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컸네”

by 혁꾸

큰다는 건 뭘까.


어릴 적에 “많이 컸네”라는 말을 들을 때면, 나는 내가 신체적으로 많이 자랐구나 싶었다. 학창 시절을 보내며 한층 성숙해졌을 때 듣게 되는 그 말에는 어느 정도 성숙해졌다는 의미가 묻어났다. 성인이 되고 성숙해졌다는 의미가 짙어진 “많이 컸네”라는 말이 익숙해질 때 즈음 “많이 컸네”라는 말을 듣게 되니. 다시 한번 의미의 변화가 느껴졌다. 성숙함으로 가득 찼던 그 말의 의미에는 경제력이 묻어나기 시작했다.


분명 나는 어느 방면으로든 성장하는 중이다. 하지만 그건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느껴졌다. 마치 학창 시절 지루한 수업시간에 수 없이 올려다보는 교실의 시계 같다. 그새를 참지 못하고 올려다본 교실의 시계는 5분이 채 흐르지 않았었지만, 시계를 보는 것도 지쳐서 멍하니 수업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수업을 마치는 종이 울리기 5분도 채 남지 않았던 것처럼, 나는 어느새 이만큼이나 많이 달력을 넘겨왔었다. 그러고 보니 어느새 올해도 반이 지나간 것처럼 말이다.


20대 후반에 들어선 뒤, 차가 생겼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생겨버린 자가용이지만, 아주 만족스러웠다. 새 차가 아닌 다른 사람의 손 때가 묻은 중고차 한 대지만 사회 초년생의 마음을 부풀리기에는 차고 넘쳤다. 짧았지만 고단했던 인턴 생활을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물론 내 지갑은 한없이 가벼워졌지만 말이다. 일을 마치고 땀에 젖었다 마른 옷이 찝찝했지만,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와 드라이브를 나섰다. 차가 없어 가기 부담스러웠던 서울 근교의 카페가 이제는 하나도 부담스럽지 않았다. 가는 내내 소소한 이야기가 오가고, 커피 잔 뒤로 보이는 강의 야경에는 서로의 근황에 대한 소소한 재미들이 반짝였다. 그렇게 한껏 수다를 떨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친구가 입을 열었다.


“네가 차도 다 사고, 우리가 벌써 이렇게 됐네”

나는 그 말이 참 낯설지가 않았다.


몇 년 전, 취업과는 거리가 멀었던 날에 우리는 렌터카를 빌려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그때도 친구는 말했었다.


“네가 운전도 다 하고, 우리가 벌써 이렇게 됐네”

그리고 그 때나 지금이나 이어지는 대화 내용은 비슷했다.


“와, 우리가 벌써 이십 대 중반이라니”

“와, 우리가 벌써 이십 대 후반이라니”


그리고 우리는 지나간 그때의 기억들을 다시금 꺼내보며 그날들을 추억했다. 이십 대를 흘려보내고 삼십 대가 찾아와도, 세월의 무게에 볼살이 무거워지는 날이 와도 아마 우리는 비슷한 대화를 반복할 것만 같다.


또 언제쯤에야 나는 다시 “많이 컸네”라는 말을 듣게 될까. 그 순간까지 또 얼마나 반짝이는 재미들이 까만 밤하늘을 수놓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조금씩 커지면 커질수록, 밤하늘에는 선명한 별들이 더욱더 빼곡해질 거란 것만은 확신할 수 있을 것 같다.


덧 없이 흘러가는 시간은, 더없이 행복했던 기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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