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차. 어제 세었던 별을 따라 걸어가면

by 양송이타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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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토산토스(Tosantos)까지 가기로 했다. 생장에서 나눠준 고도표에 보이지 않을 만큼 작은 마을이지만, 이곳에서 머물렀던 순례자들은 특별한 경험을 했다고 한다. 조용한 곳에서 혼자 생각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좋지 않을까. 오늘따라 아침 바람이 차다.


산토도밍고는 닭이 상징인 도시로 아침에 수탉 소리를 들으면 길조라고 한다. 어제는 단 한 번도 수탉 소리를 듣지 못했고, 심지어 닭을 본 적도 없었다. 아쉬운 마음에 도시를 떠나려던 참에 갑자기 저 멀리서 수탉 소리가 들려왔다. 아침을 알리는 닭 울음소리가 오늘따라 유난히 듣기 좋았다.


끝없이 이어지는 황금 밀밭을 따라 계속 걷고 또 걸어서 아침을 먹으러 갔다. 치즈가 올라간 바게트를 주문하고 나왔는데 콜롬비아 부부를 여기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어째 계속해서 만나는 것 같아 이제 헤어지는 게 그다지 아쉽지 않은 느낌이 들었다. 오늘따라 그들이 먹고 있는 카페라떼가 맛있어 보여서 어떻게 주문한 거냐고 물어보니, 그냥 카페라떼보다 우유를 좀 더 많이 타서 먹고 있다고 했다. 바리스타에게 스페인어로'Cafe con leche, cortico de cafe, largo en leche'라고 말하면 된다고 한다. 카페 안으로 들어가서 배운 대로 주문하니 한국에서 주로 먹던 '라떼 주시는데 샷 하나만 넣어서 주세요'가 된 느낌이라 너무 좋았다.


날씨가 서서히 흐려지나 싶더니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다.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구름에 어마 무시한 바람이 함께 불어온다. 우비를 꺼내 쓰고 한참을 걷고 있는데 비가 그친다. 조금씩 내리던 소나기였나 보다. 바람에 흔들리는 밀밭을 지나 걷다 보니 다시 작은 마을이 나왔다. 먹구름이 걷히면서 점점 날씨가 좋아졌다. 마지막 남은 작은 구름이 사라질 때쯤 다시 더위가 찾아왔다. 무슨 날씨가 이렇게도 중간이 없는지 모르겠다.


이름 모를 꽃밭을 지나 어느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날씨가 꽤나 더워져서 이 마을은 그냥 지나가려 했는데 저 멀리 그네가 보였다.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지만 갑자기 그네를 타고 싶어졌다. 순례자가 걷는 중에 뭔 그네인가 싶은데 그런 생각이 오히려 더 그네를 타고 가야겠다는 생각에 이르게 했다. 더워지는 날씨에 조금이라도 더 빨리 걸어야 일찍 알베르게에 도착할 텐데 하던 참에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그네를 타러 갔다. 조금 늦어도 어차피 오늘 안엔 도착할 테니까 지금 이 순간 하고 싶은 걸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의 시선이나 생각을 신경 쓰다 지쳐 떠나온 순례길인데 이곳에서도 나는 ‘걷다가 갑자기 그네를 타러 가는 날 보고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쟤는 왜 저기서 그네를 타고 있지?'라고 생각하게 된다면 너무 슬프지 않을까. 그렇게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던 성격은 아니었는데, 나는 언제부터 이렇게 눈치를 보게 된 걸까.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를 다니면서 조금씩 바뀌어야 했던 성격이 지금 나를 이 길 위로 내몬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20분 동안 지겹도록 그네를 타고 다시 걸었다. 비가 오다가, 더웠다가, 흐렸다가, 추웠다가 아주 난리다. 내 앞에서 가끔씩 뒤를 보며 걷는 외국인 친구가 있었다. 그의 뒤에서 걷고 있던 나는 시선을 어디 둬야 할지 몰라 먼 산을 보며 경치를 구경하는 척하면서 걸었는데, 아무도 없을 때 슬쩍 그 친구처럼 뒤로 걸어봤다. 그 순간 놀랄만한 풍경이 내 뒤에 펼쳐지고 있었다. 지금껏 내가 봐온 풍경은 나의 앞에 펼쳐진, 내가 걸어야 할 길의 의미만을 담고 있었는데 뒤를 돌아보니 지금껏 내가 걸어온 길이 보였다. 1분 전의 내가 한 걸음, 한 걸음 걸었던 길이 내 뒤를 천천히 따라오고 있었고, 뒤를 보기 위해 잠시 멈춘 지금은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발걸음을 옮기며 계속해서 뒤를 보며 걷고 있는데, 문득 내가 너무 미래에만 매달려 있었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다, 무엇을 하고 싶고 어떤 일을 할 것이다.'라는 이야기는 어릴 때부터 꾸준히 해온 말이지만, 내가 어떻게 살아왔다는 이야기를 나 스스로에게 했던 적이 있었던가.


