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페라다의 아침
폰페라다를 나와서 오늘의 순례길을 시작했다. 이상하게 어제 버거킹에서부터 배가 아프더라니 결국 몸살이 난 것 같다. 배와 허리부터 시작해서 무릎까지 통증이 어어졌는데 배낭을 멘 어깨가 아플 정도로 뭔가 온몸의 뼈들이 정상이 아닌 느낌이었다. 폰페라다에서 나오자마자 시작된 고통이 계속되어 결국 느린 걸음으로 5km 뒤에 있는 카페에 들리게 되었다. 식은땀도 나고 배와 허리, 무릎, 어깨, 머리 등 안 아픈 데가 없는데다가 두통과 폭염, 무거운 배낭까지. 오늘 23km는커녕 10km는 갈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힘들었다.
죽을 때 죽더라도 먹을 건 먹자는 생각에 아침을 먹었다. 아침을 먹고 나와 작은 마을로 들어왔다. 맑은 강이 흐르는 마을에서 여기까지 같이 왔던 석재오빠가 고민거리가 있다며 나를 먼저 보냈다. 평소에 심각하지 않던 사람이 갑자기 심각한 표정을 짓길래 조금 당황했지만 더위와 몸살에 지쳐 다른 사람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밑도 끝도 없는 포도밭을 지나 까까베로스라는 마을에 도착했다. 오랜만에 예쁜 바닥을 밟으며 조금 있는 그늘을 찾아다니면서 열심히 걷고 있는데 표지판 앞에서 어떤 할아버지가 나를 빤히 쳐다보셨다. 뻬뻬 할아버지였다.
뻬뻬할아버지는 멋쟁이
꽤 오래전 우연히 카페에서 인사를 나눈 게 인연이 되어 그 뒤로 계속 만날 때 마다 대화를 나눴던 뻬뻬 할아버지였다. 반팔 셔츠에 하얀 바지를 입고 선글라스를 끼고 계셔서 처음엔 누구인지 전혀 못 알아봤었는데, 내가 가까이 가자 선글라스를 벗으시며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으셨다. 내 스페인 이름인 "ELENA!!!"를 외치는 뻬뻬할아버지 특유의 호탕한 웃음소리를 듣고 나니, 진짜 뻬뻬할아버지가 눈앞에 있구나 실감이 났다. 지난번 산길에서 만났을 때만해도 속도 차이가 심해 다시는 못 볼 줄 알았는데 이렇게 다시 보게 되어서 너무 기뻤다.
알고 보니 중간에 라이언 할아버지가 건강이 안 좋아지셔서 버스를 타고 고향으로 돌아갔고, 뻬뻬할아버지도 고향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그럼 여기는 휴가차 오신 거냐고 여쭤보니 본인의 고향이라고 하셨다. 순례길 위에 있는 마을이 고향이어서 어릴 때부터 순례자들을 보며 자라왔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나를 카페 안으로 데려가 사람들과 인사시켜주었다.
사실 나는 스페인어를 못 하고 할아버지는 영어를 전혀 못 하셔서 우리의 의사소통은 오로지 바디랭귀지뿐이었다. 그래서 할아버지가 사람들에게 나를 스페인어로 소개해주셨지만 뭐라고 소개해주셨는지는 전혀 알 길이 없었다. 아마 까미노에서 만났고, 정말 오랜만에 봤는데, 스페인어를 하나도 못 하는 코리안이지만, 내 친구다!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으셨을까?
