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바바를 보낸 후 집에 고양이가 없을 때 다른 보호소에서 연락이 왔다. 급하게 임시보호처를 찾고 있는데, 혹시 지금 집에 다른 임보고양이가 없다면 받아줄 수 있겠냐는 내용이었다. 겨우 구했던 임시보호처에서 다른 고양이들에게 피해를 주는 바람에 고양이가 없는 집에 보내야 했던 것이다. 그렇게 홍이와 설이는 우리 집에 왔다.
홍이는 약 1~2살, 설이는 5개월 정도로 추정되었다. 노란색 털이 가득한 홍이와 눈처럼 하얀 설이는 적응이 빨랐다. 태어난 지 3개월 차인 알리바바보다도 적응이 빨랐다. 처음에는 알리바바처럼 고양이 방에서만 생활하게 했지만 금세 적응을 하는 것 같아 방 문을 열어주었다. 홍설이는 소파에 자리를 잡았고 거실에서 낮잠을 잤다. 조금씩 기침을 하던 나는 시간이 지나면서 이내 기침도 하지 않게 되었다. 알레르기가 자연 치유되는 거였다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혹시나 했던 마음에 홍설이도 임보 기간을 2개월 정도로 잡아두었다. 알레르기 반응이 점차 사라지면서 나는 내 품에서 잠든 아이들에게 마음이 가기 시작했다. 언젠간 보내야 할 아이들이라 생각해서 되도록 정을 안 붙이려고 했지만 이대로라면 이 아이들과 평생을 함께해도 좋을 것 같았다.
홍, 설
2개월이 다 되어갈 때쯤 어느 날 아침이었다. 임시 보호하던 아이들을 입양하겠다고 보호소에 알리려던 차에 갑자기 시력이 떨어졌다. 라섹한 지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에 항상 1.5를 유지하던 시력이 갑자기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작은 글씨가 보이지 않다가 점점 큰 글씨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눈은 비비지 않았는데도 충혈되었고, 눈물을 흘리면서 아침에 눈을 떴다. 뭔가 잘못됐다고 생각해서 급하게 회사에서 외출을 쓰고 안과로 달려갔다. 안과에서는 단순 결막염이라 했다.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는데 집에 고양이가 있다고도 얘기했지만, 외부 상처로 인한 결막염으로 보이지 알레르기성은 아니라고 했다. 스테로이드와 항생제를 처방받고 인공눈물을 넣어줬다. 약효가 셌던 건지 충혈은 금방 가라앉았다. 시력은 돌아오지 않았지만 충혈기가 가라앉은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일주일에 2, 3번씩 안과에 가서 눈 상태를 확인했다. 조금씩 호전되는 것 같았다. 그럼 그렇지. 알레르기 때문이 아니었다.
일주일이 지났다. 스테로이드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던 나는 증세가 호전되자 의사와의 상담 끝에 약을 점차 줄여나가기로 했다. 그런데 문제는 왼쪽 눈이었다. 오른쪽 눈에서만 발병하던 결막염이 왼쪽으로 번졌다. 오른쪽 시력도 돌아오지 않았는데 왼쪽 눈까지 시력이 떨어지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수소문 끝에 큰 병원을 찾아갔다. 예약도 어려웠던 이 병원을 가기 위해 휴가를 쓰고 전날 서울에 올라갔다. 아침 일찍 당일 접수를 걸어놓고 2시간을 기다렸다. 진료실로 들어가자마자 그간 있었던 일을 얘기했다. 지금까지 써 온 약을 보여주고 현재 증상과 다른 병원에서 받았던 진료내역을 상세히 설명했다. 한참을 보시더니 외부 상처에 의한 결막염이 맞다고 했다. 하지만 그 원인에 대해서는 파악이 어렵다고 하시며 골똘히 생각하시더니 내 눈꺼풀 안 쪽을 뒤집어 보셨다. 그리고는 찰칵하는 소리와 함께 컴퓨터에 내 눈이 사진으로 띄워졌다.
'여기 보이시죠, 여기 이 노란 게 염증이에요. 이런 류의 염증은 보통 알러지성일 확률이 높아요.'
그 말인즉슨, 눈꺼풀 안 쪽에 알레르기로 인한 염증이 생긴 것 같고, 그 염증이 눈을 긁어 상처를 냈기 때문에 충혈이 생겼다는 것이었다. 막이 훼손되었으니 당연히 시력에도 영향이 있었다. 문제는 오른쪽 눈이 아니었다. 왼쪽 눈도 아직 시력이 떨어지지 않았을 뿐 이미 염증이 생겨있었다. 왼쪽 눈이 충혈되었던 건 그 때문이었다.
나는 기존에 쓰던 스테로이드 약과 항생제를 의사 선생님께 보여드렸고, 너무 센 약이라는 말씀과 함께 한 단계 낮은 농도의 약으로 바꿔주셨다. 인공눈물은 필요 없으니 넣지 말라고 하셨다. 알레르기원에서 최대한 멀어지라고 하셨다. 그동안 외면해왔던 것들이 하나로 연결되면서 나는 다시 상심했다. 그토록 사랑하는 고양이와 내 시력 중 선택을 해야 했다. 나는 고양이를 사랑했지만 나의 삶과 바꿀 수는 없었다. 평생 알레르기 약을 먹으면서 고양이와 함께할 순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