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알베르게에서 잔 잭아저씨, 헬모트, 한국인 모녀, 콜롬비아 아주머니와 함께 호스피탈레로가 준비해 준 아침을 먹었다. 잭아저씨의 유쾌한 입담으로 기분 좋게 식사를 하고, 헬모트와 함께 알베르게를 나섰다. 수비리에서 팜플로나까지 걷는 게 오늘의 목표, 목적지까지 약 21km정도 된다.
순례자는 동쪽에서 떠오르는 아침 해를 등에 지고 목적지인 산티아고를 향해 서쪽으로 걸어간다. 동화 같은 마을을 지나고, 밀밭을 헤치며, 솔방울이 떨어진 길을 걷고, 오리랑 말도 만나고. 계속해서 걷다보니 작은 마을 입구에 들어서게 되었다. 야외 테라스가 있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어떤 친구랑 눈이 마주쳤다. ‘거 되게 잘생겼네’ 라는 생각을 하고 계속 걸어가는데 뒤에서 누가 나를 부른다.
?? : hey!
나 : ..?
올해 20살인 이 친구는 대학에 가기 전에 우연히 순례길에 대한 글을 읽고 자신의 전재산인 오토바이를 팔아서 이 곳에 왔다고 말했다. 아까 카페에서 눈이 마주친 것 같아서 물어보니, 그 때 지나가는 나를 본 게 맞다고 하더라. 카페에서 아침을 먹고 일어나 출발하려 했는데 지나가던 고양이가 그에게 다가와 무릎에 올라타는 바람에 고양이가 비켜줄 때까지 기다렸다고 한다.
그 후로 몇 십 분을 같이 걸으면서 꽤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각자의 나라와 언어에 대한 것, 순례길에 대한 것, 취미나 특기, 인간관계, 더 나아가선 정치나 경제에 관한 내용까지. 정말 다양한 이야기를 했다. 그러다보니 헤어지기 싫어져서 조금 무리해서 속도를 맞춘다고 애먹었던 것 같다.
사실 유로스를 처음 봤을 때 들었던 생각은 솔직히 '와 잘생겼다...'였다. 애초에 순례길에서 저런 귀여운 패션으로 다니는 사람이 없기도 하거니와, 186cm의 키에 꾸준한 운동으로 만들어진 적당한 근육, 그리고 연한 회색과 하늘색이 섞인, 은하수를 닮은 예쁜 눈과 시원한 미소까지. 대화를 하면서 알게 된 그의 취미는 운동과 요리, 그리고 한 때 내가 즐겨했던 게임으로 어떤 주제가 나와도 이야기에 막힘이 없었고, 유로스 특유의 배려와 센스, 매너가 묻어나는 행동에 감탄하며 길을 걷고 있었다.
(글은 이렇게 차분하게 쓰고 있지만 그 때 당시 일기를 보면 얘가 얼마나 잘생겼는지에 대한 감탄과 감동만 적혀있다. 하루 일기의 반 이상이 유로스에 대한 이야기뿐. 거의 ‘최애’ 아이돌을 가까이서 처음 본 여중생의 심정과 같았다.)
얼마나 걸었을까.
좁은 길에서는 미소를 지으며 lady first라고 손으로 안내해주었고, 위험해 보이는 길에서는 자신이 먼저 앞서가던 유로스가 갑자기 멈춰서서 움직이지 않았다. 무슨 일인가 싶어 돌아보니 손 위에 꽃 한 송이를 소중히 들고 있었다. 그리고는 내게 다가와 꽃을 건네주면서, '내가 꽃을 꺾는 바람에 꽃이 죽은 것 같아 마음이 아파. 꽃에게 미안한 감정도 들어. 하지만 너와 닮은 이 꽃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어. 네게 주는 내 선물이야.' 라고 하는데....
...
와.. 와... 어썸.... 마블러스.....포리널 컬쳐... 컬쳐쇼크...와.. 와....
.......
나는 나라를 구한 건가. 전생에 공을 세운건가. 어디 로맨스 소설에서 툭 튀어나올 것 같은 눈을 가진 아이가 영화 속 대사를 영어로 읊어주는데 와...
서로 안 되는 영어와 다른 발음(미국/영국 발음)으로 이렇게 비포선라이즈를 찍었던 것 같다. 이야기를 할 때면 항상 날 빤히 바라보는 이 친구의 시선에, 순례길에서의 내 후줄근한 옷과 민낯이 처음으로 부끄러웠을 정도.
그렇게 같이 걷기를 꽤 오랜 시간이 흘렀고, 우린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걸었다. 걷고, 또 걷다가 팜플로나에 도착할 무렵,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유로스가 갑자기 할 말이 있다고 했다.
