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밤은 너의 낮보다 길어서

연극 <12월 이야기>

by 여름


새벽 3시.

지금, 세상은 밤으로 또렷해지는 걸까, 아니면 새벽빛에 묽어지는 중일까.

모두 잠든 틈을 타 거실로 나와 베란다에 서서 밖을 내려다본다. 어둠이 둥지를 튼 단지. 헐벗은 나무에 걸렸다 갈라지며 꼬리를 감추는 헤드라이트 불빛들. 저 멀리 정문 입구, 깜빡이는 꼬마전구는 어딘가 다급해 보인다. 할딱할딱. 나무가 보내는 구조요청 신호일까. 책상에 앉아 스탠드 스위치를 당긴다. 딸깍. 노랗고 둥그런 불빛을 따라 책상 위 물건들이 눈을 뜨고 동공보다 짙은 그림자가 흘러내린다. 스무 권 남짓의 책과 블루투스 스피커, 작은 유리병, 미니 단풍나무가 심긴 조막만 한 화분, 크기와 모양, 색이 제각각인 철제 수납함 서너 개, 출처와 제조일자를 알 수 없는 군데군데 이가 나가고 뭉개진 떡틀 하나. 오늘이 동지다. 이틀 뒤면 크리스마스이브. 아프고는 늘 이맘때면 절기처럼 잊지도 않고 꼬박꼬박 찾아오는 감정이 있다. 울렁울렁, 일렁일렁… 흠씬 젖어라.


지난주 병원에 갔다가 올해도 어김없이 로비에 서 있는 크리스마스트리를 봤다. 아홉 번째다. 그 말은 2017년 여름, 암 진단받고 햇수로 9년을 살았단 말이다. 암이 재발한 2020년 그 유월부터 셈해도 6년. 지난달에 CT검사하러 갔다가 그날따라 병원 복도가 내 집 거실인 양 편하길래 손가락을 꼽아보니 그랬다. 그건 그렇고, 이 병원은 돈도 많을 텐데 어쩜 이렇게 매년 크리스마스트리를 재활용하는지. 처음 몇 해는 로비 천장을 뚫을 듯 거대하기만 한, 뭐 하나 달라진 거 없는 트리를 천연덕스럽게 세워놓는 게 참으로 뻔뻔하고 무성의하다고 투덜댔다. 그런데 겨울이 오고 캐럴 리듬에 맞춰 북적이는 거리나 커피 향 짙게 밴 카페에서 반가운 얼굴들과 바투 앉은 소박하고 시끌벅적한 테이블이 아닌 소독약 냄새 떠다니고 근심이 진동하고 불안으로 얼룩 진 병원 로비에서 펄럭이는 흰 깃발들 사이로 작년에 보고, 재작년에도 본 트리를 마주하다 보니 어느 해인가 투둑, 실밥 터지듯 꽁했던 마음에 실금이 갔다. 올해도 살아서 이 트리를 보는구나. 내년에도 볼 수 있으려나. 후년엔? 언젠가부터 '하나도 달라지지 않고 거대하기만 한' 멋대가리 없는 그 트리가 어떤 기준점이 됐다. 우리, 아홉 번이나 만났으니 오래 살았네. 여한, 없나? … 모르겠다. 통증이 몰려오면 이렇게 구질구질하게 살 바에야 확 끝장내자, 험악해지다가도 통증이 잦아들면 딱 지금처럼만 오래오래… 비굴해져서는 내처 달리면서 빌고 또 빌었다. 그깟 통증에 벌러덩 자빠지는 유리멘탈 허약 체질이라. 싸움에의 의지? 불타는 승부욕? 그딴 건 개나 줘버리고 지는 게 이기는 거라고 뻐기는 의지박약 우기기대장이라서.


