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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송이타파스 Apr 03. 2023

1. 사랑이라 믿었던 것들은

어린 날의 상처일 뿐

BIG Naughty (서동현) - 사랑이라 믿었던 것들은 (Feat. 이수현)



 상담이 끝나갈 무렵, 이때까지 하지 못했던 이야기나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있으면 하라는 선생님의 말에 길게 고민하지 않고 꿈 이야기를 했다. 어릴 때부터 꿨던 악몽부터 아직도 현실에 영향을 미치는 꿈들에 대해.


 나는 매일같이 꿈을 꾼다. 하루에 수십 개씩 병렬로 꿈을 꾸기도 하고 영화 인셉션처럼 꿈속의 꿈을 꾸기도 한다. 꿈을 안 꾸었던 날은 단 하루도 없었다. 좋은 꿈을 꾸라는 말은 내겐 최고의 위로였다. 그나마 다행인 건 정신과 몸이 건강할 때의 나는 꿈을 적게 꾸었다. 꿈다발이 꿈 몇 송이가 되는 것 정도였지만, 그날은 선물을 받은 날이 되었다.


 꿈에서 나는 대부분 속수무책으로 어떤 공간에 놓여있었다. 가끔 의지가 주어질 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기억 부스러기의 집합일 뿐이었다. 나는 무엇이든 될 수 있지만 무엇이든 될 수 없고, 무엇이지만 무엇이 아닐 때도 있었다. 그중 나의 하루를 부수는 꿈은 대체로 가족과 관련이 있었다.


 상담을 받으면서 모래놀이를 했었다. 벽면에 진열되어 있는 각종 피규어들을 모래가 얕게 깔린 커다란 상자 위에 배치하면서 마음속 깊은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도구였다. 오늘의 주제는 꿈, 특히 악몽이었다. 모래 위의 나는 스케이트 보드를 타는 작고 여린 동물로, 내 앞엔 수많은 장애물과 무서운 구조물들이 있지만 어떻게 요리조리 피해 가는 모습이 보였다. 한 번 열어보라고 손짓하는 나무 상자들을 지나 모험을 이어가는데 지하로 연결되는 맨홀 속에 커다란 악마의 모습이 숨겨져 있었고 그 앞에서 나는 체념하고야 마는 상황이었다. 선생님은 악몽을 꿀 때의 내가 느끼는 감정들을 모아놓은 모래상자를 보았을 때 어떤 기분이 드는지 말해보라 했다. 처음 보드를 타고 발을 뗄 때는 여행을 하는 듯한 설레는 기분이었고, 나를 가로막는 상자들과 유혹하는 손짓을 볼 때는 애써 유혹을 뿌리쳤다. 저 상자의 손을 잡으면 나도 빨려 들어가는 걸 너무 잘 알기에 외면하고 또 외면하는 걸 오래도록 익혀왔다. 그렇게 장애물들을 통과한 후에 한숨 돌릴 때쯤 내 앞에 놓인 것은 맨홀이었고, 나는 맨홀 속의 악마를 거부할 수가 없었다.


 그 악마의 모습은 어떻게 보이냐는 물음에, 공포감이 느껴진다고 대답할 줄 알았던 내 입에서 의외의 대답이 나왔다.


- 악마가 쓸쓸해 보여요. 안타깝고요. 저 맨홀 속은 어둡고 캄캄한데 제가 손을 잡아주고 싶어요. 더 이상 외롭지 않게 안아주고 싶고 괜찮다고 다독이고 싶어요. 괜찮을 거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 근데 선생님, 저는 알아요. 20년 넘게 저를 괴롭힌 저 악마의 모습은 제 가족이란 것도 알고, 누굴 말하는 지도 알 것 같아요. 차라리 분노했으면 마음이 편했을까요? 정말 미워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도 저는 미워하고 싶지가 않아요. 


- 제가 받았던 상처에 대해 화내거나 슬퍼하기보다 그동안 얼마나 외로웠을까, 많이 힘들었겠다 하는 생각이 먼저 들어요. 할 수만 있다면 저 차가운 지하 속에서 나오게 하고 싶어요. 저는 알고 있으니까요. 저곳이 얼마나 사람을 외롭고 쓸쓸하게 만드는지 저는 잘 아니까요. 그래서 손을 잡아주고 싶고 지켜주고 싶어요. 제가 겪은 걸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그 어떤 누구도 그런 끔찍함을 겪게 하고 싶진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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