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를 아둥바둥 버티며 살다가 문득,
“나는 얼마나 더 살아야 하지?”
그런 질문이 올라왔다.
그러다 곧, “죽는다는 건 뭘까?”
“어떻게 죽고 싶을까?”
“지금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나?”
끝에서부터 현재를 되짚게 된다.
어릴 땐 죽음이 너무 멀게 느껴졌고,
젊을 땐 죽을 시간 없이 바쁘게만 살았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몸이 힘들고,
하루하루가 반복되다 보니
삶보다 죽음이 더 가까이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다.
죽음을 받아들인다는 건
‘아, 나는 유한하구나’
‘언젠가는 이 시간도 끝나겠구나’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인식은
‘그러면 지금 내가 하는 말,
만나는 사람,
먹는 밥 한 끼,
품에 안은 아이 한 번…’
그 모든 것이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순간을 만든다.
죽음을 떠올릴수록,
나는 더 깊이 살고 싶어진다.
무언가를 이루지 않아도,
나답게 살고 싶고,
사랑하고, 나누고, 용서하고 싶다.
죽음을 받아들인다는 건,
지금을 단단히 붙잡는 자세이다.
나의 삶이 늘 정답일 수는 없어도,
그 시간이 진심이었다면,
그 시간 안에 사랑이 있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성경에 이렇게 쓰여 있다.
“우리의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시편 90:12)
죽음을 의식하며 사는 삶이야말로
진짜 지혜를 품은 삶일지도 모르겠다.
오늘도,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사랑과 수고를 남기고,
밤이 오면 잘 쉬고,
내일은 또 내일의 양식을 기대하면서.
죽음을 받아들이며,
나는 오늘을 더 살아가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