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차. 절뚝이는 프란시스코에게 해줄 수 있는 것

by 양송이타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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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헤라(Najera)에서 아침을 시작했다. 서서히 아침 기온이 떨어지고 있는 게 느껴진다. 옷을 여러 겹 겹쳐 입어도 바람이 불 때면 다소 쌀쌀한 기분이 든다. 카페에서 크루아상과 체리로 아침을 먹고 하루를 시작했다. 오늘따라 날씨가 흐린 것 같다.


이제는 꽤 익숙해진 무릎 테이핑이지만 사실은 테이핑보다 무릎 보호대가 정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무릎보호대를 한국에서 한 번도 써본 적이 없어서 정말 효과가 있는 건지 의심이 들었었다. 하지만 무릎보호대가 무릎을 잡아주기 때문에 무릎이 굽혀지는 걸 방지해주고, 무릎을 굽혔다가 다시 펼 때 보호대의 쿠션이 약간의 탄성으로 힘줄 역할을 일부 대신해주고 있었다.


끝도 없이 펼쳐진 밀밭을 걷던 중 저 멀리 콜롬비아 부부를 여기서 또 보게 되었다. 부부 중 남편인 프란시스코가 발목에 부상을 입었는지 계속해서 절뚝이고 있었다. 조금 걷나 싶더니 몇 걸음 못 가고 쉬고를 계속 반복하는 것처럼 보였다. 안타까운 마음이었지만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위로밖에 없었기에 어서 나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전한 뒤 계속 걸어갔다. 그런데 생각하면 할수록 자꾸 프란시스코가 떠올라서 견딜 수가 없었다. 내가 그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왜 위로뿐이라고 생각했을까.


나는 등산 스틱 두 개와 두 다리를 합쳐서 총 네 발로 걷고 있었고, 수건 대신 무릎보호대로 다리를 서서히 회복시켜가고 있었다. 예전처럼 절뚝이거나 주저앉을 정도로 아프지도 않았고, 자기 전 꾸준히 30분 이상 마사지를 해준 덕분인지 다리가 조금씩 좋아지고 있었다. 지금도 앉았다가 일어날 때면 여전히 다리와 발 때문에 인상이 찡그려지고 신경이 쓰이긴 했지만 좋아지고 있는 건 틀림없었다.


여기서 목적지인 산토도밍고까지 약 5km 이상 남은 걸 감안했을 때, 내가 가진 스틱 두 개가 다 필요할 것 같진 않았다. 스틱을 하나만 짚고 걷는 게 어색하긴 하지만 아예 스틱 없이 피레네 산길을 걸은 적도 있는데 무슨 상관일까. 이 생각에 이르자 나는 기쁜 마음으로 뒤돌아갈 수 있었고, 프란시스코를 만나 그에게 한 쪽 스틱을 내밀었다. 지나가던 다른 순례자가 우리를 보고 멈추더니, 나와 같은 생각이었는지 그 순례자도 자신의 스틱 한 쪽을 프란시스코에게 건넸다. 얼떨결에 등산 스틱이 두 개 생긴(발이 네 개가 된) 프란시스코는 내게 고맙다는 말과 함께, 꼭 돌려줄 테니 산토도밍고에서 내가 묵을 알베르게를 알려달라고 하고는 떠났다.


예쁜 밀밭이 끝없이 이어져있다. 비록 발이 하나 사라졌지만 마음만은 누구보다 가벼웠던 나는 그 길로 쉬지 않고 5km를 걸었으며,금방 산토도밍고에 도착할 수 있었다.




산토도밍고 데 라 칼사다(St. Dom. de la Calzada)에 도착했다. 뭔가 평소보다 일찍 도착한 느낌이다. 오늘은 거리도 20km 내외밖에 안 되는 데다 정말 밑도 끝도 없이 밀밭만 있어서 체감 시간이 훨씬 짧았다. 부르고스~레온 구간을 많이들 점프하는 게 바로 이 끝없는 밀밭때문이라고 한다. 부르고스가 가까워지는 걸 알려주기라도 하듯이 밀밭의 비중이 서서히 높아지는 것 같다.


