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차. 내게 까미노는 의미가 있어야만 했다.

by 양송이타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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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jpg 라 비르헨 델 까미노의 새벽


저 멀리 보이는 아침 해가 오늘의 시작을 알릴 때쯤 배낭을 메고 신발을 신은 뒤 알베르게를 나섰다. 오늘의 목적지인 호스피탈 데 오르비고로 가는 길목에 쿠키와 과일을 쌓아두고 순례자들에게 나눠 주는 유명한 할아버지가 있다. 내게 쿠키와 복숭아, 그리고 본인의 연락처를 손에 쥐어주시고는 꼭 연락을 해달라고 했다. 이 할아버지는 세요(도장)를 찍어주기 때문에 간식거리를 받아 가는 순례자들이 꽤 많은 것 같다. 아침을 먹으러 들어 간 카페에서 만난 한국인들이 말해준 바로는, 들리는 소문에 이 할아버지가 아시아계 여자 순례자들의 볼에 허락 없이 뽀뽀를 한다고 한다. 어찌 된 일인지 내겐 스킨십이 없었으나 왠지 찝찝해 연락처를 찢어 버렸다.


작은 강을 건너 이어진 화살표를 따라가면 한적한 숲길이 나온다. 적막과 고요함이 감도는 숲길을 혼자 걷다 보니 자연스레 나를 둘러싼 질문들을 떠올릴 수 있게 되었다. 어쩌면 꽤 오랜 시간 동안 나를 만들어 온 건 함께 해 온 사람들과의 관계가 아닐까. 어떤 사람들은 짧은 순간의 관계를 유지하고, 어떤 사람들은 삶의 일부를 차지할 정도의 관계를 맺게 된다. 관계는 어떻게 이어지고 유지되는 걸까.


관계를 이어가는 것에도 단계가 있는 것 같다. 첫 번째 단계는 서로 잘 모르는 사이에서 얼굴 몇 번 마주한 정도의 '간격을 두는 것'부터 시작한다. 그다음으로는 인사를 나누고, 이름을 알게 되고, 만났을 때 반가울 정도의 가벼운 사이가 되면 '아는 사람'으로 이름 붙일 수 있게 된다. 시간이 지나 다양한 이야기를 하고, 식사를 함께 하며, 조금 깊은 이야기를 하기에 무리 없는 그런 사이로 이어지게 되면 내게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 된다. 그런 후에 만들어진 이성, 혹은 동성 간의 애틋한 관계는 서로에게 색다른 존재로 받아들여진다.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 걸로 모자라 자신의 뜻대로 상대방을 바꾸려 할지도 모른다. 애틋함을 넘어 서로를 지치게 하는 관계가 될 수도 있다. 나는 그 이상의 관계를 이어가는 것이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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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와 실망 그 사이를 유지하며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것.


어쩌면 가족과 연인, 친구처럼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이 관계에 해당되는 것이 아닐까. 나는 되도록 피하는 쪽이었으며, 이 관계는 나와 타인뿐만 아니라 나와 나의 관계에서도 이어져왔다. 나는 나를 깊게 마주하는 것이 어려웠고,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는 것을 기피해왔다. 나를 피하지 않는 것과 나에 대한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해 실망하는 것 또한 내겐 힘든 일이었다. 되도록 무관심하게, 되도록 모른 척하며, 되도록 날카롭게, 되도록 기대를 하지 않는 관계. 가장 어려운 나와 나 사이의 관계.


어떤 드라마에서 있었던 대화처럼, 나는 나와 관계를 맺은 사람들 사이에서 연인으로든, 배우자로든, 심지어 딸이나 동생으로도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모든 관계에 있어서 적합하지 않은 건지도 모른다. 나는 아직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맺을 준비가 되지 않은 건 아닐까. 나는 그저 가장 일반적이면서도 가장 가벼운 관계, 딱 그 정도의 관계에선 아무 문제가 없을지라도 그 이상으로 가버리면 숨어버리고 마는 나를 순간 마주해야 했다.


