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차. 순례길 최대 고비였던 용서의 언덕을 지나면서

by 양송이타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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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원래 일정보다 더 많은 거리를 걸었기 때문에 오늘은 늦잠을 자고 여유롭게 출발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같은 방에서 자던 다른 세 명이 5시도 채 안 되어 일찍 일어나 준비하는 바람에 덩달아 나도 새벽에 일어나야만 했다. 심지어 그중의 한 명은 방 안에 자고 있는 다른 순례자들을 배려한답시고 깜깜한 밖에서 짐을 챙기는데, 그때 사용한 손전등을 자꾸 방 안쪽으로 쏘는 바람에 너무 눈이 부셔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어쨌든 그렇게 일어나 유로스랑 인사하고 부엌으로 가서 어젯밤 냉장고에 넣어 둔 물과 오렌지를 챙겨서 밖으로 나왔다. 생각해보니 어제저녁을 과일로만 대충 때우고 오늘 아침도 오렌지만 먹었다. 요즘 들어 먹는 게 귀찮아져서 부실하게 먹는 느낌이다.


오늘도 걷고, 또 걷는다. 오늘은 용서의 언덕을 지난다고 한다. Alto de Perdon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곳. 이곳은 왜 용서의 언덕일까. 그곳을 지나며 내가 누군가를 용서하게 되는 걸까? 그곳에 도착하면 나는 누굴 용서하게 될까. 나? 친구? 가족? 직장? 이런 생각들을 하다가 문득, 용서받아야 하는 건 타인이 아니라 나인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신발을 신고 있는 유로스와 다음을 기약하고 내가 먼저 알베르게를 떠났다. 처음엔 순례길에서의 인연이 너무 소중했다. 한 명이라도 잊고 싶지 않았고 모두 기억하고 싶었다. 그래서 누구를 만나도 이름을 물어봤고, 잠들기 전 일기에 그 사람의 특징과 인상착의를 함께 적어두었다. 언제 다시 일기를 꺼내들더라도 그 사람과의 추억이 생각나게끔 했다. 순례길 둘째 날에는 어제 봤던 사람을 만나는게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다. 그들과의 우연이 이어져 인연이 된 것 같았다. 셋째 날에는 그 인연을 계속해서 이어가고 싶어 무리하게 걸음을 재촉해 다른 사람들의 속도를 따라잡기도 했다. 그러다 유로스와 만나게 되었는데, 인연을 이어가고 싶다는 나의 열망이 그에게 부담을 주었던지 중간에 헤어졌다가 우연히 다른 도시에서 그를 다시 만나게 되었다. 어제는 유로스가 아쉬움을 내려놓고 길을 걸었지만 오늘은 내가 먼저 그를 떠나기로 했다. 그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도 않았고 나 역시도 홀로 서는 연습이 필요할 것 같아 내린 결정이었다.


2.jpg 오늘도 해가 뜨기 전에 출발했다.


오늘은 이전에 보던 사람들은 거의 보지 못 하고 완전히 새로운 사람들만 만나게 되었다. 지금까지 봤던 사람들의 대부분은 아마 팜플로나에 머무를 것이다. 나는 팜플로나 다음 마을에 묵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들보다 훨씬 일찍 출발했기 때문에, 내가 아는 사람들은 적어도 나와 2시간 이상의 간격이 생겼을 것이다.


순례길에서 사람들이 나를 지나가고, 내가 사람들을 만나면서 어떤 사람들은 몇 초, 어떤 사람들은 며칠씩 함께 걷기도 한다. 눈인사만 할 때도 있고 유로스처럼 긴긴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함께 걷는 길 위에서.