산토도밍고는 닭과 관련한 전설이 있다. 수도사가 되고 싶었던 잘생긴 청년이 어머니를 모시고 순례길을 걷던 중 이 마을에 도착했는데, 숙소 주인의 딸이 청년에게 반해 마음을 고백했다고 한다. 하지만 수도사가 되기로 결심했던 청년은 그녀의 고백을 거절했고, 앙심을 품은 그녀는 그를 도둑으로 몰아 교수형에 처하도록 했다. 청년이 짧은 생을 마감한 후 청년의 어머니는 슬픔에 잠긴 채 홀로 산티아고까지 걸어가야 했다. 산티아고에 도착한 어머니는 죽은 아들이 그리워 다시 산토도밍고에 돌아왔는데, 아들이 교수대에 매달린 채 한 달 동안 살아있었다고 한다. 어머니는 깜짝 놀라 판사에게 달려가 아들을 교수대에서 내려달라 요청했다. 그러자 판사는 '당신 아들이 살아 있으면 내 앞에 있는 삶은 닭도 살아 움직이겠지!'라고 했는데 갑자기 닭이 푸드덕하면서 일어나더니 살아 날뛰기 시작했다. 그 후로 청년의 누명은 벗겨졌고 산토도밍고에서는 그 사건을 기억하기 위해 한 쌍의 닭을 대성당에서 길러 왔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산토도밍고에서는 아침 수탉이 우는 소리를 들으면 무사히 산티아고에 도착한다는 소문이 순례자들 사이에서 전해져오고 있다.


간단히 점심을 먹고 알베르게로 갔다. 마트에 들러 간식과 과일을 사는 것도 잊지 않았다. 마트 근처에 세워진 동상은 순례자의 상징으로 가득했다. 지팡이, 가리비, 배낭, 등산화, 물통, 자전거. 행색은 허름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확신을 갈구하는 우리들의 모습이 있었다.


도착한 알베르게에는 한국인들이 많이 있었다. 20대 초반의 학생들과 어떤 목사님, 그리고 어제 봤던 아주머니와 기선씨까지 꽤 많은 한국인들이 같은 알베르게를 쓰게 되어서 저녁을 함께 먹기로 했다. 마트에 가서 같이 먹을 고기를 사고 와인을 고르는데, 어떤 와인이 맛있는지 몰라 한참을 고민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정육점 아저씨와 손님으로 추정되는 아저씨가 내게 '이 고기엔 이게 더 맛있어!!' '아냐 이게 더 맛있지!!' 하면서 하나씩 알려주시기에 그냥 둘 다 샀다. 리오하 와인은 뭘 골라도 맛있다는 내 경험을 믿고 레드와인, 로제와인, 화이트와인 각 한 병씩 총 세 병을 사 왔다.


오늘은 유난히 한국인을 많이 만난 하루였다. 되도록이면 혼자 걷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외국에서 한국인을 보면 반가운 마음에 한국어로 인사를 나누고 이야기를 더 하게 되는 것 같다. 다만 길을 걷다 보니 한국인들이 여기저기서 모이는 걸 몇 번 보게 되었는데, 멀리서도 크게 들리는 한국 음악소리와 웃음소리, 이야기 소리가 괜히 부끄러웠다. 상점이나 식당, 알베르게 등 어디서든 여러 명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걸 보면 대체로 한국인이었던 것 같다. 같이 있던 다른 외국인들이 눈살을 찌푸리는 걸 봐서인지 조금 더 내 행동을 돌아보고 조심하게 되었다.


오늘도 한국인, 외국인 할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이야기를 하며 걷게 되었는데, 다른 날들에 비해 혼자 생각할 시간이 많이 부족한 느낌이었다. 그래서 내일은 다른 사람들이 가는 목적지에 가지 않고 조금 더 멀리 가거나 짧게 걸으면서 다른 곳으로 가려고 한다. 내일은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며 나와 이야기를 조금 더 나누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