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 아르코스(Los Arcos)의 아침. 바람에 산들거리는 머리카락이 기분 좋게 느껴진다.
오늘도 더위를 피하기 위해 깜깜한 새벽에 일어나 알베르게를 나왔다. 평소보다 더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아침에 기분이 좋았다. 순례길을 걷기 시작하면서 계속 머리를 양 갈래로 땋아 다녔는데, 탈색했던 내 머리가 엉키는 걸 방지할 겸, 땀에 젖은 머리가 얼굴에 붙는 걸 차단할 겸이었다. 오늘 아침은 머리가 기분 좋게 날리는 느낌이 들어 한동안 머리를 풀고 다녔다. 저 멀리서 산들바람이 불어오는 걸 보니 오늘은 시작이 좋다.
순례자들은 해를 등지고 서쪽에 있는 산티아고를 향해 걷는다. 그 덕분에 햇빛이 뜨거운 여름에는 눈이 부시는 걸 조금이나마 막을 수 있다. 저 멀리 먹구름이 보이는 게 오늘은 비가 올 것 같다. 한참을 걷다 작은 마을에 도착했는데 아이와 함께 걷는 아주머니가 허둥지둥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저기 혹시 커피 파는 곳 보셨어요?? 커피.. 커피 마시고 싶은데. 아 커피가 필요해요 정말!!' 라고 외치며 마을 구석구석을 간절한 표정으로 헤매고 계셨다.
순례길에는 저렇게 아이와 함께 걷는 분들이 종종 보였다. 성인인 내가 걷기도 힘든 길을 저 아이가 어떻게 저 작은 몸으로 걸을 수 있을까. 저 어머니는 아이가 어떤 걸 느끼길 바라면서 함께 걷고 있는 걸까. 내가 어렸을 때는 조금만 오래 걸어도 투정을 부렸었는데. 누구나 그랬듯이 힘든 일은 싫고, 더운 건 더 싫었기 때문이다. 순례길에서 만난 아이들의 눈에 힘듦과 지친 기색만이 있을 거라는 내 예상과는 달리 오히려 호기심과 희망으로 가득차 있었다. 내가 어린 시절 순례길과 같은 길을 걸었다면 지금의 내 모습은 조금 달라져있었을까?
어제 저녁에 삶아 둔 계란과 사과를 아침으로 먹고 일어나 걷고 있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비가 투둑 하고 떨어진다. 금방 그치겠지 라는 모든 순례자들의 바람에 코웃음이라도 치듯이 우르르 떨어지는 빗방울들. 내 앞뒤로 걷는 순례자들이 다 나와 같은 마음이었는지 다들 발을 멈추고 배낭을 내려놓는다. 우리는 챙겨온 우비를 꺼내 입고, 가방에 레인커버를 씌우고, 옷과 신발에 물이 닿지 않게 단단히 여민 후 다시 등산 스틱을 잡았다.
5분쯤 걸었을까. 하늘이 조금씩 맑아지더니 비가 그치기 시작했다. 저 멀리에 묵직한 먹구름이 살짝 보이긴 했지만, 일단은 비가 그쳤으니 우비를 벗어 가방에 걸었다.
마을에 도착했다. 새소리가 들렸다. 순례자의 상징인 가리비가 곳곳에 보였다. 순례길 위의 마을 대부분은 이렇게 순례자들의 상징인 가리비 모양을 마을에 장식해두었다. 잠시 지나는 마을뿐인데도 순례자들의 영향이 상당히 큰 건지, 그만큼 순례길에 대한 애정이 있는 건지, 순례자들을 환영해주는 듯한 마을의 모습은 이방인인 나를 초대해주는 기분으로 다가왔다. 마치 내가 있어야 할 곳에 있는 느낌으로 말이다.
저 멀리 또다시 먹구름이 묵직하게 내려오는 게 보인다. 비가 왔다가 그쳤다가 아주 제멋대로다. 눈 앞에 익숙한 얼굴이 보인다.
나 : 어, 안녕하세요 여기서 또 뵙네요.
?? : 어제 뵈었던 분이죠. 다리는 왜 그래요?
(지난번 다친 무릎을 고정시키기 위해 하얀 수건으로 무릎을 묶어놨었다. 한국인 외국인 할 것 없이 걱정을 한 몸에 받았는데 하얀 수건이라 더 그랬던 것 같기도. 괜히 머쓱했다.)