사랑을 받고 사랑을 하는 것 또한 어렵다. 가장 쉬운 일이면서도 가장 신비로운, 그리고 가장 상처를 주고받기 쉬운 행동들이 아닐까. 나는 나를 사랑하고 있나? 나는 사랑받고 있는 사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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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줄어드는 사진과 늘어나는 무릎 통증이 내게 순례길에 온 이유를 찾으라고 재촉하는 것만 같았다. 생각에 집중하기보다 걷는 것에 집중하는 게 다였던 나를 채찍질하는 기분이다.


나는 힘들 때마다 들고 있던 등산스틱을 오히려 더 꽉 쥐었고, 그게 독이 되었는지 손에는 굳은살이 생겼다. 손끝에 저릿함과 약간의 뻐근함이 남아있을 정도로 스틱을 의지해왔다. 그렇게 등산스틱은 아무리 힘들어도 절대 놓지 않는 상징 중 하나가 되었다. 오늘의 목적지인 오르비고 마을로 가는 길에 그 소중한 스틱을 바닥에 내팽개쳤다. 그냥 바닥에 던져버렸다. 장시간 걸어온 다리의 아픔을 나눴던 친구와도 같은 스틱을 바닥에 던지는 순간 울컥한 기분이 들었다. 금방 다시 줍긴 했지만 너무, 너무 답답했다. 괜한 화풀이였다. 관계에 대한 생각들이 정리되지 않았고, 여전히 불안으로 가득 찬 어두운 동굴 속에 갇혀있는 내 생각들과 모습들이 너무 답답해서 7km를 쉬지 않고 미친 듯이 걸어왔다.


오늘 했던 생각들이 너무 힘들고 괴로웠다. 나는 나를 피하지 않고 마주하기로 했기 때문에 그래야만 했다. 그래야 모든 걸 내려놓고 까미노에 온 이유가 납득이 될 것 같았다. 벼랑 끝에 몰린 내게, 까미노는 내게 의미가 있어야만 했다. 그 어떤 이유로든 나는 이유가 필요했다.




호스피탈 데 오르비고(Hospital de Orbigo)에 도착했다. 오르비고 강과 다리는 이 마을의 상징인으로, 스페인에서 가장 길고 오래된 중세 다리 중 하나로 13세기에 건립되었다고 한다. 세르반테스가 이 곳에서 영감을 받아 돈키호테를 집필했다고 한다.


루비와 함께 걷던 작은 돌길

호스피탈레로가 오래 전부터 가꿔온 듯한 정원이 있는 알베르게에 체크인 했다. 알베르게 안에서 6~7명의 한국인 그룹과 석재오빠를 만났다. 그룹이 오늘 저녁으로 제육볶음과 김치찌개를 할 건데 괜찮으면 같이 먹자고 제안해줘서 나와 석재오빠는 술과 과일을 준비하기로 했다. 빨래를 하고 저녁을 먹기 전까지 시간이 조금 남아 마을을 구경하러 밖으로 나왔다. 곳곳을 구경하며 걷고 있는 와중에 저 멀리서 루비가 보였다. 어느 순간 잘 보이지 않게 되어 미국으로 돌아갔나 했는데 여기서 다시 만나 너무 반가웠다. 루비와 그 동안의 이야기를 하며 마을 곳곳을 함께 걸었다. 낮은 돌담을 따라 함께 길을 걷다가 저 멀리 루비의 아빠인 메이슨이 보였다. 다음에 또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말과 함께 우리는 헤어졌다.



다리 끝 왼편에 있는 카페에 가서 오르비고 다리와 강을 한눈에 볼 수 있는 테라스에 앉았다. 카페에 도착하자마자 강한 바람과 소나기가 내렸고, 우비를 챙겨오지 않은 나는 비가 그칠 때까진 카페에서 나갈 수 없었다. 덕분에 밀렸던 일기를 쓰면서 여유롭게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오늘은 배낭을 메고 약 26km 가량을 걸어왔다. 어느덧 순례길에서 3주를 보낸 터라 걷는 게 꽤 익숙해졌나 싶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무릎 바깥쪽이 너무 아파왔다. 그래도 이제는 종아리, 허벅지, 고관절이 더 이상 아프지 않았고 어깨 통증도 꽤나 무뎌졌다. 다만 뒤꿈치가 너무 아플 뿐, 이것도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지겠지.