"너와의 이야기가 지루한 것도 아니고 순례길에서 마음이 맞는 친구가 생긴 것 같아 정말 기뻤어. 하지만 갑자기 내가 왜 순례길에 오게 되었는지 생각이 들었고, 지금 이 순간 혼자 걷고 싶어졌어. 하지만 너와 걷는 게 싫어진 건 절대 아니야. 우리는 까미노에 있기 때문에 꼭 다시 만날 수 있어. 이런 말을 해서 미안해.”
유로스는 굉장히 정중한 표현으로 혼자 걷고 싶다는 뜻을 내게 전했다. 순례길에 오기 전에 읽은 책에서 봤던 '순례길에서는 만남과 헤어짐이 반복되고, 혼자 걷고 싶을 땐 누구라도 혼자 걸을 수 있다.'라는 문장이 떠올랐다. 나 역시 유로스와 함께 하는 건 좋았지만 너무 즐거웠기에, 이대로 계속 함께하다보면 오히려 내가 순례길에 온 목적을 잊어버리는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 때였다. 마냥 웃고 떠들기 위해 놀러온 게 아닌데. 처음 순례길을 선택한 그 순간이 스쳐지나갔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한 채 그를 위해, 그리고 나를 위해 유로스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우리는 각자 걷기로 했다.
즐겁게 걷던 지난 시간과는 달리 유로스의 빈자리가 느껴져서 괜히 쓸쓸했다. 하지만 계속 걸어가야지.
팜플로나(Pamplona)에 도착했다. 화살표를 따라 가다보니 팜플로나의 입구를 알리는 거대한 성곽이 보였다. 높은 성곽을 따라 올라오니, 순례길에서 만나는 첫 번째 대도시인 팜플로나에 도착하게 되었다. 팜플로나는 스페인 전역이 열광하는 산 페르민 축제(소몰이 축제)로 유명한데, 지금까지의 길과는 다르게 잘 정비된 넓은 도로와 주택, 높은 영어 사용률 등이 눈에 띄었다. 도시를 구경하며 한참을 걷다보니 알베르게를 잡아놓고 짐을 푼 뒤 움직여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 생각도 잠시, 뭔가 대도시에서 하루를 지낸다는 게 영 익숙하지 않은 느낌이었다. 난 순례잔데 대도시에서 편하게 지내도 되는 건가? 그래도 괜찮은 건가. 하는 생각들과 함께 고민 끝에 결국 다음 마을로 가서 하루를 보내기로 했다.
(사족) 이래놓고 나중에 레온가서는 호스텔 잡아서 편하게 쉬었다. 힐링데이라고 혼자 정하고 1인실 쓰며 나름의 호화생활을 했던 하루가 있었다. 지금의 이 순례자에 대한 생각도 결국 나를 감싸던 편견 중 하나였던 것 같다.
대도시를 그냥 보내기엔 뭔가 아쉬운 마음이 남아 팜플로나를 조금 더 구경하기로 했다. 종교는 없지만 성당엔 꼭 들렸다. 팜플로나의 성당은 박물관과 성당을 함께 운영하고 있었다. 한참을 둘러보다 슬슬 배가 고파져 성당을 나와 광장으로 갔다. 뭐라도 먹을 게 있겠지 싶어서 무작정 광장으로 나왔는데 마침 눈앞에 크레페 가게가 보인다. 가게 안으로 들어가니 세상에 이 더운 여름에 아이스크림이 있었다. 지금까지 푹푹 찌는 듯한 더위가 이어졌지만 아이스 아메리카노는커녕 얼음조차 보지 못 했기에 홀린듯이 아이스크림과 크레페를 주문했다.
시원한 걸 많이 먹고 싶어서 크레페를 두 개나 샀다. 나는 바보였다. 한여름에 해가 내리쬐는 광장 벤치에 크레페를 들고 나오면 어떤 일이 생기는지 전혀 감이 없었다. 안 그래도 따뜻한 크레페인데 햇살을 받아 더욱 더 뜨거워진 크레페가 되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엄청난 속도로 녹고 있는 아이스크림을 하염없이 지켜보다 다시 길을 나섰다. 내가 먹는 것보다 녹는 속도가 더 빠르더라.
대학 크레덴시알(순례길 위에 있는 대학에서 세요를 받으면 대학 학위를 인정해 준다. 공식 학위라기보다는 길 위에서 얻는 것들을 교육이라 인정하며 universidad de compostella, 즉, 별들의 대학이라 부르는 학위가 있다. 일부 유럽에서는 취업 시 도움이 되었다는 설이 있다.)을 위해 나바라 대학으로 가야하는데 너무 더워서 가는 길에 보이는 카페에 잠시 들렀다. 뭐라도 좋으니 시원한 걸 먹고 싶어 zumo de naranja(오렌지 주스)를 주문했다. 카페 벽에 걸려있는 액자에는 오래된 편지와 사진들이 소중하게 장식되어 있었다. 뭔가 유명한 작가가 머물렀던 유서 깊은 카페였나 보다.
