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디자이너다.

<디자이너의 생각법; 시프트>, 이상인

by 정죵



디자인은 무엇인가?


그리고 디자이너는 어떤 사람인가?


원론적이지만 잊지 말아야 하는 질문. 하지만 바쁜 생활에 휩쓸리면 쉽게 잊어버리는 질문. 그래서 내가 디자이너가 되고자 했던 목표도 잊고 '최선의 결과'라 스스로 합리화하며 현실과 타협한 그저그런 디자인만 만들게된다.


MS의 Creative Director인 이상인님의 이 책 <디자이너의 생각법; 시프트>는 다시 한 번 위 질문에 대한 답변을 고민하며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계기가 되었다.


스토리가 전제되지 않은 디자인은 빈 껍데기일 뿐

지금까지 내가 참여했던 프로젝트의 결과를 떠올려봤다. 1년, 2년... 시간이 흐르면서 디자인을 할 때 스토리 구성에 쏟는 시간과 노력이 줄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즉, 스토리가 빈약하다는 의미다. 스토리가 빈약하니 퍼소나(persona)나 사용자 여정 지도(user journey map)와 같은 사용자를 상상할 수 있는 구체적인 모습이 없고, 제품/서비스를 이용할 사용자를 구체화시키기 않으니 의사결정을 할 때 중심이 없다. 상황에 따라, 기분에 따라, 시간에 따라 결정이 계속 번복되고 어느 순간부터 서비스의 핵심이 무엇인지, 전달하고자 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더 이상 알기 어려운 그런 디자인을 하고 있다...


디자인의 영역이 인간의 활동 영역을 넘어선 자동화 혹은 인공지능화된 시스템으로까지 확장된 시대이지만, 기본적으로 디자인은 인간의 행동 양식의 발전적 개선을 위한 활동인 만큼 기획자도 디자이너도 인간에 대한 깊은 관심과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많은 사람이 이미 익숙하게 사용한다고 해서 그것이 최고는 아닙니다.

그렇다. 디자인은 인간에게 더 나은 경험을 제공하기 위함이 아닌가? 그리고 유용성, 사용성만이 전부가 아니고 그 이상의 가치를 제공해야 하지 않는가? 최근 진행 중인 프로젝트에서는 너무 유용성과 사용성에만 매몰되어 있는 듯 하다. 그러다보니 필요한 기능은 기능대로 다 넣고, 대부분의 컴포넌트를 다 꺼내어 늘어놓고, 한 화면에서 강조하고자 하는 정보가 많아 집중이 되지 않고... 괴물 같은 서비스가 되고 있구나...


A와 B 사이의 점을 잇는 역할을 하는 이들이 디자이너입니다. 그리고 그 행위는 경험과 직관, 취향 등의 복합적인 결과물이고 또 그 과정 또한, 기계적이기보다는 상당히 인간적입니다. 기술이 발전하고, 많은 디자인 트렌드가 양산됨에 따라 분명 더 많은 새로운 시각과 그것의 적응이 요구되겠지만, 디자이너는 그것에 속박되기보다 더 나은 결과를 위한 옵션을 제공해주는 도구로 바라보고 사용했으면 합니다.


그래. 구글의 머터리얼 디자인 (Material Design), 애플의 휴먼 인터페이스 가이드(Human Interface Guide), 마이크로소프트의 플루언트 디자인 시스템(Fluent Design System)이 정답은 아니지. 그저 사용성을 해치지 않고 사용자에게 적어도 나쁘지 않은 UX를 제공하기 위해 고려되어야 하는 최소한의 장치이지...


하지만 클라이언트를 설득 할 때는, 디자이너 개인 혹은 팀의 판단에 근거한 디자인보다 이런 가이드에 근거한 디자인이 더욱 설득력이 있는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내가 속한 회사가, 팀이, 그리고 내가 Frog나 IDEO와 같은 사회적 인지도와 실력에 대한 신뢰를 가지고 있다면 좀 수월할까? 이 부분은 앞으로도 계속 고민해야 할 문제인 것 같다.


