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차. 산티아고로 가는 모든 길은 다 연결되어 있어

by 양송이타파스


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소의 알베르게


오늘이 목적지까지는 약 28km. 1300m 내외의 고도지만 경사가 가파르기 때문에 괜히 긴장이 된다. 순례자 동상과 달을 보면서 길을 걸었다. 산 바로 밑에 마을이 있고 그 옆으로는 강이 흐른다. 산티아고가 200km 남았다는 표지판이 나왔다. 어두침침한 산길 옆 도로를 걷다 보니 작은 마을에 있는 카페에 도착했다. 아무 말 없이 아침을 먹고 있는데 저 멀리서 루비와 루비 아빠인 메이슨이 걸어오는 게 보였다. 그동안 루비가 몇 번의 점프를 했는데도 이렇게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지난번 다시는 못 볼 줄 알고 나눴던 인사가 너무 인상 깊었기 때문일까, 오늘은 다소 머쓱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인사를 했다. 그간의 안부를 간단히 묻고 서로 갈 길을 갔다. 학창 시절 매일 보던 옆 반 친구와 인사를 나누는 기분이었다.


아침을 먹고 길을 나섰다. 아직은 해가 내리쬐지 않는 풀숲에서 작은 염소 두 마리가 뛰어 놀고 있었다. 조금 더 걸어가니 염소치즈를 파는 곳이 있었다. 얼마 걷지 않았는데도 배가 고파져서 카페에 들어갔다.


"una tostada y uno espresso con los hielos!"

(토스트랑 에스프레소랑 얼음 주세요!!!)


아이스커피와 토스트

스페인어로 주문하는 게 이제는 자연스러워졌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만들어 마시는 것도 익숙해졌다. 여기서 쓰는 토스트 빵을 슈퍼에서 대량으로 파는 걸 봤는데, 흔한 빵처럼 생긴 이 토스트가 왜 이렇게 맛있는지 모르겠다. 버터와 잼 때문일까? 겉은 바삭하고 안은 촉촉하면서 고소한 맛이 느껴지는 이 토스트를 알게 된 이후로는 카페에 들릴 때마다 계속해서 이 메뉴만 주문해 왔다. 메뉴판에 없는 메뉴를 주문할 때의 뿌듯함으로 어깨가 으쓱으쓱했다. 커피를 주문할 때 옆에 있던 스페인 사람이 내게 말을 걸었다. 시간이 남는다면 자기 집이 이 근처인데 예쁜 강이 흐르고 있으니 구경 오라고 했다. 관광객들이 사진을 많이 찍어가는 숨은 명소이기 때문에 너가 좋아할 거라며 꼭 와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뻔뻔하면서도 참신한 멘트에, 이따가 꼭 들리겠다며 고맙다고 하고는 그냥 내 갈 길을 갔다.


예쁜 꽃이 장식된 집을 지나 마을을 벗어났다. 갈림길 중 한 쪽은 사람이 걷는 숲길이었고 다른 한 쪽은 자전거가 가는 도로가 있었다. 자전거 도로는 숲길에 비해 비교적 평탄한 길이 이어지지만 조금 돌아가야 했다. 당연히 사람이 걷는 짧은 숲길을 택했다. 맑은 물과 예쁜 길을 구경하는 것도 잠시, 서서히 고도가 높아지면서 주변을 돌아 볼 겨를이 없었다. 산행이 시작되었다.


누구는 피레네가 제일 힘들다 했고 누구는 용서의 언덕이, 누구는 17km를 한 번에 걸어야 하는 까리온이 제일 힘들다 했다. 어느 정도 산행에 익숙해진 줄 알았는데 오늘 산을 올라와보니 내 자만이었다. 나무가 울창하고 물이 흐르고 있어 햇빛을 조금 막아준다는 것 외에는 좋은 점이 하나도 없었다. 등에 멘 배낭은 끊임없이 나를 짓누르고 있었고 땀은 비 오듯 흘렀으며 후들거리는 다리는 10걸음 이상 옮길 수가 없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나와 비슷한 처지의 외국인 아주머니가 보였다. 처음엔 웃으며 인사를 나눴지만 도무지 끝나지 않는 산길에 웃음은커녕 눈인사조차 나눌 수 없을 정도로 모두가 지쳐있었다.


