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부모님은 동물의 털이 날리는 걸 싫어하셨다.

정말, 정말 싫어하셨다.

by 양송이타파스

1990년대의 나는 마당이 있는 단독주택에 살고 있었다. 정원이라고 부르기엔 가꾸어지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공터라고 불릴 정도의 것도 아닌 작은 마당이었다. 초등학교를 다니던 내가 가장 기다렸던 건 집에 가는 시간이었다. 우리 집엔 마당에서 목에 줄이 묶인 채로 나를 향해 꼬리를 흔드는 까만 강아지가 있었다. 그 강아지는 IMF가 터지기 전까지 우리 집에 있었다. 우리는 쫓겨나듯 아파트로 이사 왔고 그 과정에서 '강아지는 다른 집에 줘 버렸다.'는 할머니의 말을 들었을 땐 몇 날 며칠을 울기만 했다. 까망인지 깜둥인지 이름도 잘 기억나지 않는 그 강아지는 이미 클 대로 커서 다른 집에 가서 사랑받을 것 같진 않았다. 어디 시장에 내다 팔았을 수도, 시골에 아는 친척집에 넘겨줬을 수도 있었지만 나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10살도 되지 않은 나는 처음 맞는 부모님의 슬픈 표정과 새로운 곳에서의 적응조차도 제대로 하기 어려웠다. 앨범 속의 사진 한 장으로만 남아있는 깜둥이는 그렇게 내 곁을 떠났다.


어릴 때부터 고양이는 요물이라 듣고 자랐다. 고양이의 눈을 보면 귀신이 보인다는 둥, 온갖 동물들의 시체를 먹는다는 둥, 초등학교 동상이 새벽에 움직이는 것 같은 전설을 들어왔다. 할머니와 부모님은 고양이를 싫어했지만 언니와 나는 고양이를 끔찍이 아꼈다. 무한의 사랑과 관심을 나에게 쏟는 강아지보다 자신만의 독자적인 규칙이 있는 고양이가 좋았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언니는 고양이 털 알레르기가 있었다. 고양이가 있는 친구 집에 다녀온 날이면 어김없이 기침을 하고 빨개진 눈과 얼굴로 집에 돌아왔다. 길고양이를 만져도, 친구 집에 있는 고양이를 만져도 전혀 반응이 없는 나는 축복이라 생각했다. 불쌍한 언니는 고양이를 사랑했지만 멀리서 봐야 하는 짝사랑이었고, 나는 사랑을 나눌 수 있는 기회를 공짜로 얻은 셈이었다.


반려동물을 데려온다는 것은 많은 준비과정이 필요하다. 깜둥이를 그렇게 떠나보낸 나는 고양이뿐만 아니라 강아지에 대해서도 공부를 해왔다. 어린 시절 제일 좋아했던 프로그램은 동물농장이었고, 유튜브가 익숙해질 때쯤 내 좋아요 목록의 대부분은 동물에 관한 것이었다. 훈련사가 나오는 TV 프로그램이 인기몰이를 할 때는 매일 본방사수를 했고, 온갖 커뮤니티에 들어가 어떤 용품이 좋은지까지 찾아보았다. 언젠가 데려 올 나의 반려동물을 위해.


하지만 반려동물을 내 품으로 들이는 일은 쉽지 않았다. 먼저 함께 살고 있는 가족들의 동의가 있어야 했다. 부모님은 동물의 털이 날리는 걸 싫어하셨다. 막상 데려갔더니 나보다 더 좋아하더라는 이야기는 인터넷에서만 볼 수 있는 이야기였다. 고양이는 언니때문에라도 절대적으로 불가능했다. 가족들과 함께 살고 있는 이상 나에게 반려동물은 불가능했다. 어서 빨리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을 얻어 독립적인 경제생활을 꾸리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잠시나마 본가를 떠나 자취를 하며 시간을 보낼 기회가 있었다. 졸업과 취업준비를 핑계로 내가 모은 돈을 전부 들고 가서 자취방 계약을 했다.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 있었기에 반려동물과 시간을 보내기에도 적합했다. 하지만 졸업 후 나의 직장이 어디에 있을지, 내가 어떤 진로를 선택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입양은 몇 년 후로 미룰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기회를 놓치기엔 너무 아쉬웠다. 타이밍 좋게도 건너서 아는 지인이 단기 탁묘를 구했고, 자신의 고양이 중 한 마리라도 잠시 맡아 줄 사람을 구한다고 했다. 나는 이 기회를 덥석 물었고, 4개월이 갓 지난 작은 아기 고양이와의 단기 동거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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