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피 아닌 도피

삶에 작은 균열을 내는 연습

by 우주의 보배

'지금 ○○역 방향으로 가는 외선순환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수요일, 오전 6시 27분. 익숙한 안내방송이 들린다. 나와 같은 얼굴들, 나와 같은 표정들, 그리고 무표정한 채로 열차에 몸을 싣는다. 자리에 앉는 건 이제 특별한 행운처럼 느껴진다. 누군가는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누군가는 눈을 감고 하루를 준비한다. 아무 말도 없고 감정도 없다. 우리 모두 기계처럼 움직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만 느끼는 듯 착각일까.

건조한 사무실에 도착했다. 모니터와의 사투가 시작된다. 반복되는 보고와 회의, 지루한 대화들 속에서 언어와 표정은 점점 단순해지고 무뎌지고 있다. 점심은 늘 10분 만에 끝난다.

밥보다 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 나를 위한 시간. 공부를 하거나, 책을 읽거나, 이력서를 수정하거나. 그것만이 나를 붙잡아주는 유일한 끈처럼 느껴졌다.

그게 내 현실이다.

그렇게 하루가 끝나면 침대에 가만히 누운 채, 불 꺼진 천장을 멍하니 바라본다. 내일은 오늘보다 나을까? 아니, 어쩌면 별반 다르지 않겠지.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또 다음 날을 견딘다. 이게 버티는 건지, 살아내는 건지 나조차 헷갈릴 때가 있다.

우습게도 나는 단 한 번도 해외 출장을 가지 않은 해외영업 담당자다. 세상과 연결된 일을 하고 있으면서도 정작 세상과는 점점 멀어지고 있다.

‘역마살’과 ‘지살’.

사주에는 내가 가만히 있으면 안 되는 사람으로 나온다. 실제로 중국에서 대학을 다녔고 유럽에서 생활한 경험도 있다. 낯선 언어와 익숙하지 않은 환경 속에서도 나름 잘 살아왔다.

그 시절 나는 매일이 생생하게 살아 있는 시간처럼 느껴졌다. 하루 하루가 낯설었고 그래서 오히려 나답게 살아갈 수 있었다. 길을 잃는 것도, 지도를 펼치는 것도, 작은 습관 하나를 만들어가는 것까지 그 모든 순간이 나로 존재하고 있다는 증거 같았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달라졌다. 지금의 나는 자꾸 닫혀가는 느낌이다. 스스로를 잃지 않기 위해 뭐라도 해봐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환경을 바꾸면 조금 나아질까?'

그 생각으로 이직을 준비했다. 이력서를 고치고, 면접을 준비하면서 나를 표현할 수 있는 문장들을 고민했다. 하지만 나의 언어는 번번이 수정되었다.

'너무 직설적인 것 같아요. 내용을 전반적으로 좀 더 둥글게 표현하면 어떨까요?'

'이런 표현은 면접관들이 대부분 좋아하지 않아요.'

내가 살아온 시간을 담은 문장들이 타인의 기준에 맞춰 자꾸만 깎여나갔다. 진짜 내가 아닌 그들의 기대를 만족시키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걸까. 내가 나인 채로 받아들여지는 곳은 없는 걸까.

이런 고민은 일에서만 끝나지 않았다. 주변 친구들은 대부분 결혼을 했고 아이도 낳았다. 이러구러 그들의 생활은 점점 나와 다른 결을 따라 흘러간다. 그 모습을 보며 안도감과 불안을 동시에 느낀다. 세상이 어렴풋이 정해놓은 인생 계획표를 떠올려보면, 나는 ‘계획을 잘 지키지 않는 말썽쟁이’에 속할 것이다.

그런데 이 계획은 누가 정한 거지? 결혼, 임신, 출산, 내 집 마련, 은퇴…. 그 모든 단계를 따라가지 않으면 실패한 삶일까? 내가 선택하지 않은 기준에 나를 끼워 맞추는 것, 그게 더 이상 나답지 않다고 느껴진다.

그 질문 앞에서 나는 잠시 멈춘다. 그리고 생각한다. 모든 걸 내려놓을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나를 다시 바라볼 수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조용히 결심한다. 모든 걸 내려놓지 않아도 괜찮다고, 내 일상에 작은 균열을 내는 것만으로도 숨을 고르고 다시 나를 회복할 수 있다고.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마음 가장 깊은 곳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괜찮은가? 이건 정말 내가 원하는 삶인가? 그 질문은 작지만,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나는 도망치지 않는다. 멀어지는 것도 아니다. 하루를 견디기 위해 무뎌진 마음을, 스스로의 언어조차 조심해야 했던 시간을 잠시 내려두기로 한다. 그리고 내 안의 작은, 진짜 목소리에 조용히 귀 기울여 본다.

세상이 원하는 모습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나로 살아가기 위한 첫걸음을 내딛는다. 가장 나다울 수 있는 곳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