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가 생각하는 보험의 경제학
대학교를 입학하고 졸업하고 수련을 받고, 부족하지만 전문 분야라는 것도 생기고... 어느새 어른이라기에는 부끄러운 철부지 30대 중반이 되었다. 하지만 그 옛날 어른들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했던 정치, 증권, 건강 등의 이야기가 이제 낯설지 않고 제법 익숙하게 들려오는 것을 보면 철이 없어도 나이는 먹는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브런치를 시작하면서 내가 조금이라도 잘 아는 부분에 대한 지식과 일상의 생각들을 남기고자 몇 자를 끄적여 본다. 비록 별로 재미없는 이야기들이 되겠지만...
첫 번째는 보험에 관련된 이야기이다. 병원에서 진료를 하다 보면 보험회사와 관련된 서류를 작성하는 경우가 많다. 요즘은 너무나도 흔한 실비보험, 산재보험, 기타 건강보험에 관련된 진단서 등...
사실 대부분의 의사들은 보험회사를 좋아하지 않는다. 왜 싫은지는 모르겠는데 그냥 정이 잘 안 간다. 이것은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봐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아마도 주는 것 없이 부탁만 하는 곳이라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소견서와 진단서... 진료기록부등 귀찮은 문서들을 요구하는 보험회사는 별로 달가운 대상은 아니다.
물론 의사 된 입장에서 자신의 환자가 정당한 경제적 서포트를 받게 되는 것은 매우 반가운 일이다. 환자에게 좋은 것이 의사에게도 좋은 것이니까... 하지만 질병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때로는 다른 진단명을 요구하는 환자 혹은 담당 보험 설계사와는 논쟁을 할 일이 생기기도 한다.
얼마 전 한 기사에서 우리나라의 민간보험 시장의 규모가 연간 40조가 넘는다고 글을 보았다. (2012 추정자료) 우리나라 국민들이 부담하는 건강보험료(21.7조) 보다 더 많은 금액의 민간보험료가 지출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나라 의료비의 훨씬 많은 부분은 민간보험보다 국민건강보험에서 부담을 하고 있다.
간략하게 살펴보면 (급여 적용 대상 기준)
신생아 및 의료보호대상자는 전체 의료비의 100%를
암등의 중증질환자는 90%
입원환자 병원비의 80%
외래환자 병원비의 60~70%
를 건강보험에서 부담하고 있다.
건강보험제도만 놓고 보면 우리나라의 의료제도는 어느 선진국 못지않다. 하지만 국민건강보험이 병원비의 100%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고 질병으로 인한 사회 경제적 손실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만일을 대비하여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하는 경우가 생긴다.
A 씨는 2살짜리 딸을 둔 30대 가장입니다. 한 달에 200만 원의 월급을 받는 중소기업에 다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정신을 잃고 쓰러졌습니다. 진단은 뇌출혈.. 다행히 수술이 잘되어 한 달 간의 병원 치료 끝에 퇴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한두 달 쉬고 나면 직장에도 복귀할 수 있을 것 같고요. 하지만 치료비가 문제입니다. 모아둔 돈이 없는 A 씨는 3000만 원 치료비중 2400만 원을 국민건강보험에서 내주었지만 600만 원의 돈과 건강의 손실로 인한 사회경제적 비용을 지불해야만 합니다. 당장 A 씨의 가족은 먹고살 길이 막막합니다. 이런 경우 A 씨가 만원씩내는 보험료로 1000만 원을 보장받는 보험을 가입해 놓았다면 A 씨는 치료비의 나머지뿐만 아니라 최소한의 생활비를 확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위와 같은 글이 민간보험회사에서 판촉용으로 많이 사용하는 글이다. 물론 3000만 원의 치료비중에서 2400만 원을 국민건강보험에서 내주었다는 부분은 종종 빠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민간보험은 이렇듯 예기치 못한 상황에 가계가 기울어지지 않게 하는 안전장치와 같은 역할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모든 회사는 이윤을 추구하는 것이 지상과제 중의 하나이기 때문에 보험회사 역시도 손해를 보면서 장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보험사 입장에서는 적어도 A 씨와 동일한 상품을 가입한 999명의 다른 건강한 사람들이 있어야 손해를 보지 않게 된다. A 씨에게 보험금 1000만 원을 지급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보험은 설계 전에 이러한 부분들을 계산하여 손해를 보지 않게 설계를 한다. 보험사 내에서 그러한 역할을 담당하는 사람들을 계리사라고 부른다.