높은 고도를 올라오면서 화도 나고, 짜증도 나고, 속으로 욕도 많이 했다. 산 중턱에 있는 작은 마을에서 석재오빠를 만나 시원한 맥주를 마시며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에 대해 계속해서 궁시렁댔다. 한참을 듣고 있던 오빠가 내게 조용히 이야기를 해준다. 어제 내가 산행이 너무 힘들어 바위에 잠시 앉았을 때 개미가 너무 많아서 벌떡 일어난 이야기였다. 모든 벌레 중에서도 개미를 끔찍이 싫어하는 나는 성질을 내며 그대로 2km를 질주했었다. 그때 오빠가 옆에 있다가 어느 순간 나보다 훨씬 더 빠른 걸음으로 산을 올라갔었는데, 일부러 날 피해서 먼저 올라간 거라고 한다. 그 당시의 나는 오빠를 향해 짜증을 낸 것도 아니었으며 그저 지금 내 상황이 싫어 나 스스로에게 짜증을 내었었다. 하지만 일부러 다른 사람을 향해 짜증을 낸 게 아니더라도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내가 가진 분위기에 얼마든지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걸 간과했던 것 같다.


내가 이기적이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나에게만 짜증을 내었기에 주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 리 없을 거라 생각했다. 내 힘듦은 나만의 것이기에 주변 사람이 힘들어할 리 없다 생각했다. 하지만 사실은 가까이에 있는 사람이 나를 피할 정도로 내 분위기가 주변에 영향을 미쳐왔던 것이다. 게다가 나는 누구나 당연히 힘든 이 순간에, 나의 힘듦과 감정소모로 인해 훨씬 더 힘들 수밖에 없었다. 나는 왜 스스로에게 힘든 감정을 뿜어댔던 걸까. 보통은 주변 사람에게 짜증을 내거나 주저앉았을 텐데 왜 나는 왜 굳이 나를 질타하며 짜증냈던 걸까. 나는 내 주변 사람들에게 나로 인한 피해를 주는 게 싫었고, 도움을 요청하는 것 또한 싫어했다. 스스로 모든 걸 해결하려 했고 도움을 받는 건 괜히 자존심이 상했다.


가파른 산길에서 한 외국인 커플을 보게 되었다. 그들은 손을 잡고 서로를 마주보며 이야기를 하며 걸었다. 그러다 힘이 들 때면 잠시 쉬어가면서 웃기도 했다. 조금 쉬다가 또 같이 일어나 걷고를 반복하는 모습이 너무 예뻐 보였다. 나는 특히 지금까지 만났던 연인들에게서 힘들 때 도움을 받는 법을 몰랐다. 내가 너무 힘들어 보여서 누가 나를 도와주려 하면 나는 그 손을 뿌리쳤고, 혼자서 해결해 보겠다며 끙끙대면서 결국 바닥을 쳤다.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을 여유가 없어서 그 사람의 호의를 거절했다. 모든 걸 내가 혼자 해결해야만 하는 것 같았으며, 도움을 받으면 빚을 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사랑받고 싶었다.


누구에게나 사랑받고 싶었기에 온전한 나를 보이기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모습으로 나를 꾸며왔다. 결국은 그게 지금의 다양한 모습이 나타나게 된 이유가 아닐까.


나는 나를 피하지 않고 마주했어야 했다. 이유야 어쨌든 나는 지나치게 사랑받길 원했으며, 주변 사람을 의도치 않게 피곤하게 해왔다. 나는 도움을 빚이라 생각했으며 많은 모습을 보여주고는 왜 나를 모르냐고 질타하곤 했다. 나는 욕심이 컸고, 나를 몰랐고, 나를 모르는 사람에게 왜 나를 모르냐고 화를 냈다. 나는 감정 조절을 잘 못 해서 쉽게 흥분하고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느라 그들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여주기에 급급했다. 그러다 보니 겹겹이 쌓인 나의 모습들 속에 진짜 내 모습을 찾기가 어려웠다. 이제서야 나를 한 겹, 한 겹 드러내며 스스로를 마주하고 있다. 나는 나를 마주하기 위해 까미노에 왔다. 오늘, 산티아고가 200km도 채 남지 않은, 겨우 일주일가량 남은 까미노에서 드디어 처음 나를 마주할 수 있었다.




