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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Jun 01. 2022

포옹

영화 <우연과 상상>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구멍


가장 행복한 삶이 빈 틈 없이 구멍을 꽉 채운 삶이라면, 가장 다행인 삶은 구멍이 있는지도 모르고 떠난 삶은 아닐까. 그렇다면 가장 후회스러운 삶은? 나와 상관없는 시선을 의식한 나머지 구멍을 보고도 외면한 채 살아온 삶은 아닐는지. 뚫린 구멍으로 부는 바람에 부르르 몸을 떨며, 외로이.


5월이 끝나가는 어느 화요일 오후 세시, 마로니에 공원은 뜨거웠다. 칠엽수를 빙 두른 벤치 위 조각 그늘에 걸터앉았다 야금야금 밀고 들어오는 햇볕을 피해 옮겨간 버스 정류장 근처 벤치. 평일인데도 아주 적지 않은 사람들. 아까부터 팬플릇을 연주하고 있는 흰 와이셔츠 차림의 사내. 띄엄띄엄 떨어진 벤치에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는, 연인이거나 친구이거나 가족으로 보이는 사람들. 정물화처럼 조용한 풍경. 풍경을 무대 배경으로 만들며 등장하는 중년 여자. 편한 옷자림에 한 손에 든 검정 비닐봉다리. 공원에 얇은 막처럼 퍼진 오월 햇살을 가르며 걸어와 한복판에 우뚝, 멈춰 선 여자. 익숙한 손놀림으로 검정 비닐 봉다리를 거꾸로 든다. 왁, 땅바닥으로 떨어지는 내용물. 구구구구구. 사방에서 날아드는 비둘기 떼. 여자는 표정 없는 얼굴로 모여든 비둘기를 향해 검정 비닐 봉다리를 뒤집어 탈탈 털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무대 밖으로 퇴장했다.  한동안 제자리를 맴돌며 부리로 바닥을 쪼는 비둘기 떼. 여자가 사라진 쪽에서 바통 터치하듯 풍성한 꽃다발을 안고 등장한 젊은 여자. 웃을 듯 말 듯 상기된 얼굴.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칠엽수 쪽으로 걸어가는 그녀. 저 여자일까? 너무 어린가? 꽃다발이 좀 과한가? 지금, 내가 기다리는 여자라기엔.


내일 그녀를 만나러 가는데, 하필 오늘 똑 떨어진 마스크팩. 알고도 사러 가지 않았다. 그녀도 나처럼, 한 번도 만난 적 없지만, 어쩐지 그녀도 나처럼 외양을 중시할 것 같지 않았다. 그냥, 느낌이 그랬다. 설렘과 별개로 첫 만남에 이렇게까지 무방비 상태로 맘이 놓이긴 첨이다. 그녀는 내가 입고 있는 옷이나 메고 있는 가방, 신고 있는 신발 브랜드나 가격보다 그 물건에 숨겨진 얘길 해달라고 조를 사람이었다. 모자는 누구랑 어딜 가다 샀는지, 그날 날씨는 어땠는지. 가방을 산 가게는 어느 골목에 있는 무슨 색깔 간판을 단 가게였는지, 그 가게 주인 말씨는 얼마나 다정했는지. 함께 있을 땐 상대의 이목구비나 체형보다는 눈빛이나 목소리 톤, 자주 시선이 머무는 곳, 얼굴 근육의 미세한 떨림 같은 걸 유심히 보고 느낄 사람. 어떻게 그런 세세한 것까지? 내가 그래서. 보고만 있어도 닳을까, 아직 만나지도 않은 그녀가 아까와.


그녀와 만나기로 한 날은 점점 다가오는데, 점점 나빠지는 몸 컨디션. 이럴 땐 잠자코 종일 침대에 누워 영화나. 누가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영화 <드라이브 마이카>를 보라길래 별생각 없이 보다, 홀딱 빠졌다. 그리고 <우연과 상상>까지. 얼굴도 이름도 희미하지만, 20여 년 전 지나쳤던 어떤 감정이 아직도 또렷한 나츠코의 물음.


"행복해? 객관적으로 말고. 그래서 넌 행복하냐고?"


살면서 누군가 이렇게 물으며,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객관적으로 말고? 그러니까 남편 직업과 연봉, 살고 있는 지역과 아파트 평수와 가격, 단지에서 제공되는 서비스와 편의 시설, 아이 성적과 장래 직업군, 건강 증진과 비즈니스, 친목도모, 과시욕, 인정 욕구가 뒤엉킨 취미활동과 해외여행, 장차 물려받게 될 유산… 그런 객관적인 걸 뺀 나머지? 자꾸 말 돌리지 말고. 너, 너 말이야. 그러니까 넌 행복하냐고?


칠엽수 쪽으로 걸어가는 베이지색 모자를 쓴 여자. 단번에 그녀란 걸 알았다. 전화를 걸었다. 핸드폰을 손에 들고 두리번거리는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전화를 끊고 걸어오는 그녀 고개를 돌렸다. 우는 거 들키기 싫어서. 곁에서, 숨소리가 들리고 온기가 느껴져 고개를 돌리자 내 몸에 감겨오는 두 팔. 두 팔에 들어가는 힘. 꼬옥. 그치지 않는 울음. 우리는 그렇게 마로니에 공원에서 오래, 안고 있었다. 서로의 구멍을 얼마간 채우면서. 


그날, 많이 웃고 많이 울었다. 많이 들어주려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농담인 듯 진담인 듯 어느 사랑이 더 크냐, 실랑이하다 버스에 올라 자리에 앉으니 차창 너머로 손 흔드는 그녀가 보였다. 그 짧은 순간, 채울 수 없는 구멍 때문에 안절부절못하던 날들이 그녀 손짓에 훌훌, 밤하늘로 흩어지는 것만…  같았다. 어떻게, 보다 누구, 가 가까이 다가온 봄밤.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구멍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겠지만, 구멍이 있는 걸 안 이상 어쩔 도리 없다. … 없지 않을까? 버젓이 있는 걸 알고도 없는 셈 칠 정도로 무신경하지도 않았고, 그렇게 한들 있는 구멍이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질 리 만무했다. 그렇다면, 가장 축복받은 삶은 설령 다 채우진 못할지라도 채우려는 시늉이라도 하는 삶이 아닐까. 그런 버둥거림이라도. 거기에 함께 구멍을 채울 이가 있다면, 있는 힘껏, 꽉, 끌어안고. 우리 서로, 지금보단, 덜, 쓸쓸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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