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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자 Aug 14. 2021

우산동

강원도 원주시 우산동과 주차장과 미래의 청계천과

요즘 우산동은 아주 바쁩니다.

터미널이 우산동에 있을 땐 저도 아주 바빴습니다. 터미널에 가느라고요. 조금만 더 여유 있게 준비하면 되는데, 터미널이 코앞에 있다는 것만 믿고 저는 매번 버스가 출발하기 10분 전 바빴습니다.


지금으로선 어떻게, 어쩌다가 터미널이 그 당시 우산동에 생겼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우산동이 그런 특수를 누렸는지요. 이런 이야기를 제일 잘 알고 잘 나눠줄 사람이 떠오릅니다. 택시 기사님이요. 지금 당장 아무 택시나 잡아타고 우산동으로 가면서 기사님께 터미널과 우산동에 대해 질문하고 싶지만, 그러지 않기로 합니다. 요즘 제게 이런 류의 의욕은 남아 있지 않고, 사람들 역시 높은 확률로 지쳐 있잖아요. 기사님을 귀찮게 하지 않기로 합니다. 


지치고, 모든 게 다 뭐 같을 때 저는 (일시적) 지역 이동을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만만한 곳은 역시 원주와 가까운 춘천, 제천 등이었죠. 

춘천을 어른들 없이 간 건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입니다. 춘천과 친한(?) 친구가 있어 방학 때 그와 명동으로 옷을 사러 갔어요. 저는 ‘와, 춘천 지하상가!! 춘천 명동!!’ 했고 친구는 ‘그것 봐’하는 식으로 의기양양했죠. 당시 원주 지하상가는 어땠더라... 고깔 모양으로 만 신문지나 달력에 고구마스틱을 담아 팔던 할머니가 제일 먼저 떠오릅니다. 고구마 말고 지하상가에서 뭘 팔긴 팔았나? 기억이 안 납니다. 그 후엔 폰 대리점들이 쭉 생겼다 사라졌고요.


시간이 흘러 중3이 된 저는 혼자 춘천에 가보기로 합니다. 이번에도 역시 목적은 옷, 명동 지하상가였죠. 친구 없는 옆 도시는 조금 쓸쓸하고 겁도 났지만 왠지 그 느낌이 싫지 않았어요. 고등학교 때는 절 겁주는 분위기의 은밀한 이태원을 좋아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계획하고 혹은 충동적으로 타지를 오간 건 터미널이 집과 가까웠던 게 컸던 것 같아요. 터미널이 단구동이나 명륜동에 있었다면 용기를 내지 못했을 거예요. 깨야할 퀘스트가 하나 더 늘어나니까요. 

아무튼 저도 우산동처럼 ‘터미널 특수’를 누렸습니다. 터미널 앞 포장마차 아저씨도 그랬을 테고, 돗자리에 손톱깎이부터 맥가이버칼까지 이것저것 다 내놓고 파는 아저씨도 그랬을 테고, 주변 식당들, 여관들도 그랬을 테죠. 그 옆 실내 풍물시장도 그랬을 테고요. 그러다 언제부턴가 터미널 주변은 점점 어두워져갔어요. 그리고 우산동은 터미널 없는 우산동이 되었습니다.

터미널 자리에 수산 시장이 들어선다 했다가 ‘청년’과 ‘문화’와 ‘융합’이 들어가는 뭔가가 들어선다 했던 것도 같고, 결국 식자재 마트와 공영 주차장이 생겼습니다. 좋다, 싫다 말할 것도 없는 선택이에요. 어쨌든 근래 저는 터미널 자리에 들어선 식자재 마트에서 단계동, 무실동, 태장동 등에서 오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당근마켓의 주 거래지이거든요. 


아, 앞에서 말씀드린 것 같이 요즘 우산동은 정말 바쁩니다. 하천을 뒤엎고 있거든요. 정식 사업명은 ‘원주시 단계천 생태하천 복원사업’입니다. 롤모델은 청계천이고요. 공사를 하느라 제가 초등학생 때부터 있었던 오래된 놀이터가 사라지고 무려 ‘임시 주차장’이 되었습니다. 우산동 주민센터 역시 주차장을 확장한다며 원래 있던 운동 기구와 지압용 돌이 깔려 있던 길과 잔디와 나무들을 치웠습니다.

놀이터 바로 앞에 살던 ‘ㄴ’이는 놀이터를 밀어버린다는 걸 알고 있었을까요. 아니면 아이는 알 필요가 없었을까요. 시소와 그네와 미끄럼틀을 밀 때 그들은 ‘ㄴ’이도 밀어냈습니다. 놀이터 벤치에 앉아 쉬던 할머니들, 삼삼오오 모여 장기를 두던 할아버지들은 알고 계셨을까요. 알 필요가 없었을까요. 새들이 놀러와 쉬던 웅장하고 푸르른 나무들을 밀 때 그들은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밀어냈습니다. 

주민센터의 운동 기구를 이용하던 사람들은, 일부러 지압용 돌이 깔린 길로 걷던 사람들은 이곳을 차들이 차지할 걸 알고 있었을까요. 친구들의 냄새를 맡으러 오던 개들은 이곳이 시시해질 걸 알고 있었을까요. 나무들은 자기들이 이렇게 한순간에 베일 걸 알고 있었을까요. 

다들 알 필요가 없던 걸까요?


우산동이 어쩌다 주차장을 이렇게 사랑하게 됐을까요. 또 주차장으로 변모할 곳이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섬뜩해집니다. 


우산동은 요즘 바쁩니다. 너무 바빠서 우산동민인 저도 덩달아 피로감을 느껴요. 원래 다니던 길이 하천 공사로 폐쇄돼 돌아가는 길에 주변 상인들의 ‘이대로는 못 살겠다’는 현수막을 봅니다. 지금의 하천 물이 천연수가 되든 똥물이 되든 결과가 어떻든 그 과정은 잔인하기만 합니다.  


이렇게 다 뭐 같을 땐 지역 이동을 해야 하는데, 이제 우산동엔 터미널이 없습니다. 

미래의 청계천과 주차장이 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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