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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시의 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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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Nov 29. 2024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시(詩) <당신은 첫눈입니까>, 이규리

맨날 앉는 도서관 2층 창가 자리.

푸욱, 꺼져서 시(詩)를 읽어요.

캄캄해서 도통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도, 그저 읽고 읽고. 

창밖으로 오가는 시린 사람 몇. 굽은 걸음을,  등허리를, 텅 빈 입김을.

나뭇가지에 앉았다 재채기에 부르르, 떨어지는 눈무덤 몇. 깜짝할 속도를, 고인 소리를, 놀란 물기를.


껍질을 둘러요. 무적의.

살갗이 없어 고통일색이고 불구덩이고 울음바다라 힘들었거든요.

꽝꽝, 닫히고 꽁꽁, 얼어버릴 테야.

척척, 휘두르고 휙휙, 무찌를 거야.


나는 나의 보호자.

여지껏 방기한 그 책무에 죽을 힘을 다해 날 보호할 거예요.

할퀴고 쑤셔대는 그 어떤 공격에도 눈감지 않고

오직 다정한 눈매와 다정한 목소리, 그 사이로만 떠다니는

허공을 가로질러 덤비는 저 눈송이처럼.


여기는 첫눈인데

거기는 아직이라는 그날,

은 등 타고 피어오르는 담배 연기를 봤어요….  


당신은 첫눈입니까

- 이규리


누구인가 스쳐지날 때 닿는 희미한 눈빛, 더듬어보지만 멈칫하는 사이 이내 사라지는 마음이란 것도 부질없는 것 우린 부질없는 것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하였다 그렇지 않으면 모르고 지나친 일을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낱낱이 드러나는 민낯을 어쩌지 못했을 것이다 생각날 듯 말 듯 생각나지 않아 지날 수 있었다 아니라면 모르는 사람을 붙들고 더욱 부질없어질 뻔하였다 흩날리는 부질없음을 두고 누구는 첫눈이라 하고 누구는 첫눈 아니라며 다시 더듬어보는 허공, 당신은 첫눈입니까


오래 참아서 뼈가 다 부서진 말

누군가 어렵게 꺼낸다

끝까지 간 것의 모습은 희고 또 희다

종내 글썽이는 마음아 너는,


슬픔을 슬픔이라 할 수 없어

어제를 먼 곳이라 할 수 없어

더구나 허무를 허무라 할 수 없어

첫눈이었고


햇살을 우울이라 할 때도

구름을 오해라 해야 할 때도

그리고 어둠을 어둡지 않다 말할 때도

첫눈이었다


그걸 뭉쳐 고이 방안에 두었던 적이 있다


우리는 허공이라는 걸 가지고 싶었으니까

유일하게 허락된 의미였으니까


저기 풀풀 날리는 공중은 형식을 갖지 않았으니


당신은 첫눈입니까


글 제목은 이병률 시인의 시(詩) <아주 오래전부터>에서 인용했어요. 사진은 지난여름, 낯선 이 몇과 들렀던 김중만 사진전에서. (말을 잃어버리는 중인지. 자꾸, 글이 짧아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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