그러고는 다시 앞을 보는데, 달팽이 한 마리를 실수로 밟을 뻔했다. 내 부주의로 이 아이의 생명을 앗아갈 뻔했던 것 같아 생각은 그만하고 그냥 조용히 앞을 보고 걷기로 했다.


07.jpg 고양이 발견




벨로라도(Belorado)라는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작은 마을의 조용한 길 위에서 딱딱하는 소리를 내며 울려 퍼지는 등산 스틱 소리가 쉬고 있는 동물과 곤충들을 깨운 것 같아 미안했다. 특히 이렇게 인적이 드문 마을에서는 스틱 소리가 너무 크게 울리는 것 같아 스틱을 들고 조용히 걷기로 했다. 마을의 중심에 있는 성당에 도착했다. 위에 뭔가 보인다 했더니 자세히 보니 새 둥지였다. 학인지 왜가린지 엄청 큰 새가 커다란 둥지를 성당 위에 아슬아슬하게 지어놓고 마을을 순찰하는 것처럼 보였다. 저기에다 둥지를 짓는 저 새도 신기하지만, 새가 둥지를 지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고 새와 함께 하루를 보내는 성당도 신기했다.


스페인 사람들이 순례자들에게만 유난히 관대한 건지 원래 심성이 그런 건지 재밌는 일이 몇 개 있었다. 특히 인사를 하거나 길을 알려주는 걸 종종 보았는데,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가다가 다시 유턴하고 돌아와서 이 길 아니라고 저쪽 길로 가라고 말해주고 갔을 정도였다. 국도를 따라 걸을 땐 차 안에 있는 운전자와 목례를 했고, 도시 안에서 길을 헤맬 땐 승용차가 빵빵 거리며 길을 알려줬다. 마을을 걷다 보면 순례자 행색을 한 내게 먹고 싶은 거나 사고 싶은 게 있어서 길을 찾고 있는 거냐고 물어봐주고 자신이 알고 있는 맛집 위치를 알려주었다. 마트에서 와인을 고민하고 있으면 이게 더 맛있는 거라고 추천해주고, 과일을 어떻게 담는지 몰라 멍하게 서있으면 이렇게 담으면 된다고 직접 보여주었다. 지나가는 할머니나 아주머니가 'peregrina~~'하면서 길을 알려주시는 건 일상이었고, 심지어 고속도로에서 대형 차를 운전하던 사람들도 손인사를 하며 지나갔다.


아침부터 추위에 떨다가, 비가 오고, 갑자기 해가 뜨더니 다시 먹구름과 소나기가 이어졌다. 오늘따라 유난히 이상한 날씨 때문에 상당히 지쳐있었는데, 발과 다리도 서서히 아파져서 잠시 쉬었다 가기로 했다. 성당 앞의 벤치에 앉아 있는데 농부처럼 생긴 어떤 아저씨가 갑자기 나보고 'korea??!'라고 하셨다. 'Si(스페인어로 yes라는 뜻)!'라고 대답했더니 '감사합니다!'라고 한국어로 말씀하신다.