겨울이니 추운 거야 당연하다지만 연극 <12월 이야기> 첫 공연이 있던 날 저녁, 종로를 휩쓴 바람은 요상했다. 버스에서 내려 횡단보도 건너 골목으로 들어서니 거기, 꽃 노점상이 있었다. 꽃을 고르고 포장하는 동안 힘을 키운 바람이 꽃집 천막자락을 부여잡고 날아올랐다. 손이 시리고 목이 움츠러들었다. 가방에서 목도리를 꺼내 둘렀다. 다음부턴 장갑도 챙겨야지,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주변을 둘러봤다. 여기도 많이 변했네. 아닌가? '젊음의 거리'가 된 한때 내 나와바리였던 종로바닥을 눈으로 훑었다. 그때도 싱싱하고 팔팔하진 않았지만, 쭈글쭈글 같이 나이 들어갈 줄 알았는데 사라지고만 종로서적과 코아아트홀. 영화 강의 듣던 낙원상가 뒷골목. 바흐 레슨 받겠다고 찾아간 YMCA 좁은 강의실. 명동성당 앞 골목으로 벽을 따라 늘어선 영화포스터랑 명화를 보러 다니고, 청계천 헌책방을 기웃거리고, 조도 낮은 음악다방 의자 깊숙이 몸을 들이밀고 시간을 죽이고, 프랑스 문화원 구석에 몇 시간이고 쭈그리고 앉아 있던 이십 대의 내가 저 바람등을 타고 유령처럼 떠돌고 있는 것만 같았다. 멀리서 오는 이가 늦는대서 꽃다발을 받아 들고 골목을 나와 카페를 찾아 기웃거리다 종각역 12번 출구 앞에 섰다. 여기였어. 그를 마지막으로 떠나보낸 데가. 계단 저 아래에서부터 넘실넘실 바닷물이 차오르더니 쏴아 쏴아, 파도가 밀려왔다. 사부….


서로 알았거나 모르는 사람 몇이 한 카페에 모여 '한 번도 존재한 적이 없고 그 누구도 들어본 적이 없지만 어딘가에 꼭 있을 것만 같은' 이야기로 '끼리'가 되어가며 취기 오르던 겨울밤을 부려놓은 연극 <12월 이야기>는 그 누구의 이야기도 아니면서 모두의 이야기였다. 내가 사랑한 너, 니가 그리워한 그 여자, 그녀가 못 잊는 그 남자, 그가 기억하는 우리. 어떤 이야기는 신화가 되고 전설이 되기도 하는데, 나는 어떤 이야기들에 그런 자격을 부여하는지 궁금했다. 그리고 또, 그런 이야기를 이루는 골격을 만져보고 성분을 맛보고도 싶었다. 나는 내가 사랑한 사람들의 집합소였고 너는 니가 사랑한 것들의 모음집이니 사랑이라는 암호로 접선한 우리는 세계고 우주고, 본질이고 진리라고 우겨본다. 겨울엔, 특히나 12월엔 독자적이고 개별적인 저마다의 이야기가 개방적이고 보편적인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되기도 하니. 저길 봐, 진눈깨비야. 눈도, 비도 아닌 진눈깨비가 내려.


누군가 외롭다고 하면, 등대지기를 안다고 말해.


사부를 만난 건 서해 바다였다.

한겨울 거센 물살에 회항하던 배의 갑판 위에서 만난 그는 몇 년 뒤 겨울, 등대지기가 되어 출렁이는 찬 바다로 들어갔다. 그런 사람들이 있다. 동굴이나 섬이 되려는. 허수경 시인은 어느 책에선가 별이 되기를 꿈꾸는 시(詩)는 많으나 별의 시체를 제 품 안에서 발견하는 시(詩)는 드물다는 김진석 평론가의 말을 가져다 놓고 강정 시인의 시(詩)를 읊조렸다.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은 사람마다 달라도 누구나 동경하는 아름다움이 하나쯤은 있어서 가까이 두길 바랄 테지. 어딘가엔 아름다움, 그 자체로 존재하는 이가 있기도 할 거고. 단 한 줄의 시(詩)를 쓰지 않고도 시(詩)의 재를 풀풀 날리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섬이고 바다고 파도였던 그는 매일밤 내가 엎드려 있던 옥탑방으로 바닷물을 퍼 날랐다.

파도 소리… 들려.

어. 니 목소리, 들린다.

파도보다 내 목소릴 더 사랑했던 그가 밤새 실어 보낸 바닷물로 아침이면 옥탑방은 찰랑찰랑, 햇살에 반짝였다. 그때 그 바다가, 그때 그 파도가 종각역 12번 출구 계단을 타고 밀려온다밀려온다밀려온다밀려와아아아아….