문득 내가 걷는 이 순례길이 단순히 길이 아니라 삶을 보여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0km 지점인 출발지 생장에서부터 800km 지점인 목적지 산티아고까지. 0살부터 80살까지 살아가는 한 사람의 생애를 대입하면 엇비슷하지 않을까.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지나가는 시간들이 의식할 틈 없이 걸어지는 순간들과 겹쳐졌다. 그렇게 우리는 인생에서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어가고, 순례길에서의 우리는 한 걸음, 두 걸음 걸어가게 된다. 그렇게 살아가는 동안, 걷는 동안 많은 사람을 만나왔고, 또 만날 것이다. 나 역시 지금껏 살아오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왔고 짧고 길게 그들과의 연을 이어왔다. 만남과 헤어짐이 계속해서 반복되는 순간들이 모여 하나의 선이 되었다. 순례길은 그 선을 길로 나타낸 것이 아닌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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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동키서비스를 이용하지 않았다. 배낭을 어깨에 메고 걷는데 이전과는 다른 힘듦이 찾아왔다. 매일 10시간씩 걸었던 발과 10kg의 무게를 지탱하는 어깨가 아픈 것, 그리고 다리가 뻐근한 건 이제 당연한 게 되었다. 오늘은 유난히 오른쪽 무릎 안쪽과 종아리가 후끈거려서 참을 수가 없었다. 다리를 굽히고 있을 땐 그나마 괜찮았지만 조금이라도 무릎을 펴려고 할 때면 근육이 너무 심하게 당겨 쓰린 느낌이 드는 바람에 한 걸음 한 걸음 내딛기가 너무 어려웠다. 결국 몇 번이나 주저앉으면서 많은 사람들을 앞으로 보내야 했다. 6시에 출발했는데도 얼마 못 가 벌써 해가 뜨고 더워지는 걸 보니 한숨만 나왔다. 그런데도 나는 용서의 언덕을 넘어야 하니까. 계속 걸어 나가는 것 외엔 방법이 없었다.


바닥에 박힌 돌을 보니 점점 눈앞이 까매졌다. 발이 아픈 상태여서 작은 돌조차 크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계속 땅바닥을 보면서 걸었다. 돌도 많고 벌레도 많았다. 땅에 박힌 돌들이 너무 아파 되도록 피하고 싶었다. 끊임없이 나오는 벌레들을 나도 모르게 밟아 죽이는 것도 싫었다. 땅을 보면서 걷는 건 자신이 없거나 우울할 때, 행복하지 않을 때 나오던 내 습관이다. 내 앞을 지나가는 다른 외국인들은 정면을 향해 고개를 들고 하늘과 경치를 구경하면서 걷는 모습이 신기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다.


순례길 내내 함께했던 나비

혼자 처량히 걷다 보면 곳곳에서 소리가 들려온다. 눈앞에는 나비가 날아다니고 귀에는 벌레들의 날개 소리가 울린다. 저 멀리서 가끔씩 자동차 경적 소리가 들리고 바람에 스치는 나뭇잎과 나뭇가지 소리, 동물이나 벌레가 우는소리도 들려온다. 주변의 소리가 잦아들면 내가 이 공간에 있음으로서 만들어지는 소리가 들려온다. 내 발끝에 채인 돌들이 굴러가는 소리와 머리에 쓴 모자가 옷깃에 스치는 소리, 순례자의 상징인 가리비가 가방에 매달려 딸깍딸깍 흔들리는 소리. 나의 앞, 뒤로 오고 가는 순례자들의 스틱이 땅을 스치는 소리.


여전히 익숙지 않은 산행에 오르막길을 올라가면서 다리가 아파 몇 번이나 주저앉았다. 끝없이 펼쳐진 논밭을 지나면서 쉴 곳을 찾는데, 약간의 그늘이라도 보일라치면 파리 떼가 드글드글해서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 오늘따라 눈앞에 날아다니는 나비가 왜 그렇게 야속한지. 수없이 많은 날벌레가 옷과 가방에 붙어 잠시라도 앉아 쉴 수가 없었기 때문에 걸어 다니면서 물을 마셔야 했고, 식수가 나오는 곳도 더위를 피하는 벌레로 가득해 생수통에 물을 채울 수조차 없었다.


기록적인 더위로 언론에 보도된 스페인의 2017년. 43도가 넘는 태양이 몇 시간째 강하게 내리쬐는 길 한복판에, 그나마 큰 자갈 위에 잠시나마 앉는 게 지금 나의 최선이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개미가 몰려왔고 곧이어 어디서 소식을 들었는지 온갖 벌레도 찾아왔기에 금세 일어나야 했다. 계속 다리를 절면서 걸어가는데 더위에 땀이 비 오듯 흐르고 햇빛에 피부가 타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너무 찝찝하고 불쾌한 기분이다. 이런 식으로 꼭 800km를 걸어서 완주해야만 할까. 버스나 택시를 타면서 특정 구간을 점프하는 사람들도 꽤 있다고 들었는데, 나도 내일은 구간 점프를 해보는 건 어떨까. 대체 내가 여기 왜 왔지.


