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차. 혼자 걷던 길을 같이 걸을 수 있음에

by 양송이타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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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이라체 수도원을 지나는 날이다. 순례자들을 위해 한 쪽에는 와인, 한 쪽에는 물이 나오는 수도꼭지가 있는 곳. 프랑스길을 걷는 순례자라면 누구나 이 곳을 지나게 되는데, 예전에는 순례자들의 상징과 같은 호리병에 물과 와인을 담아 마시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내게 술은 저녁에 가볍게 즐기는 걸로만 인식되어 있어서 그런지 아침부터 술을 마시는 게 영 찝찝해서 맛만 보고 수도원을 떠났다. (이래놓고 어느 날부터는 낮에는 맥주, 밤에는 와인을 마시면서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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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밀밭을 지나 며칠 전에 봤던 콜롬비아 부부와 인사하고 갑자기 배고파져서 오렌지를 꺼내 먹었다. 저 멀리 보이는 산이 꽤 높았는데, 설마 내가 가야할 곳이 저긴가 싶던 참에 점점 산이 가까워지고 있는 것 같았다.


오늘따라 유난히 순례자들을 많이 만났다. 수비리에서 저녁을 같이 먹은 헬모트, 콜롬비아에서 온 교사부부, 론세스바예스에서 본 프랑스아주머니, 북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이탈리아 친구들, 강남스타일 아냐고 묻던 외국인아저씨, 미국에서 온 올리비아와 그의 남자친구 등등. 사실 이렇게 많은 순례자들과 함께 걸은 건 오늘이 처음이다. 자신을 stone collector라고 소개하던 헬모트(Helmuth Hobarth)과 우연히 다시 만나 서로의 안부를 묻고, 같은 길을 걷는 다른 순례자들과 함께 천천히 걸어갔다. 거의 10명이 넘는 사람들이 다들 자신의 이야기를 갖고 함께 걷는 이 순간이 왜 이렇게 기쁘게 다가오는 건지.


3.jpg 혼자 걷던 길을 같이 걸을 수 있음에 감사한 날




함께 걸어가는 순간들. 특히 미국인인 올리비아와 그 남자친구가 기억에 남는다. 올리비아는 이틀 전의 내 모습처럼 다리를 절뚝이고 있었다. 올리비아에게는 올리비아가 혼자서 이겨낼 수 있게 도와주는 남자친구가 있었지만, 남자친구가 자신 때문에 걸음이 늦춰지는 게 내심 미안했던지 남자친구를 먼저 보내고 혼자 걷고 있었다. 힘든 길이었기에 서로 챙겨주는 것보다 오히려 서로를 위해 배려하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뒤처진 올리비아는 혼자 절뚝이며 걷게 되었는데, 몇 걸음 못 가서 쉬고, 주저앉고, 또 몇 걸음 못 가는 모습이 반복되었다. 내가 용서의 언덕을 넘으며 힘들었던 그 날, 잠시나마 내 옆에 있어주었던 프랑스아주머니가 기억이 났다. 나도 올리비아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주고 싶었다.


그 후로 몇 십 분이 지났을까. 올리비아의 속도로 함께 걸으면서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었고, 나도 가볍게 내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걷는 게 힘들지 않냐는 올리비아의 말에, 나도 너무 힘들게 걸어온 길이었지만 아는 사람을 만나 함께 이야기하며 걸으니까 아픈 게 생각이 잘 안 났다고 대답을 했다. 올리비아의 속도에 맞춰 나도 천천히 걸었고, 올리비아가 쉴 때는 나도 함께 쉬었다. 신기하게도 그렇게 한 걸음씩 함께 걷다보니 혼자 걸을 때보다 정말 덜 힘든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올리비아의 남자친구가 있는 곳까지 도착하게 되었다. 그는 올리비아가 걱정이 되었는지 계속해서 기다리고 있었다고 한다. 올리비아와 나는 서로 여기까지 함께 걸어줘서 너무 고맙다는 말을 주고받았고, 기약 없는 다음을 약속하며 헤어지게 되었다.


신기하게도 올리비아를 보내고 혼자가 되자마자 내 몸의 크고 작은 통증들이 느껴졌다. 아픈 올리비아를 걱정해서 함께 걸었었고, 도와줘서 고맙다는 이야기를 들었었지만 사실은 내가 도움을 받은 게 아니었을까.


얼마나 걸었을까. 한참 이어진 밀밭을 지나 문득 주변을 돌아보니 포도밭이 펼쳐져 있었다. 포도밭의 시작에는 장미꽃을 둔다고 했다. 질병에 약한 장미가 시들면 병충해가 생겼다는 뜻으로 포도밭의 병충해 확산을 빨리 막을 수 있다고 하더라. 오늘따라 유난히 포도밭이 많은 걸 보니, 슬슬 와인산지로 유명한 리오하지방과 로그로뇨가 가까워지나 보다.