호텔을 겸하고 있는 카페에서 할아버지가 먹을 것을 사주신다고 하셔서 우유를 부탁드렸다. 할아버지와 그동안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내 무릎은 이제 괜찮냐며 걱정해주셨다. 아픈 곳은 없는지, 너무 덥진 않은지 등등 물어보시는 것 같았다. 한참 이야기를 하다가 뻬뻬할아버지가 친구가 와서 잠시 나갔다 오겠다며 내게 기다려달라고 하셨다. 우유를 마시며 일기를 쓰고 있는데 뒤에 앉아 있던 한 여자분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처음에는 스페인어로 말을 걸 줄 알고 '저 스페인어를 못 하는데 혹시 영어를 할 줄 아시나요..?'라고 말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굉장히 유창한 영어로 '혹시 불편한 게 있거나 필요한 게 있으면 스페인어로 통역해줄 테니 말해요'라고 하는 게 아닌가. 이 카페 안에 있는 20명 남짓한 사람들 중에서 자기가 유일하게 영어를 하는 사람일 테니, 언제든 도움을 요청하라는 배려를 해주었던 것이다. 아까 뻬뻬 할아버지가 나를 뭐라고 소개했는지 물어볼 걸 그랬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뻬뻬 할아버지가 어떤 스페인 아주머니를 데려오셨다. 그리고 서로 인사를 나누었는데 다행히 영어를 아주 조금 할 줄 아셨다. 하지만 단어 몇 개로 문장을 간신히 만들어 내는 수준에 가까웠기에, 우리의 소통은 여전히 바디랭귀지로 이루어져야 했다. 뻬뻬 할아버지가 밖에 나갔다 오시겠다며 다시 나가셨고, 둘만 남은 우리는 대화를 이어갔다.
스페인 아주머니 : do you speak espanol?
(혹시 스페인어 할 줄 아니?)
나 : no.. hablo espanol un poco..
(아뇨.. 아주 아주아주 조금만 가능해요)
스페인 아주머니 : hmm.. how about french?
(프랑스어는 못 해?)
나 : no..
스페인 아주머니 : ..german, italian..?
(독일어나 이탈리아어는...?)
나 : no.. lo siento..
(전혀 못 해요 미안해요..)
스페인 아주머니 ; you can't speak any language?
(너 할 줄 아는 언어가 없네 그럼?)
나 : ??
스페인어도, 프랑스어도, 독일어도, 이탈리아어도, 그 중 어느 하나도 못 하는 나를 이상하게 바라보며 묘하게 웃으시는데 기분이 영 이상했다. 그것도 못 하냐는 듯한 눈빛과 표정. 괜히 기분이 상한 나는 다음 대화를 이어 갔다.
나 : pero puedo hablar korean, japanese, and chinese. do you speak any language from east asia?
(근데요, 저 한국어랑 일본어랑 중국어 할 줄 아는데, 동아시아 쪽 언어는 못 하세요?)
스페인 아주머니 : ah~ east asia~ sorry sorry ~
(동아시아~? 그렇네. 미안해요~)
이 분은 세상의 중심이 유럽이라고 생각하시는 건가 싶을 정도로 자신이 배워 온 유럽 쪽 언어에 대해서만 그 가치를 부여하시는 것 같았다. 이 아주머니의 표정과 말투에서 스페인어나 프랑스어 정도는 당연히 해야 하는데 못 하는 내가 이상한 사람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우리가 소통이 잘 안 되는 건 스페인어조차 못 하는 내가 문제라는 것처럼 말씀하셔서 나도 맞받아쳤던 것 같다. 여기서는 스페인어와 프랑스어가 당연하겠지만, 오히려 한국에서는 한국어와 영어, 혹은 일본어를 더 많이 배우는 것처럼 그저 문화가 다른 건데 그걸 이해하지 못 하시는 것처럼 보였다. 한국이든 외국이든 상대방을 배려하는 것과 무례한 행동을 하는 건 사람마다 다른 게 확실했다. 한국인이 무례하다거나 외국인이 배려를 잘 해준다는 게 아니라, 무례한 사람은 어디서든 무례하고 배려깊은 사람은 어디서든 배려깊다. 아, 물론 나는 일본어와 중국어를 못 한다. 그냥 해 본 말이다.
기분은 나빴지만 뻬뻬할아버지를 생각하며 웃었다.