순례길에 오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나는 뭘 하고 있었을까. 평소처럼 집에서 취업 준비나 하며 내 이력서를 예쁘게 다듬고, 에어컨 밑에서 노트북을 두드리며 게임과 유튜브를 즐기고 있었겠지. 딱 그게 올해 나의 여름이었는데. 나는 왜 창백한 얼굴에 핏기 하나 없는 입술을 갖고 거지꼴에 무거운 배낭을 메면서 이 힘든 산행을 굳이 돈 들여서 하고 있나 싶었다. 내가 생각하는 유럽이, 스페인이 이게 맞긴 하나? 그냥 집에 있을걸. 그냥 버킷리스트로만 놔둘걸. 그러면 이렇게까지 힘들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내가 왜 굳이 여기까지 와서 생고생을 하고 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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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굳어서 잘 펴지지도 않는 아픈 다리를 이끌고 용서의 언덕이라는 곳까지 꾸역꾸역 올라가고 있는데, 그게 오늘의 목적지까지의 겨우 반 정도란다. 저 멀리 풍차들이 보이고 용서의 언덕이 가까워지나 싶은 순간, 점점 다리가 더 아파져서 절뚝거리며 걸어가야 했다. 정상에 올라가면 조금이라도 쉴 수 있을 테니 한 걸음만 더 걷기로 했다.


한계라는 건 아직은 버틸 수 있기에 한계라고 부르는 것 같다. '한계까지 버텼다.'라는 말이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버틸 수 있는 지점이 있다는 건 그 이상을 넘어가게 되었을 때 '버틴다'라는 개념이 사라지는 걸 뜻한다. 지금의 나는 한계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체력이 고갈된 상태였고, 걸어야하기 때문에 걸을 뿐이었다. 여기서 쓰러져봤자 산티아고에 도착하지 못한 채 그저 가다가 죽는 것. 그뿐이었다. 뭐 당장 112, 119, 택시가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쓰러진 나를 병원에 데려가 치료를 받게 해 주거나 대사관에 연락해 응급환자가 있다고 연락해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냥 허허벌판에 나 혼자 한참을 쓰러져 누군가 지나가다 나를 발견해주길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아직은 그럴 순 없다. 나는 산티아고에 가야만 했다.


지금 이 길 위에서 나는 주저앉을 수도 없었고, 계속 걸어야 했으며, 내가 발을 옮기지 않으면 아무도 날 도와줄 수 없었다. 나를 앞서가는 사람은 손을 흔들며 다들 씩씩하게 잘 걷고 있었고, 나만 뒤처지는 것 같았다. 오늘의 목적지는 고사하고 지금 당장 한국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지금 나는 걸어야 했고, 걸음을 멈출 수도 없었기에 갑자기 설움이 밀려와 엉엉 소리 내 울어버렸다. 너무 힘들고, 너무 아프고, 너무 지치고, 너무 서러운 이 순간들이 내게 닥친 것이 지독히도 슬펐다.


그렇게 나를 원망하며 후회와 절망에 휩싸여 울면서 마지못해 걷고 있는데, 뒤를 돌아보니 저 멀리서 어제 같은 알베르게에서 자던 프랑스 아주머니가 다가오고 있다. 엄청 빠르게 걸어와 나를 지나가나 싶더니 이내 멈추고 내게 돌아와 나를 정면으로 바라본다. 그리고는 내게 뭐라 말씀을 하시는데, 프랑스어를 알아듣지 못 하는 나를 눈치 채셨는지 손짓과 표정으로 내게 말씀하신다.


하늘이 너무 예쁘죠? 경치가 너무 좋죠.

심호흡도 한 번 해 봐요

벌써 이만큼 왔어요.


아직 10시밖에 안 되었어요

너무 덥지만, 우린 걸을 수 있어요

조금 있다 목적지에서 봐요.


