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돌아와서도 이 충격적인 검사 결과가 잊히지 않았다. 아무리 털 관리를 잘해주면 뭐하나, 내 피가 고양이를 거부하고 있는데. 온갖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알레르기 극복 경험담을 찾아보았다. 과거에 알레르기가 있었다가 사라진 경우, 알레르기가 없었는데 생긴 경우, 평생 알레르기 약을 먹으면서 고양이와 함께하는 경우. 그들의 눈물겨운 이야기를 읽으면서 내가 과연 이걸 감당할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되었다.
그래도, 그래도 혹시 하는 희망을 가졌다. 과거에 얽매여 있던 나는 깽이와 친구 집의 고양이만 생각했다. 전혀 반응이 없던 경우도 있으니 이번에도 그런 고양이만 찾으면 될 거야.라고 편파적인 생각만 했다. 하지만 그러다가 혹시나 알레르기가 심해지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감은 지울 수 없었다. 평생 약을 먹어가면서 알레르기를 이길 자신이 없었다. 나뿐만 아니라 미래에 내가 가질 아이와 가족들 역시 알레르기가 있다면 나는 내 아이에게 알레르기 약을 먹이면서 내 고양이와 함께 하길 강요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몇 달 간의 고민 끝에 임시보호를 결정했다. 겨울이라 많은 아이들이 길에서 죽어가고 있었다. 보호소에 현재 나의 상태를 이야기해뒀다. 아파트에 혼자 살고 있으며, 빈 방이 있고, 출퇴근 시간이 명확하다. 하지만 알레르기가 있다고 검사 결과가 나왔다. 이전에 맡았던 고양이는 전혀 반응이 없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최대 2~3개월 정도 임시보호가 가능하다. 정말 급하게 임시보호가 꼭 필요한 아이들이 들어오면 연락을 해 달라고 말해놓았다. 그로부터 몇 주 뒤, 보호소에서 연락이 왔다.
새끼였던 채로 발견된 세 마리의 고양이가 입양처에서 학대를 당했고, 두 마리의 고양이만 살아남아 동물병원에 입원해 있다고 했다. 기본 검진은 끝났지만 거의 죽어가던 아이들이라 한동안 가정집에서 케어가 필요하다고 했다. 한 마리는 꼬리가 잘려있었고 몸 군데군데 상처가 나 있었다. 한 마리는 사람을 경계했으며 가까이 다가가는 걸 거부했다. 한동안 독립된 공간 안에서 케어가 필요할 것 같아 빈 방 하나를 고양이 공간으로 만들었다. 두 마리는 한 배에서 태어난 형제 고양이었고, 방 안의 공간부터 본인의 공간이라 인식하며 안정감을 주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영화 알라딘을 보고 온 날에 아이들을 데려왔고, 그들의 이름은 알리와 바바가 되었다.
알리바바는 일주일 정도 적응의 시간을 가졌다. 최대한 거리를 두며 나를 관찰하게 했다. 방 안에 들어가는 시간과 밖에 나와있는 시간, 놀아주는 시간 등을 정해 규칙을 만들었다. 알리바바가 어느 정도 마음이 풀어지면 방에서 거실, 거실에서 침실까지 공간을 확장할 예정이었다. 2개월이 조금 넘은 아깽이들 답게 알리바바는 매일 밤 우다다를 하며 나를 반겨주었다. 하지만 문제는 내게 있었다.
알리바바의 방에 들어갈 때마다 나는 환기를 시켰다. 애기들이 썼던 수건과 담요, 장난감은 계속 깨끗한 것으로 갈아주었고 매일 방 청소를 했다. 털을 쓸고 닦았고 빗질을 해주며 죽은 털을 골라내었다. 그르렁거리며 골골송을 부르는 아이들을 보면 세상의 근심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내 알레르기는 세상의 근심을 만들어냈다. 알리바바 방에서 숨을 쉴 때면 매번 기침을 했다. 눈은 충혈되었고 눈물이 계속 났다. 알리바바 방에 들어갈 때면 고양이 털이 묻어도 되는 옷을 입고 나와서는 샤워를 하고 다른 옷으로 갈아입었다. 안 되겠다 싶어 마스크를 끼고 알리바바 방에 들어갔다. 호흡기를 일부 차단하니 숨쉬기가 훨씬 편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났다.
시간이 꽤 지나자 마스크 없이도 알리바바의 방에 들어갈 수 있었다. 기침도 거의 나지 않았고, 눈물 콧물도 나지 않았다. 가끔 나는 재채기 외에는 간지럽거나 하는 알레르기 반응도 거의 없었다. 알레르기를 내쫓으려던 내 몸이 드디어 포기를 한 걸까. 이제 알레르기에 면역이 생겨서 적응을 한 게 틀림없었다. 약속했던 임시보호 기간이 끝나 알리바바를 다시 보낸 후에, 나는 오히려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 알레르기는 극복할 수 있는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