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기사가 내려 준 곳은 우제브노 박물관 앞이었다. 사실, 이 고딕한 건축물을 예쁘다고만 생각했지 박물관일 줄은 상상도 못했다. (검색을 해보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택시기사는 금각교로 가는 길이 어디인지, 단서 하나 조차 남기지 않은 채 벌써 떠나버렸다. 뭐, 택시의 본분을 다 해줬기 때문에 서운하지는 않았다. 전망대가 어디 숨어있어 봤자지. 바로 앞의 동산을 올라가면 나오지 않을까 싶다.
철조망을 낀 어두운 길을 지나고 나니 사진으로만 보던 독수리 전망대의 야경이 펼쳐졌다. 금각만을 가로지르는 분위기 있는 주황색 조명이 깔린 커다란 금각교가 보이고, 뒤로는 블라디보스토크 시내의 야경이 이어져 있었다. 여러 소셜커머스에 올라오던 블라디보스토크 난간 인증샷을 찍을 수 있는 장소는 출입이 금지되어 있었다. 금지 푯말만 없었다면 당장이라도 넘어가서 카메라의 셔터를 눌렀을 텐데, 러시아어로만 쓰여 있었다면 모른 척 담장을 넘어갔을 텐데… 그러기엔 너무도 친절하게 한국말로 진입금지라고 쓰여 있었다.
나는 어딘가에 앉아 야경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가라앉는다. 그리고 눈 앞에 넓게 펼쳐진 예쁜 야경을 지그시 응시하면서 눈에 담으려고 노력한다. 멍하니 야경을 바라보고 있으면, 늦은 밤 도시의 주황빛과 노랑빛의 아련한 분위기에 젖어든다. 신선한 밤공기는 가슴 깊이 묻혀 시들어 메마르기 직전이었던 감성을 되살아나게 한다. 아무 생각도 들지 않지만 머리가 깨어나는 느낌이다. 이렇게 은은한 불빛들을 보고 있노라면 매번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 온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해가 떨어진 뒤, 어둠이 내려앉았을 때 펼쳐지는 아름다운 도시들의 불빛을 눈에 담고 싶다.
아름다운 야경의 모습이지만, 웃긴 모습도 찾아볼 수 있다. 어제 비슷한 비행기를 타고 와 공항에서 얼굴을 지나친 대부분의 한국인 여행객들을 이곳에서 다시 볼 수 있었다. 어제 게스트하우스에서 새벽을 함께 달렸던 여행가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영원히 헤어지는 듯이 서로의 여행을 응원하며 헤어지던 점심시간의 작별인사가 무색하게, 12시간이 채 지나지 않은 재회였다. 하지만 또 신기하고 좋다며 하루 종일 무슨 여행을 했는지 떠들기 시작했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블라디보스토크에는 생각보다 할 수 있는 것이 많았다. 적어도 5일간의 시간은 있어야 블라디보스토크의 모든 것을 천천히 맛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루스키 섬, 서커스 공연, 허스키 썰매와 공연이 펼쳐지는 분위기 있는 음식점까지. 1박 2일의 일정이 너무 아쉬웠다. 다음에는 오직 블라디보스토크만을 위한 여행을 올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