지난주 병원 가는 길에 올림픽 대로를 달리면서 흘깃 보니 한강변 미루나무가 삐쩍 말랐다. 그저 나무일뿐인데, 나는 왜 눈물이 나는가. 겨울 아침 안갯속으로 미루나무를 빠르게 흘려보낸다. 며칠 전엔 양갱이랑 카스텔라를 들고 요양원에 갔더니 아부지가 웃는다. 손뼉도 친다. 허벅지에 올린 손가락도 까딱까딱.

- 아부지, 오늘 기분 최고로 좋으네?

내 눈을 보는 아부지 눈동자가 또렷하다.

- 아부지, 오늘 백점!

엄지 손가락을 번쩍! 들어 보이니 아부지 입꼬리가 보일랑말랑 올라간다. 핸드크림을 꺼내 아부지 손에, 내 손에 짜서 손을 맞잡고 꼼꼼히 바르고 손을 포개 잡는다.

- 로션을 발라서 그른가? 울 아부지 손이 반짝이네? 여기 봐봐. 그치? 아부지는 어쩜 이렇게 손이 희고 이쁠까. 내 손 좀 봐봐. 그 이쁘던 손이 이게 뭐야. 으이그, 미워.

아부지가 여기저기 갈라지고 터진 내 손을 내려다보더니 윤기 자르르한 손으로 꼬옥 잡는다. 핸드폰을 켜고 얼마 전 엄마네 갔을 때 찍어온 젊은 시절 아부지 사진을 확대한다. 이거 봐라, 아부지. 잘생긴 이 사람, 누구야? 엄청 잘 생겼다, 그치? 끄덕끄덕. 영화 배운가? …. 누군지, 몰라? 끄덕끄덕. 아부지잖어. 이렇게 잘 생겼는데 왜 배우 안 했어? …. 여자들이 엄청 따라다녔겠는데? 그치? 끄덕끄덕. 그랬다구? 으흐흐흐. 울 아부지, 인기 많았구나.

- 아부지. 밥 많이 먹어야겠다. 볼이 이게 뭐야. 쏙 들어갔잖어. 배도 그렇고. 밥 많이많이 먹고 살도 찌고 운동도 열심히 하구 그래야지 집에 가지. 지금은 보일러 고장 나서 추워. 봄에, 봄 돼서 따뜻해지면 그때 가자. 알았지? 전에 나랑 여기 공원 갔던 거, 생각나?

끄덕끄덕.

- 저기, 천변에 가서 꽃 본 것도 기억나?

끄덕끄덕.

- 우와. 울 아부지 오늘 진짜 최고다! 담엔 아부지 좋아하는 만두 사 올까?

끄덕끄덕.

- 김치만두? 고기만두?

- …….

- 김치만두, 고기만두 다 사 올게.

끄덕끄덕. 일어나서 휠체어에 앉은 아부지를 끌어안는데, 어깨뼈가 만져진다. 올림픽대로 그 미루나무처럼, 안갯속으로 빠르게 멀어지는 울 아부지.


2017년 그 여름, 뭐 하러 왔냐며 곧 죽겠다 싶은 눈으로 쳐다보던 주치의에 맞서 고개 빳빳이 쳐들고 살았더라면 뭐가 좀 달랐을까. 2020년 그 유월, 암이 재발하고 펀치 날리듯 한 달 내리 쏟아지던 올림픽 도로 빗길에서 그 누구라도 5년은 너끈히 산다고 귀띔해 줬더라면 차선을 바꿨을까. 종이 쪼가리에다 밀린 숙제하듯 휘갈기지 않고 해가 바뀔 때마다 새 다이어리에 또박또박 계획이란 것도 세워가면서 차근차근 천천히….


지난봄엔 엄마 얘길 쓰겠다 해놓고는 바다를 보러 갔다.

바다를 보러 가고, 바다를 보러 가고, 바다를 보러 가고, 바다만… 보러 갔다.

바다는 언제나, 늘 그 자리에 있고도 없었다.

파도는 꼬박꼬박 되밀려왔지만, 어제 본, 방금 전에 본 그 파도는 아니었다. 모든 건 흘렀다. 전부, 다. 정직하고, 예외 없이. 나는 이제 안다. 찰나는 영원이 되고 영원은 찰나가 되기도 한다는 걸. 우리의 찰나와 영원이 꼭 맞물려 한 덩이로 굴러갈 수도, 한 순간 교차했다 영영 멀어질 수도 있다는 걸.

