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 카타리나 데 소모사의 아침
규모가 워낙 작은 데다 편의시설도 적었기 때문일까. 순례자들이 묵어가는 마을이라기보다 그저 지나가는 수많은 마을 중 하나인 이곳 산타 카타리나 데 소모사(Santa catalina de somoza)에는 알베르게가 하나밖에 없었다. 오늘 아침까지도 이 알베르게에 나와 석재오빠 외에 다른 순례자는 없었던 것 같다. 건너편 방에 순례자 가족이 있는 것 같긴 했지만, 우리가 쓰는 20인실 방에는 우리밖에 없었기 때문에 아주 여유로운 아침을 맞이할 수 있었다. 보통은 새벽 4, 5시에 출발하는 순례자들의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자연스레 눈이 떠지는데, 오늘은 어떠한 소음에도 방해받지 않고 6시 30분쯤 느지막이 일어나 알베르게를 나설 수 있었다. 훨씬 좋은 컨디션 덕분에 편하고 여유로운 걸음으로 길을 걸었다. 시작이 좋은 아침이다.
화살표를 따라가다가 카페에서 아침을 먹고 산행을 시작했다. 한 걸음, 한 걸음 경쾌하게 내디뎌 본다. 이전에도 말했다시피, 나는 체력이나 운동신경이 대한민국 20대 여성 평균치보다도 한참을 밑돈다. 오래달리기는 3분을 채 못 넘고 턱걸이는 1초가 고작이며, 체육시간엔 항상 꼴찌를 도맡아 했다. 순례길 첫째 날에 1450m 고도의 피레네산맥을 넘으면서 여기저기 다친 걸 생각하면 오늘 1400m 짜리 등산도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할 것 같다.
본격적으로 산을 오르기 전 작은 벤치와 천막이 있는 곳을 발견했다. 벤치 위에는 새 모형이 있고 독특한 의상을 입은 아저씨가 천막 안의 물품을 정리하고 있었다. 순례길에서 가끔 만나는 도나티보 아저씨인가 보다. 세요(sello, 도장)를 찍어주고 도나티보를 받는 행상인치고는 꽤나 의상이 독특하다 싶었는데 천막 옆에 있는 안내판을 보니 유명한 분인 것 같았다.
안내판의 기사를 읽고 있는데 모형인 줄 알았던 새가 갑자기 파닥파닥 하더니 독수리 아저씨 어깨에 살포시 내려와 앉았다. 그 장면을 보고 놀라는 내게 독수리 아저씨가 가까이 오셔서 말을 걸어주셨다. 노란색 가죽 장갑을 끼고 있으면 독수리가 와서 손 위에 앉을 거라고 했다. 특정 체험을 진행한 뒤 세요를 찍어주고 도나티보를 요구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 그냥 갈까 했지만, 독수리 모양의 예쁜 스탬프를 생각하니 약간의 돈을 기부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줄리라는 이름을 가진 독수리와 눈을 마주치는 건 꽤나 신기한 경험이었고, 생각보다 부드러웠던 줄리의 깃털의 느낌이 너무 좋았다. 줄리와 인사를 끝낸 후 도나티보와 세요를 위해 천막 안의 책상으로 갔는데, 스페인어와 영어가 섞인 말로 내게 작은 상자 앞에 있는 글자를 읽어보라고 하셨다.
"Would you like to see the most beautiful thing in the world?"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을 보고 싶으신가요?
상자를 열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 있다길래 기대하면서 열었더니 작은 거울 하나가 나를 비추고 있었다. 거울에 비친 나는 도대체 며칠 짼지 화장조차 하지 않은 초라한 모습이었고, 새까맣게 그을린 산악인 같은 내 얼굴은 그동안의 고생을 말해주는 듯했다. 한동안 거울도 제대로 보지 않아 어떤 꼴로 다녔는지도 몰랐었는데, 이렇게 보니까 안타깝기도 하고 한 편으론 후련하기도 했다.
나는 독수리 아저씨가 말한 the most beautiful thing을 보기 위해 상자를 열었던 건데 왜 거울이 나오는 걸까.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거울 뒤에 있다는 건가? 무슨 뜻인가 싶어서 다시 생각해보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는 게 결국 나라는 거였다. 거울에 비친 초라한 내 겉모습이 초라하고 볼품없을지언정, 내 눈에 비친 나라는 존재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뜻이었다.