"하나를 디자인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 디자인할 수 있다."
-마시모 비넬리
"If you design one thing, you can design everything."
-Massimo Vigneli

디자이너도 마찬가지입니다. 특정 분야의 제한된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사람이기보다, 어느 분야에도 적응할 수 있는 유연함과 어떠한 문제도 해결할 수 있는 단단한 방법론을 지닌 사람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므로 본인을 정의할 때 나는 '어떤' 디자이너야 하는 식의 직업적 형용사로 당신의 가능성을 구속하지 마십시오. 굳이 말 한두 마디가 그렇게 중요한가? 라며 반문할 수 있습니다. 그런 분들에게 제 대답은 이렇습니다. "네, 그렇게 중요합니다." 스스로 자신에 관한 규정을 제대로 내리지 않고 세상과 대한다면 그 누구도 당신을 당신이 원하는 대로 봐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책에서 가장 강하게 나의 마음을 울린 문장. 나는 왜 나 자신을 'UX' 디자이너라고, 아니 한 발 더 나가 그래픽은 전혀 다룰 필요 없는 UX '기획자'라고 포지셔닝하는 걸까? 디자인 비전공자라서? 지금 와서 그래픽 툴을 배우고 실력을 키워봐야 경쟁력이 없을 것이란 판단에서?


그래픽은 디자이너에게 매우 강력한 무기다. 자신의 생각을 시각적으로 표현하여 상대방과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는 도구. 정말로 그래픽은 1도 다루지 않고 기획만 하더라도 그래픽을 다루는 능력이 있다면 더 효과적일 것이다. 나의 목표에 단 한번도 고려되지 않았던 비주얼 표현 역량 기르기. 이제는 목표에 추가하고 그 방법을 고민해봐야겠다.


나는 'UX'디자이너도 UX'기획자'도 아니다. 나는 그저 '디자이너'이다.


회사에서 디자인팀을 운영하기 위해선 단순히 진행하고 있는 클라이언트의 프로젝트에만 신경써서는 안 됩니다. 주변 디자이너들을 돌보고 소통하며 좋은 팀 분위기를 유지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합니다 함께 성장할 수 있다면 더할나위 없이 좋겠죠. ex. 이노베이션 테라피, 스몰 워크숍, 상황 공유


지금까지는 내가 일하고 싶은 회사가 어떤 모습이면 좋겠는지 구체적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저 유명한 회사고, 다른 사람에게 소개할 때 당당할 수 있으면 좋겠고, 뭔가 팬시한 일을 하는 그런 회사면 좋겠다는 정도...

하지만 이 책을 통해 '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다. 어떤 팀이 되기를 지향하는지, 그래서 어떤 멤버를 영입하고 싶어 하는지, 함께 성장하기 위해 노력하는지 등. 주변 지인들의 얘기를 들어봐도 결국 내 커리어의 발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팀'이다.


이직을 고민하고 있는 요즘. 물론 회사의 네임밸류나 연봉도 좋지만 팀이 어떤 팀인지에 대한 조사도 (가능하다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디자인에 더욱 발달한 기술이 적용되어 인간이 하나하나 따라잡기 어려운 시대가 온다 하더라도, '디자인은 사람을 향한다.'는 대전제는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인간에게 디자인이란 '원하는 것' 자체라기 보다, 인간이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한 과정이자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디자인의 목적은 상황에 따라 다릅니다. 그래서 목적을 찾기 위한 '알맞은 질문'을 하고 '적절한 대답'을 하는 사람이 있어야 제대로 된 디자인이 나올 수 있습니다.

그렇다. 디자인은 과정이자 수단이다. 디자인 그 자체가 대상이 되어서는 안된다.

문제를 발견하고, 원인을 찾고, 솔루션을 찾아 문제를 해결하는 것. 그래서 사용자에게 더 나은 가치를 제공하고, 나아가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것.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내가 하고자 하는 디자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