언젠가 사부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너 본 적 있어. 그때 회기동에서. 그땐 너인 줄 몰랐지.


안부를 나누기에도 버거워진,

모르고 지나쳤거나 잠깐 붙었다 떨어졌거나 부러 놓아버린 나의 '너'에게 안녕을 묻고픈 겨울, 밤.

사람들은 허구한 날 과거를 되감는 나를 이상한 눈초리로 봤다. 그들은 몰랐다. 나의 밤은 너의 낮보다 길어서, 기억을 되새길 적마다 내가 또 한 번의 생(生)을 산다는 걸. 나는 수십, 수백, 수천 번 다시 태어나 수십, 수백, 수천 번 다시 사랑했다. 그때 나를. 그때 나의 너를. 우리의 그림자가 나란한 그때 그 시간과 장면을. 어깨를 마주하고 걷던 거리. 흥얼대던 콧노래. 떠가던 구름. 코끝을 간질이던 살내음. 은밀하고 잦은 눈맞춤. 손등에 닿던 솜털. 피고 지던 그 모든 계절과 시절… 재가 될 때까지 태웠다. 되새김은 기억이면서 또 한 번의 생(生)이었고 나를 해부하는 수술이었다. 되새김의 칼날은 모순적이고 이기적이며 욕망덩어리에 질투폭발 샘쟁이인 나를 세포 하나하나까지 투명하고 적나라하게 해체했다. 이젠 부정하지 않는다. 부끄럽지도, 미안하지도. 나는 말기 암 환자다. 공동체엔 규범과 윤리, 질서의 테두리 밖으로 살짝 벗어나는 못됨이나 꼬장 정도는 슬쩍 눈 감아주는 너그러움 같은 게 있었다. 나는 그 자장(磁場) 안에서 숨을 토했고 실실거리며 한껏 게을러졌다. 엄마 아부지한테 사랑받고 남들 시선에 갇혀있던 허물을 벗고 조금쯤 편안해지면서 이제라도 나만 생각하고, 나만을 위해 살면 되지, 뭐. 다들 흔쾌히 그러라길래, 그랬다.


착각이었다.

그들도, 나도 말뿐이었다. 감시와 통제는 여전했다. 내 안에도, 바깥에도. 딸과 아내, 엄마와 동생, 친구와 이웃에 '환자'라는 역할이 더해졌고 그건 또 하나의 족쇄와 굴레라는 걸 얼마 전에야 알아챘다. 그 사슬은 더 촘촘하고 견고했다. 나는 투병이라는 또 다른 감옥에서 진땀을 빼고 있었다. 세상은 징징대며 앓는 내가 아니라 씩씩하게 병과 싸워줄 명랑한 전사를 원했다. 나는 그럴 의지도, 기운도 없는 낙제생이었다. 나는 내 병과 사이좋게, 오래오래 살고 싶었다. 사람들은 행여 내 병이, 내 불운이, 내 어둠이 옮을까, 새 진동하는 얘긴 거북해했다. 이해한다. 아니. 이해하는 척했다. 내가 그 자리에 있었어도 별반 다르지 않았을 테니. 나는 안 아픈 척, 괜찮은 척, 아무렇지 않은 척, 멀쩡한 척, 거뜬한 척했다. 건강한 사람들에게 피해 주지 않으려고 발맞춰 걸으며 그들이랑 똑같이 1인분의 몫을 해내려고 아등바등거렸다. 어떨 땐 2인 분, 3인 분의 몫을 하기도 했지만 억울하다거나 서운하지 않았다. 끼워주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해서. 봐, 나는 눈곱만큼도 달라지지 않았어. 모두에게 잘 보이려고 안달복달하는 내가 꼴사나웠다. 여전히 엄마 아부지한테 묶여 남들이 쏟아내는 말에 휘둘렸고 말로는 아이들한테 메이지 않는다면서도 홀로 걷는 아이들을 멀리서, 가까이에서 응원했다. 나는 나대로 이전하고는 다른 삶을 살아야 한다는 강박과 초조함, 몰려드는 허기로 칫솔을 입에 물고 오줌도 참아가며 키보드를 두드렸다. 밤을 꼴딱 새워 읽고 또 읽었다. 밥 먹는 시간도 아까워 그릇에 밥이랑 반찬을 대충 때려 넣고 영화를 보면서 끼니를 때웠다. 밤이면 종아리에 쥐가 나서 베개에 머리를 묻고 도리질을 하면서도 해가 뜨면 일어나서 걷고 또 걸었다. 그렇다. 나는 죽을똥살똥, 살았다. 내일 당장 죽을 것 같은 눈으로 왜 왔냐길래…. 아무한테도 말한 적 없지만, 덮치는 무서움에 손이 벌벌 떨리고 숨이 꼴깍 넘어갈 것 같은 날도 꽤 여러 날이어서…….


