레네산맥 정상이 1450m라는데 내가 과연 잘 할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선다. 동네 앞산도 안 올라가 본 내가, 700m 넘는 산조차 한 번도 넘어본 적 없는 내가 1450m나 되는 산을 넘을 수는 있을까? 게다가 오늘의 여정은 27km나 된다. 새벽에 출발했지만 쉴 틈 없이 빠르게 걸어서 다음 목적지인 론세스바예스에 도착해야 한다. 론세스바예스에 도착하기 전 피레네 중턱에 하루를 쉬어갈 수 있는 오리손 알베르게가 있지만, 무슨 생각이었는지 피레네 산맥을 한 번에 넘고 싶었다. 게다가 이미 내 배낭은 나의 씁쓸한 체력을 고려해 전날 동키서비스(짐옮김서비스)를 신청해두었다. 나보다 론세스바예스에 먼저 도착한 배낭이 나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더욱더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아스팔트길로 이어진 끝없는 오르막길을 지나, 걷고, 걷고, 또 걷다 보니 어느새 예쁜 산들이 발아래에 위치해있었다. 탁 트인 전망에 감탄하는 것도 잠시, 오늘의 긴 여정이 생각나 걸음을 재촉했다. 이때쯤부터 같이 출발한 언니와 속도 차이가 나서 내가 먼저 앞서가게 되었다. 산행이 너무 힘들고 더워서 아무 곳에서나 주저앉아 물을 마셨고, 스포츠 타월에 물을 적셔 얼굴과 목에 감싸 더위를 식혔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만 이어졌고, 허허벌판에 잠시 쉬어갈 그늘조차 없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은 해가 더 강하게 내리쬐기 전에 빠르게 정상을 찍고 산을 내려가는 것뿐이다.
드디어 말로만 듣던 오리손 알베르게를 발견했다. 산 중턱에 위치한 이 알베르게는 카페가 있어 간단히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 여기까지의 체감은 거의 산 정상에 가까웠는데 아직 산 전체의 1/3도 지나지 않았다고 한다. 오늘 가야 할 27km 중 겨우 8km를 왔을 뿐이지만 내 체력은 이미 0에 가까웠다. 여기서 지금 당장 점심을 먹어야만 남은 19km를 무사히 걸어갈 수 있다는 생각에 아침에 가져온 점심을 전투적으로 먹기 시작했다. 어제 먹고 남은 바게트와 마트에서 산 바나나, 버터. 오리손 알베르게에서 주문한 커피. 그리고 오리손에 도착하기 직전에 잠깐 이야기를 나눈 마테오라는 이탈리아 친구가 ‘you're my first korean friend in camino’라는 말과 함께 준 누텔라.
그렇게 오리손에서 점심을 먹고 있는데, 다른 테이블에 있던 할아버지와 눈이 마주쳐서 인사를 나눴다. 오늘 오리손에서 주무신다는 이 할아버지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까미노와 관련된 물건을 지니고 계셨다. 특히 팔에 새겨진 가리비 모양의 문신을 자랑스럽게 보여주셨다. 몇 번째 카미노인지 기억하기 위해 팔에 새기고 계신다고. 이젠 연세가 있으셔서 예전처럼 한 번에 산을 넘지 못해 아쉽다고 하셨다. 할아버지는 까미노와 까미노에 오는 모든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에 매년 까미노를 찾는다고 하셨다.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기 위해 봄, 여름, 가을, 겨울 구분 없이 까미노를 걸으신다는데, 대체 이 길이 어떤 길이길래 이렇게 열광하는 사람이 많은 걸까. 나도 이 길의 끝에서 나의 존재 이유를 찾을 수 있는 걸까.
