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팠다.
그 사실을 이제는 부끄럽게 말하지 않는다.
중고등학교 시절, 이유도 모른 채 조용히 따돌림을 당했다.
큰 소리를 내며 괴롭힘을 당하지 않았기에
더 아무도 몰랐다.
눈치로 살아야 했고,
늘 나를 감췄다.
사람들과 무리에 섞이기보다
‘튀지 않는’ 내가 되길 바랐다.
그게 안전하다고 믿었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조용한 괴롭힘’은
오히려 내 안에 더 큰 고립을 만들었다.
사람을 피하게 되었고,
말하는 것이 두려워졌고,
무엇보다 나 자신을 싫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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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가 나를 어떻게 바꾸었는가
그 시간이 내게 남긴 건 고통뿐만이 아니었다.
그보다 더 깊은 변화를 남겼다.
나는 소외된 사람의 마음을 눈으로 먼저 알아보는 사람이 되었다.
누군가 혼자 있는 걸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게 됐고,
누군가 무리에서 조금 비켜나 있으면
내가 먼저 말을 걸게 되었다.
상처받은 사람은
상처받은 사람을 알아본다.
그리고 진심을 귀하게 여기게 되었다.
누군가가 나에게 진심으로 다가올 때
나는 쉽게 눈물이 나왔다.
그 마음이 얼마나 귀한지 아니까,
그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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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상처는
나를 사람을 조심스레 대하는 사람으로 바꾸었고,
한 걸음 느리게 살도록 만들었으며,
무엇보다 하나님을 더 절실히 찾게 했다.
외로움 속에서
사람은 하나님을 찾는다.
아무도 모를 때
하나님은 아셨다.
그게 내 유일한 위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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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지켜주는 미니멀 라이프 루틴
시간이 지나
가정이 생기고, 아이가 생기고,
나도 어른이 되었다.
그런데 어른이 되어서도
세상은 여전히 시끄럽고,
관계는 복잡했고,
마음은 쉽게 닳았다.
그래서 나는
단순하게 살기로 마음먹었다.
많은 물건보다
필요한 것만 두고 살기.
사람도, 관계도, 일도
‘진짜’만 남기기.
내 하루를 소중하게 여길 수 있을 만큼만 채우고,
감당할 수 없는 건 내려놓기.
이 미니멀한 삶은
내 마음을 정리해주었고,
더 이상 남과 비교하지 않게 해주었고,
무엇보다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일 수 있는 여백을 만들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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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도 내 삶에 질문한다.
• 오늘도 내가 버틸 수 있는 속도로 살았는가?
• 오늘도 하나님의 뜻을 기억하며 말했는가?
• 오늘도 내 아이에게 진심으로 대했는가?
이 질문들이
나의 루틴이 되었다.
그리고 그 루틴은 나를 다시 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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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더 가까이 만난 순간들
가장 하나님을 가까이 만났던 순간은
세상에 기대할 것이 없다고 느껴졌을 때였다.
사람도, 일도, 계획도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나는 비로소 하나님께 무릎 꿇을 수 있었다.
“왜 나만 이래요?“가 아니라
“하나님, 제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로
기도의 언어가 바뀌었을 때
나는 그분의 음성을 조용히 듣기 시작했다.
그리고 하나님은
내가 걸어온 그 아픈 시간조차
그분의 계획 안에 있었음을 보여주셨다.
사람들이 나를 외면했던 그 교실,
혼자 밥 먹던 그 구석 자리,
그곳에도 하나님은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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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가 원하는 삶은
화려하지 않다.
하지만 그 안에는
사람에 대한 깊은 애정,
하나님에 대한 절대 신뢰,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한 회복된 시선이 담겨 있다.
나는 이제
나를 귀하게 여긴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존재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 한다.
그리고 내가 받은 그 사랑으로
아이를 품고,
남편을 이해하고,
나의 하루를 더 단단하게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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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도록 나답게, 믿음으로
상처는 지워지지 않지만
그 자리에 피어난 변화는
지워지지 않는다.
나는 이제 상처를 미워하지 않는다.
그 상처가 내게 사람을 더 깊이 사랑하는 법,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는 길,
단순하고 고요하게 사는 지혜를 주었기 때문이다.
오늘도 나는
사랑하며 쓰고,
믿음으로 살고,
버틸 수 있는 만큼만 애쓰며 살아간다.
그리고 그것이
나답고,
복된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