한 장면이 있다.

산길이 있고 그 길을 따라 한 여자가 걸어가고 있다. 그 여자는 젊은 시절의 엄마다. 그 뒤를 따라 내가 걸어가고 있다. 우리 둘 사이는 제법 떨어져 있다. 엄마가 걸음을 멈추더니 뒤를 돌아본다. 나도 멈춘다. 엄마랑 눈이 마주친다. 엄마가 한 손을 들어 손짓을 한다. 휘어이휘어이. 가, 저리 가. 엄마… 엄마…. 밖으로 뱉지 못한 말이 목구멍을 타고 흐르는데 엄마가 흐려진다. 손등으로 눈가를 훔치고 보니 엄마가 뒤돌아서서 잰걸음으로 걸어간다. 엄마는 점점 멀어지는데 따라갈까, 말까… 두 발은 돌덩이를 매단 듯 무겁기만 하다. 바람이 분다. 흙먼지가 들어갔나. 손으로 눈을 비비는데 다시 뜨기가 겁난다. 엄마가 사라지고 없으면 어쩌지. 눈을 뜨니 막 고개를 넘어가는 엄마가 보인다. 나풀나풀. 엄마 목에 감긴 스카프가 바람에 나부낀다. 엄마, 엄마…. 산길에 울리는 엄마 스카프 소리. 펄럭펄럭.


그때 내가 몇 살이었는지 모른다. 그 장면이 내 기억이 맞는지 아닌지도 분명치 않다. 오래전 누구한테 들은 얘기가 기억으로 둔갑하는 일도 왕왕 있으니. 출처가 불분명한 그 장면에 붙들려 지난 몇 계절을 간신히 났다. 그리고 알았다. 내가 거기서 왔다는 걸. 흙바람과 나부끼는 스카프, 그 펄럭임에서. 훠어이훠어이. 가, 저리 가. 날 밀어내는 손짓과 돌아서서 멀어지던 등에서. 그 얘길 쓰고 싶어. 나의 밤은 너의 낮보다 길어서…. 이 겨울을 나면. 이 겨울만 나고 봄이 오면, 그때. 다른 건 그다음에 생각해.


그 겨울, 사부는 부지런히 파도를 날렸다. 철썩처얼썩. 나두… 외로워, 사부.

내 외로움은 내가 보는 걸 아무도 보지 못하고 나처럼 느끼는 사람이 그 어디에도 없다는… 이방인 같은 거였다. 죽을 듯이 사랑하면 정말로 모든 걸 함께하고 그 어떤 것도 뛰어넘을 수 있을까. 매사 삐딱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난 좀 회의적이다. 통점이나 그 강도는 사람마다 다른 데다 뭣보다 통증을 나눌 수 없는 것처럼 다른 것도 그러리라. 내 슬픔을 좋아하고 내 눈물까지 사랑한다던 노랫말도 계절을 타고 철새 따라 흩어지던 걸……. 벚꽃잎 그늘로 지던등은 심지가 되어 나를 불살랐다. 어느 여름엔가 대학 선배는 땡볕을 피해 들어간 카페에서 커피를 홀짝이며 우리 나이에 사랑은 돌봄이라며 내 눈을 봤다. 잿더미가 되어 생각한다. 어쩌면 사랑은 겪음일지도 모르겠다고. 뭐든, 피하지 않고 같이 겪는 게 사랑이라고. 얼마 전에 본 영화는 몸에서 불 냄새가 나면 좋겠다는 대사로 끝나던데, 그 말이 울리던 어두운 극장에 앉아 나는 그 봄부터 내 몸에서 진동하던 그을음에 젖어갔다. 이엔 앤스는 <외로움의 책>에서 배를 곯으면 죽는 것처럼 외로움도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며 외로움은 감정이 아닌 욕망이랬다. 그래. 살려면 먹어야 하는 것처럼 살려면, 살아 있으려면 그 또한 채워야겠지. 걸핏하면 숨고 도망치기 선수였던 나도 실은 다이앤 앤스의 말처럼 들키기를 바랐고 잡히기를 소망했는지도 몰랐다. 지금까지도.


