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등학교 6년.
누군가에게는 평생의 친구를 사귀고
웃음꽃 피웠던 시절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는,
매일이 두렵고, 긴장되고,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시간이었다.
나는 왕따였다.
아주 조용한 방식으로.
누구도 대놓고 괴롭히지는 않았지만,
모두가 날 피했고,
소속된 단체에서 나만 빠졌고,
혼자 밥을 먹거나, 혼자 걸어야 하는 날이 많았다.
괴로워서 자해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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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을 지나며 내가 배운 건
세상이 생각보다 잔인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한 사람의 따뜻함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도
그 시절을 통해 배웠다.
그 한 사람은 엄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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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 내내
속상하다고 털어놓지도 못하고
눈물 삼킨 채 방에 틀어박혀 있을 때,
엄마는 묻지 않고 옆에 와 앉아 있었다.
어깨를 다독이고, 밥을 차려주고,
내 말 한 마디 없이도
“엄마는 네 편이야”라는 눈빛을 늘 보내주었다.
지금 생각하면,
엄마를 통해 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처음 배웠다.
말없이 지켜봐주는 사랑,
조건 없이 함께하는 사랑,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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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상하게도
그 상처의 시간은
나를 더 깊은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다.
소외된 사람을 그냥 지나치지 않게 되었고,
누군가 마음을 열면 더 귀하게 여기게 되었고,
조용히 곁에 있는 사람의 무게를 알게 되었다.
내가 아팠기 때문에
다른 이의 고통에 더 민감해졌다.
내가 외로웠기 때문에
누군가의 ‘혼자’라는 말이 남의 일 같지 않았다.
그 상처들은
내게 사람을 향한 연민과 조심스러움을 주었고,
세상을 대하는 시선을 더 부드럽고 느리게 바꾸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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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시간이 흘러
나는 그 상처 위에 감사라는 단어를 얹게 되었다.
그 아픈 시간이 있었기에
나는 진심을 귀하게 여길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좋은 사람이 내게 다가올 때
그 소중함을 알게 되었고,
누군가 손을 내밀어줄 때
그 손을 놓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나를 귀하게 대하지 않는 사람에게
이제는 거리를 둘 줄도 알게 되었다.
그건 나를 귀하게 여기는 법을 배운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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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
그 시절을 탓하지 않는다.
그 시절이 있었기에
나는 더 깊어졌고,
더 단단해졌으며,
더 하나님을 찾게 되었다.
기도 없이 살 수 없는 삶,
사람을 가볍게 여기지 않는 시선,
사소한 것에도 감사할 줄 아는 마음,
이 모든 건 상처의 산물이고
회복의 열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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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는 미니멀라이프를 실천하고 있다.
화려한 물건보다
의미 있는 하루를 소중히 여기고,
많은 인맥보다
깊은 관계 한둘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하게 됐다.
상처가 내게 알려준 건
삶은 복잡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만 품고 살아도
충분히 따뜻하고 충만하다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 버린다.
나를 힘들게 했던 사람에 대한 원망도,
무조건 잘 보여야 한다는 압박도,
‘나는 부족하다’는 자기비하도.
이제는 비워야 채워지는 걸 안다.
비울수록
하나님의 사랑이,
사람의 진심이,
그리고 나 자신의 귀함이
내 안에서 더 또렷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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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팠다.
하지만 그 덕분에
나는 더 하나님께 가까워졌다.
더 진짜 나답게 살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안다.
상처는 지워지지 않지만,
그 위에 하나님의 은혜는 덮인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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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겪은 상처들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 수 있다면
그것 또한 의미 있는 고통이었을 거라 믿는다.
나는 오늘도 단순하게,
그리고 깊게 살아가고 있다.
사랑을 배우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나를 귀하게 여기며 살아간다.
그리고 그게 바로
내가 꿈꾸던
‘진짜 나답게, 하나님 안에서 사는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