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원해 보니, 진즉에 잡아놓은 백내장 수술보다 더 급한 게 있단다. 언니는 언니대로, 오빠는 오빠대로 바쁘다. 몇 달 전 엄마가 넘어져 입원했을 적엔 오빠가 엄마네서 출퇴근하면서 아부지를 돌봤다. 이번에도 몇 날은 그랬나 부다. 그러다 사정이 여의치 않았는지 언니한테 부탁했고, 언니도 시간내기가 영 쉽지 않았는지 나한테 연락이 왔다. 연아, 몸은 좀 어때? 바뻐?
엄마, 왜 자꾸 넘어지구 그래?
너, 내가 입원한 거 어떻게 알았어?
지금 그게 중요해?
내가 너한텐 말하지 말라구 했는데. 지 몸 하나도 힘드니까.
지금 그게 중요하냐구. 왜 자꾸 넘어지냐구, 대체!
넘어지는 것도 넘어지는 건데, 백내장 말구 다른 수술을 해야 한대.
알어, 들었어.
알어? 니가 어떻게 알어? 누가 너한테 말했어?
지금 누가 나한테 말했는지, 그게 중요해?
언니 연락받고 아부지한테 간 첫날은 아버님 기일이라 이천 호국원엘 가야 해서 눈 뜨자마자 이것저것 챙겨 아이스 백에 담아 가느라 정신없이 바빴다. 아파트 주차장을 나와 도로에 들어서니 그제야 동 트는 어스름한 하늘. 오빠한테 걸려온 전화.
막내야, 어디쯤?
가고 있어.
나, 지금 나가야 하는데….
한 5분에서 10분 있음 도착해.
난 5분 뒤에 나간다.
전화를 끊자마자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했다. 아기가 되어버려 5분만 혼자 둬도 불안한 울 아부지. 엄마 집 앞에 주차하고 허겁지겁 계단을 뛰어올라가 숨을 헐떡이며 현관 비번을 누르고 문을 여니, 옷을 단정하게 입고 마스크까지 쓰고 소파에 앉아있던 아부지가 고개를 돌렸다.
아부지!
흰 마스크 따라 씰룩, 올라가는 아부지 양볼. 지금 집으로 이사 오기 전에 엄마 아부지랑 7년을 같이 살았다. 한 건물 아래위층에서. 엄마네로 이사 가고 얼마 안 돼 내가 아프면서 하루도 거르지 않고 우리 집 현관에서 아부지 슬리퍼 소리를 들었다. 지이익지이익. 그 소리를 불도 켜지 않은 동굴 같은 어둑한 방, 침대에 누워서 맨날맨날 들었다. 재발하고 치료제를 먹으려면 멀쩡한 자궁을 떼내야 한대서 수술하고 와 누웠는데, 통증이 밀려왔다. 어지간한 통증엔 찍소리도 안하는데, 난생 처음 맛보는 통증에 나도 모르게 신음이 터져나왔다. 그 소리에 놀란 엄마가 한달음에 달려왔을 적에도 아부지는 차마 집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내내 현관 밖에서 슬리퍼만 끌었다. 스으윽스으윽. 내 신음 소리 사이사이 들리던 그 소리는 아부지 손길이었다. 날 쓸어주는. 아부지, 여기 있어. 여기, 아부지 있다. 그때 베개를 적시던 내 눈물 냄새. 지겹게 맡던.
그럴 리야 없겠지만, 고만고만하던 아부지는 내가 떠나오고 바람 빠지는 풍선인 양 빠르게 나빠졌다. 막내딸 없어 적적한 티를 그렇게라도 내야한다는 듯, 당신 곁을 떠난 막내딸을 이렇게라도 나무라야겠다는 듯.
아부지, 나 누구야?
여자.
내가 여자야?
어.
틀렸어! 난, 이쁜 여자야.
화알짝, 입을 벌리고 웃는 아부지. 삐뚤빼뚤한 아부지 입속.
엄만 어디 갔어?
누구?
아부지 부인?
나… 결혼 안 했어.
그럼 총각이야?
어.
데이케어 센터 차가 도착했다는 오빠 전화를 받고 두툼한 아부지 손을 잡고 계단을 내려왔다.
친구들이랑 싸우지 말구 사이좋게 지내!
나랑 눈을 맞추며 소리 없이 웃는 데이케어 센터 선생님. 함지박 웃음에 번쩍 한 손을 흔들며 차에 타는 총각, 울 아부지. 출발하기 전, 센터 선생님이 살짝 내려준 창문 너머로 웃는 울 아부지. 데이케어 센터 차가 골목 모퉁이를 돌아 시야에서 사라지고 이천 호국원으로 달려갔다.
