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onolab Apr 12. 2017

편안하고 싶은

#43 언어의 온도

앞이 보이고 뭐든 다 알것 같은 때보다, 갑자기 예상치못한 일들이 벌어지고 하나도 모르겠다 싶은 때가 몇 배로 더 많은 것 같다.





#43 언어의 온도

- 이기주 지음 

쉬고 싶을 때 1h




흔히들 말한다. 상대가 원하는 걸 해주는 것이 사랑이라고. 하지만 그건 작은 사랑일지도 모른다. 상대가 싫어하는 걸 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큰 사랑이 아닐까. -p25




"그래, 탑이 너무 빽빽하거나 오밀조밀하면 비바람을 견디지 못하고 폭삭 내려앉아. 어디 탑만 그렇겠나. 뭐든 틈이 있어야 튼튼한 법이지. ..." -p28




하지만 어떤 말을 하느냐보다 어떻게 말하느냐가 중요하고, 어떻게 말하느냐보다 때론 어떤 말을 하지 않느냐가 더 중요한 법이다. 입을 닫는 법을 배우지 않고서는 잘 말할 수 없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가끔 내 언어의 총량에 관해 고민한다. 다언이 실언으로 가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지 않으려 한다. -p30





'그냥'이란 말은 대개 별다른 이유가 없다는 걸 의미하지만, 굳이 이유를 대지 않아도 될 만큼 충분히 소중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후자의 의미로 '그냥'이라고 입을 여는 순간 '그냥'은 정말이지 '그냥'이 아니다. -p34




순간, 교통사고 현장에서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껴안던 모습이 무성영화의 한 장면처럼 흐릿하게 눈앞에 펼쳐졌다. 난 무릎을 탁 쳤다. 그래. 할아버지가 그랬듯, 상대를 자신의 일부로 여길 수 있는지 여부가, 진실한 사랑과 유사 사랑을 구분하는 기준이 될지도 몰라. -p37




처음에 '너'를 알고 싶어 시작되지만 결국 '나'를 알게 되는 것, 어쩌면 그게 사랑인지도 모른다. -p43




"이 꽃은, 여기 이 화단에 피어 있어서 예쁜 건지도 몰라. 주변 풍경이 없다면 꽃의 아름다움이 반감될 걸세. 그러니 꺾지 말게. 책상 위에 올려놓는 꽃은 지금 보는 꽃과 다를 거야." -p49




미안함을 의미하는 'sorry'는 '아픈', '상처'라는 뜻을 지닌 'sore'에서 유래했다. 그래서일까. 진심 어린 사과에는 '널 아프게 해서 나도 아파'라는 뉘앙스가 스며 있는 듯하다.' -p55




상대에 대한 '앎'이 빠져 있는 위로는 되레 더 큰 상처를 주기도 한다. 상대의 감정을 찬찬히 느낀 다음, 슬픔을 달래 줄 따뜻한 말을 조금 느린 박자로 꺼내도 늦지 않을 거라고 본다. -p70




청년의 증언처럼, 사람 성격은 아주 사소한 데서 드러나는 법이다. 그건 감추려 해도 감출 수 없고 즉흥적으로 변조할 수도 없다. ... 본질은 다른 것과 잘 섞이지 않는다.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언젠가 의도하지 않은 순간에 엉뚱한 방식으로 드러나곤 한다. -p75




가끔은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는 내 욕망과 상처를 끄집어내 현미경 들여다보듯 꼼꼼하게 관찰해봄 직하다. 솔직히 말해, '솔직하기' 참 어렵지만 그래도 시도는 해봐야 한다. '남'을 속이면 기껏해야 벌을 받지만 '나'를 속이면 더 어둡고 무거운 형벌을 당하기 때문이다. -p94




질문만으로 현실의 문제를 일시에 해소할 수는 없다. 다만 질문은, 답을 구하는 시도만을 의미하지 않을 것이다. 정말 좋은 질문은, 무엇이 문제인지 깨닫게 한다. 그리고 문제를 인식하는 순간이야말로 문제를 해결하는 첫번째 발판인지 모른다. ... 호기심이 싹틀 때 "원래 그렇다"는 말로 억누르지 않았으면 한다. 삶의 진보는, 대개 사소한 질문에서 비롯된다. -p98




애지욕기생이란 말이 퍼뜩 떠올랐다. '사랑은, 사람을 살아가게끔 한다' 정도로 풀이할 수 있다. ... 짐작컨대 그녀는 남편에게 틈틈이 전화를 걸어 마음 깊은 곳에서 끌어올린 진심 어린 말로 사랑을 고백할 것이다. 그렇게 소중한 사람의 아픔을 어루만질 것이 분명하다. ..."당신이 있어 참 다행입니다"라고 속삭이며... - p110




꽃도 그렇지 않나. 화려하게 만개한 순간보다 적당히 반쯤 피었을 때가 훨씬 더 아름다운 경우가 있다. 절정보다 더 아름다운 건 절정으로 치닫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 지금도 나쁘지 않지만 앞으로 더 좋아질 것 같은 예감이 드는 순간 우린 살아가는 동력을 얻는다. 어쩌면 계절도, 감정도, 인연이란 것도 죄다 그러할 것이다. -p136