내가 지나온 많은 관계들 중 어쩌면 가장 행복하고, 가장 힘든 관계는 이성과의 관계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나 일방통행으로 이어진 관계에서 나는 통행을 하는 쪽도, 받는 쪽도 되어봤었지만 관계에 있어서는 어느 쪽도 편하지 않았다. 흔히들 사랑을 주는 쪽이 사랑을 받는 쪽에 비해 더 힘들 거라 생각하는데, 받는 쪽이라고 쉬운 건 절대 아니었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내가 좋아하는 행동들을 해서 자신을 봐달라고 할 때, 내가 그 사람을 거절한다면 내가 나쁜 사람이 되는 걸까. 그 사람이 나를 위한 행동을 한다고 해서, 내가 그 사람을 좋아할 의무와 받아들이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함은 갖지 않아도 되는 거 아닐까. 그 사람은 결국 자신의 감정만을 위해 행동한 거라고 생각하면, 내가 조금이라도 마음의 짐을 덜 수 있지 않을까. 혹시 그 사람은 내가 자신의 감정을 받아주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생각을 하는 나를 미워하게 될까.


준비가 되지 않은 두 사람이 만나 같이 흔들리는 게 과연 좋은 걸까. 같이 바람에 흔들리면서 서로 스채여 상처 주고 꺾여 뿌리조차 안 남게 되는 건 아닐까. 그대로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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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 준비가 안 된 건지도, 핑계를 더 만들고 싶은 건지도 모른다. 조금 더 나라는 존재가 확실해지길 기다리는 건지도 모른다. 이 세상에서 나라는 존재가 가지는 불확실성과 불안정함이 나를 위협하고 내 주변 존재들과의 관계를 신뢰하지 못 하게 만드는 것 같다. 지금껏 내가 바로 서지 못 해 온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다양한 핑계를 방패삼아 온 내게 이런 이유는 대체 어디까지 허용될 수 있는 걸까.


나는 아직 혼자이고 싶은가 보다. 최근에 진심으로 행복을 느껴 길 위에서 행복하다고 크게 소리쳤던 때가 있었는데, 오롯이 나 혼자 존재한다는 걸 느꼈을 때였다. 누군가와 함께일 때가 아닌 혼자일 때, 내가 존재하는 이 공간, 이 시간, 다양한 소리와 생각, 그리고 풍경이 오로지 나에게만 허락된 것이란 걸 깨달았을 때. 나라는 존재를 위해 이 시공간이 존재하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준비된 시공간에 내가 잠깐 들어간 것이라 할지라도 어찌 되었든 이 시공간은 오로지 나와 함께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을 때. 바로 그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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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됐든 조금만 더. 나는 조금만 더 혼자여야 한다. 나라는 존재가 세상에 받아들여질 때까지. 그리고 내가 그 순간을 확신할 수 있을 때까지.


나는 잘 살아가고 있는가?

나는 잘 지내고 있는가?

나는 지금 이 순간을 나의 순간으로 만들어내고 있는가.




저녁을 먹고 하루를 마무리할 때쯤,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정원에서 비 오는 걸 구경하다가 다른 순례자들이 피는 담배 냄새가 매캐하게 느껴져 다시 실내로 들어왔다. 그 순간 알베르게에 좋은 향이 나서 어디서 향이 나는지 찾고 있었는데, 내 눈에 보인 건 벽에 빼곡히 붙어있는 그림들과 여기저기 놓여있는 물감들이었다. 액자 안에 있던 그림들이 예뻐서 호스피탈레로에게 물어보니, 이곳에 방문한 순례자들이 직접 그리고 간 것이라 한다. 시간이 부족해 하루 안에 미처 완성하지 못한 작품은 순례길이 끝난 후에 고향에 가져가 완성시킨 다음 알베르게로 보내주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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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자들의 그림


