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종종 무던하다는 말을 듣습니다. 원래부터 그렇지는 않았어요. 외려 감수성이 풍부하다는 평을 많이 들었죠. 그런데 어린 시절의 저는 그런 표현이 싫었습니다. ‘남자가 예민한 감수성을 가졌다’는 말은 어딘가 ‘결핍’처럼 들렸으니까요.
그게 결함이 아닌 특성이라는 걸 깨닫는 데에는 시간이 제법 걸렸습니다. 특히 글을 다루는 직업에서는요.
세상살이에 어느 정도 단련된 탓일까요. 옛 감정의 섬세함을 되짚는 것조차 버거워졌습니다. 그럼에도 세상풍파에 대한 무뎌짐조차도 익숙해질 냥이면, 저는 주저 없이 남도의 잊혀진 왕국들을 찾아갑니다.
들꽃이 흐드러지게 핀 옛 절터에서는 잠들었던 박동이 다시 요동치고, 물안개가 어린 왕릉에서는 우수의 감촉이 새롭게 돋아나거든요.
제가 백제와 처음 마주한 것은 고등학교 입학을 앞둔 어느 겨울날이었습니다. 은사님을 따라나선 첫 답사에서 부여 정림사터에 있는 오층석탑을 방문했었습니다.
노을빛이 어린 석탑 앞에서 느꼈던 감정이 경건함이었는지, 사춘기 시절의 감수성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1400년의 세월을 묵묵히 견딘 돌탑을 바라볼 때 마음 깊이 울렁이던 감동의 파장만은 지금도 제법 선명히 남아 있습니다.
답사는 제게 소박하지만 중요한 일상이 되었습니다. 특히 공주와 부여의 유적을 거닐며, 아름다움을 찾아 저만의 미감으로 구성해 보는 일은 언제나 강렬한 위로가 되었습니다.
답사는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제가 터득한 치유의 한 수단이었죠. 위로조차 세상의 기준에 따라 규격화된 세계에서는 더욱 그랬습니다.
여느 때처럼 마감에 쫓기던 어느 날 오후, 백제사 전체를 관통하는 남행을 떠나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봄날 임진강에서 시작해 한강과 금강을 거쳐, 여름의 공주와 가을날 부여, 그리고 겨울날 익산으로 향하는 여정입니다.
백제사에는 늘 패망의 역사라는 꼬리표가 붙었습니다. 저 또한 그 시선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지만, 그보다는 ‘치유의 심상’을 먼저 떠올립니다.
조용히 마주할 때만 닿을 수 있는 아름다움과 위안, 그것이야말로 힘이 지배하던 패도의 시대 속에서도 자신들의 이상을 동아시아 문화의 저변에 깊게 새긴 백제의 저력일 테지요.
그렇게 그들의 발자취에 귀 기울이면, 백제가 남긴 흔적이 멸망이 아닌 초극(超克)의 기록이고, 패배가 아닌 개척의 서사임을 알게 됩니다.
그러니 이 글은 단순히 백제사에 대한 연민이 아닌, 그들처럼 자신만의 이상을 지켜내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건네는 위로의 메시지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