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전 내 곁을 떠나간 상재가 꿈속에서 나왔다
하루1000자
아주 오래 전 내 곁을 떠나간 상재가 꿈속에서 나왔다. 그는 아무것도 없는 바다 한 가운데에서 서 있었다. 바다는 고요했다. 그의 모습이 선명하게 수면에 비춰졌다. 그는 예전처럼 초점 없는 얼굴로 어딘가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가 바라보고 있는 방향에서 가장 먼 거리에서 무엇인가 다가온다. 조금씩 형체가 들어난 그것은 앞뒤로 발이 하나 씩 없는 양이었다. 양은 장애가 있었지만 전혀 불편하지 않다는 듯 편안한 걸음으로 그에게 다가갔다. 상재는 양의 걸음에 맞춰서 호흡을 뱉었다. 아주 느린 호흡으로 폐의 움직임조차 느껴지지 않을 만큼 천천히 숨을 내뱉었다. 상재가 다시 정상적인 호흡으로 돌아왔을 때, 양이 그의 앞에 멈춰서 고개를 들고 그를 바라봤다. 상재는 자리에 앉아 양과 시선을 맞췄다. 상재는 양을 껴안았다. 양은 얼굴을 그의 어깨에 편안하게 기댄다. 진정시키듯 곱슬곱슬한 털을 부드럽게 어루만지고 양의 젖을 짰다. 비릿한 단내가 나는 것 같다. 누리끼리한 양유가 그의 손을 타고 흘러 바다에 떨어진다. 수면 아래로 물고기들이 양유를 먹기 위해 모여든다. 정신없이 모여드는 물고기에 파동이 정신없이 일렁인다. 그럼에도 그들은 여전히 편안한 표정이었다.
조금씩 양유의 양이 줄어들었다. 한두 방울 씩 간신히 짜내고 나서야 양유가 더 이상 나오지 않게 되었다. 물고기는 다시 수면 아래로 사라진다. 양은 그의 어깨에서 얼굴을 빼낸다. 그는 길쭉한 양의 콧등을 양유가 뭍은 손으로 어루만지고 볼에 얼굴을 비빈다. 부드러운 감촉이 좋은지 그는 옅은 미소를 띤다. 이윽고 양의 미간을 엄지로 조금 쓰다듬는다. 둘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본다. 상재는 왼팔을 주머니 속에 집어넣어 무언가를 꺼낸다. ‘단도’였다. 그는 양의 턱을 살짝 들어, 정맥을 찾는다. 살짝 그어 위치를 잡는다. 양은 소리 내지 않는다. 한 순간, 깊이 찔렀다. 양은 얕은 신음을 뱉는다. 상재는 칼을 속안에서 살짝 비틀어 빼낸다. 피가 순간적으로 높게 솟아오른다. 골골골 소리를 내며 피는 바다 속으로 스며든다. 이번엔 물고기들이 모이지 않는다. 주변을 서성이며 둘을 바라볼 뿐이었다. 상재는 옅게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