괜찮아요


보통은 지나가면서 그냥 인사만 나누기 마련인데, 지나가다 본 나의 표정을 보고 걱정이 돼서 돌아오신 것 같았다.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지만 코는 빨개졌고, 입과 얼굴 근육들은 울상이 되어 있었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인사를 한 걸 눈치 챈 걸까. 앞으로 또 언제 볼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런 친절이 너무 감사했고, 조금 더 용기를 얻어 걸을 수 있었다. 라고 마무리가 되면 좋겠지만, 사실은 더 서러워져서 더 펑펑 울었던 것 같다. 이름도 모르는 아주머니의 친절과 배려에 감동해서 울고, 지나가는 많은 사람들 중 언어를 알아듣지 못 하더라도 표정과 손짓, 눈짓으로 서로를 공감하는 사람이 존재하는 것에 감사하며.




9.jpg 용서의 언덕(Alto del Perdon)에 도착했지만 바람은 불지 않았다.


용서의 언덕(Alto del Perdon)에 도착했다. 지독한 더위에 바람이라도 불었으면 좋았으련만, 오늘 용서의 언덕에서 보이는 풍차는 정지 화면으로 굳어있었다. 하루 종일 단 1분의 바람도 불지 않았는지 처음에는 풍차가 고장 난 게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였다.


힘겹게 올라간 언덕 끝에 있는 푸드트럭에는 시중보다 2배나 비싼 콜라를 팔고 있었다.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콜라를 주문했고 시원하게 벌컥벌컥 마시고 싶어 잠시 배낭을 내려 두었다. 용서의 언덕의 상징을 사진으로 남기고 지도를 보려고 표지판 가까이에 갔다. 여기에 또 엄청난 파리 떼가 날아다니고 있었다. 파리가 너무 징그럽고 싫어서 겉옷을 벗어 벌레들을 탈탈 털어내는데, 그 털어내는 찰나의 순간 안에 입은 하얀 티셔츠 위에 다시 수십 마리의 벌레가 붙었다. 생각만 해도 소름 돋는 순간에 기겁하면서 먹던 콜라를 내려놓고 배낭을 챙기러 갔는데, 배낭을 메려고 드는 순간 빨갛고 커다란 지네가 배낭에서 스르르 내려왔다. 누가 용서의 언덕 좋은 곳이라 했던가. 거의 벌레의 언덕인 것 같은데. 아무튼 그렇게 반도 못 먹은 콜라 반납하고 뛰다시피 그곳을 벗어났다.


사실 용서의 언덕에 올라가면 책에서 말하던 글로리 이런 게 느껴지고 용서에 대한 감흥으로 가득 찬 일이 생길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용서고 나발이고 막상 용서의 언덕에 올라가니 벌레만 많아서 급히 서둘러 내려가기 바빴다.


용서의 언덕에서의 휴식도 잠시, 벌레에 쫓기다시피 내려온 길은 굵은 자갈로 가득했다. 예전에 물이 흐르던 길이었나 싶을 정도로 둥글둥글한 자갈들이 많았고, 급경사는 끝이 나질 않았다. 등산 스틱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대책 없이 떠나온 내게 스틱이 있을 턱이 있나. 흙 묻은 물병만 꼭 쥐고 걸어갈 뿐이었다. 간혹 그늘이 보였지만 저기도 벌레가 많겠지 하며 지나치기 일쑤였고, 그나마 괜찮아 보이는 그늘 밑에서 쉬고 있으니 지나가는 사람들이 괜찮냐고 물어본다.