계절이랑 무관하게, 어느 계절에 가도 이상하게 쓸쓸하고 춥던 호국원이 그날따라 포근했다. 내린 눈이 녹지 않고 쌓여있어서 그랬을까. 호국원 매점에서 청하 한 병이랑 국화 한 송이를 사서 타박타박, 아버님이 있는 구역까지 아이스 백이랑 돗자리를 챙겨서 걸어갔다. 눈에 익은 까망 고양이랑 노랑 고양이가 주위를 어슬렁어슬렁. 조 녀석들, 배 나온 것 좀 봐. 니네 다이어트해야 하는 거 아니야? 그렇게 꼬리 흔들고 알짱거려두 아무것도 안 줄 거야. 국화 한 송이랑 가져간 음식을 올리고 건네는 머언 먼 안부. 거기서, 평안하시지요, 아버님 어머님? 살아생전 각별하지 않았던 아버님은 돌아가시고 이따금 꿈에 찾아와 내가 차려준 밥을 자시고 가셨다. 돌아가시고 나서야 알아챈 그때 아버님 정(情). 아버님 성정에 쉽지 않았을 그 손길에 돌아가시고 나서야마음이더워졌더랬다. 올라간 길을 되짚어 내려올 적엔 쌓인 눈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잔뜩 움츠린 나무 위 눈을 털어주다 관리직원한테 야단 맞았다. 아주머니, 그러면 사람들이 넘어져요! 힝, 이러면 나무들도 힘들다고요…. 그담부턴 인도 반대방향으로 눈을 털어주며 내려와 호국원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집에 와 한 시간 남짓 누웠다 엄마네로 가 아부지를 기다렸다. 생전에 아버님이 좋아한 편육이랑 전 몇 가지, 떡이 좀 남았길래 챙겨가서 꺼내놓으니 헤벌쭉 좋아하는 아부지.
아부지. 거기서 저녁 안 먹었어?
어.
거기서 저녁 먹는 줄 뻔히 아는데, 편육 한 점 입으로 가져가며 안 먹었다는 아부지.
거기서 밥 안 줘?
어.
편육 한 점 집어 내 입에 들이미는 아부지.
안 먹을래.
왜? 먹어.
나, 배 아파.
왜?
약(경구용 항암제) 다 먹어서.
그러게 약을 살살 먹어야지.
차마 집 안으로 들어오지도 못하고 현관문 밖에서 왔다 갔다… 지켜볼 수밖에 없던 막내딸이 지금 얼마나 아픈지도 모르는 울 아부지. 그뿐인가. 자기가 누군지, 어디 사는지, 결혼은 했는지 안 했는지, 자식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새파란 총각이 된 울 아부지. 오빠가 왔길래 가려고 일어서는데, 내 손목을 잡는 아부지.
하마(벌써) 갈라구?
어. 왜 이쁜 여자, 간다니까 서운해?
화알짝 웃는 아부지.
이쁜 건 알아가지구! 갔다가 낼 아침에 올게.
손목을 꽈악 잡고 안 놓는 아부지 손등에 손을 올리고,
낼 아침에 일찍 올게. 알았지?
서운한 아부지 눈빛.
집에 와서도 내 손목 잡던 그 총각 생각에 뒤척이다 서둘러 간 다음날, 아침.
총각!
화알짝 웃는 아부지.
어떻게 이렇게 일찍 왔어? 오늘은 왜 이렇게 이쁘게 하고 왔어?
내가 도착하고 출근한 오빠한테서 톡이 왔다. 간식은 절대 주지 마. 알았어. 저녁은 거기서 먹고 와. 안 먹었다고 그러니까…. 병명이 치매야. 어, 알았어. 오빠는 당부, 또 당부했다. 평소 장난치길 좋아해서 그럴까. 아부지 치매는 장난처럼, 농처럼… 그랬다. 어릴 적 날 웃게 하던.
엄마가 수술했다. 오빠는 수술이 잘 끝났다며 면회 불가니 병원엔 오지도 말랬다.
아부지! 잘 잤어?
이쁜이! 어.
세상이 난리가 났는데, 잘 잤어?
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긴 알어?
몰라.
이름도 모르고 집이 어딘지도 모르고 내가 누군지도 모르고… 아부지가 아는 건 뭐야?
제주도 갔었어.
세월이 하 수상한 줄도 모르고 시간의 담을 훌쩍 넘어 총각이 된 아부지는 우리랑 간 적도 없는 제주도 어느 바람에 들었나 부다. 내가 모르는 그 남자는, 거기, 어디쯤에서, 누구랑, 있는 걸까. 내가 모르는 그 아이는, 어느 돌담길을, 헤매고 있는 걸까. 어떤 이와, 어떤 표정으로, 어떤 시간을, 지으면서.
내일도, 모레도 총각 보러 간다.
이쁜 여자만 보면 화알짝 웃는,
총각
… 날 입양해.
수세미꽃
- 곽재구
샘가에
수세미꽃
혼자 사는 할미
샘돌 뒤 쉬 할 때
꽃그늘 은하수 펼쳐주는 꽃
할미가 일어설 때
집은 아세요? 물어보는 꽃
몰라, 잊어버렸어
할미 따라가며
고운 새소리 들려주는 꽃
덧
글 제목은 계절을 거스르고 한여름 땡볕이 따갑던 지난가을, 광주 기역책방 책담회에서 제가 마지막으로 낭독한 이윤설 시인의 시(詩) <어느 별의 편지>에서 인용했어요. 사진은 몇 해 전 가을 어느 날, 자주 가는 도서관 담벼락에 어른거리던 설운 그림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