내 손가락엔 지문이 없다.

약 부작용일 수도, 계속계속 키보드를 두드려서일지도.

내 일부인데 더는 나를 증명할 수 없는 내 열 손가락.

나의 밤은 너의 낮보다 길어서

생시를 지운 우리는 약속도 없는 꿈결에 만나 강둑을 걸었다.

어느 날은 모르는 사람들로 빼곡한 방에서 눈빛을 교환하다 붉어진 낯빛으로 나와 서로의 등을 어루만지며 밤하늘을 올려다 보기도 했지. 별똥별이 지고 있어. 꿈결에선 모든 게 가능하고 이루어지므로 나는 자꾸 자고만 싶었다. 거기서, 나는 니 주름살을 번역하고 너는 내 손가락에 지문을 새겨 넣었다.

꿈결, 우린 완벽한 한쌍이었다.


그날, 무대에선 오래 떨어져 있던 연인이 서로에게 손을 내밀고 창밖엔 진눈깨비가 내리고내리고내리고… 무대 위로는 뜨거운 박수가 쌓였다. 공연이 끝나고 나오니 취한 거리로 찬 바람이 흥청거리며 몰려다녔다. 옷을 여미고 목도리를 둘렀다. 골목을 빠져나와 종각역 12번 출구 앞 횡단보도에 서서 출구를 봤다. 짐승 아가리 같은 시커먼 입구로 찬 바람이, 휘청이는 사람들이, 마른 잎이, 찢긴 전단지가, 흔들리는 네온사인 불빛이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T.S. 엘리엇의 말처럼 우리가 시초라 부르는 건 종종 끝이고, 끝을 맺는다는 건 시초를 만드는 걸지도 몰랐다. 내 안에도 우리가 떠난 곳이 끝이자 시초일 거란 믿음이 있어서 죽음이 우리를 거기로 안내할 거란 바람 같은 상상에 종종 빠져 든다.


우리의 시원(始原).

끝이자 시초인 여기에서 쓴다.

다시,

그게 다다.


"살아있게 해 줘서 고마워요."

(영화 <서칭 포 슈가맨> 중)



인연서설

- 문병란


꽃이 꽃을 향하여 피어나듯이

사람과 사람이 서로 사랑하는 것은

그렇게 묵묵히 서로를 바라보는 일이다


물을 찾는 뿌리를 안으로 감춘 채

원망과 그리움을 불길로 건네며

너는 나의 애달픈 꽃이 되고

나는 너의 서러운 꽃이 된다


사랑은 저만치 피어있는 한송이 풀꽃

이 애틋한 몸짓

서로의 빛깔과 냄새를 나누어 가지며

가진 것 하나씩 잃어가는 일이다


각기 다른 인연에 한 끝에 서서

눈물에 젖은 정한 눈빛 하늘거리며

바람결에도 곱게 무늬지는 가슴

사랑은 서로의 눈물 속에 젖어가는 일이다


오고가는 인생길에 애틋이 피어났던

너와 나의 애달픈 연분도

가시덤불 찔레꽃으로 어우러지고

다하지 못한 그리움 사랑은 하나가 되려나


마침내 부서진 가슴 핏빛 노을로 타오르나니

이 밤도 파도는 밀려와

잠 못 드는 바닷가에 모래알로 부서지고

사랑은 서로의 가슴에 가서 고이 죽어가는 일이다



'우리 달을 바라진 마요.

우리에겐 별들이 있잖아요.'

(영화 <Now, Voyager> 중)

사진은 지난여름, 은하수가 흐르고 별똥별이 떨어진다고… 먼먼 데서 보내온 밤하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