11.jpg 한숨만 나오는 자갈길


벌레가 오기 전에 일어나려고 무거운 배낭을 둘러메고 자갈길을 뛰다시피 내려가는데, 도무지 끝날 것 같지가 않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또다시 펼쳐진 뜨거운 평원 앞에서 스스로가 너무 불쌍하다고 느껴질 때쯤, 아픈 몸을 이끌고 계속해서 걷다 보니 마을이 나왔다. 아무래도 오늘의 목적지였던 푸엔테 라 레이나(Puente la Reina)까지는 이 다리로 못 갈 것 같아 여기서 하루를 마무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곳에서 더 이상 한 발짝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우테르가(Uterga)에 도착했다. 알베르게에 도착하니 12시 30분이었다. 오픈 시간은 한참 남았지만, 호스피탈레로의 배려로 조금 일찍 침대를 배정받아 쉴 수 있었다. 땀과 흙으로 범벅된 옷에 눈물로 엉망이 된 얼굴이었지만 씻으러 갈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침대에 누워 그대로 2시간을 기절하다시피 잠들어 버렸다. 일어나니 어느새 2시 30분. 원래대로라면 마을을 구경할 시간이겠지만 스페인 사람조차 혀를 내두르는 폭염에 차마 밖을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아 알베르게 안을 구경하기로 했다. 카페와 함께 운영되는 곳이라 저녁을 예약해둔 뒤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다. 그렇게 오늘은 쉬는 날이 되었다.


식사시간이 되어서 내려가니 렌틸콩인지 병아리콩인지 무슨 콩을 아주 큰 그릇에 가득 담아 주시고는 다 먹으라고 하셨다. 거의 반도 못 먹었는데 배가 불러 더 이상 먹을 수가 없었다. 곧이어 다음 메뉴가 나왔다. 왜 유럽의 식사시간이 길 수밖에 없는지 이해가 되는 저녁식사였다.


저녁을 먹고 올라와 오늘 하루를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오늘 가야 할 곳에 도착하지 못했기 때문에 하루치 일정을 이틀로 나눠야 했다. 사실 오늘 나의 목적지는 20km를 걸어야 나오는 곳이었지만, 정작 13km밖에 걷지 못 했다. 다른 순례자들보다 뒤처진 것 같아 조급한 마음이 들었다. 생장에서 같은 날 출발했던 다른 친구들을 앞으로 영영 만나지 못 할 것 같아서 아쉽기도 했다. 내일 대중교통을 이용할까 고민한 끝에, 힘들어도 끝까지 걸었던 피레네산맥에서의 첫째 날이 생각났다. 이번에도 동키서비스를 목적지에 미리 보내 놓으면 중간에 멈출 수 없으니 어쩔 수 없이 목적지까지 가게 되지 않을까. 내일 5시에 출발해서 오늘 못 간 7km를 더 걷고 7시 전에 푸엔테 라 레이나에 도착한다면 그간 만나왔던 친구들과 발을 맞출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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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걷는 길은 과거로부터 이어진 길이다. 어제도, 지난달에도, 지난해, 10년 전, 100년 전, 한참 더 과거에도 사람들이 걸었던 길이다. 그 사람들은 무엇을 생각하며 걸었을까. 오늘의 내가 걷는 길은 내일의 다른 사람들이 걷는 길이 된다. 순례길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함께 있는 길이다. 그렇기에 사람들이 나를 앞서간다고 해서 조급할 필요가 전혀 없다. 출발은 같아도 시작은 다를 수 있다. 어차피 우리는 길을 걸어 산티아고에 도착하게 된다. 길은 변하지 않는다.


아파도 버티고 견디며 걷는 것. 오늘 길을 걷는 내내 너무 힘들었다. 지금 내가 가야 하는 이 길이, 걸어야만 하는 이 순간들이 마치 나를 보는 것 같았다. 나의 시간은 흘러가고 있고 나의 시계는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매번 나이를 먹어가고 있고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 미래의 나는 총알같이 지나간다. 내 발은 나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매번 걸어가지만, 아플 때도, 힘들 때도, 기쁠 때도, 행복할 때도 있었다. 걷기 싫을 때는 잠시 멈춰서 쉬기도 했다. 그렇게 걷다 보면 어느새 알베르게에 도착해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아파도 버티고 견디며 걸어가야 하는 인생이 너무 슬프단 생각에 이르자 엄마가 떠올랐다.


그렇게 하루가 갔다. 인생도 그렇듯이 순례길에서도 돈 있는 사람들은 훨씬 편하게 갈 수 있고, 전혀 힘들지 않게 산티아고에 도착할 수 있다. 나 역시 다행히 아직은 통장 잔고가 남아있기에 긴 여정을 위해 내일은 투자를 하려고 한다(동키서비스 5유로의 행복). 하지만 돈이 있든 없든 이 값진 경험은 걸을 때 비로소 할 수 있는 것이리라.


"아. 힘들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