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알레르기는 극복의 개념이 아니었다.

나는 실패했다.

by 양송이타파스

홍설이의 임보 기간이 끝났고, 예정대로 홍설이는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갔다. 홍설이가 돌아가자마자 나는 온 집안을 소독했다. 고양이 용품들을 정리하고 환기를 시키며 매일 방을 쓸고 닦았다. 소독용 알코올도 사서 집안 곳곳에 뿌렸다. 홍설이가 좋아하던 담요와 장난감은 이미 털이 범벅이었다. 홍설이가 지나간 곳은 전부 털이 덮여 있었다. 테이프로 하나씩 털을 떼며 테이프 한 통을 다 써서 버렸고, 고양이에 대한 미련도 함께 버렸다. 안과가 서울에 있었던 탓에 자주 갈 수가 없어 동네에 있는 다른 안과에 갔다. 그간의 치료를 설명하고 경과를 보았으나 크게 호전되지 않아 알레르기 약을 써보자고 했다. 안과마다 처방이 달랐기 때문에 다시 휴가를 쓰고 서울에 있는 안과에 다시 갔다. 이전보다는 증상이 나아졌고, 상처가 회복되면서 시력도 돌아왔지만 왼쪽 눈은 아직 더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평생 관리를 해줘야 하는 질환이기 때문에 당장 증상이 좋아졌다고 해서 방심하면 안 된다고 하셨다.


병원에서 처방을 받고 약을 넣은 지 약 3개월이 지났다. 지금 나의 눈 상태는 정말 다행스럽게도 시력이 다 돌아왔다. 지나가는 길고양이가 야옹하며 나를 바라볼 때면 아직도 마음이 흔들린다. 항상 주머니에 넣고 다녔던 샘플 사료와 츄르는 이제 없다. 편의점에서 참치라도 사서 뜯어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애교를 부리는 길고양이를 한 번 쓰다듬어 주는 게 다였다. 그렇게 쓰다듬어 주고 나면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바로 손을 씻었다. 그리고 다음 날이면 어김없이 손이 간지럽고 붉은 뾰루지가 났다. 결국 나도 언니처럼 고양이 알레르기가 심했던 한 사람이었다.


1번의 탁묘, 2번의 임보를 거치며 고양이 알레르기를 극복한 줄 알았으나 나는 실패했다. 나에게 알레르기는 극복의 개념이 아니었다. 묻어두고 모른 척할 뿐이었다. 기침을 하지 않고 눈물, 콧물이 나지 않던 건 오히려 좋지 않았다. 보이는 증상이 없어서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던 건 나의 편협한 가치관으로 인한 것이었다. 보이는 곳에서 나오지 않았기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알레르기 반응이 진행되고 있었다. 한쪽 눈의 시력을 불과 3일 동안 1.5에서 0.6까지 수직 하강시킨 다음에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나는 정말 고양이를 사랑했다. 10여 년동안 고양이에 대한 정보를 모으면서 평생 함께 할 반려 고양이를 꿈꿨다. 알레르기가 있었지만 애써 외면했고, 오히려 극복할 수 있을 거라 마음먹었다. 하지만 알레르기는 보기 좋게 나의 예상을 빗나갔다. 나의 몸을 망쳤고 나의 삶을 치료에 몰두하게 했다. 함께하고 싶었지만 나는 나의 삶과의 우선순위를 고려해야 했다. 결국 나는 나를 선택했다.


고양이나 강아지, 그 어떤 반려동물들을 데려오더라도 꼭 알레르기 검사를 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동물과 함께 하는 건 아이를 키우는 것과 비슷하다고 한다. 평생 아이인 동물과 함께하면서 드는 비용은 상상을 초월한다. 많은 사람들이 알레르기를 이유로 고양이와 강아지를 유기한다. 몇만 원 하지 않는 알레르기 검사면 그 확률을 줄일 수 있다.


동물은 나의 양심이자 책임감, 그 이상을 뜻한다. 작고 귀엽고 사랑스럽고 소중한 이 생명체의 세상은 내가 전부다. 내가 이 아이의 손을 놓으면 이 아이는 세상에게서 버려지게 된다. 흔히 강아지, 고양이의 수명은 15년을 넘는다고 한다. 고양이가 가장 많이 유기되는 나이는 1살 전후다. 1~2개월 때 어미에게서 떨어져 세상에서 가장 예쁜 얼굴을 한 채 우리에게 왔지만, 충분한 고려 없이 와서 고민 없이 버려진다. 부디, 가족을 맞이하고 생명을 들일 때는 조금 더 신중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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