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름 Jul 03. 2022

이유

영화 <콜럼버스>

좋은데 이유가 어딨어. 그냥 마음이 가는 거지. 넌 이유가 있어? 난 그런 거 없어. 


비스와바 쉼보르스카라는 폴란드 시인이 있어. 그녀 책 중에 <읽거나 말거나>라는 산문집이 있는데, 혹시 읽어봤어? 그 책은 소위 말하는 필독도서에 반하는 '비 필독도서'를 읽고 쓴 서평집이야. 재밌지 않니? 이 얘길 왜 하냐면, 우리는 보통 무슨무슨 상을 타거나 베스트셀러라고 하면 '좋다' 혹은 '훌륭하다'는 선입견을 가져. 막상 그 작품을 접하곤 세간의 평과 다르면 내가 이상한가, 하는데 그게 자연스러운 거 아냐? 소양이 부족한 탓도 있겠지만, '좋다'는 건 주관적인 데다 취향은 저마다 다를 테니. 나만 해도 그래. 수상작이나 베스트셀러 기피증이랄까. 그런 게 좀 있어서 유명한 건 일단 피하고 봐. 그래 봐야 나만 손해라는 걸 알면서도 잘 고쳐지지 않더라고. 비스와바 쉼보르스카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라는 걸 알았으면 아마 읽지 않았을 거야. 이럴까 봐 될 수 있으면 사전 정보 없이 작품을 접하려고 해. 어쨌든, 그녀의 '비 필독도서'서평은 꽤 신선했어. 


글은 참 묘해. 잘 쓰고 못 쓰고를 떠나서 어떤 글은 읽고 나면 옆에 퍼질러 앉아 주절주절 떠들고 싶고, 어떤 글은 내 안에 있는 줄도 몰랐던 문장을 활화산처럼 분출시키는 통에 한 글자도 흘리지 않고 주워 담느라 정신없게 하고. 또, 어떤 글은 읽고 나면 몇 날 며칠 가슴앓이를 하게 하고, 어떤 글은 지퍼처럼 나를 열어 다 보여주고 싶게 만들고 말이야. 한 입에 꿀꺽 삼키기엔 아까워 종일 입에 물고 우물거리고 있는 글도 있고, 자꾸 생각나서 허구한 날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게 하는 글도 있어. 그렇게 끌리는 글 중엔 목적지를 향해 순항 중인 글도 있지만, 어쩌다 바다 한가운데까지 흘러왔는지 모른 채 정처 없이 표류 중인 글이 대부분이야. 그런 글에선 마침내 부두에 도착해 닻을 내린 정박한 배에선 느낄 수 없는 펄떡이는 고뇌와 아찔한 출렁임, 짠내 나는 서글픔이 찰랑여. 그 갈증과 그 허기와 그 습함에 끌려. 다행인 건, 그런 글들이 멈춘 게 아니라 나아가는 중이라는 거. 어디로든. (아, 이 문장을 이때 썼구나.)


