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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문규 May 29. 2022

천상병, 이제는 당신을 이해할 수 있게 됐어요.

에세이

  5년 전 군대에서 병사로 있을 때 천상병의 귀천 시집을 매일 같이 읽었다. 초록빛을 닮은 그의 시는 때로는 늦여름 같고 노을 같았다. 때로는 이해되지 않는 문장이 담긴 시집을 닳도록 읽고 또 읽었다.
앞부분에 그의 일대기가 적혀 있었는데, 매일 걷고 술과 담배를 좋아했다고 쓰여있었다. 당시에는 왜 그렇게 까지 해서 하루를 낭비했을까 싶었다.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지금의 나처럼 마음이 외로워서 채워지지 않는 마음에 그랬던 것 같다. 걷는 행위를 통해 간간히 부는 바람에 갑갑함을 없애고 싶었다고 생각한다. 곁에 그를 챙겨주는 사람이 많았지만, 가난과 슬픔까지는 채워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매일 걸었던 것 같다.
  마음에는 길이 없어서 길을 걸었을 것이다. 나의 슬픔 속에는 과거에 갇혀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이유가 있었던 것 같은데 이제는 이유 없이 슬프고 공허하기만 하다. 누군가에 연락하고 잘 자라는 내가 해줄 수 있는 최대의 배려 속에도 빈 마음이 가득하다.
  약으로 견딜 수 있는 시간은 고작 2시간 남짓이라 남은 시간에는 코가 시큼하고 속이 쓰리도록 담배를 피우고 걷고 있다. 언젠가 이 슬픔이 사라지는 날이 오면 그처럼 짧은 시간 속에서 편하게 귀천할 수 있으면 좋겠다. 오늘은 어디로 걸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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