누구에게나 바다가 있다. 어떤 유형이 됐든, 깊고 푸른 바다가 눈앞에 펼쳐져 있을 것이다. 어떤 자세로 노를 젓고 있는지, 어떤 방식으로 건너고 있는지 살면서 한 번쯤은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한 번쯤은. -p148




이건 꽤 중요한 이야기다. 프로처럼 처리해야 하는 일을 아마추어처럼 하면 욕을 먹기 쉽고, 아마추어처럼 즐겨야 하는 일에 프로처럼 목숨을 걸다가는 정말 목숨을 잃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에 내몰릴 수도 있으니 말이다. -p160




기다림은 그런 것이다. 몸은 가만히 있더라도 마음만큼은 미래를 향해 뜀박질하는 일. 그렇게 희망이라는 재료를 통해 시간의 공백을 하나하나 메워나가는 과정이 기다림이다. 그리고 때론 그 공백을 채워야만 오는 게 있다. 기다려야만 만날 수 있는 것이 있다. -p163




우리 삶도 매한가지다. 우린 살면서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 도저히 알 수 없는 뫼비우스의 띠 같은 수수께끼와 직면한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런 문제를 단숨에 풀 수 있는 마법의 지팡이도, 효율적인 삶을 위한 마땅한 기술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에게 주어지는 과제와 과정에 충실히 임하는 수밖에 없다. 와트니처럼 말이다. -p173




'나를 아는 건' 가치 있는 일이다. 나를 제대로 알아야 세상을 균형 잡힌 눈으로 볼 수 있고 내 상처를 알아야 남의 상처도 보듬을 수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어쩌면 사랑이란 것도 나를, 내 감정을 섬세하게 느끼는 데서 시작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p176




우리를 망가뜨리지 않는 사랑은 우리를 강하게 만든다. 사랑의 가치를 부정할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p183




"하루를 내 인생에서 가장 젊은 날로 받아들이기로 했지. 그리고 다른 건 다 잊어도 아내 생일과 결혼기념일 같은 소중한 것은 잊지 않으려 하네..." -p199




'앎'은 '퇴적'과 '침식'을 동시에 당한다. 살아가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지식이 있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깎이고 떨어져 나가는 지식도 많다. 공부는 끝이 없다는 뻔한 말이 새삼 무겁게 다가오는 경우도 많다. 여전히 모르는 게 많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 특히 그렇다. -p202





하지만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것을 무작정 부여잡기 위해 애쓸 때보다, '한때 곁에 머문 것'의 가치를 재평가하고 그것을 되찾을 때 우린 더 큰 보람을 느끼고 더 오랜 기간 삶의 풍요를 만끽한다. 인생의 목적을 다시금 확인한다. -p227




비우는 행위는 뭔가를 덜어내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비움은 자신을 내려놓은 것이며 자기 자리를 누군가에게 내어 주는 것이다. 여백이 있는 공간을 만들면 신기하게도 그 빈 공간을 다른 무언가가 채우기 마련이다. 반대로 무언가를 가득 채우려 하다가 아무것도 채우지 못하는 경우를, 나는 정말이지 수도 없이 목격했다. -p238




종종 공백이란 게 필요하다. 정말 이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 무언가 소중한 걸 잊고 산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을 때 우린 마침표 대신 쉼표를 찍어야 한다. 공백을 갖는다는 건 스스로 멈출 수 있다는 걸 의미한다. 제 힘으로 멈출 수 있는 사람이라면 홀로 나아가는 것도 가능하리라. 그러니 가끔은 멈춰야 한다. 억지로 끌려가는 삶이 힘겨울수록, 누군가에게 얹혀가는 삶이 버거울수록 우린 더욱 그래야 하는지 모른다. -p248




그러니 가끔은 한 번도 던져보지 않은 물음을 스스로 내던지는 방식으로 내면의 민낯을 살펴야 한다. '나'를 향한 질문이 매번 삶의 해법을 제공하지는 않지만, 최소한 삶의 후회를 줄이는 데는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살다보니 그런 듯하다. -p259




당당하게 교무실을 나서면서 나는 이런 생각을 떠올렸다. 사람 보는 '눈'이란 건 상대의 단점을 들추는 능력이 아니라 장점을 발견하는 능력이라는 것과, 가능성이란 단어가 종종 믿음의 동의어로 쓰인다는 것을 -p283




'나'를 헤아리는 일에도 서툴다. ... 나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살다 보면 싸워야 할 대상이 차고 넘치는데 굳이 '나'를 향해 칼끝을 겨눌 필요가 있을까 싶다. 자신과의 싸움보다 자신과 잘 지내는 게 훨씬 더 중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p292




다만 꽃향기가 아무리 진하다고 한들 그윽한 사람 향기에 비할 순 없다. 깊이 있는 사람은 묵직한 향기를 남긴다. 가까이 있을 때는 모른다. 향기의 주인이 곁을 떠날 즈음 그 사람만의 향기, 인향이 밀려온다. 사람 향기는 그리움과 같아서 만 리를 가고도 남는다. 그래서 인향만리라 한다. -p294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고 느낄 때 우린 행복하다...."-p306






















매거진의 이전글 아늑하고 마음에 들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