순례길 위의 이 작은 마을에 한국어를 아시는 스페인 아저씨에 당황하고 있는데 갑자기 내게 다가오신다. ‘아 이게 말로만 듣던 순례길 사건사고인가’ 싶어서 나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고 주춤하며 뒷걸음질을 했다. 그런데 농부 아저씨가 자신을 가리키며 '나, 신부님!'이라며 짧은 한국어를 하시는 게 아닌가. 가만 보니 신부님들이 입고 계신 까맣고 동그란 카라가 있는 옷을 입고 계셨다. 그러고 보니 농부 아저씨보단 신부님에 조금 더 가까운 것 같기도 하고. 자신을 신부님이라고 소개한 농부 아저씨는 자신의 이름이 엠마누엘이라고 하셨다. 내 이름이 뭐냐고 물어보셔서 스페인 이름인 Elena를 알려드렸더니 갑자기 머리에 손을 올리신다. 아 드디어 순례길 사고를 내가..라는 생각을 하는 와중에 신부님이 무슨 주문 같은 걸 외우시더니 내 이마에 십자가를 만드셨다. 이게 그 말로만 듣던 축성과 성호라는 걸까? 일단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벤치에 다시 앉기에 뭔가 쑥스러워져서 자연스럽게 다음 마을로 이동했다. 신성하고 신기한 경험이었다.


나중에 성당에 다니는 다른 분께 여쭤보니, 순례길에 오기 전에 일부러 신부님께 찾아가 축성을 해달라고 부탁드리기도 한다고 한다. 아마 내가 걷는 순례길에 ‘신의 가호가 함께 하길. 안전하고 무사히, 그리고 건강하게 산티아고에 도착할 수 있길.’ 이라는 뜻이었을 거라고 한다. 아무나 쉽게 해주는 건 아니라고 특별한 경험을 한 거라고 하던데 사실 그 순간은 농부 아저씨라 생각했다. 막상 농부 아저씨라고 써놓은 걸 다시 보니 뭔가 불경한 느낌이 들었다. 죄송합니다. 신부님.

11.jpg 엠마누엘 신부님




토산토스(Tosantos)에 도착했다. 오늘 29km를 가야 하는 걸 감안해서 어제 미리 동키서비스를 보내놓았다. 토산토스에 도착했으니 일단 배낭을 보내 놓은 알베르게로 가야 했다. 이곳에는 알베르게가 두 곳뿐이라 그중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다는 알베르게 주소로 찾아갔는데 여긴 알베르게가 아니고 병원이라고 한다. 자그마한 집에 의료기기라고는 하나도 없어 보여서 병원같진 않아보였지만, 일단 알겠다고 하고는 하나 남은 다른 알베르게로 배낭을 찾으러 갔다. 주소를 보여주니 아까 병원이라고 했던 곳이 알베르게가 맞고, 그 주소가 맞다고 한다. 덩그러니 놓인 내 배낭을 이곳에서 찾아 병원이라고 했던 알베르게로 다시 찾아갔다. 이제 알베르게 운영은 더이상 안 하지만 꼭 여기서 자고 싶다면 하루정도는 재워줄 수 있다고 한다.


이곳에 있는 호스피탈레로들은 영어를 전혀 할 줄 모르는 것처럼 보였다. 짧은 스페인어와 구글 번역기를 사용해 소통을 했는데 그래도 한계가 있었는지 호스피탈레로가 갑자기 서랍 속에서 무언가를 찾는다. 서랍 속에서 어떤 종이를 꺼내 내게 쥐어줬다. 이전에 왔던 다른 한국인이 적어두고 간 쪽지였다. 이 알베르게는 donativo(donative, 기부제)로 운영되는 곳인데 다 같이 식사를 준비하고, 함께 먹은 뒤 설거지를 하는 시스템이라고 적혀있었다. 그리고는 산 중턱에 있는 교회에 가서 다 같이 미사를 드리고, 아침 식사를 함께 하는 것이 이 알베르게의 규칙이었다.


