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잠깐 다녀오려고 했다가 딴 데 정신 팔려 못 오고 있는 건지, 우연히 나섰다 맘에 쏘옥 드는 멋진 보금자리라도 발견하고 거기 그대로 눌러 앉아버렸는지. 아니면, 오다가 뭔 피치 못할 변고라도 생겨 영영 당도하지 못한 건지, 이제 이 놈의 집구석이라면 아주 지긋지긋해서 안 돌아올 작정으로 쪽지 한 장 써두지 않고 떠난 건지. 온다 간다 말두 없이 홀연히 사라진, 주인장도 없는 빈 집을, 그 문지방을, 어정어정, 문턱이 닳게 들락거려, 요즘 나는. 오늘 아침엔 먼지구덩이가 된 그 집을 어슬렁거리다 조각이랄지 파편이랄지…… 사금파리처럼 반짝이는 걸 주웠어. 니가 부러 떨구고 간 걸까. 아니면 미처 챙기지 못한 흔적일까. 어느 모퉁이에서 고만 풀썩, 데자뷔처럼 마주한.
"과거의 슬픔보다 현재의 슬픔을 드러내는 것이 더 의미 있는 작업이 아닌가?" (작가)
"흐르는 강을 자를 수 있다면 당신의 말이 옳다. 하지만 강은 끊임없이 흐른다. 흐르지 않는 것은 이미 강이 아니기 때문이다. 과거로부터 흘러나오는 이 강은 현재를 넘어 미래로 흘러 들어가고 있다. 보스니아 내전의 비극을 보라. 죽고 죽이는 아비규환을 인종의 문제라 생각하는가? 천만에, 그것은 욕망의 비계 덩어리로 숨 쉬고 있는 인간의 문제다. 과거의 슬픔은 곧 현재와 미래의 슬픔이다. 다만, 그 슬픔의 형태가 다를 뿐이다." (헨리 쿠레츠크)
"그 슬픔의 강가에서 예술가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작가)
"예술가란 살아남은 자의 형벌을 가장 민감히 느끼는 사람이다.
살아 있다는 것은 축복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형벌이기도 하다. 빛은 어둠이 있어야 존재한다. 축복과 형벌은 이 빛과 어둠의 관계다. 그런데, 예술가는 축복보다 형벌에 민감한 사람이다. 그리고 그 형벌을 견뎌야 한다. 단언컨대, 견디지 못하는 자는 예술가가 아니다. 슬픔의 강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끊임없이 흐르고 있지만, 그 강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이 강이 있음을 일깨우는 사람이 바로 예술가다." (헨리 쿠레츠크)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 (작가)
"예술가는 어둠 속에서 빛을 찾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 빛은 슬픔의 강 너머에 있다. 이제 내가 당신들한테 질문하고 싶다. 슬픔의 강을 어떻게 건너는가?" (헨리 쿠레츠크)
…… 이어지는 니 말.
'슬픔의 강을 건너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고 한다.
배를 타고 가는 것과 스스로 강이 되는 것…….'
우군.
어젠 두목을 만났어. 못 본 사이 많이 아팠다더니 배가 호올쭉해진.
오랜만에 만난 두목은 과거와 현재, 미래를 동시에 끌어안고 있었어. 언제나처럼. 비장함 서린 그의 눈동자에 젖어가던 내 눈가. 철없이 떨리는 가슴은 슬쩍, 뒤로 넘겼어. 두목이랑 헤어져 지하철을 타고 돌아오면서 한강 다리 아래로 흐르는 검은 물빛을 보는데 문득 니 생각이 났어. 너 없어 쓸쓸한 먼지구덩이 그 빈 집이랑. 그리고 그리웠어. 아무 말없이, 니 얼굴 마주하고 앉아만 있어도 좋던 어느 날이. 음악 들으면서, 발만 까닥까닥, 그러고 있기만 해도 좋던. 지금, 니 얼굴이 보이면 내 어깨에 짊어진, 내 마음에 떨어진 짐이 덜어지겠다. 그럴 것두 같다, 그랬어. 그런 마음이 들었어. 그런데 어디에서도 니 얼굴이 보이지 않아 처진 어깨로 돌아왔어.
얼마 전 읽은 책에선 사랑이 나와 너, 그 사이에 있댔어. 내 안에, 그리고 니 안에 고정된 게 아니라 나와 너사이, 그 '뜸'에 있다고. 거기, 흐르는 거라고. 그러니까 사랑은 내 것도 니 것도 아니어서 우리 '사이'가 끊어지면 그 '사이' 감정도 사라지고 만대. 끊긴 '사이'와 함께, 휘이익.
우군.
지금 넌 배를 타고 슬픔의 강을 건너고 있니? 아니면, 강이 되어 흐르고 있어?
니 글 아래 달린 딱 하나의 댓글. 몇 년 전, 내가 남긴.
'00아. 이 글을 이제야 읽고…… 운다.'
이제야 널 찾아 나선, 그럴 엄두를 낸 밉고 밉고 또 미운 나한테 이 아침 니가 던진 묵은 질문.
연아, 그래서 넌 슬픔의 강을 어떻게 건널 작정이야? 건너기는 할 거야?
아니면, 계속 이렇게 강가에 서 있기만 할 거야? 어엉?
우리 같이 노래 부르며 내려오던 그때 그 여름 언덕.
그때 인 바람이 다시 불어와. …… 그럴 것 같어.
그런데 너 어딨니, 우군.
빙글빙글 웃음 머금은 눈가, 그때 살풋 들어가던 니 볼우물.
다시, 보고 싶어.
사철나무 그늘 아래 쉴 때는
- 장정일
그랬으면 좋겠다 살다가 지친 사람들 가끔씩 사철나무 그늘 아래 쉴 때는 계절이 달아나지 않고 시간이 흐르지 않아 오랫동안 늙지 않고 배고픔과 실직 잠시라도 잊거나 그늘 아래 휴식한 만큼 아픈 일생 아물어진다면 좋겠다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
굵직굵직한 나무 등걸 아래 앉아 억만 시름 접어 날리고 결국 끊지 못했던 흡연의 사슬 끝내 떨칠 수 있을 때 그늘 아래 앉은 그것이 그대로 하나의 뿌리가 되어 나는 지층 가장 깊은 곳에 내려앉은 물맛을 보고 수액이 체관 타고 흐르는 그대로 한 됫박 녹말이 되어 나뭇가지 흔드는 어깻짓으로 지친 새들의 날개와 부르튼 구름의 발바닥 쉬게 할 수 있다면
좋겠다 사철나무 그늘 아래 또 내가 앉아 아무것도 되지 못하고 내가 나밖에 될 수 없을 때 이제는 홀로 있음이 만물 자유케 하며 스물두 살 앞에 쌓인 술병 먼 길 돌아서 가고 공장들과 공장들 숱한 대장간과 국경의 거미줄로부터 그대 걸어 나와 서로의 팔목 야윈 슬픔 잡아준다면
좋을 것이다 그제서야 조금씩 시간의 얼레도 풀어져 초록의 대지는 저녁 타는 그림으로 어둑하고 형제들은 출근에 가위 눌리지 않는 단잠의 베개 벨 것인데 한 켠에서 되게 낮잠 자버린 사람들이 나지막이 노래 불러 유행 지난 시편의 몇 구절을 기억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