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해성사

self Acceptance and Commitment Therapy

by 정승연

나를 안다는 것의 의미

나를 안다는 건 나 자신을 마주 보았다는 뜻이다. 최소한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거울을 본다는 건 마음에 드는 얼굴만 확인하는 일이 아니다. 피하고 싶었던 표정을 끝내 외면하지 못하는 일에 가깝다. 나는 나를 알게 되면서 대단한 사람을 발견하기보다는 이기적이고, 계산적이고, 때로는 비겁한 사람을 보게 되었다.

예전 같으면 그 사실을 숨기려 했을 것이다. 설명을 덧붙이고, 사정을 붙이고, 그래도 나는 괜찮다고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나는 도망치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그때,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나는 처음으로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게 되었다.


인정은 비난과 다르다

인정은 비난과 다르다. 나는 내가 이기적이라고 해서 나를 때리지 않는다. 비겁했던 기억을 떠올린다고 해서 형벌을 내리지 않는다. 내가 나를 알고자 하는 이유는 자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행복해지기 위해서이기 때문이다.

나는 사랑받고 싶다. 그래서 사랑을 베푼다. 나는 괜찮은 사람이고 싶다. 그래서 아무도 모르게 작은 선행을 하기도 한다. 한때 나는 이 사실을 인정하면 모든 진심이 가짜가 될까 봐 두려웠다. 하지만 욕망을 바라본 뒤 오히려 다른 일이 일어났다. 집착이 줄어들었다. 나는 사랑받기 위해 사랑한다는 걸 안다. 그래서 사랑을 주면서도 반드시 돌아와야 한다고 믿지 않는다. 돌아오면 기쁘고, 돌아오지 않으면 조금 아쉽다. 예전처럼 분노하지는 않는다.


사랑과 통제의 구분

나는 아이와 아내를 사랑한다. 그리고 그 사랑 속에는 통제하고 싶은 욕구가 섞여 있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움직여 주길 바라는 마음, 나는 그걸 부정하지 않기로 했다. '아, 나는 사랑하지만 동시에 지배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구나.' 그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고통은 조금 줄어들었다. 아내와 아이들이 내 마음대로 움직여 주지 않아도 완전히 무너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아픈 건 사랑이 아니라 통제의 욕구라는 걸.


욕망과 함께 가기

나는 여전히 부자가 되고 싶다. 더 안정되고 싶고, 부족하지 않고 싶다. 그 욕망은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돈이 조금 덜 벌려도 예전만큼 괴롭지 않다. 내가 돈을 원하는 이유가 행복하기 위해서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행복을 위한 수단이 행복을 망가뜨리기 시작하는 순간을 이제는 조금 더 빨리 알아차린다.

나를 안다는 건 욕망을 내려놓겠다는 선언이 아니다. 나는 여전히 이기적이다. 여전히 인정받고 싶고, 여전히 더 갖고 싶다. 다만 그 욕망이 운전대를 잡도록 눈을 감지는 않겠다는 태도에 가깝다. 나는 욕망을 인정해 준다. 그리고 말한다. "그래, 네가 있는 걸 안다. 하지만 어디로 가는지는 함께 보자."


결론: 도망치지 않겠다는 선택

나를 안다는 건 더 나은 사람이 되었다는 증명이 아니다. 그저 도망치지 않겠다는 선택이다. 어쩌면 용기란 욕망이 사라진 상태가 아니라, 욕망을 바라보면서도 길을 잃지 않으려는 자세인지도 모른다. 나는 그렇게 나를 바라봤다.


지구에는 꽃밭만 존재하지 않는다. 척박한 사막도 있고 차가운 남극도 있다. 우리가 매립한 쓰레기장도 분명 존재한다. 쓰레기장을 직시하는 것이 지구를 오염시키지 않는 첫걸음이다.


이 글은 Substack에 영어로 먼저 게시되었고, 브런치에는 한글로 번역해 공유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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