매트리스를 깔고 자야했던 알베르게

간단한 신상을 알려주고 알베르게에 체크인했다. 먼저 침대를 배정받기 위해 계단을 올라갔다. 매트리스란 말은 들었지만 정말 이렇게 열악한 환경일 줄은 몰랐다. 비상대피소처럼 체육관에 얇은 매트리스 몇 장이 깔려 있었고, 한 쪽 끝에 있는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 외에는 어떠한 불빛도 없었다. 형광등도 없었고, 콘센트는 하나뿐이었으며, 걸을 때마다 나무 바닥에서 삐그덕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와이파이가 안 되는 건 당연했고 심지어 샤워실에도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내가 유럽에서 베드버그에 물린다면 분명 이곳일 거라 생각이 들 정도였다. 어둡고 퀴퀴한 냄새가 나 없던 피부병도 생길 것 같은 느낌이었다. 지금이라도 다른 곳으로 가야 하나 고민했지만, 너무 피곤해 오늘은 더 이상 걸을 수도 없었고 매트리스까지 배정받았으니 그냥 하루 대충 자자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불이 들어오지 않는 샤워실에서 샤워를 하고, 없는 세탁기 대신 직접 손빨래를 한 뒤 식사 준비를 하러 1층으로 내려갔다.


식사 준비를 다 같이 한다는 말을 들었던 터라 미리 1층에 내려가 있었지만, 두 명의 호스피탈레로가 오늘은 사람이 별로 없으니 괜찮다며 나를 다시 2층으로 올려 보냈다. 근데 사실 올라가도 딱히 할 일이 없어서 밖으로 나가 마을을 짧게 구경하고 식당으로 갔다.


호스피탈레로 2명을 포함해 남미에서 온 5명의 가족과 농사를 짓는 스페인 부부, 미국인 부부, 그리고 나. 이렇게 12명이 오늘 함께 식사를 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 식사에서의 공용어는 스페인어였고, 나는 어디서 느껴본 듯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순례길 첫째 날 생장에서 모두가 프랑스어로 이야기하던 그 순간이 떠올랐고, 또다시 언어장벽이 눈앞에 세워지니 막막한 심정이었다. 미국인인 수잔과 스티브가 나의 희망이었지만 수잔은 스페인어를 원어민처럼 구사하는 능력자였고, 스티브는 스페인어를 배우는 단계여서 재밌게 이야기를 나누는 것처럼 보였다. 그에 비해 내가 아는 건 정말 짧은 스페인어뿐이었다. 그래도 어떻게든 대강 눈치껏 알아들었고, 중요한 이야기는 수잔이 통역해준데다 스티브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그때보단 비교적 가벼운 느낌이었다.




호스피탈레로의 기도와 함께 식사를 시작했다. 스페인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샐러드에 드레싱을 따로 뿌리지 않는 것 같다. 올리브유와 식초, 그리고 소금으로 간을 한 샐러드를 먹는 것에 점점 익숙해진다. 저녁 식사의 메인은 고기 없이 돼지기름만 둥둥 떠다니는 감자 죽이어서 이걸 어떻게 먹어야 하나 싶었는데, 막상 한 숟갈 떠보니 생각보다 맛있었고 배도 불렀다. 오늘의 식사는 어제의 순례자가 기부한 음식과 돈으로 만든 식사였고, 오늘의 순례자는 내일의 순례자를 위해 기부를 하고 떠나는 것이 이곳의 전통이었다. 나 역시 어제의 순례자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내일의 순례자를 위한 기부를 했다.