나 : 저번에 다쳤는데 무릎 보호대 파는 곳이 없더라구요.
?? : 저 안 쓰는 보호대 있어요. 이거라도 빌려드릴까요?
나 : 앗 정말요? 안 쓰셔도 괜찮으세요?
?? : 네 며칠째 그냥 들고만 다닌 거라..
어제 식당에서 우연히 만났던 한국인이다. 붕대처럼 묶어놓은 무릎으로 절뚝이며 걷는 게 안타까워 보였는지, 그는 자신의 무릎보호대를 빌려주려고 했다. 사이즈가 맞는지 한 번 착용해보라고 무릎보호대를 내 앞에 선뜻 내밀었다. 사이즈는 꼭 맞았지만 언제 또다시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는 데다가 이걸 돌려주기 위해 다음에 만날 약속을 잡는 게 영 탐탁지 않았다. 순례길 위뿐만 아니라 순례길 후의 한국에서의 약속도 일부러 잡지 않은 내게, 약속은 족쇄처럼 느껴지던 그런 때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분은 보호대를 빌려준다고 하셨지만 사실은 돌려받을 생각이 없으셨던 것 같다. 언제 돌려드려야 하냐는 질문에 '나중에 길 위에서 만나면 그때 주세요.' 라고 기약 없는 다음을 흘리듯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하지만 옹졸했던 나는! 그 '다음'이라는 말의 무게에 눌려 그의 호의를 거절했다. 지금 무릎을 묶어 놓은 수건으로도 얼추 버틸 수 있을 것 같았거니와, 다음이라는 단어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껏 한국에서 다음이라는 말을 남용한 대가로 얼마나 많은 걸 잃었어야 했나. 나는 지금 이 순간 나에게 집중하고 싶었고, 내게 다음은 없었다. 그런 나에게 다음이 가져다주는 호의는 나를 향해 내민 손과 같았고, 나는 그 따뜻한 손을 잡으면 진정으로 나를 놓지 못 할 것만 같았다. 이게 석재오빠와의 두 번째 만남이었다.
석재오빠와의 짧은 대화를 하고 난 후, 그렇게 나는 또다시 혼자가 되었다. 스스로 혼자를 만들어가며 하루를 버티고 있었다. 한참 걷다가 언덕을 내려가는데 기분 좋은 바람이 뺨을 스치고 나를 한 번 휘감더니, 다음 사람에게로 날아갔다. 지금 이 순간 멀리서 불어오는 바람이 날 위로해주는 것만 같았다. 나무 사이에 있는 작은 돌 위에 앉아 먼 곳을 한참 동안 멍하니 바라보았다. 사실 별거 없는 풍경이었지만 내가 쉬고 싶을 때 언제든 앉아서 쉴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은 그 아무리 작은 공간이라도 내겐 소중한 것이었다. 한국에서의 나의 삶은 쉬고 싶을 때 쉴 수 없는 삶이었고, 하루하루를 보내는 게 너무 버거웠기 때문이다. 그렇게 도망치듯 떠나온 순례길 위에서 나는 이 소중한 공간을 내가 스스로 만들 수 있는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오늘은 몸도, 마음도 가벼웠다. 까미노를 조금은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날씨도 시원했고 너무 기분이 좋아서인지 다른 것들을 생각할 기회가 종종 있었다. 내가 과거의 보더리스하우스와 서울에서의 생활을 그리워했던 것처럼(그 순간에는 몰랐지만) 오늘을 그리워하지 않을까? 아무 걱정 없이, 스트레스 없이, 당장 오늘내일 어디서 자고 뭘 먹을 지만 생각하는 지금 이 순간을 그리워하며 행복을 찾지 않을까 싶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지금 이 순간을 즐기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 돌아갈 날도 아직 멀었고, 지금 당장 먹고 살기 위해 직장을 구하지 않아도 되며, 수중에 있는 남은 몇 백 유로로 며칠을 편하게 쉴 수 있었다. 온전히 나를 돌이켜볼 기회가 있었고, 몸은 조금 아파도 정신은 풍요로웠다. 많은 생각을 하고, 많은 사람을 만나는 지금 이 순간들을 행복하게 보낼 수 있는 것 같다. 그래 나는 지금 행복하다. 지금 이 순간 너무 행복해서 눈물이 났고, 이내 맑은 바람이 불어왔다.