점심을 먹고 일어나 기지개를 펴고, 목적지를 향해 다시 부지런히 걸어갔다. 갈림길에서 어김없이 나타나는 화살표를 따라 걷고 또 걷다 보니 이제 슬슬 멋진 풍경도 지겨워진다. 게다가 머리 위에서 내리쬐는 햇볕은 왜 이렇게 뜨거운지. 대프리카라고 불리는 한여름 대구를 에어컨없이 몇 년을 버텨온 나인데 도대체가 이 더위는 정말이지 너무하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배낭까지 메고 걸었으면 정상에 도착하기도 전에 진작 포기하고 택시를 탔지 않았을까. 동키서비스로 배낭을 미리 보내기로 결정한 어제의 내가 너무 고마웠다.
배낭이 없는 게 한몫했는지 동행과는 이미 한참 멀어져 있었다. 비교적 내 걸음이 빠른 편이었고 쉬는 시간도 거의 없이 계속해서 걷기만 했다. 사실 쉬는 시간을 갖지 않은 건 내 의지가 아니었는데, 하염없이 햇볕이 내리쬐고 단 10cm의 그늘조차 보이지 않아서 빨리 이 구간을 통과해야겠다는 생각만 가득했기 때문이었다. 간혹 보이는 그늘에는 온갖 벌레 떼가 모여 있었고, 심지어는 내 팔에 묻은 물과 땀 때문에 벌레가 몸에 다닥다닥 붙기도 했다. 선글라스를 쓰고 온 얼굴을 수건으로 칭칭 감은 채, 지나가는 순례자들을 보면서 반갑게 인사를 하는데, 사람들이 나를 슬쩍 피해 더 빨리 걸어가는 것 같아서 괜히 미안했다.
이때 걸으면서 하나 깨달은 건, 외국에서 선글라스를 끼고 다니는 사람이 많은 건 멋을 부리는 것보다 정말 눈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눈을 뜨고 걷기 힘들 정도의 땡볕이 계속해서 이어졌고, 나무 그늘은커녕 정상을 알리는 표지석도 보이지 않았다. 아지랑이가 피어 오르고 구름 한 점 없이 해가 내리쬐는 더운 날씨에 한숨만 푹푹 쉬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까마귀 떼가 내 머리 위를 날아다니고 있었다. 이 까마귀 떼는 정상에 갈 때까지 계속 까악까악 해대는데 여기서 걷는 걸 멈추고 잠시라도 쉰다면 마치 내게로 곧장 달려들 것만 같은 그런 느낌에 뒷목이 오싹했다.
그렇게 또 한 걸음 한 걸음 걷다 보니 순례길에서 별이 되신 분들을 기리는 묘비가 있었다. 실제로 순례길을 걷는 도중에 완주를 하지 못 하고 하늘로 먼 여행을 떠나신 분들이 종종 계셨다. 20대부터 80대까지 다양한 나이와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 여러가지 이유로 순례길의 별이 되는데, 그토록 원하던 순례길 위에서 어떤 마음으로 순례자를 바라보는 걸까 싶어 숙연한 마음으로 이 구간을 지나게 된다.
비석을 뒤로하고 한참을 걸었는데, 오른쪽에 약 1m 남짓 높이의 철조망들이 쭉 이어져있었다. 문득 생각이 나 스마트폰의 지도를 켜보니, 프랑스와 스페인의 국경이었다. 지금 이 순간 정확히 국경 위를 걷고 있는 나를 GPS로 확인할 수 있었다. 산티아고로 가는 여러 갈래의 길 중 프랑스 길을 선택한 이유 중 하나는, 국경을 내 발로 걸어서 넘어보고 싶다는 막연한 버킷리스트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내가 살아있을 동안 불가능할지도 모르는 '걸어서 국경 넘기'. 내 주변에 아무도 보이지 않아서 철조망 위로 슬쩍 손을 뻗어보기도 하고 발도 살짝 철조망 밖으로 내딛어보았다. ‘여긴 스페인 여긴 프랑스!!!!’ 하면서 혼자 재밌게 놀면서 걸어갔다. 걸어서 국경을 넘는다는 걸 상상도 못 했었는데, 실제로 내가 하고 있다니. 잠시나마 더위를 잊고 조금 더 힘을 내서 걸을 수 있었다.