다 같이 먹은 식사를 정리하고, 설거지를 했다. 그 후에 있는 일정은 산 중턱에 있는 교회에 가서 미사를 드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호스피탈레로가 교회로 가는 길이 공사 중이어서 한동안은 교회에 갈 수 없다고 했다. 대신 알베르게 2층에 있는 소성당에서 미사를 드릴 거니 원하는 사람은 꼭 참여해줬으면 좋겠다는 말을 전했다. 필수는 아니지만 다 같이 와줬으면 좋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더 이상 오늘 내가 해야 할 중요한 일도 없는 데다 궁금하기도 해서 미사에 참여하기로 결정했다. 실내에 있는 작은 성당 안으로 들어갔는데, 첫인상은 '내가 이상한 곳에 온 것 같다.'였다. 나뭇가지 몇 개로 십자가를 만들어 놓고 책과 종이를 앞에 둔 채 향을 피웠다. 얼마 전 외모지상주의라는 웹툰에서 봤던 풍산개라는 사이비 종교가 생각나면서 조금씩 무서워졌다. 보통 성당이라면 반듯한 십자가에 깨끗하고 조용한 이미지라고 생각했는데, 나무로 된 마룻바닥에 앉아 나뭇가지 십자가를 보고 있자니 원시시대로 온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이상하게 오늘따라 날씨도 스산하더라니 여기서 이렇게 이상한 종교를 만나게 되는 건가 싶은 순간이었다. 심지어 이스라엘로 시작하는 성서 같은 느낌의 글귀를 다 같이 함께 읽고 미사를 시작하자고 하길래, 오히려 더 무서웠던 것 같다. 이 모든 게 스페인어로 진행이 됐었는데 수잔이 조금씩 통역해줘서 그나마 안심이 되었다. 그 후 미사의 사회를 맡은 호스피탈레로가 5분 정도 눈을 감고 까미노에 왜 왔는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보라고 했다. 신 앞에서 우리는 naked이고 not wise라는 걸 명심하고 등 통역을 해주었는데 나의 영어 듣기 실력은 여기까지였다. 사실 여기까지는 별생각이 없었다. 뭐가 특별한지도 모르겠고 속은 기분만 잔뜩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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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명상을 하고 기도를 하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 이 의식의 마지막 단계가 되었다. 어디선가 가져온 작은 상자 안에서 종이 한 장씩을 꺼내 모두에게 나눠주었다. 나는 영어로 된 걸 받았는데, 과거에 이곳을 지난 순례자들이 적어놓고 간 편지였다. 신을 향한 기도, 가족에게 보내는 안부편지, 자신을 향한 다짐 등 다양하게 적혀진 쪽지를 한 장씩 건네받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마음으로 크게 읽어달라고 했다. 내가 읽은 쪽지는 하늘로 떠난 아버지와 함께 오고 싶었던 이 길 위에서 아버지를 생각하며 쓰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나와 스티브가 영어로 읽은 것 외에 다른 사람들은 스페인어로 읽었고, 무슨 뜻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우리도 편지를 쓰고 간다면 20일 뒤에 오는 다른 순례자들이 지금처럼 우리의 편지를 읽어줄 거라고 했다. 그래서 내가 한국어로 써도 되냐고 물어봤는데 수잔의 통역에서 의미가 잘못 전달된 건지, 호스피탈레로가 '한국어로 쓰인 편지를 하나 더 읽어도 되나요?'라고 이해한 것 같다. 두 호스피탈레로가 환한 표정으로 'si, si!(yes)'라고 외치더니 편지가 들어있는 상자를 한참 뒤적인다. 그러고는 딱 3장 있었던 한국어 편지를 내게 내밀었고 한 장을 골라 읽어달라고 했다. 영어로 번역해서 읽으면 수잔이 통역해서 스페인어로 전달해주겠지 싶어 영어로 읽을 생각이었는데, 호스피탈레로가 한국어 그대로 읽어달라고 했다.