떠나오기 전 몇 번이고 읽었던 시가 생각났다.
"착한 당신, 피곤해져도 잊지 마
아득하게 멀리서 불어오는 바람의 말을"
바람의 말 / 마종기
아까 보호대를 빌려주려고 했던 석재오빠를 언덕의 끝에서 다시 만났다. 생장에서 잠깐 본 필립아저씨와 기타를 들고 있는 다른 외국인 아저씨와 함께 돌 위에 걸터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인사를 하고 잠깐 쉬고 있던 차에, 기타를 들고 있던 아저씨가 나를 위해 한 곡을 연주해주겠다 하셨다. 동의 하에 영상을 촬영할 수 있었다. 연주를 다 듣고 기타 케이스에 감사의 마음을 담아 돈을 넣었고 다시 언덕을 내려갔다.
산길을 지나 국도를 따라가니 오늘의 목적지인 비아나(Viana)가 보였다. 웅장한 성당이 마을 중심에 있는 비아나에 도착했다. 성당 앞에 있는 작은 카페에서 음료를 마시고 있는데, 반갑게 Elena!하고 부르는 헬모트의 유쾌한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서 헬모트를 또다시 만났다. 어제 저녁을 같이 먹고 헤어진 후, 또 언제 만날 수 있을까 했는데 오늘 여기에서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아련하게 헤어진 어제가 머쓱해졌지만, 헤어지는 순간은 항상 아쉽기에 오늘도 반가움과 동시에 아쉬움을 느꼈다. 다음에 또 언제 볼 수 있을지, 혹은 영영 볼 수 없을지도 모르는 걸 서로 알기 때문이다.
알베르게가 오픈하기에는 이른 시간이었기 때문에 근처 바에서 오픈시간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간단히 간식을 먹을 생각으로 새우, 계란, 참치, 올리브가 올라간 타파스를 하나 주문했다. 바의 직원이 마실 거는 안 필요하냐고 묻길래, 하나 추천해 달라고 했더니 상그리아를 추천해줬다. 우리 바의 자랑이라는 말과 함께.
낮술은 안 한다는 나였지만 시원한 얼음컵을 보고 눈이 돌아갔는지 '상그리아!! 한 잔주세요!!'를 외쳤고 정신 차려보니 어느새 손에 상그리아와 타파스가 들려있었다. 오늘만 세 번째 만난 석재오빠와 필립아저씨, 기선씨, 그리고 다른 외국인 아주머니와 아저씨 한 분까지 총 5명이 앉아있는 테이블에 상그리아를 들고 가니 다들 나를 보고 웃었다. 대낮부터 술이냐며.
왠지 속은 기분이라 나만 이럴 수 없어 이거 정말 맛있는 거라고 꼭 먹으라고 추천하며 한 모금씩 마시게 했다. 그리고는 갑자기 다들 일어난다. 어딜 가나 싶었는데 어느새 각자 한 잔씩 상그리아를 손에 들고 돌아왔다. 영업에 성공해서 뿌듯했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알베르게 오픈 시간이 다가왔다. 비아나에서 자고 가는 사람은 나와 기선씨. 다른 친구들은 다음 마을까지 간다고 한다. 기선씨와 저녁을 뭘 먹을지 얘기하던 차에 고기를 구워 먹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저녁을 오랜만에 한국 음식처럼 먹자는 거였는데 옆에서 듣고 있던 석재오빠가 솔깃했는지 갈등하는 게 보였다. 이때다 싶어 고기얘기를 계속하니 사탕 주는 사람 따라가는 어린아이마냥 솔솔 넘어왔다. '안되겠다. 내가 라면 꺼낼게!' 라는 말과 함께.
항상 그렇듯이 알베르게에 도착하면 짐을 정리하고, 씻고, 빨래를 하고, 낮잠을 자는 등 각자의 일상을 보낸다. 석재오빠가 며칠 동안 소중히 품에 안고 다닌 비장의 사리곰탕 두 봉지를 간식으로 꺼내 먹었다. 라면의 위대함이 새삼 와닿았다. 오늘은 그래도 비교적 덜 힘든 길이었고, 덜 더웠고, 기분도 좋았다. 이 기분 좋은 시간을 낮잠으로 놓치고 싶지 않아서 밖으로 나왔다.