뻬뻬할아버지가 준비가 다 되었다며 다시 들어오셔서 우리를 데리고 나갔다. 카페와 호텔을 구경시켜 주고 싶으셨던 모양인데, 먼저 이 마을에서만 살 수 있는 물품들이 있는 가게에 들어갔다. 이곳에서만 먹을 수 있는 와인과 가게에서 만든 파이를 맛보게 해주셨다. 할아버지는 마을을 구경 시켜주겠다며 나와 아주머니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뻬뻬 할아버지는 지나가면서 보이는 마을 사람들 모두와 인사를 하면서 나와 스페인 아주머니를 마을 주민들에게 소개해주셨다. 팔뚝만 한 무를 마당에서 키워냈다며 자랑하시는 아주머니, 어제 옆집 개가 새끼를 낳았다며 구경 가보라는 할머니 등 마을 주민들을 만나고 다니느라고 한 시간 넘게 이 마을에 머물러야만 했다. 무척 더웠고 햇빛에 피부가 익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뻬뻬 할아버지와 함께해서 즐거운 경험이었다.
헤어지기 직전에 뻬뻬할아버지와 메일 주소를 주고받았다. 한국에 돌아가 스페인어를 공부할 기회가 된다면, 어떤 이야기를 내게 하고 싶었는지 물어보고 싶다. 언어가 달라 말이 하나도 안 통했지만 마음만으로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게 너무 신기했다.
오늘의 목적지인 비야프랑카 근처에 언덕이 있었는데 생각보다 꽤 가파른 언덕이라 숨이 찰 정도였다. 나는 항상 정상에 올라가기 전, 목표치에 다다르기도 전에 아래를 보는 습관이 있었다. 나는 내가 있는 위치에서 위를 보고 아직도 이만큼이나 남았네 하는 생각에 곧장 한숨을 쉬곤 했다. 하지만 순례길을 걸으면서 어느 순간부터는 그저 목표지점과 땅만 보며 묵묵히 걸어 올라가는 것 같다. 아래를 보지도 않고 한숨을 쉬지도 않으며 언젠간 도착하겠지 하는 생각과 함께 말이다.
한국에 있는 친구로부터 오랜만에 연락이 왔다. 까미노는 어떻냐고 했다. 순례길을 걷고 나면 어떤 게 바뀔까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중, 친구는 내게 실질적인 생각들보다 인내심이나 집중력 같은 무의식적인 것들이 바뀔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지금까지 걸었던 까미노를 돌아봤을 때, 생각의 변화도 많았지만 티가 안 나는 인내심이나 집중력이 조금씩 늘고 있는 건 확실했다. 특히 오늘처럼 언덕이나 산을 오를 때는 내가 한계에 부딪혀 가며 조금씩 성장하고 있는 게 느껴졌다.
지독한 더위와 무거운 짐, 그리고 몸살에도 굴하지 않고 그늘 하나 없는 오후 3시의 땡볕을 열심히 걸어왔다. 산길 중간에 앉을 만한 곳이 있어서 석재오빠가 쉬었다 가자고 했는데, 내가 앉은 바위 밑에 개미가 드글드글한 걸 보고 급하게 일어나서 2km를 더 걸어갔다. 석재오빠가 날 요 며칠 관찰한 결과, 가만 보니 애가 체력은 좋은 것 같은데 정신력이 영 아니란다. 나는 오히려 체력이 바닥이고 그나마 조금이라도 있는 정신력으로 남은 체력을 쥐어짜내는 거라 생각했는데 아닌가 보다. 듣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하다.
힘들게 언덕을 넘으니 저 멀리에 오늘의 목적지가 보였다. 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소(Villafranca del Bierzo)에 도착했다. 무더위에 이까지 걸어 온 걸 자축하는 것도 잠시, 우리가 갈 알베르게는 마을 끝자락에 있어서 여기서 조금 더 걸어가야 했다. 더 이상 걷기가 힘들어 주위를 둘러보는데 마침 근처에 바가 있었다.
(사족) 2년 뒤, 이 알베르게는 리모델링을 하면서 스페인하숙 촬영지가 되었다.