사실 나는 그동안 죽음에 대해 초연했다. 아니 초연한 척했을 뿐이다. 당장 내 앞의 문제나 힘든 상황에 놓였을 때 죽음을 떠올리며 그 문제와 힘든 상황에 대해 그리 크게 영향받지 않은 척했지만, 사실은 너무 무서웠다. 내가 이 문제를 못 풀 수도 있다는 사실과 그 사실을 받아들임으로써 나의 가능성이 꺾이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가능성으로만 남겨두고 싶었기에 문제를 풀 수 없었고, 문제에 대해 생각하는 것조차 거부했기에 '죽음에 맞서는 용기'라는 제목으로 괜찮은 척 해 온 것이다. 막상 내 앞에 놓인 상황들이 어느 순간 갑자기 나를 덮쳐 오진 않을까 너무 무서웠는데도 무섭지 않은 척했다. 나는 나의 한계와 실력을 보고 싶지 않은 줄 알았지만 생각해 보면 나는 가능성이 꺾인 나를 바라볼 용기가 없었던 것이다.


이제서야 조금 알 것 같다. 나는 그냥 나를 마주할 용기가 없었다. 나는 죽음이 무섭다. 아플까 봐 무섭고, 잊힐까 봐 무섭다. 죽음이라는 초월적인 존재를 받아들이고 나면 문제 같은 가벼운 존재는 쉽게 해결될 거라 생각했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죽음을 받아들이지도 못 했기 때문에 가벼운 문제조차 맞닥뜨리지 못 하고 피하기만 했던 것이다. 내가 맞서야 했던 건 죽음이 아니라 바로 내 앞의 문제였으며, 그건 바로 나 자신이었다.

그렇게 꾸역꾸역 산을 올라오다가 너무 힘들어 옆에 있는 석재오빠를 봤다. 원래 등산을 좋아해서 그런지 힘든 기색이 하나도 없어 보였다. 나만 힘든 게 뭔가 억울해서 오빠는 안 힘드시냐고, 지금 나만 힘든 거냐고 물어봤다.


“니가 많이 힘들긴 한가 보다. 그런 걸 물어보고.

힘들지. 힘드니까 맥주도 마시고 중간에 자주 쉬면서 가방 내려놓고 그랬지.”


전혀 힘든 기색이 없어 보여서 물어보는 거라고 하니 본인은 티가 안 나는 거라고 했다. 생각만큼 그렇게 힘들지 않긴 했지만 운동할 때 땀나는 그 순간을 즐기고 있다고 했다. 예전에 쉐어하우스에서 7개월을 같이 살았던 16명의 룸메이트들 중, 가장 신뢰했던 룸메이트 한 명이 말해준 내 성격이 떠올랐다. 나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업 다운이 크기 때문에 감정 기복이 커질 때면 한 템포 늦춰보라는 조언이었다. 결국 심호흡 한 번 하며 쉬어가라는 게 아니었을까. 이런 생각 끝에 정말 답도 없는 높고 가파른 오르막길에서 나는 전처럼 한숨을 쉬지 않았다. 높고, 가파르고, 덥고, 힘든 건 똑같지만 그래도 한 번 걸어봐야지. 내가 선택한 길이니까. 아니 내가 선택하지 않았더라도 일단 내 앞에 주어진 길이고, 지금껏 잘 해왔듯이 이번에도 잘 할 수 있을 테니까. 이 길 뒤엔 끝이 있을 거니까. 한없이 고통뿐인 길이 아닐 거니까 한 번 올라가 보자.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다 보면 저기 위로 올라갈 수 있을 거야. 이런 생각과 함께 한숨 대신 심호흡을 하며 올라가게 되었다.


즐긴다면서요..




높고 가파른 산을 올라 드디어 오 세브레이로(O Cebreiro)에 도착했다. 약 1200m 고도에 있는 이 마을에 딱 하나 있는 공립알베르게로 갔는데 생각보다 시설이 깨끗했다. 싱글 배드가 칸막이 없이 두 개씩 붙어 있는 곳이었다. 뒤척이다 보면 옆 사람과 더블 배드를 같이 쓰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다행히 내 옆에는 아무도 없어 혼자 더블 배드를 쓸 수 있게 되었다. 알베르게에 체크인하고 짐을 풀었다. 샤워를 하러 내려갔는데 개별 샤워실에 샤워커튼 하나 없이 공간이 오픈되어 있었다. 우리야 대중목욕탕을 이용하는 문화인만큼 성별만 나눠진다면 크게 문제가 없었지만, 오랜만이라 약간 낯선 느낌이 든 건 어쩔 수 없었다. 이 샤워실을 이용하는 다른 외국인들은 최대한 사람이 없는 시간에 내려 가 빠르게 샤워를 하고 돌아오는 것 같았다.