매일 밤 영화를 봐. 투병하면서부터 생긴 습관이야. 보고 싶은 영화를 볼 때도 있지만, 대충 아무 영화나 봐. 끝까지 볼 때보단 보다 잠들 때가 더 많아서. 얼마 전, 극장에서 코고나다 감독의 영화 <애프터 양>을 보고 온 날, 자기 전에 침대에 누워서 본 영화가 있어. 영화 <콜럼버스>. (말했지? 사전 정보 없이 본다고. 나중에야 알았지, 뭐야. 이 영화도 코고나다 감독이 만들었다는 걸!) 몇 장면에서 울컥했어. 이유는 몰라. 영화를 다 보고 났는데 담배가 너무 피고 싶은 거야. 아, 담배 연기를 폐 끝까지 밀어 넣었다 뱉고 싶다……. 그 짓을 몇 번이고 되풀이하고 싶다. 왜? 몰라. 그냥 그러고 싶대. (나 담배 못 피우는 거, 알지?) 그날부터 매일 밤 이 영화를 봐. 처음부터 볼 때도 있고 중간부터 볼 때도 있고 끝까지 다 보고 잘 때도 있고 아침에 눈 떠보면 어디까지 보다 잤는지 기억나지 않을 때도 있고. 하여간, 매일…… 봐.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다 보면 강렬한 빛이 짧은 순간 이마를 강타할 때가 있어. 한순간 멍해지면서 맥이 탁 풀린달까. 유체 이탈하듯 넋이 나간달까. 그렇게 뭐 하나에 꽂히면 몇 개월, 어떨 땐 몇 년을, 질리지도 않고 파고 또 파. 같은 영화를 보고 또 보고. 한 작가가 쓴 책을 모조리 찾아서 읽고 또 읽고. 가끔 좋아하는 이유가 분명한 사람을 만날 적이 있어. 손가락을 하나하나씩 꼽으며 입술 사이로 말들이 테트리스 벽돌처럼 차례차례 쏟아져 나와 쌓이는. 착, 착, 착, 착. 빈틈없이. 키가 커서. 손가락이 희고 길어서. 쌍꺼풀이 없고 콧방울이 동그래서. 치아가 고르고 하얘서. 심성이 착하고 온순해서. 취미가 같아서. 돈을 잘 벌어서. 패션 감각이 뛰어나서. 사소한 것까지 기억해서. 난 말이야, 누군가 혹은 뭔가 좋아하면 감정이 막 산사태 나듯 와르르 무너져 내려 정신을 차릴 수 없는데, 어쩜 저렇게 이성적이지? 저게 가능해? 멀쩡한 정신으로 감정을 분석하고 통제할 수 있으면, 그게 이성이지 감정이야? 


언제부터 좋아했냐고? 넌 감정이 요이~땅, 그래? 난 안 그렇던데……안갯속처럼 뿌예.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어. 멀리 떠난 후에야 아, 그때 그래서 그랬구나, 그제야 어렴풋이 보일랑 말랑 해. 사랑이 지고 난 후에야…… 그제야 본격적으로 달려들어 사랑한달까. 더 그윽하고 더 진한 농도로 음미한달까. 더 깊이, 더 오래.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영화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를 봤을 때 정말 놀랐어. 울음을 그치려고 꺽꺽대는데, 느닷없이 나타나 역성 들어주는 바람에 간신히 잦아들던 울음이 왁, 터진 것 같았거든. 두려움에 머뭇거리는 입술과 부끄러움에 점점 달아오르는 뺨, 갈 곳 잃어 어지러운 걸음을 알아채는 사람이 있구나. 나뭇가지처럼 메마르고 앙상한 저 작은 손을 잡아주는 사람이 있긴 있구나. 어둔 골목에 하나 둘 켜지는 창문의 노곤함을 읽는 사람이. 그 모든 걸 저렇게 아름답게 담아내는 사람. 꽁꽁 숨겨둔 상처를 보여주러 그에게 달려가고 싶었어. 한달음에. 날 봐요. 날 좀 봐요. 그럼 그가 아무리 오래 지나도 딱지가 앉지 않던 상처 위에 연고를 발라주고 밴드를 붙여줄 거 같았어. 그럼 새살 돋아 껑충 어른이 되어 어둔 유년의 골목을 벗어나 환한 대로에 설 수 있을 것 같았어. 쓰는 것도 그래. 꽁꽁 숨겨뒀던 상처를 하나 둘 꺼내 그 위에 연고를 바르고 밴드를 붙여 새살이 돋을 때까지 기다리기. 그걸 성찰이라고 부르든 통찰이라고 부르든 치유라고 부르든 확장이라고 부르든, 아무래도 상관없어, 난. 그걸 뭐라고 부르든, 다 좋아. 


매일 담배 한 개비를 나눠 피던 그 애가 내일 꿈을 찾아 이 도시를 떠나. 


"그거 알아?"

"뭘?"

"나 원래는 안 피워."

"거짓말."


그래서, 너는 내가 왜 좋은데?

작가의 이전글 내가 되고 싶은 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