누군가의 신발이 놓인 표지석을 지나서 걷다가 갈림길이 나왔는데, gps상으로 보니 오른쪽 길이 맞는 길이었다. 하지만 화살표가 따로 없어서 자칫하면 다른 순례자들도 길을 헤멜 수 있을 것 같아 바닥에 화살표를 그려놓았다. 지금껏 내가 도움 받았던 수많은 화살표들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금방 사라질 흙 위에 임시로 그린 화살표일 뿐일 텐데도 내심 뿌듯했다. 나도 순례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로스 아르코스(Los Arcos)에 도착했다. 알베르게에 도착해서 침대를 배정받고, 짐을 정리하고, 씻고, 빨래를 하는 등 일과를 보낸 후 저녁을 먹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순례길에서는 어딜 가도 성당이 있었다. 작은 성당부터 큰 성당까지 그 마을의 중심이 되는 성당이 있었다. 조금 큰 성당이 있는 곳이면 어김없이 종소리가 예쁘게 들려오는데, 광장의 역할도 함께 하는 이 곳에서 식사를 하니 내가 유럽에 있는 게 새삼 실감이 났다.


5.jpg 바에서 음식을 주문하고, 광장에서 다같이 먹었다.


콜롬비아 부부와 헬모트를 또 만났다. 지난번 수비리에서 헬모트가 내 저녁 값을 대신 내줬었는데, 다음에 만나면 꼭 내가 사주리라 다짐을 했었다. 오늘이 그 날인 것 같아 저녁을 같이 먹자고 했고, 어제 알베르게에서 만난 기선씨와 헬모트와 함께 셋이서 저녁을 먹었다. 그러다 옆 테이블에 앉은 외국인들과 눈인사를 하게 되었는데, 그 중 한국인처럼 생긴 분이 계셔서 인사를 했다.



나 : 어..? 안녕하세요..?

?? : 아 네 안녕하세요..? 한국분이신가봐요? 저 여기서 한국인 처음 봐요

나 : 아 정말요? 오는 길에 꽤 보이던데 신기하네요 식사 중이신가봐요

?? : 네 같이 걸었던 외국인들이랑 밥 먹고 있어요

나 : 네 맛있게 드시고, 다음에 또 봬요

?? : 네 맛있게 드세요



순례길에서 동양인처럼 생긴 사람들은 사실 대부분 한국인이다. 그래서 한국인처럼 생긴 사람을 볼 때 hello나 hola대신 한국어로 인사를 하게 되는데, 그러면 상대방도 씩 웃으면서 안녕하세요, 라고 대답해준다. 너도 한국에서 왔냐 나도 한국에서 왔다 반갑다 이런 느낌으로. 이 분도 그렇게 지나가는 인연 중 하나인 줄 알았는데, 이날 이후 순례길의 1/2이상을 함께하게 될 줄은 이때는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오늘의 순례자 메뉴(menu del peregrino)를 주문했다. 헬모트가 처음 순례길에 왔을 때 배낭에 짐을 다 버리고 KAS라는 레몬에이드를 잔뜩 챙겨갔다며 추천해줬었는데, 생각보다는 맛이 없었다. 밥을 먹는데 참새가 가까이 왔다. 한국에는 참새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도망쳤겠지만 스페인 참새는 한참을 사람들과 놀다가는 게 재밌었다.




알베르게에 돌아오니 같은 방을 쓰는 외국인들이 웅성거렸다. 가까이서 보니 그들의 발이 정상이 아니다. 스포츠 샌들을 신고 걸었다고 하던데, 발 한쪽 면 전부가 화상 입은 것처럼 피부가 벗겨져 있었고, 물집은 5cm는 족히 되어 보였다. 군데군데 긁힌 상처와 부은 흔적도 있었는데 아마 그 상태로 계속해서 걸어온 것 같다. 호스피탈레로가 응급치료를 해 주었고 냉찜질도 할 수 있게 팩을 갖다 줬다. 내일도 그대로 걸을 거라는 고집 센 두 여성의 말에 호스피탈레로*는 병원부터 들렸다 가라고 조언해줬다. 그래야 내일도, 모레도 걸을 수 있다고. 그렇지 않으면 내일이 순례길의 끝이 될 수도 있을 거라고.


*호스피탈레로(hospitalero)
호스피탈레로가 어떻게 순례자들의 성격과 상처를 이렇게 잘 알고 있나 궁금했다. 그들이 평소 순례자를 많이 봐 온 탓도 있겠지만 사실 호스피탈레로는 순례길을 완주했던 순례자 중 한 명이다. 호스피탈레로가 될 수 있는 자격 요건이 있는데, 그 첫 번째 자격이 '순례길을 완주해 본 경험'이라고 한다. 순례자들을 위한 알베르게인만큼 순례길에 대해 이해가 필요하기 때문에 이러한 자격 요건이 있는 것 같다.


결국 그들은 다음 날 병원에 가기로 했다. 그 친구들을 보니 이전에 내가 아팠던 건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어떻게 저 발로 스페인의 뜨거운 땅을 20km넘게 걸을 생각을 했지 싶으면서도 부디 별 탈 없이 그들도 산티아고에 도착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종교는 없지만 조용히 기도를 하고 하루를 마무리했다.


오늘은 날씨가 너무 좋아서, 좋아하는 시가 떠오르던 날

혼자 걸을 땐 너무 아팠던 다리가, 함께 걸어서 아프지 않게 느껴지던 날

많은 사람들을 만나 행복했던 날


혼자 걷던 길을 같이 걸을 수 있음에 감사한 날

오늘도 이렇게 하루가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