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세브레이로에서의 아침을 뭐라 표현할 수 있을까. 졸린 눈을 비비고 일어나 배낭을 메고 모자를 챙겨 알베르게 밖으로 나왔을 때, 나는 눈앞에 펼쳐진 풍경에 한참 동안 넋을 놓고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밤이 되어 구름이 모이는 곳보다 약간 높은 고도에 있었기 때문인지, 구름보다 높은 곳에서 해가 뜨는 걸 바라볼 수 있었다. 지난밤 해가 내려앉을 때 빠른 속도로 퇴근하던 구름들이, 오늘 아침에는 느릿느릿 출근 준비를 하는 느낌이었다.
저 멀리에 아직 출근하지 못한 구름이 길 위에 있어서 구름 속으로 살짝 들어가 봤다. 무슨 느낌일까 궁금했는데 막상 들어가니까 습도가 엄청 높은 안개 속에 있는 느낌이었다. 밀도가 높아서 앞에 있는 사람이 잘 안 보일 정도였다. 구름을 빠져나와 계속 걷는데 저 멀리서 한줄기 구름이 하늘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구름을 따라 시선의 끝이 닿는 곳에는 커다란 동상이 구름 속에서 빛나고 있었다. 가까이서 보니 해를 등지고 걷는 순례자의 모습의 동상이었다. 모락모락 피어나는 구름을 지나서 유난히 낙서가 많은 갈리시아 지방의 표지석을 따라 카페로 들어왔다. 오늘의 아침은 토스트와 카페라떼다.
까미노에 있어서 걸음이 빠른 것의 장점은 단 하나인 것 같다. 내 앞의 사람을 추월해 갈 수 있기 때문에 혼자 있고 싶을 땐 혼자, 같이 걷고 싶을 땐 같이 걷는 것에 대한 체력적인 선택권이 있다는 것. 천천히 가든 빨리 가든 산티아고에 도착하는 건 똑같은데다 길에서 얻는 것은 사람마다 다르기에 걸음 속도로 조급해 하거나 아쉬워 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산티아고에 도착하게 될 테니까.
나는 항상 여기에 있다.
내가 지금 걷고 있는 이 순간, 밟고 지나가는 이 길 위에서 나는 살아있다. 내가 있는 곳이 나를 증명해주고 내가 가는 길이 곧 나의 길이 된다. 내가 걸음을 멈추었을 때 내 주변의 길은 달라지지 않더라도 내 공간은 멈추게 된다. 내 의지로 멈추었기에 나는 여기에 없게 된다. 그렇기에 내가 있는 곳과 내가 가는 길이 나이며 나의 길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나다. 결국 나는 여기 있다.
지금 이 길 위에, 이 공간 속에, 지금 이 시간 속에 내가 있다. 나는 여기 있고, 그 자체로 나이며, 나는 나의 길을 만들어 간다. 화살표를 따라 걷는 나는 바로 이곳에 있다. 나는 그렇게 이 길 위에서 비로소 내 존재를 증명할 수 있었다.
순례길을 떠나 오기 전에 한국에서 책을 몇 권 읽었었는데, 그중 어떤 외국인이 저자에게 했던 말이 기억에 남는다.
‘까미노는 네게 필요한 걸 줄 거야. 네가 까미노에서 얻지 못한 것에 대해 아쉬워 할 필요가 없어. 그건 네게 필요한 게 아닐 테니까. 까미노엔 네게 필요한 모든 게 있고, 까미노 안에서 너는 그걸 얻을 수 있어.’
나는 까미노에서 내게 필요한 걸 얻으며 걷고 있다. 후회도, 만족도 길 위에서 얻으며.
석재오빠가 흘리고 간 신발을 주웠다. 한 곡을 반복해서 듣던 내게서 도망치더니 그는 신데렐라가 되어 신발은 남기고 떠났다. 등산스틱 끝에 석재오빠의 슬리퍼를 한 짝 걸고 트리아카스테라(Triacastela)에 도착했다. 마을에 도착하기 전부터 깔끔한 건물들이 줄지어 있었다. 마을 입구 근처에 있는 알베르게에 체크인했다. 이곳은 생긴지 얼마 안 된 곳으로 호스텔과 알베르게를 같이 운영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묵었던 알베르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깨끗한 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하얀 침대는 흙먼지가 묻은 내가 앉아도 되나 싶을 정도로 깨끗했으며, 샤워실은 바닥에 누워도 공간이 남을 정도였다. 어메니티와 드라이기가 있는 샤워실은 처음이었고 하루에 12유로라는 가격이 맞나 의심이 들 정도였다. 햇볕이 내리쬐는 베란다는 일광욕을 위한 선베드가 있었고, 널찍한 공간에 침낭을 펴서 소독을 할 수 있었다.
점심을 먹으러 cafe esther라는 레스토랑에 갔다. 갈리시아 지방이 표시된 테이블 매트가 있는 식당이었는데 하우스 상그리아와 화이트 와인, 양송이 타파스와 감바스 알 아히요를 주문했다. 아마 순례길에서 먹은 음식 중 베스트3을 꼽으라면 로그로뇨의 양송이타파스와 이곳의 음식들이지 않을까. 술과 안주, 식사 등 모든 메뉴가 너무 맛있어서 계속 주문을 했다. 오픈하자마자 들어갔지만 먹고 또 먹다 보니 어느새 우리가 그 날의 마지막 손님이 되어있었다. 점심을 먹으러 갔는데 저녁을 먹고 나왔다. 우리가 먹은 이 날 저녁식사는 60유로가 넘었는데도 더 먹지 못 한 게 아쉬울 정도였다.
나는 아이스크림을, 석재오빠는 담배와 콜라, 바나나를 사서 알베르게로 돌아왔다. 구름 위에서 하루를 시작했던 오늘. 6개의 언덕을 넘어 22km의 내리막길을 씩씩하게 걸어 온 오늘. 믿기지 않을 정도로 너무 행복해서, 꿈이면 어떡하나 싶은 나의 오늘. 이제는 일상이 된 순례길에서의 하루가 이렇게 저물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