그 순간 너무 감동해서 깜짝 놀라 독수리 아저씨를 찾았는데, 내게서 한참 떨어진 뒤쪽에서 날 보고 윙크를 해주셨다. 한결 따뜻해진 마음으로 보잘 것 없지만 소량의 기부를 하고 길을 나서는데, 그 순간의 기억이 이상하게도 너무 깊게 남아있어 같이 걷던 석재오빠와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진부한 아이디어일 수도 있는 이야기에 내가 왜 그렇게 감동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순간들을 살아낸다는 것. 내가 나로 있을 수 있고 내 삶을 내가 살아가는 것에 대한 고민을 안고 떠나온 순례길에서, 독수리 아저씨는 나의 순간과 나의 삶을 그리고 나의 감정과 감동을 내게 선물해주었던 것이다. 내가 이 산속에서 'the most beautiful thing in the world'가 볼품없이 초라해진 내 얼굴과 내 존재 그 자체라는 걸 알아채기까지, 딱 그 시간까지의 짧은 순간을 오롯이 내 것으로 만들어주었던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내가 거울을 보고 독수리 아저씨를 찾았을 때 독수리 아저씨는 나와 떨어져 있었다. 독수리 아저씨와 나와의 약 5m 내외의 간격. 딱 그 정도의 거리를 통한 배려가 내게 '감동의 순간을 내 것으로 만들어주는' 선물을 안겨주었고 나는 그 순간 벅차올랐던 것이다. 아마 한국이라면 최저시급을 받는 예쁘거나 잘생긴 아르바이트생이 감동을 하는 내 모습을 지켜본 뒤에 미리 외워둔 교과서적인 답변을 읊고는 ‘여기다 돈을 넣어주시면 됩니다.’라고 안내하지 않았을까.
산을 오르면서 석재오빠와 다양한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조금 전에 있었던 독수리 아저씨부터 시작해 꼬리를 무는 이야기들이 이어졌다. ‘왜 한국에서는 독수리 아저씨 같은 상황이 감동을 주지 못 하는 걸까’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유럽과 한국의 문화를 비교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문화 중에서도 내가 관심 있어 했던 장애인 복지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공동체와 국가에 대한 인식을 이야기해보았다. 국가 이야기를 하면 빠질 수 없는 게 시민의식이었고, 브라질의 여성 대통령 탄핵과 관련하여 고위공직자들의 이야기로 이어졌다. 전쟁이 일어났을 때 고위공직자가 어떤 위치에 있고 어떤 의무와 책임을 가지는 지에 대해 생각해 보다가, 전쟁으로 인해 발생되는 가난과 의식주로 연결되었다. 그 후 전쟁을 거친 세대와 그렇지 않은 세대와의 고민이 어떻게 차이나는 지까지. 계속해서 꼬리를 무는 이야기들은 항상 따로 걷던 우리를 몇 시간 동안 함께 걷게 해 주었다.
솔직히 처음에는 석재오빠가 이런 류의 이야기를 좋아할 거라고 생각해서 시도했던 건 아니었다. 독수리 아저씨 이야기를 하면서 공감되는 부분이 많아 조금씩 이야기를 이어나간 건데 사실 이렇게까지 길어질 줄은 몰랐다. 무겁고 진지한 얘기가 이어진다 싶으면 서로 중간중간에 위트 섞인 농담을 해 주어 묵직한 감정으로 빠지는 걸 막아주기까지. 가볍지 않은 이야기를 하는 게 다소 낯설어 보였지만 그래도 이야기를 하는 게 즐거워 보였다.
사실 오빠는 어릴 때 토론을 싫어했다고 한다. 고등학교 때만 하더라도 토론을 하라고 하면 전쟁 같았던 분위기로 이어지는 게 싫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들에 공감해주고 자연스럽게 말을 나누며 다양한 생각을 한다는 게 결국 토론이나 토의가 추구하는 바와 같지 않을까. 아무렴 어떤가.
처음부터 석재오빠와 동행할 생각은 아니었다. 오히려 다른 순례자와 오랜 시간 동행한다는 것에 거부감이 있었다. 나는 혼자 다닐 생각으로 순례길을 온 데다, 한국인들을 만났을 때 그리 좋은 기억이 없어 오히려 피해 다닌 쪽이었다. 석재오빠도 외국인들과 함께 다니고 있었고 한국인들을 그리 반가워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처음에 저녁을 먹으며 옆 테이블에 있는 한국인에게 인사를 나눈 것이 석재오빠였고, 그 후 며칠 동안 만나지 못 했다가 또다시 우연히 만난 게 인연으로 이어졌다. 워낙 걸음 속도가 빠른 분이라 애초에 내가 함께할 수 있다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었다. 지나가다 들른 카페나 알베르게에서 본 게 다였다. 우연이 반복되면 인연이라고 하던가. 그렇게 우연이 겹치고 또 겹쳐져서 어느새 2주가 흘렀다.
