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차. 35km 걸은 날, 드디어 하늘을 보았다.

by 양송이타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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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jpg 온타나스의 아침


약 35km를 걸어야 하는 오늘, 온타나스(Hontanas)의 아침이 시작됐다. 어제 하루를 보냈던 알베르게를 나와 시작부터 언덕을 오르는가 싶더니 밀밭이 펼쳐진 도로가 나왔다. 저 멀리 작은 성당이 보였는데 너무 이른 시간이었는지 문이 닫혀 있었다. 작은 마을을 지나 계속해서 걷다 보니 집터가 나왔다. 저 멀리에는 요새처럼 생긴 건물의 터가 있었다.


유럽에 와서, 특히 스페인 순례길에서 유난히 자주 보게 되는 것 중 하나가 이런 흔적들이다. 어떤 건물이 있었던 흔적이 터로 남아 과거에 건물이 이곳에 존재했었다는 걸 알려주는 것 같았다. 이곳의 사람들은 단순히 황폐한 집터로 만들지 않고 그 건물을 구성했던 것들 중 가장 외곽에 보이는 흔적, 예를 들면 대문과 벽 같은 것들을 남겨 놓는다. 건물의 존재를 기억하기 위해서였을까, 아니면 단순하게 거리의 경관을 위해서였을까. 더 이상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일지라도 벽이 무너지지 않게끔 지지대를 갖춰 쓰러지지 않게 해 두었다. 순례길에서는 어떤 성당이든, 집이든, 심지어 성곽조차도 그 흔적을 담은 벽을 쉽게 부수지 않는 그들의 과거에 대한 생각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던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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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키의 10배는 넘는 나무들을 지나 언덕으로 계속 올라가고 있는데, 어느새 내가 지나온 길이 한눈에 보이는 곳까지 올라왔다. 계속해서 오르막이 이어지고 정상이 가까워질수록 내가 지나온 길이 길어지는 게 보인다. 며칠 동안 한국인이랑 걷기도, 외국인이랑 걷기도 하면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지만, 혼자 걸을 때가 내게 더 잘 맞았던 것 같다. 오늘 아침부터 계속해서 내게 계속 말을 걸던 프랑코아저씨에게 죄송했지만 한동안은 혼자 걷고 싶다고 하고 걸음 속도를 조금 더 빠르게 했다. 그 전날까지 계속 보였던 한국인들도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었다. 함께해서 좋았던 분들이 분명 있었지만 나를 위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오로지 나의 목소리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정상에 도착하니 석재오빠가 훨씬 더 일찍 도착해서 쉬고 있었다. 분명 같은 알베르게에서 비슷한 시간대에 출발한 것 같은데 체력이 다른 건지 벌써 도착해 있었다. 짧은 인사를 한 후 석재오빠가 먼저 내려갔고, 그 뒤에 뻬뻬 할아버지와 라이언 할아버지가 오셨다. 며칠 지나지 않았지만 꽤나 오랜만에 본 것 같은 기분에 서로의 안부를 묻기 바빴다. 물론 할아버지들은 스페인어, 나는 영어와 한국어로 의사소통이 되었다고 말하고 싶지만 실제로는 전혀 말이 통하지 않았고, 우린 오로지 표정과 바디랭귀지로 10여 분 동안 대화를 나누어야 했다. 대충 이해한 바로는, 뻬뻬와 라이언 할아버지는 다음 마을까지만 걷는다고 했다. 더 오래 걷기가 어렵기 때문에 내린 결정이라고 하셨다. 다리가 안 좋았지만 그래도 버스를 타지 않고 까미노를 끝까지 걷고 싶다고 하셨다. 그때 직감했다. 오늘이 지나면 더 이상 만날 수 없겠구나.


그 때, 뻬뻬할아버지가 사진을 찍자고 제안하셨고, 라이언할아버지까지 셋이서 같이 사진을 남기고 서로 꼭 안아준 뒤 우린 헤어졌다. 서로 공유하는 언어도 없었고 나이 차이도 많이 났지만 우린 까미노를 걷는 순례자로서 친구가 되었다. 만남과 헤어짐이 반복되는 이 순간에, 모든 걸 내려놓고 떠나온 순례길에서 만난 소중한 내 친구들. adios!