국경을 따라 걷고, 또 걷고, 걷다 보니 드디어 정상에 도착했다. 살면서 처음으로 1400m가 넘는 산을 오른 것이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멋진 풍경을 볼 수 있기는커녕 나무로 둘러싸여 있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해가 내리쬐는 오후 1시의 피레네산맥이었기에 오히려 더 더워지기 전에 얼른 내려가야겠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화살표를 제대로 안 보고 왼쪽 방향으로 갔는데 갑자기 뒤에서 사람들이 나를 향해 소리쳤다. ‘you're wrong!’ 론세스바예스는 그쪽 방향이 아니고 반대로 가야 한다며 나를 불렀다. 이분들이 알려주시지 않으셨다면 나는 영원히 론세스바예스에 도착 못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아찔했다.
정상을 찍고 내려가는 길은 그나마 그늘이 있는 편이었다. 곳곳에 보이는 별이 된 순례자들의 흔적을 지나 하염없이 걷고 있는데, 한참을 내려가다 지도를 보니 론세스바예스가 얼마 남지 않은 게 보여서 마냥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 정확히 1분 뒤에 울상이 되었다. 정말 기가 막힌 경사의 내리막길이 계속해서 이어지는데 무릎에 무리가 간 것 같았다. 앞에 가는 사람들은 어떻게 그렇게 빨리 갈 수 있는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상태에 맞춰 조금씩 천천히 걸어 내려가는데 다리의 고통이 점점 심해져서, 10걸음을 걷고 멈춰 서서 쉬는 걸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안 되겠다 싶어서 약간 뛰다시피 내려갔는데 걷는 것에 비해 훨씬 편했다. 계속 걸음이 비슷한 러시아 아저씨도 나랑 비슷한 느낌이었는지 계속 걷고 쉬고를 반복하며 함께 내려갔다.
울창한 숲 속이라 그늘이 많으니 쉴 곳이 많을 거라 생각했지만, 막상 숲 속은 오히려 더 쉴 곳이 없었다. 곳곳에 진흙이 묻어있었고 오래되어 삭은 나무들이 널려있었으며, 그나마 앉을만한 돌 근처에는 온갖 벌레들이 파티를 열고 있었다. 내가 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냥 가만히 서 있는 것이 최선이었다. 이젠 벌, 도마뱀, 바퀴벌레, 날벌레, 파리들에 면역이 생겼다. 넋을 놓은 표정으로 벌레를 쫓아내는 내 모습이 피레네를 넘기 시작할 때 보였던 소와 많이 닮은 것 같았다. 그 와중에 가방의 버터는 이미 오래전부터 녹아 흐르고 있어서 찝찝함이 극에 달하기 시작했다.
끝나지 않는 긴 내리막길은 내 정신도 서서히 멀어지게 하는 것 같았다. 등산을 하면 오르막길이 훨씬 어려울 거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내리막길이 더 힘든 느낌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집 근처의 앞산이라도 한 번 올라갔다 와 볼걸. 아니다. 그랬으면 아예 순례길을 안 왔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끝나지 않는 내리막과 키가 5m는 되어 보이는 나무들 사이를 지나 앞에 가는 사람을 따라잡을 때까지 계속해서 걸어갔다. 앞뒤로 아무도 보이지 않아서 혼자 노래를 작게 틀고 흥얼거리면서 걸어갔는데, 숲속에서 울렸을 거라 생각하니 약간 부끄러웠다. 진짜 이렇게 내리막길을 걷다가 곧 죽겠다 싶은 생각이 들 때쯤, 아스팔트 길과 숲길이 합쳐지는 곳에서 앞사람이 환호를 지르고 있었다. 설마 저 앞이 론세스바예스인건가 하는 생각과 약간의 설렘이 나의 발을 더 빨리 움직이게 했다.