맛없는 빠에야를 먹고 '산티아고 케익'이라는 디저트를 먹었다. 아몬드가 들어 간 파이로, 그럭저럭 먹을 만 했다. 알베르게로 돌아와 뭉쳤던 근육을 풀어주며 마사지를 하고 석재오빠에게 스트레칭을 몇 개 알려줬다. 멀리서 보던 어떤 외국인 아주머니가 와서 이렇게 하는 거라며 시범을 보여주셨다. 알베르게 앞에서 우리는 다 같이 요가를 하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순례자는 보통 생장이나 부르고스, 레온같은 대도시에서 순례길을 시작한다. 같은 알베르게에서 만난 몇 명의 사람들과 이야기해 보니 어떤 사람은 아스토르가에서, 어떤 사람은 바로 직전 마을에서 시작했다고 한다.. 바르셀로나 출신으로 게임을 좋아하는 한 스페인 친구는 오늘 이 마을이 출발지라고 했다. 고도표도 없었고 순례길에 대한 어떠한 설명도 듣지 못 했는지 우리에게 이것저것 물어봤다. 길은 어떻게 찾아가는 건지, 알베르게는 어떻게 체크인하는 건지.


마치 우리가 생장에서 처음 순례길에 올랐을 때의 긴장감을 그대로 안고 있는 듯했다. 생장의 순례자 사무소에서 들었던 대로 자세히 설명해주다가 그의 강아지 같은 눈을 보고 있자니 괜히 놀리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대답해주기 귀찮았는지, 석재오빠는 다음과 같은 명언을 남기고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바르셀로나 친구 : How can I find right way to santiago?

I know we have to choice one of the roads to go next village tomorrow, How can i..

(산티아고 가는 길은 어떻게 찾는 거야? 보니까 내일 길이 두 개 있던데 어떻게 해야 해..?)


석재오빠 : every route is connected.

(산티아고로 가는 모든 길은 결국 다 연결되어 있어. 걱정마.)


통금 시간인 10시가 가까워지면서 다 같이 알베르게로 돌아가 내일을 위해 잘 준비를 했다. 빨래를 걷으러 잠시 밖으로 나왔는데, 눈앞에서 놀라운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고도가 높았기 때문인지 저 멀리서부터 구름들이 빠른 속도로 몰려오기 시작했다. 하나씩 하나씩 쌓이던 구름은 빠르게 퇴근하는 직장인들 마냥 집으로 돌아왔고, 바로 코앞까지 구름이 쌓이게 되었다. 경이로운 풍경에 눈을 뗄 수가 없었고, 3m 앞의 거리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뿌옇게 되었을 때 비로소 정신이 들었다.


이렇게 맑고 화창했던 곳에


구름이 몰려왔다.


오늘은 오르막길을 28km가량 걸어왔다. 어쩌면 피레네, 용서의 언덕, 17km의 까리온보다도 힘든 날이었을지 모른다. 그동안 고생도 많이 했다. 많이 아팠고,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또 많은 생각을 했다. 나는 많이 부딪혔으며, 많이 즐거웠다. 진심으로 행복하거나 슬플 때면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엉엉 울기도 했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고통 속에 아픈 몸을 이끌고 매일 30km씩 힘들게 걸어왔다. 너무 힘들었을 때는 동키서비스라는 사치도 부려봤고, 맛있는 음식도 사 먹었다. 신선한 식재료를 사와 요리를 해 먹기도 했다. 끝없는 밀밭이나 포도밭, 평지도 걸어보고, 숲길이나 산길도 걸어봤다. 때론 비가 오기도 했으며, 지독한 더위에 몸서리치기도 했다.


약 한 달동안 다양한 날씨 속에 다양한 길을 걸으며 다양한 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만들어지는 나의 생각과 모습을 관찰할 수 있었고, 이제서야 조금씩 까미노가 윤곽이 잡히는 것 같다.


그렇게 나는 나의 길을 걷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