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출근길에 유난히 발걸음이 무거웠다.
아이들이 늦잠을 자서 허둥지둥 밥을 먹이고,
부은 눈으로 어린이집 가방을 챙기고,
급하게 머리를 묶고 출근길에 나선 그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아직도 이렇게 살고 있을까.”
회사에선 여전히 하기 싫은 업무가 기다리고 있고,
가슴 깊이선 이미 오래전에 식은 열정의 잔불이
겨우겨우 내 하루를 태우고 있다.
그런데도 회사를 그만두지 못한다.
이 급여가 아니면 당장 생활이 흔들릴 테고,
남편 월급만으론 도저히 버틸 수 없기에
나는 오늘도 회사를 향해 걷는다.
**
하지만… 정말 그만두지 못하면,
쉬어가는 것조차 안 되는 걸까?
일을 그만두지 않아도,
하루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날이 있어도
괜찮지 않을까?
엄마도, 직장인도, 아내도 아닌,
그냥 ‘나’로 존재하는 하루.
세상에 아무런 성과를 남기지 않아도,
누군가에게 웃음을 주지 않아도,
지금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지 않아도 되는 하루.
그 하루가 내게 필요하다는 걸,
나는 너무 늦게 알아차렸다.
**
나는 쉬는 법을 몰랐다.
늘 해야 할 일을 먼저 떠올렸고,
쉴 때조차도 ‘무언가 생산적인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드라마를 보다 말고 빨래를 널고,
커피를 마시다 말고 장볼 목록을 작성했다.
그러다 보니
나는 늘 깨어 있지만 쉬지 못했고,
늘 움직이지만 도착하는 곳은 없었다.
그래서 오늘,
퇴근 후 아주 작은 시도를 해보았다.
아이들 잠든 밤,
불도 끄지 않고
소파에 기대어 조용히 앉아만 있었다.
핸드폰도 내려놓고,
누구에게도 연락하지 않고,
그저 내가 나를 안아주는 마음으로.
**
그 몇 분의 정적이 그렇게 따뜻할 줄은 몰랐다.
그 시간이 그렇게 나를 위로할 줄도.
그래서 오늘은 일기 말미에
스스로에게 이런 말을 남긴다.
회사를 그만두지 못해도 괜찮아.
다만, 너무 오래 타버리진 말고,
가끔은 불을 끄고 쉬어가도 괜찮아.
너는 ‘무언가’가 아니라, ‘누군가’니까.
존재만으로도 괜찮은 사람이니까.
내일 아침이 오면 다시 분주한 하루가 시작되겠지.
하지만 오늘 밤만큼은
내가 나를 안아줄 수 있어서,
조금은 괜찮아진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