카페를 나와 다시 나바라대학으로 향했다. 정말 더워도 너무 더웠지만 묵묵히 걸어가야 했다. 가게들이 모두 문이 닫혀 있었다. 가까이 가서 보니 가게 문 앞에 종이가 붙어 있다. 종이에는 가게들의 오픈 시간이 오전과 오후로 나누어 적혀 있었다. 오전 9:00~13:30, 그리고 오후 16:00~19:30. 이게 말로만 듣던 그 시에스타인 것 같다. 그 유명한 낮잠시간!! 한국에도 도입이 시급하다. 여기 더위나 대구 폭염이나 비슷한 것 같은데 한국에도 시에스타를!
헛소리를 하며 걷는데 너무 더웠다. 하염없이 걷고 또 걷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새 나바라대학에 도착해 있었다. 진짜 그늘 하나 없는 폭염 아래 잔디밭을 한참동안 걸어왔다. 해가 머리 꼭대기에 있고 대부분의 가게들이 시에스타를 즐기는 3~4시에. 그마저도 길을 못 찾아 세요를 받을 수 있는 건물로 오기까지 몇 번이나 길을 헤맸다. 건물 근처에 도착했지만 문이 닫혀 있어서 어떤 대학생과 그의 어머니로 추정되는 사람들에게 스페인어로 길을 물어봤다. 스페인어로 물어봤으니 그들은 당연히 스페인어로 대답해준다. 나는 잠시 잊고 있었다. 대학 때 배운 짧은 스페인어로 질문은 할 수 있어도 대답은 알아들을 수 없었다는 걸. 내 표정을 보더니 어머니로 추정되는 분이 아들에게 '야 네가 영어로 좀 얘기해줘'라고 하시더니 약간은 기대에 찬 표정으로 아들을 바라보셨다. 역시 대학생 자녀를 둔 엄마의 기대는 만국 공통인건가. 어쨌거나 내가 찾는 건물은 이 건물이 맞았고, 세요를 받은 뒤 다음 마을로 향했다.
시스루 미노르(Cizur Menor)에 왔다. 더위에 지친 몸을 이끌고 알베르게에 겨우 도착했다. 한적한 정원이 잘 갖춰진 알베르게였다. 호스피탈레로에게 침대를 배정받고 짐을 풀고 빨래도 했다. 샤워를 하고 나와 발에 잡힌 물집을 따고 다리를 마사지 해줬다. 개운한 기분으로 빨래를 널고 슈퍼에 가려고 하는데 세상에.
유로스와 헤어지기 전 오늘 어디까지 갈 거냐는 그의 질문에 나는 팜플로나라고 답했고, 유로스 역시 팜플로나가 목적지라고 했다. 운이 좋으면 팜플로나에서 다시 보겠지하며 걷고 있었는데, 여기서 마주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반갑고 놀라운 마음에 서로 웃으며 인사를 하고 어떻게 여기서 다시 만나냐고 짧게 이야기를 나눴다. 슬슬 저녁시간이 가까워져서 유로스에게 슈퍼마켓을 본 적이 있냐고 물어보았다. 유로스가 혹시 자기도 슈퍼마켓에 같이 가도 되냐고 해서 그러자고 답한 뒤 함께 알베르게를 나섰다.
오늘 너무 긴 거리를 걸었고, 덥고 힘든 하루가 계속 이어졌기 때문에 저녁을 할 자신은 없었다. 작은 마트에서 맥주와 간식, 그리고 내일 아침 먹을거리를 간단히 사서 알베르게에 돌아왔다. 유로스도 그리 배가 고프지 않았던지 맥주와 간식을 샀고, 우리는 같은 테이블에 앉아 호스피탈레로가 준 과일을 나눠 먹었다. 하루를 정리하기 위한 각자의 시간을 서로 방해하지 않기 위해 우리에겐 암묵적인 규칙이 있었다. 그와의 따뜻한 침묵 속에서 나는 글을 썼고, 유로스는 담배를 피우며 하루를 마감했다.
내일은 푸엔테 라 레이나(Puente la reina)에 가기 전, 용서의 언덕(alto del perdon)를 지나게 된다. 나는 누구를, 무엇을, 어떻게 용서하게 될까. 나 자신? 가족? 직장? 잘 모르겠다. 내일 걸으면서 생각해봐야겠다. 오늘은 일단 발에 잡힌 물집이나 해결해야지. 밤이 다가오자 누적된 피로가 나를 짓눌렀고, 내일의 일정을 가볍게 정리한 후 잠을 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