04.jpg 정상에서




언덕을 내려와 팔렌시아 지방으로 들어왔다. 아마 그 언덕이 지방의 경계였나 보다. 곳곳에 팔렌시아 지방이라는 표지판이 있다. 본격적으로 밀밭이 시작되는 것 같다. 구름 한 점 없고, 바람조차 불지 않는 끝도 없는 평원을 걷고 있다. 작은 구름이 지나가면서 잠깐의 그늘을 만들고 오아시스 같은 나무들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점점 걷는 것에 익숙해지고 있다. 무거운 짐이 든 배낭을 드는 건 아직 어깨가 아프고, 무릎도 완전하게 나은 게 아니기 때문에 한 걸음 한 걸음 움직이는 게 조심스럽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 동키서비스로 배낭을 목적지에 보내놓았는데 멀리멀리 짐을 보내놓으니까 오히려 마음이 가볍다. 몸도, 마음도 가벼운 날들이 이어지면서 나에게도 드디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황금빛으로 빛나던 밀밭을 지나 초록색 밭이 나왔다. 무슨 풀인지는 모르겠지만 오랜만에 보는 초록색이라 반가움이 컸다. 이 초록색 밭은 마을이 가까이에 있다는 증거가 되는데, 조금 더 걷다 보니 작은 마을이 나와 마을 입구에 있는 카페에 들어갈 수 있었다.


평소 탄산음료를 안 좋아하던 나지만, 이 더운 여름에 순례길에서 콜라를 빼면 시원한 음료가 거의 없었다. 레몬 한 조각을 동동 띄운 콜라를 시원하게 들이키고 한가로운 오후를 즐기고 있었다. 그 순간 옆 테이블에서 내가 오기 한참 전부터 이곳에서 곤히 자고 있던 석재오빠가 갑자기 일어나 후다닥 짐을 챙기는가 싶더니, 기지개를 켜면서 카페를 나갔다. 걸음 속도가 현저히 차이나는 데다 약속한 것도 아닌데 부르고스 이후부터 들리는 카페, 식당, 알베르게마다 종종 마주쳐서 반가운 사람 중의 한 명이었다. 이 마을에 카페가 하나뿐인 것도 아닌데 사람 마음은 다 똑같은지, 마을 입구에 있는 카페가 사랑방이 된 것처럼 다들 이곳에 모이는 듯하다.


카페를 나와 계속 걷고 있는데 내 앞의 스프링클러에서 물이 뿜어져 나왔다. 그 덕에 길가에는 안개가 가득해서 모자가 축축해지기까지 했다. 오늘은 비 맞은 생쥐 꼴로 다녀야하나 했지만 한여름의 스페인은 머리끝에 걸려있는 물기조차 금방 마르게 해 주었다. 저 멀리 보이는 성당위의 새 둥지가 마을이 나왔다는 걸 알려주는 하나의 징표처럼 느껴진다. 카페에서 카스라는 레몬에이드를 마시고 피자를 먹었다. 이 작은 마을을 벗어날 때쯤 마을 어귀의 숲 속에서 누군가가 낮잠을 자고 있었다. 베드버그에 물리지 않으셔야 할 텐데.


심다 만 듯한 나무들이 이어지는 수로 옆을 걸어가게 되었다. 물고기는 없지만 귀뚜라미 같은 벌레는 많이 있었다. 그래도 이쪽은 기온이 높지 않아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문득 한국에 돌아가면 어떤 직장에서 어떤 일을 하게 될까에 대한 생각을 하다가, 이때까지 있었던 직장을 생각하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의 궁합이 퇴사여부를 결정짓는 것 같다. 동료, 혹은 상사와의 갈등으로 퇴사하는 경우가 이 경우이다. 하지만 직장을 오랫동안 다니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동료 보다는 오히려 그 외의 다른 조건들이 직장에 계속 남아있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고 했다. 연봉이나 복지, 근로조건, 위치, 부양가족 등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직장을 고려하는 우선순위에서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사회적 가치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어떤 회사든 일을 못 하는 사람은 존재하기 마련인데, 어느 누가 봐도 일을 못 한다 하는 수준의 사람이 있었다. 내가 회사를 다닐 때는 그 사람의 몫까지 내가 해냈어야 해서 그런 사람들이 싫었다. 그 사람들이 더 높은 책임감이 필요한 자리에 있을 경우, 무능력은 꼭 그 사람의 가치인 것처럼 보였다. 그렇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그 사람들도 나름의 이유가 있었지 않았을까. 누구든 미움 받고 싶은 사람은 없을 테니까. 어찌 됐든 그 사람이 높은 직위에 올라가게 된 이유는 분명 있을 거고, 단순히 내 눈에 보이는 이유만으로 사람을 폄하할 이유는 없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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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없는 그늘을 지났는데도 뭔 수로가 이렇게 긴지 끝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저 멀리 마을 같은 게 보이는 걸 보니 진짜 목적지에 도착한 것 같다. 오랜만에 자동차가 다니는 마을이 나왔다.




