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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송이타파스 Apr 05. 2023

2. 기억이라 믿었던 것들은

지금 너와 나에 깃든

BIG Naughty (서동현) - 사랑이라 믿었던 것들은 (Feat. 이수현)



- 저 사람은 어떤 행동을 하고 있을까요?


- 저는 이곳을 지나가고 싶은데, 못 지나가게 하는 것 같아요. 너는 지나갈 수 없어. 너는 지나가지 않아야만 해라고 말하는 것 같아요. 저를 억압하고 통제하려 해요. 제가 하기 싫은 것들을 해내야 한다고 해요. 그리고 저는 그걸 당연하게 받아들여요. 해내야 하니까요.


- 나의 의사와 관계없이 욕구가 부러졌네요. 나와는 다른 모습을 너무나 익숙하게 강요받았고요. 마치 길들여진 것처럼요. 나를 보호해 줄 존재가 있나요?


- 없어요. 어릴 땐 있었겠지만 지금은 없어요. 저는 혼자고. 앞으로도 혼자일 것 같아요.


- 어릴 때의 보호자가 지금 옆에 있다면 뭐라고 했을 것 같나요?


- 그만하라고. 가만히 좀 두라고 할 것 같아요. 제 앞에서 든든한 방패가 되어줄 것 같아요. 그리곤 제게 말하겠죠. 괜찮으니 하고 싶은 걸 하라고. 책임질 필요도, 의무나 부담을 느낄 필요도 없다고. 그냥 무엇이든지 하고 싶은 걸 하라고. 그래도 된다고.


- 나를 가로막는 저 사람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어요?


- 지금 있는 그 곳이 춥진 않은지 물어보고 싶어요.


- 선생님 제가, 제가 욕심을 내고 있는 걸까요. 제가 혹시 건방진 생각을 하는 걸까요. 어쩌면 누군가를 구원하겠다는 되지도 않는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요. 근데요 선생님, 저는 그렇게 거창한 생각은 없어요. 그저 저 사람이 더 이상 슬퍼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따뜻한 곳에서 햇빛을 받고 보살핌을 받고 누군가의 손을 잡고 온기를 느낄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거면 충분해요.


 내가 사랑해야 했던 가족은 내게 악몽과 절망을 주었음에도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다만 과거에는 큰 파도에 휩쓸려가기만 했다면 지금은 파도가 어디까지 몰아칠지 조금이라도 예측할 수 있는 서퍼와 같은 느낌이었다. 산티아고를 다녀온 나와 상담을 받으며 매일매일 단단해지고 있는 내가 손을 잡으면 파도 위에서 서핑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이 상황의 끝을 보기 위해서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하는지 선생님에게 물어보았다.


꿈은 일반적으로 나를 성장시켜 줘요. 사람들은 꿈에서 본인의 그림자를 보고 성장하죠. 꿈속에서는 악마가 약해지는 것이 본인이 강해지는 길이에요. 지금 주인공은 작고 여린 동물의 모습을 하고, 악마는 몇 배나 되는 큰 사이즈로 공간을 가득 채웠지만 나의 꿈이니만큼 그 반대가 되어야 해요. 이 공간의 주인 자리를 다시 가져와야 해요.


- 그리고 대화를 나누고 화해를 해야 해요. 나를 괴롭히거나 변수를 만드는 존재가 아니라 대화를 통해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나아갈 수 있는 주변인으로 만들어야 해요. 내 자리를 꿰찬 악역이 아니라.


 내가 할 수 있을까? 평생을 주변인으로 살아온 나의 시간과 공간 속에서 처음 발을 딛고 서있을 수 있었던 곳이 산티아고였는데, 그 잠깐의 기억과 지금의 상담만으로 내가 해낼 수 있을까. 그래도 언제나 그래왔듯 일단 해보기로 했다. 일단 눈앞의 벽을 응시하고, 관찰하고, 부딪혀가며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 속에서 상처 입고 일어서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일단 해보기로 했다.




 그 후 몇 달 동안 거짓말같이 악몽을 꾸지 않았다. 이겨내 보기로 하자마자 갑자기 이겨낼 대상조차 사라진 상황이 되었다.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몇 주가 지난 후 내가 심적으로 약해진 순간, 정말 거짓말같이 가장 약한 부분을 파헤치려 다시 악몽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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