하지만 그곳은 론세스바예스가 아니었고, 다시 아득하게 멀어져 가는 정신을 붙들고 하염없이 걸어가야 했다. 어둑하고 조용한 숲길을 지나 조금 더 걸어가니 진짜 론세스바예스가 보이는 철문이 나왔다. 이 철문 근처에 있는 다른 순례자들에게 ‘We finally find it!!’이라 외치며 다리가 아픈 것도 잊고 신나게 뛰어갔다. 마음 같아서는 전부 한 번씩 꼭 안아주고 싶었는데 내 몸에 붙은 벌레와 땀 냄새를 생각하니 숙연해져서 차마 그러진 못했다. 피레네 산맥에서 미아가 되고 첫날부터 무리해서 내일 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 건 아닌가 싶었는데, 어떻게든 해낸 내가 너무 감격스러웠다.
드디어 론세스바예스에 도착했다. 론세스바예스에는 알베르게가 하나뿐이었는데, 꽤 많은 사람들을 수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내게 더 이상 시설은 중요하지 않았다. 제발 나를 쉴 수 있게 해 달라. 호스피탈레로에게 가서 크레덴시알에 세요를 찍고 침대를 배정받았다. 미리 보내놓은 배낭을 찾아 짐을 풀고 빨래를 맡겼다. 샤워를 하고 청결로 인한 행복을 누렸다. 찝찝한 기분이 가시자 배가 고픈 게 느껴졌고, 아무리 힘들어도 밥은 먹어야 했기에 호스피탈레로에게 받은 저녁 식권을 가지고 식당으로 내려갔다.
오늘의 '순례자 메뉴(Menu del Peregrino : 가장 일반적인 메뉴, 보통 전식-본식-후식이 나온다.)'를 먹으며 옆자리에 앉은 미셸, 엘레나 아주머니와 이야기를 하고, 니엘이라는 대만 친구와 서로의 이야기를 나눴다. 저녁 식사를 마친 후 니엘과 함께 론세스바예스 주변을 산책하고 알베르게 테라스로 돌아와서 각자 일기를 썼다. 니엘과 다른 순례자들은 블루투스 키보드로 핸드폰에 일기를 기록하는 내가 신기하다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스쳐가는 수많은 생각들과 감정들을 빠르게 기록하고 싶어 선택한 방법인데, 순례길 내내 꽤나 유용하게 사용되었다.
(일기에서 그대로 발췌)
사실 걸으면서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고 싶고, 정리도 하고 싶었는데 그러긴 개뿔.... 그냥 걷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어서 진짜 아무 생각도 안 들었다. 제일 많이 한 생각은 와 이거 진짜 미친 짓이다, 내가 이걸 왜 왔을까, 진짜 와 나 같은 집순이는 이런 거 하면 안 되는데, 와 진짜 하 와... 이러면서 혼자 속으로 꿍얼대다가 하루가 끝난 것 같다. 배낭 메고 산맥 넘으시는 분들, 자전거 끌고 가시는 분들 모두 존경합니다.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진심입니다. 정말
일기를 다 쓰고 알베르게로 돌아가니 처음 생장에서 출발할 때 동행했던 언니와 기선씨가 도착해 있었다. 내가 론세스바예스에 도착했던 시간보다 2시간 30분 정도 늦게 도착했는데, 내려오는 길에 메고 있던 배낭을 굴려볼까 진지하게 고민했다고 한다. 둘은 운이 좋게도 론세스바예스의 마지막 침대를 배정받았고, 내일부터는 동키서비스를 이용하겠다는 굳건한 다짐을 보이고는 저녁을 먹으러 갔다.
침낭을 펼치고 잘 준비를 하고 있는데 내 위의 침대에서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아까 내리막길에서 나랑 비슷한 속도로 움직였던 러시아아저씨로, 자신을 포토그래퍼라고 소개했다.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는데 클라이언트가 내셔널 지오그래피라고 한다. 아까 내리막길에서 거의 좀비와 유사한 모습으로 주저앉아 있던 내 모습을 찍으신 것 같은데 나도 이제 방송을 타는 걸까. 아무튼 이렇게 오늘 하루도 끝이 났다. 오늘도 베드버그에 물리지 않고 잘 자고 일어나서, 내일 잘 걸었으면 좋겠다.
BUEN CAMI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