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너와 나에 깃든
BIG Naughty (서동현) - 사랑이라 믿었던 것들은 (Feat. 이수현)
- 저 사람은 어떤 행동을 하고 있을까요?
- 저는 이곳을 지나가고 싶은데, 못 지나가게 하는 것 같아요. 너는 지나갈 수 없어. 너는 지나가지 않아야만 해라고 말하는 것 같아요. 저를 억압하고 통제하려 해요. 제가 하기 싫은 것들을 해내야 한다고 해요. 그리고 저는 그걸 당연하게 받아들여요. 해내야 하니까요.
- 나의 의사와 관계없이 욕구가 부러졌네요. 나와는 다른 모습을 너무나 익숙하게 강요받았고요. 마치 길들여진 것처럼요. 나를 보호해 줄 존재가 있나요?
- 없어요. 어릴 땐 있었겠지만 지금은 없어요. 저는 혼자고. 앞으로도 혼자일 것 같아요.
- 어릴 때의 보호자가 지금 옆에 있다면 뭐라고 했을 것 같나요?
- 그만하라고. 가만히 좀 두라고 할 것 같아요. 제 앞에서 든든한 방패가 되어줄 것 같아요. 그리곤 제게 말하겠죠. 괜찮으니 하고 싶은 걸 하라고. 책임질 필요도, 의무나 부담을 느낄 필요도 없다고. 그냥 무엇이든지 하고 싶은 걸 하라고. 그래도 된다고.
- 나를 가로막는 저 사람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어요?
- 지금 있는 그 곳이 춥진 않은지 물어보고 싶어요.
- 선생님 제가, 제가 욕심을 내고 있는 걸까요. 제가 혹시 건방진 생각을 하는 걸까요. 어쩌면 누군가를 구원하겠다는 되지도 않는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요. 근데요 선생님, 저는 그렇게 거창한 생각은 없어요. 그저 저 사람이 더 이상 슬퍼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따뜻한 곳에서 햇빛을 받고 보살핌을 받고 누군가의 손을 잡고 온기를 느낄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거면 충분해요.
내가 사랑해야 했던 가족은 내게 악몽과 절망을 주었음에도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다만 과거에는 큰 파도에 휩쓸려가기만 했다면 지금은 파도가 어디까지 몰아칠지 조금이라도 예측할 수 있는 서퍼와 같은 느낌이었다. 산티아고를 다녀온 나와 상담을 받으며 매일매일 단단해지고 있는 내가 손을 잡으면 파도 위에서 서핑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이 상황의 끝을 보기 위해서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하는지 선생님에게 물어보았다.
- 꿈은 일반적으로 나를 성장시켜 줘요. 사람들은 꿈에서 본인의 그림자를 보고 성장하죠. 이 꿈속에서는 악마가 약해지는 것이 본인이 강해지는 길이에요. 지금 주인공은 작고 여린 동물의 모습을 하고, 악마는 몇 배나 되는 큰 사이즈로 공간을 가득 채웠지만 나의 꿈이니만큼 그 반대가 되어야 해요. 이 공간의 주인 자리를 다시 가져와야 해요.
- 그리고 대화를 나누고 화해를 해야 해요. 나를 괴롭히거나 변수를 만드는 존재가 아니라 대화를 통해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나아갈 수 있는 주변인으로 만들어야 해요. 내 자리를 꿰찬 악역이 아니라.
내가 할 수 있을까? 평생을 주변인으로 살아온 나의 시간과 공간 속에서 처음 발을 딛고 서있을 수 있었던 곳이 산티아고였는데, 그 잠깐의 기억과 지금의 상담만으로 내가 해낼 수 있을까. 그래도 언제나 그래왔듯 일단 해보기로 했다. 일단 눈앞의 벽을 응시하고, 관찰하고, 부딪혀가며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 속에서 상처 입고 일어서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일단 해보기로 했다.
그 후 몇 달 동안 거짓말같이 악몽을 꾸지 않았다. 이겨내 보기로 하자마자 갑자기 이겨낼 대상조차 사라진 상황이 되었다.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몇 주가 지난 후 내가 심적으로 약해진 순간, 정말 거짓말같이 가장 약한 부분을 파헤치려 다시 악몽이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