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한 푼을 아끼기 위해 머리를 굴리고
남은 반찬을 조합해 밥상을 차렸다.
어느새 익숙해진 계산기 두드림.
냉장고 문을 열 때마다, 머릿속은 늘 숫자로 분주하다.
냉동실에 있는 닭가슴살, 계란, 시금치…
어떻게 조합하면 며칠 더 장 보지 않아도 될까.
나 하나 안 먹으면, 아이 간식 한 번은 더 살 수 있겠지.
요즘 가장 자주 드는 질문은 이것이다.
“적게 벌어도 단단하게 사는 삶은 정말 가능한가?”
나는 부자가 아니다.
그렇다고 완전히 가난하다고 말하기도 애매한,
어디쯤인가에 머물러 있는 사람.
마치 구명보트처럼
가라앉지는 않지만,
결코 편안하지도 않은 상태로
매일매일을 떠다니고 있다.
돈이 없다는 건 단순히 '소유하지 못함'의 문제가 아니다.
선택지가 줄어든다는 뜻이고,
계속해서 '포기하고 참아야 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내가 입고 싶은 옷,
가고 싶은 여행,
아이가 먹고 싶어 하는 디저트 하나조차
몇 번을 계산해보고 나서야 겨우 손에 쥐게 되는 삶.
그런데 문득 생각했다.
‘이렇게만 살아도 되는 걸까?’
나는 지금 나 자신을 너무 자주 뒤로 미루고 있다.
아이를 위해, 가족을 위해, 미래를 위해.
하지만 나는 지금,
‘오늘의 나’는 정말 단단한 걸까?
어떤 순간에도 무너지지 않을 자신이 있을까?
그래서 ‘단단한 삶’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많이 벌지 않아도,
많이 갖지 않아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삶.
타인의 기준에 휘둘리지 않고,
내 속도를 지키며
묵묵히 걸어갈 수 있는 그런 삶.
어쩌면, 단단함은 숫자보다 태도에서 시작되는 게 아닐까.
돈이 많아서 단단한 것이 아니라,
적은 돈 속에서도 내 중심을 지켜낼 수 있는 마음.
필요 이상으로 소비하지 않아도
부족함을 핑계로 스스로를 비하하지 않고,
가진 것을 누리되,
없는 것에 무너지지 않는 그런 태도 말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작은 것에 만족하려 애쓴다.
반찬 하나로 한 끼를 채운 우리 가족의 웃음,
마실 나간 골목에서 아이가 뛰며 웃는 모습,
밤에 쓴 일기 한 줄이 나에게 위로가 되어주는 순간.
그런 순간들이 모여
적게 벌어도 단단하게 사는 삶이
결코 불가능하지는 않다고
내게 속삭여 준다.
“많이 갖지 않아도 괜찮아.”
“남들과 비교하지 않아도 괜찮아.”
“지금 이 삶을 내가 주체적으로 선택하고 있다면,
그건 이미 단단한 삶이야.”
물론, 가끔은 흔들린다.
모자란 잔고를 보고 한숨짓고,
다른 집들보다 더 못해준 것 같아 속상하고,
내가 가난한 엄마처럼 느껴져 마음이 쓰릴 때도 있다.
그럴 땐, 아이들이 웃는 사진을 본다.
그리고 이렇게 속삭인다.
“그래도, 지금 우리 꽤 괜찮게 살고 있어.”
단단함이란,
넘치지 않아도 무너지지 않는 삶이니까.
크게 성공하지 않아도,
자존감을 지킬 수 있다면 충분하니까.
오늘 하루도 그렇게 나를 다잡는다.
적게 벌어도, 나는 단단하게 살기로 한다.
내게 주어진 삶의 무게를 견디면서도,
조금씩 단단해지고 있다고
믿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