남미에서 온 어린 여자아이인 파빌리아와 그 가족은 워낙 시골에 살고 있어 한국인과 이야기하는 게 처음이라고 했다. 수잔과 스티브 역시 한국인을 몇 번 보긴 했지만 한국어를 들은 적은 거의 없다고 했다. 한국에 대해 잘 모르고, 한국어는 더더욱 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들 앞에서 한국 대표가 된 나는, 내 나라의 언어가 최대한 예쁘게 들렸으면 좋겠다 싶어 목을 가다듬었다.


내가 들고 있는 편지는 20일 전에 온 다른 순례자가 쓰고 간 편지였으며, 한국에 있는 엄마에게 자신의 안부를 전하는 내용이었다. 순례길에 온 지 2주가 지났고, 몸 구석구석이 아프지만 걷고 있는 자신이 대견스럽다고 했다. 사랑하는 엄마와 같이 오지 못 해 너무 아쉽지만 나는 이곳에서 잘 지내고 있다고 했다. 길을 걷다 보면 어김없이 보이는 노란 화살표. 화살표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정처 없이 길을 걷는 나. 오늘도 별을 세며 잠이 들겠지만, 내일은 어제 세었던 별들을 따라 걸어가면 그 길의 끝에는 답을 찾을 수 있을까요.


한 글자씩 또박또박 한국어로 적힌 편지를 읽고 있자니 괜히 찡한 마음이 들었다. 여기 있는 그 어떤 누구도 내 언어를 모르고 내가 하는 말의 뜻을 모를 텐데 다들 집중해서 귀 기울여주고 있다는 게 너무 벅차올랐다. 스페인, 그것도 산티아고 순례길의 작은 시골마을에 있는 알베르게에서, 작은 성당 내에 내 목소리가 한국어로 울려 퍼진다는 것에 너무 감격했다. 내 심정을 그대로 옮겨 적은 듯한 편지의 내용이 내게 전달되었기 때문일까. 떨리는 목소리에 묻어나는 감정이 그들에게 알려졌기 때문일까. 편지를 읽고 난 후 그들은 내게 눈을 마주치며 자신들의 언어로 고맙다는 인사를 전했다.




하루를 정리하기 위해 일기를 쓰던 중, 어린 파빌리아가 내게 와 수줍게 종이를 내밀었다. 영어를 조금 할 수 있어서 가족 대표로 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자신의 이름과 가족들의 이름을 알려주며 한국어로 이름을 써달라고 했다.


'제 이름은 파빌리아예요, 그리고 저기 앉아 있는 제 남동생 이름은 ..'


파빌리아가 한 명씩 가리키며 그들의 이름을 부르니 나를 쳐다보고 씩 웃어주었다. 쑥스러운지 이내 고개를 돌렸지만 조금 전에 내가 읽었던 한국어가 인상 깊었는지 꽤나 마음에 든 모양이다. 책상이 따로 없어 삐뚤삐뚤하게 쓴 한국어였지만 부디 그들에게 예쁜 언어로 보였으면 좋겠다.


아침엔 닭이 울더니 점심엔 축성을 받고 저녁엔 소성당에서 미사를 드린 오늘. 오늘은 날씨도 추웠고 이상하게 몸도 피곤했기에 꼭 자다가 열이 날 것만 같았다. 최근 며칠 동안은 자고 일어나면 뭔가 얻어맞은 느낌으로 일어났었는데, 내일 아침은 몸 상태를 보고 버스를 타든가 해야겠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여행하는 중이라던 수잔과 스티브가 옆에서 곤히 잠들었다. 나도 이들처럼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여행을 다닐 수 있을까 생각하며 침낭 안으로 들어갔다.


06.jpg 끝없이 펼쳐진 황금밀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