처음에는 다른 알베르게에서 출발해 다른 시간과 공간을 걷고, 다른 음식을 먹으며 다른 이야기를 했다. 그다음에는 다른 알베르게에서 출발했지만 같은 길을 걸었고, 같은 카페에서 다른 음식을 먹으며 다른 이야기를 했다. 지금은 같은 알베르게에서 출발해 같은 길을 다른 시간에 걷고 있지만, 같은 카페에서 다른 음식을 먹으며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같이 걸었지만 함께 걷지는 않았고, 같은 알베르게에서 출발했지만 시간을 약속한 건 아니었다.
다른 사람의 일에 관심이 많았던 사람들이 '둘이 사귀는 거 아니에요?'라는 질문을 했을 때 항상 같은 대답을 했다. '저희 사실은 언제든 헤어질 수 있는 사이예요. 당장 지금부터라도 따로 걸을 수 있고, 내일부터 영원히 못 볼 수도 있어요. 그게 서로 생각이 맞아서, 그래서 이렇게 같은 길을 걸을 수 있나 봐요’
한참 산을 오르다가 일행과 멀찍이 떨어지게 되었다. 사진과 동영상을 계속 찍으며 걸었던 탓에 멀어진 것도 있지만, 애초에 산을 타는 것 자체가 익숙하지 않아 자꾸 늦어지는 것도 있었다. 그러다가 예전에는 동영상을 참 많이 찍었었지 싶어서 문득 멈춰 섰는데, 그 순간 내게 들려오는 소리들이 너무 예뻐서 꼭 기억해두고 싶었다.
내 발걸음 소리, 스틱 소리와 함께 산을 오르다 문득 걸음을 멈추었을 때 제일 먼저 들려오는 건 고르지 못한 나의 숨소리와 거친 심장박동소리였다. 어느 정도 쿵쿵대던 심장소리가 잦아들고 호흡도 안정을 찾게 되면 가만히 눈을 감아 본다. 아득하게 멀리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내 귓가에 맴돌다 사라지고, 그와 동시에 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이어진다. 그 상태로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내 주변을 날아다니는 날벌레의 위잉 위잉 하는 소리와 풀벌레의 찌르르 소리, 그리고 저 멀리서 바람에 바스락대는 나뭇잎 소리가 들려온다. 곧이어 또다시 내려오는 시원한 바람과, 바람결 사이사이로 천천히 흘러오는 좋은 냄새. 여기까지 듣고 나면 내 땀 냄새 때문인지 점점 날벌레가 모여들어 다시금 발을 재촉하게 된다. 다시 걸음을 산으로 향할 때면 방금 같은 예쁜 소리와 시원한 바람보다는, 내 발끝에 채이는 자갈 소리와 스틱이 돌을 내리꽂는 소리가 나를 뒤따라 온다. 아쉽지만, 가야만 한다. 그렇게 나는 나의 까미노를 걷고 있다.
폰세바돈(Foncebadon)에 도착했다. 내일 아침 일찍 철의 십자가(Cruz de Ferro)를 지나기 위해 오늘은 여기서 쉬려고 한다. 해발고도 1450m에 위치한 폰세바돈에서는 많은 알베르게가 공사 중이었지만, 우리는 안쪽에 있는 한 알베르게에 체크인할 수 있었다.
비장의 진라면을 꺼내 맛있게 먹은 뒤 알베르게 테라스로 나갔다. 해먹이 있어서 낮잠을 자려고 누웠다가 벌레한테 뜯겨서 다시 실내로 들어왔다. 이전에도 한 번 만난 적 있던 새롬씨를 여기서 또 만나게 되었다. 며칠 전 봤을 때는 한국인 그룹에 속해있었는데 왜 혼자 있게 되었냐고 물어보니, 다른 분들은 식중독에 걸려서 출발하지 못 했다고 했다. 아마 다 같이 먹은 케밥이 원인인 것 같다.
새롬씨, 석재오빠와 함께 저녁을 먹고 알베르게로 돌아왔다. 알베르게 안에서 여러 이야기를 나누다가 너무 졸려 먼저 침대로 갔다. 자다가 일어나 물을 마시러 나왔는데 고도가 높아서인지 저 멀리서 반짝이는 도시의 불빛들이 너무 예뻤다. 적당히 늦은 시간에 일어나 출발한 아침이 너무 좋았다. 오늘은 독수리 아저씨도 봤고, 다양한 생각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기쁜 하루였다. 오랜만에 먹는 진라면이 너무 맛있었고, 새벽에 보는 야경도 정말 예뻤다. 산티아고까지 이제 약 10일 정도 남았는데 정말 짧고 행복한 하루하루들이 이어지는 것 같다. 내일이 기다려진다.
술을 좋아하지만 못 하는 자의 최후
새벽에 일어나서 본 달빛과 별빛
안녕, 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