순례길에서 처음으로 낮술을 했다. 물론 이라체수도원에서 아침에 와인을 한 모금 마셨던 거나 오늘 낮에 뻬뻬 할아버지의 마을에서 와인을 조금 마시긴 했지만, 알베르게에 도착하기도 전에 바에서 술을 마시는 건 처음이었다. 너무 더워 시원한 맥주를 들이켰는데, 맥주가 너무 맛있었다. 순례길 위의 어떤 바에 들어가서 어떤 맥주를 주문해도 한국과는 또 다른 느낌의 맥주가 너무 맛있었다. 시원한 맥주를 마시는 게 꼭 한여름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것 같아서 좋았다.
알베르게를 찾아 체크인하고 저녁을 먹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장을 보고 돌아와서 파스타와 과일을 저녁으로 먹었다. 아침부터 몸살 기운이 있어 진통제를 먹을까 말까 고민을 많이 했다. 비타민과 진통제는 같이 먹는 게 아니라고 들었는데, 아침 식사로 오렌지 쥬스가 나와 아침에 진통제 먹는 걸 포기했었다. 점심 식사로는 일부러 우유를 마셨는데 언덕을 오르면서 정신을 놓는 바람에 또 포기했다. 알베르게에 도착해서는 어제 챙겨온 오렌지와 자두를 먹었어야 했기에 역시나 포기했다. 저녁을 먹고 약을 먹을까 했는데 이미 자는 마당에 뭔 진통제야 하고 결국 또 포기했다.
저녁을 먹을 때쯤 빨래를 빨랫줄에 걸어놓으려 야외에 있는 정원으로 나갔다. 오늘따라 바람이 유난히 많이 불었다. 빨래집게를 가지고 다니지 않아서 날아가는 빨래들을 어떻게 고정시켜야 하나 고민하고 있던 차에, 잘생긴 청년이 내게 와서 빨래집게를 건넸다. 윙크와 함께 건넨 분홍색 빨래집게가 유로스를 떠올리게 해 줘서 자기 전까지 계속 기분이 좋았다.
하필 색깔도 분홍색이다.
아픈 다리를 마사지해주면서 여기저기를 살펴보는데, 베드버그같은 벌레에 물린 것 같다. 내가 하나씩 데리고 다니는 모양이다. 처음엔 작은 반점이 하나씩 있길래 산속에서 작은 날벌레나 개미에게 물린 건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더 구석구석 찾아보니 벌레 물린 흔적이 5~6개가량 그룹을 지어 있었고, 손목이나 발등도 계속해서 가려웠다. 한국에 들어가기 전에 셀프 소독이라도 해야겠다.
피레네산맥을 넘으면서 망가졌던 발톱을 계속 달고 다녔는데 오늘 드디어 똑떨어져서 속이 시원했다. 새로운 발톱이 예쁘게 났으면 좋겠다. 한편 왼쪽 발에 족저근막염으로 의심되는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발 통증에는 안 걷는 게 최선이었지만 지금 상황에서 사실상 한동안은 내가 어떻게 해결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와 함께 걷는 것이 이제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혼자 다녔기 때문에 무서울 수 있는 일들이 많이 줄어들어서 석재오빠에게는 여전히 감사하고 있다. 예전에 비해 생각이 많이 줄어든 것도, 외국인들이 말을 걸어오는 빈도가 적어지는 것도 사실이었지만 그래도 석재오빠와 이야기를 많이 할 수 있어서 좋았다. 나와는 너무도 다른 생각들을 갖고 있었기에 다양한 생각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기회가 되었고, 내 생각만이 답이 아니라는 걸 매 순간 확인할 수 있었다.
내일은 28km를 가야 한다. 꽤나 가파른 언덕을 올라가야 하는데 고민 끝에 짐을 들고 가기로 결정했다. 온몸에서 느껴지는 여러 통증에 익숙해지지 못 해서 걱정이 되었다. 괜찮겠냐는 석재오빠의 물음에 ‘괜찮지 않을까요..?’ 라고 대답했지만, 사실 확신이 있어서 그렇게 대답한 건 아니었다. 그래도 괜찮지 않을까. 한 번 들고 가 보자. 내일은 조금 더 생각을 할 수 있는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제 7일 정도 남은 나의 까미노.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