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친구와 식당에 갔다가 50대로 추정되는 두 남자가 하는 말을 들었다.
“걔가 루주 바른 지 얼마 안 됐어.”
저건 또 무슨 말이람... 또 어떤 곳에서 여자를 두고 하는 말이람...
식당에서 나오고 싶었다. 10대 남성부터 노인까지 여자를 두고 쓰는 표현이 얼마나 많을까 생각하면 어질하다. 그 전에 토가 나오고. 어쩌면 ‘업스’도 이미 만연한 말일지 몰라. 당하는 사람만 모르고 알 사람들은 다 아는.
20대 초반에 주기적으로 성 구매를 한다는 남자 친구의 친구를, 중반에 안마방에서의 성 구매 에피소드를 들려주던 친구를 만날 때까지는 몰랐다. 20대 후반에 타 지역으로 출장만 가면 '2차'를 가자고 조른다는 남자 동료들의 이야기를 듣고 알았다. 여자를 ‘초이스’ 해 본 남자가 여자들을 어떤 시각으로 보는지를. 출장과 '2차'를 같이 다니며 돈독했던 두 중년 남자는 스튜디오 녹화를 할 때마다 VCR 속 여성들의 외모를 끊임없이 평가했다. 헤드셋을 벗어버리고 싶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다 초등학생 여자 아이의 외모를 두고 하는 말을 들었을 땐 나는 왜 겨우 이런 곳에 있나, 자괴감이 들었다. 나중에 그들 중 한 명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니, 그는 자신이 그러는 줄 몰랐다며 화들짝 놀라, 나까지 놀라고 말았다. 이어져 있었다. 여자를 고르는 남자들의 시선은 성매매에 종사하지 않는 여자들에게까지 이어져 있었다. 성 구매 경험이 있는 남자가 여자를 자신과 동등한 인격체로 대할 가능성은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가능성만큼 낮아 보였다.
가능성. 성매매는 분명 불가능해야 하는 일인데, 원주는 성매매에 있어 가능성의 땅, 기회의 땅처럼 보인다. 옛 원주역 주변의 뻔뻔하리만큼 투명한 풍경을 어떻게 묘사할 것인가.
-벽이 온통 통유리로 된 곳에 여자들이 서 있어.
-왜?
-남자들을 기다려.
-시간이 지나고 남자가 안에서 나와.
-남자는 어떤 상태야? 여자는 지금 어때?
여자가 남자를 기다리고, 받는 풍경까진 묘사할 수 있어도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그 후 여자의 상태를 그릴 수 없다는 것, 남자들이 만든 세상 앞에서 진입이 막혀버려 모든 일들이 오로지 그들 사이에서만 오르내리고 여자들은 감히 접근해서도, 안에서의 일을 궁금해해서도 안 되는 것이 오랫동안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 돼버렸다.
종종 생각했다. 여성들이 원해서 성을 파는 것이라면, 성 구매 남자들이 여성들 그 자체가 아닌 그들의 性만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서로 평등한 위치에서 성행위가 이뤄진다면, 집결지의 여성들이 감금에 가까운 생활이 아닌 안락한 환경에서 자유로운 생활을 한다면 나는 성매매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겉은 노골적으로 드러내지만 안은 꽁꽁 걸어 잠근 핑크빛 유리 집이 아닌, (언제든 신고하면 경찰이 출동해 처리가 이루어지는 등) 안전이 보장된 곳에서 성매매가 이뤄진다면 나는 성매매에 대해 아무 말 없이 지나갈 수 있을까.
전 대구여성인권센터 부소장 정박은자 활동가는 ‘자발적 vs 강제적’ 프레임은 성매매 본질을 흐리는 일이라고 했다. “자발적으로 성매매 업소로 들어가면, (그들이 당하는 게) 착취가 아닌 게 되나요?”
그는 성매매를 하지 않고도 살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미성년자들의 경우 ‘고액 알바’ 등의 문구만 보고 문을 두드렸다가, 업소가 재워주고 옷을 사주면서 만들어 낸 빚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을 시작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정 활동가의 말처럼 ‘취약한 여성들이 성매매의 타깃이 되는 구조’ 속에서 나는 말을 해야 한다. 여성들이 어떤 일을 할지 모르는 채로 업소의 문을 두드렸든, 명확히 아는 채로 두드렸든 ‘이력서를 내고 들어갔다가 자유롭게 사표를 내고 나올 수 있어야 자발적’이라고 춘천 길잡이의 집 라태랑 소장은 말한다.
시선을 내게 돌려본다. 한창 남자들과 연애를 할 땐 섹스가 일방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나는 하나도 만족스럽지 않은데 그들이 만족스러우면 그걸로 끝이었다. n번째 연애를 시작할 때 이 문제를 좀 풀어가고 싶었는데 n번째 남자는 같이 성인용품 숍을 가는 것도 머쓱해했다. 나의 모든 남자들이 그랬다. 나를 만족시키는 법을 몰랐고, 나 역시 만족시켜달라고 요구하지 못했다. 지극히 수동적이었다. 나는 왜 하필 AV의 영향을 받았을까, 왜 시작이 그래야만 했을까 후회되지만 여전히 당시 받은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하단 걸 안다. 내가 겪은 과거의 남자들도 그럴 것이라 어렵지 않게 추측한다. n번째 남자는 군대에서 선임에게 ‘일단 (여자 친구를) 모텔로 데려가고 봐라, 그럼 끝이다’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이를 머릿속에 고이 담아 둔 덕분에 언젠가 나는 그와 모텔에 도착했다. 같이 들어갔지만 다른 목적이었다. 그가 군대에서 배운 것과 달리, 내겐 알려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지만 그는 내가 이미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폭력도 착취도 없었던 그날, 나는 얼마만큼의 자발성을 갖고 있었을까.
나의 꼬마 친구가 유리창 업소를 마치 ‘시크릿 쥬쥬’의 집을 보는 것처럼 “우와! 저 집 진짜 이뻐!” 했을 때 나는 아무 반응도 하지 못했다. 아마 아이는 내가 조금 이상한 걸 눈치챘을 것이다. 시내버스를 타고 업소들을 지날 때는 괜히 폰으로 ‘포켓몬 고’를 실행시켜 아이에게 건넸다. 그건 자연스러웠을까. 언젠가는 아이에게 사실대로 말하고 싶다. 고개를 돌리거나 안 본 척해야 했던 곳들이 고개를 들어 똑바로 들여다봐야 할 곳으로 변하면 아이에게 알려주고 싶다. 저 예쁜 핑크 집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지를. 여전히 집결지가 존재하는 원주에서, 여전히 원주 시민으로서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으면서도, 지금은 말하지 못하는 걸 말하게 될 날을 기다린다.
모든 여성들이 즐거운 섹스를 하길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