순례자들이 그린 그림은 특별하다. 순례자들의 마음이 그림 속에 녹아있다. 내가 가야할 길에 대한 설렘이 그림 속에 그대로 묻어 있어서 속으로 미소가 지어졌다. 한편 끝없는 고독, 외로움, 어둠과 싸우며 아픈 발을 이끌고 걸어가야 하는 그들의 모습에 우리는 모두 같은 순례자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름답다는 단어로 표현하는 게 아쉬울 만큼 정말 아름다운 작품들이었다. 그들의 감정이 전시된 이 알베르게는 지금까지 본 어떤 박물관이나 미술관보다도 감명 깊게 다가왔다. 이 공간을 장식하는 그림을 만든 순례자들과 내가 까미노로 이어져 있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이 멋진 공간 속에 내가 있으며, 내가 내 삶을 살고 있는 게 느껴졌다. 나는 까미노 위에서 나를 살고 있었다. 나의 하루를 내가 결정하며, 나의 걸음을 내가 움직이는 나는, 순례자다. 나는 오늘, 지금의 나를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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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길에서 만난 순례자들은 항상 반가운 느낌으로 서로를 맞아준다. 이렇게 웃고 있지만 사실은 이들도 벼랑 끝에 몰린 심정으로 각자의 이유를 안고 까미노를 찾았을 거란 생각이 든다. 왠지 모르겠지만 오늘은 쉽게 잠을 잘 수가 없다. 오랜만에 쏟아져 내린 비처럼 끊임없이 밀려오는 악몽을 꿀 것 같아서일까.


- 너는 잠에 들지 못 하는 나를 지켜주려 그 쓴 커피를 무던히도 많이 마셨더랬다. 그럼에도 잠을 이기지 못 했던 너에게 나는 짜증을 냈었다. 그럴 바엔 그냥 자라며. 지키지도 못 할 약속을 대체 왜 했냐며.


- 너는 내가 잠을 잘 못 자는 걸 모른다. 눈치는 챘겠지만 방법이 없어서인지, 너의 삶이 더 중했기 때문인지, 혹은 모른 척하고 싶어서 인지. 너는 나의 잔다는 뻔한 거짓말에 무던히도 많이 속았더랬다. 나 역시 너를 많이 속였다. 왠지 네게 알리고 싶지 않았다.


나는 잠을 잘 못 잔다. 어떤 누구와 있어도 그렇다. 특히 몇몇 날은 어쩔 수 없이 못 자기도 한다. 많은 방법을 찾아 시도해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나는 여전히 잠을 잘 못 자며, 앞으로도 그러지 않을까. 이건 나의 영원한 숙제다.


늦은 시간까지 환한 내 방의 불을 끄기 위해 엄마는 내 방을 살짝 열어보았다. 나는 언제나처럼 미처 불을 끄지 못 한 채 잠에 든 척 했다. 시력이 안 좋아질까 불을 끄지 않고 가만히 핸드폰을 만지다가도, 엄마의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면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러면 나는 그렇게 잠을 자는 시간이었어야 했다.


비가 오면 유난히 심해진다. 비가 적게 오든 많이 오든 상관없이 악몽을 예견하는 이상한 기운이 내게 내려앉는다. 그럼 나는 자연스럽게 조금이라도 일찍 잠에 들기 위해 노력을 한다. 그 노력이 오늘 밤을 쉬이 보낼 수 있는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높여 주리라 믿으면서.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잠을 자긴커녕 나를 눌러왔던 짓궂은 생각들이 덮쳐와 누워있는 것조차 힘이 든다. 오늘이 딱 그렇다. 미친 듯이 피곤했으면서도 잠을 잘 수가 없어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밖에 나갔다 왔다. 그럼에도 여전히 잠에 들지 못 한 내가 원망스럽다. 이렇게 나는 자괴감에 빠지게 된다.


오늘을 살아낸다는 것. 오늘 하루 죽지 않고 버텨낸다는 것. 오늘의 삶을 내일로 연장했다는 것. 벼랑 끝에 몰린 내가 나에게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칭찬 중 하나. 오늘을 살아내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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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jpg 오늘을 살아낼 수 있었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