비아나 알베르게는 여기가 알베르게가 맞나 싶을 정도로 오래되어 보였다. 바로 옆의 건물도 특이한 모양으로 흔적만 남아있었다. 안 쪽에는 지름 2m가 넘는 원모양으로 천장이 뚫려있었고, 그 천장으로 햇빛이 들어와 바닥에 동그라미가 그러졌다. 신성한 무언가를 모시던 장소가 아닐까 싶었다. 그렇게 거리를 나와 마을을 구경하러 간다. 예쁜 마을, 비아나.
혼자 마을을 걸으면서 행복을 즐기고 있는 와중에, 마을 주민으로 보이는 스페인 사람들을 보면서 '이 사람들은 여기에 살면서 일상을 보내는 중이겠지' 라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나도 한국에서는 일상을 보내야 할 텐데. 일상으로 돌아간다면... 월화수목금 늦게까지 일하고 주말엔 주말 같지 않은 휴일을 보내겠지. 월요일 걱정으로 일요일 오전부터 뒤척이는 그런 하루를.
월요일에 출근해야 하는 직장, 저녁 없는 하루, 그렇게 돌아가는 일주일, 한 달, 몇 년.. 그러다 보니 몸담았던 직장들에 대해 생각이 났다. 아마 직장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처음이리라. 직장에서 만난 그 사람은 왜 바뀌지 못했을까.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고, 조언했을 텐데도 왜 그랬을까.. 나는 왜 그 사람이 바뀌길 원했을까. 내가 견디기 힘들어서? 그럼 나는 왜 그 사람이 원하는 대로 나를 바꾸질 못 한 걸까. 내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변화가 어렵기 때문에? 그렇다면 그 사람 역시 나와 같이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그렇게 행동했던 게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변화가 어려웠던 것 또한 이해가 된다.
사실 조금만 멀리 떨어져서 생각해보면 너무 당연한 이야기인 것 같다. 그 사람 역시 오랜 세월 만들어 온 자신의 자존심이 있을 텐데 나는 그걸 바꾸려 했으니 말이다. 이 사람은 원래 그런 사람이라고 받아들였어야 했다. 원래 그런. 당시에 내가 얼마나 얕은 생각을 가졌었는지 깨달았고, 내가 바뀔 생각이 없으면 상대방을 바꾸려 하지도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변화가 힘든 걸 알기에 더욱더.
한국을 떠나오기 전에 성필이와 '온전한 나'에 대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온전한 나라는 단어에 대해 생각해 본 경험도 없거니와, 그렇게까지 나를 깊게 들여다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온전한 나는 어떤 걸까. 온전한 나를 다른 사람에게 보인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나는 온전한 나를 알 수 있을까? 온전한 나를 마주하게 될 계기가 있을까? 밥을 먹는 나. 일기를 쓰는 나. 잘 웃고, 사람들을 좋아하는 나. 모두가 온전한 나인 걸까. 사람들을 대할 때 한결같을 수 있는 건 온전한 나이기 때문인 걸까?
알베르게로 돌아와서 빨래를 걷으러 정원으로 나갔다. 거센 바람이 불어왔다. 빨래를 정리하다 나무를 타는 고양이를 봤다. 고양이를 따라가다 멋진 벤치를 봤다. 조금만 고개를 들면 비아나에서 가장 멋진 풍경을 볼 수 있는 벤치였다. 역시 고양이는 행운의 상징이다.
이어지는 고기파티에 오렌지주스를 곁들였다. 스페인에서 파는 오렌지 주스가 이렇게 맛있는 줄 이제야 알았다니. 이 날 부터 가는 곳마다 오렌지 주스를 그렇게 먹었던 것 같다. 비교적 여유로웠던 하루가 가고, 어제와 같이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오랜만에 한국어로 실컷 이야기하며 저녁을 먹었고, 알베르게에 있는 정원에서 멋진 경치를 감상할 수 있었다. 내가 나이기에 감사했던 하루였다.
그렇게 하루를 마무리하고, 내일을 기다리며 낮에 펴놓은 침낭 속으로 쏙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