어떤 보험사는 사람들이 납입한 보험료를 투자하여 수익을 내서 그 돈으로 보장을 해주고 회사의 이윤도 남긴다고 설명하기도 하지만 그 이윤만으로 회사를 운영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 수익률이 보험회사만 아주 높은 것도 아니고 마찬가지로 가입자의 돈도 따로 투자를 했다면 가치가 올라갔을 것이니 이 부분은 논외로 하는 것이 합당하다.
결국 보험회사는
지급되는 보험금 + 회사 운영비 + 회사 이윤= 고객이 내는 보험료의 합
이 되도록 보험상품을 설계한다. 사실상 회사 운영비와 회사 이윤이 얼마가 되게 설정하는지 일반 고객들은 알 수가 없기 때문에 보험은 들수록 눈탱이를 맞는 것이 맞다. 그리고 그간 우리나라의 보험사들이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었다는 데에서 회사의 이윤이 적지 않았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엿볼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간보험이 만일의 상황에 가계를 지켜줄 수 있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에 보험을 가입하는 것이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다. 보험회사는 사람들의 리스크를 안고 개개인이 할 수 없는 리스크 분산을 여러 사람에게 해 줌으로써 그 가치를 주고 있다.
그러면 보험은 어떻게 가입하는 것이 현명할까?
첫 번째로 자신의 형편에 맞는 형태의 보험에 가입해야 한다. 보험금은 언제나 손해를 보는 돈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옳다. 보험회사의 최저이율, 만기환급금 등의 단어에 현혹되어 보장성과 저축성을 함께 가지는 상품에 가입하는 일은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보험은 중도 해지할 경우 은행의 적금과는 다르게 원금을 보장하지 않는다.
보험은 특별한 몇몇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보장성을 위해 가입하는 상품이다. 투자나 이자수익을 원한다면 대부분의 경우에 은행이나 차라리 주식시장으로 가는 것이 낫다. 자신의 경제적인 상황을 고려하여 여윳돈, 혹은 그 보다 훨씬 작은 돈으로 가입하는 것이 현명하다. 이렇게 보장을 해주면서 보험료가 저렴한 상품이 흔히 말하는 순수 보장형 상품들이다. (만기에 환급급이 없고 소멸되는 상품들)
물론 드물게 사람에 따라서는 종신보험, 비과세 보험, 최저이율 보장 보험 등이 더 좋은 경우도 있다. (연봉 8800만 원 이상, 상속할 재산이 많은 경우 등.. 하지만 이 집단에도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
두 번째, 과도한 크기의 보장에 가입하는 것은 옳지 않다. 간단한 예가 월 300만 원을 버는 사람이 큰 보장을 받기 위해 1억의 진단금을 주는 암보험에 가입하는 경우이다. 보통 40세 기준으로 1억 원의 보장을 받으려면 한 달에 13~5만 원 정도의 보험료를 내야 한다.(비갱신형, 20년납, 80세만기) ; 뒤에 붙은 비갱신형, 20년납, 80세 만기 이런 글들이 상당히 복잡하다. 사실 이런 것들이 내가 보험에 대해서 공부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저기서 비갱신형이라는 말을 갱신현으로 바꾸면 마치 1/5~1/10 정도의 금액으로 똑같은 보장을 받게 되는 것처럼 보이게 할 수도 있다. 이것은 추후에 또 설명하기로 하고,
300만 원의 수입을 가진 사람에게 암 관련된 질병만 보장받으면서 10만 원이 넘는 돈은 결코 작지 않다. 이러한 것은 옳지 못하다. 물론 암 보험을 많이 들었는데 초기 암이 발견되어 간단한 수술로 완치되고 치료비뿐 아니라 경제적인 이득을 본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마치 경품에 당첨된 것 같은 상황이다. 도박의 배팅과도 다를 것이 없다. 앞서 이야기 한 바와 같이 기본적으로 보험은 들수록 손해이기 때문에 만일의 상황에 가계를 유지할 정도로 설계하여 다달이 보험료 부담을 줄이는 것이 바람직하다.
글을 쓰다 보니 너무나 단정적인 어조가 많은 글이 되어 버렸지만...
이 글 또한 편협한 아집의 집합체일지도 모르지만...
요 며칠간 보험에 대해 찾아보고 객관적으로 생각해보려고 많이 노력한 산물이니,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