프로미스타(Fromista)에 도착했다. 혼자 조용히 하루를 마무리하고 싶어 일부러 공립알베르게에 가지 않았다. 조금 멀리 떨어진 사립 알베르게에 체크인을 하는데 예전에 유로스와 같은 알베르게에 지냈던 한국인 부부가 계셨다. 시수르 미노르 라는 작은 마을에서 우연히 알게 된 분들인데, 두 분 중 아주머니와 잠깐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굉장히 차분해 보이는 성격과 말투, 그리고 행동에서 기품이 느껴지는 분이었다. 두 분이 함께 여행을 즐기시는데 평소 트레킹으로 인해 걷는 데도 크게 무리가 없으셨다고 한다. 연세가 조금 있으셨지만 손을 꼭 잡고 두 분이 함께 다니시는 게 너무 예뻐 보였다. 나도 저런 남편을 만나고, 저런 아내가 되어 같이 여행하는 부부가 되었으면 좋겠다.


알베르게 로비에서 아주머니와 인사를 나눈 후 2층 침대가 있는 방으로 올라왔다. 샤워를 하고 빨랫감을 챙겨 내려오니 20대 초반의 한국인들이 1층에 있었다. 조금 떨어진 테이블에 또다시 우연히 만난 석재오빠가 있었는데, 세계 여행을 하는 다른 친구가 석재오빠에게 다른 국가에 대해 물어보고 있었다. 알고 보니 석재오빠는 세계여행이 거의 끝나가는 중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던 몇 명이서 함께 저녁을 먹으러 나왔다.


며칠 전부터 신기한 경험을 했던 게 기억이 난다. 그날 아침에 먹고 싶은 게 생겨서 마음속으로 'OO을 먹고 싶다 먹고 싶다.' 이렇게 몇 번 외우게 되면 꼭 그 음식을 그날에 먹게 되는 거였다. 오늘은 아침부터 콰트로치즈피자가 너무 먹고 싶었는데, 점심에 cuatro quesos pizza(네 가지 치즈가 올라간 피자)가 보여서 주문을 했었고 저녁으로도 피자가게에 오게 되었다. 오예!


피자를 주문하고 기다리는 동안 가게 문이 열리더니 아까 만난 한국인 부부께서 들어오셨다. 인사를 하고 저녁을 맛있게 드시라는 말을 전한 뒤 피자를 먹었다. 그런데 갑자기 레스토랑 직원이 우리 테이블로 오징어튀김을 가져왔다. 주문이 잘못 들어간 건가 싶었는데, 알고 보니 한국인 부부께서 피자와 곁들여 먹으라고 사주신 거였다. 정말 감사했습니다. 두 분의 앞날에 평화와 행복, 그리고 건강이 있기를.


오늘은 진짜 35km를 걸었다. 내가 생각해도 정말 대단하다. 점점 더워지는 한낮에 그늘 한 점 없는 메세타 평원을 35km나 걷다니. 스스로가 너무 뿌듯했다. 내일은 37km를 걸으려 한다. 심지어 37km 중 마지막 17km는 한 번에 이동을 해야 하는 마의 구간으로 불린다. 어떠한 마을도, 카페도 없기 때문에 잠시 쉴 곳이나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곳이 전혀 없어서 그런 별칭이 붙었다. 그래서 보통은 20km와 17km를 나눠서 걷는다.


그렇게 37km를 걷고 나면 지금까지 봐왔던 사람들과는 점점 더 멀어지게 될 것이고, 더 이상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많이 아쉽고 슬플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나는 혼자 걷고 싶다. 나를 위해 떠나온 순례길이니만큼 나의 까미노를 찾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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