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 않아도, 아시나요?

by 혁꾸

과연 말하지 않으면 얼마나 알까?


정말 친한 사이가 있다. 말하지 않아도 아는 그런 사이다. 말을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이유는 평소에 봐왔던 그의 표정이나 말투에 묻어나는 기분이나, 예상 가능한 행동들, 기본적인 행동 패턴들 덕분이다. 그런 정보들 덕분에, 지금 그가 기분이 좋은지, 짜증이 나있는지, 행복한지, 불행한지, 슬픈지, 나와의 대화를 계속 이어나가고 싶은지, 대화 중 신경이 쓰이는 이외의 것들이 있는지 등 여러 가지 방면으로 말하지 않아도 아는 것들이 있다. 물론 어느 정도 눈치가 있다는 가정하에. 우리는 과연, 상대방이 느끼는 감정을 말로 표현하지 않는다면, 어느 정도 감정의 깊은 곳까지 닿을 수 있을까?


사실 말하지 않아도 아는 것의 정도는, 상대방과의 친밀도, 유대관계에 따라 다르다. 물론, 아무리 친한 관계일지라도 상대방의 깊은 감정의 숲을 마음대로 파헤쳐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서로의 유대관계에 따라 그 깊이는 확연히 다르기에, 상대방의 감정의 숲을 파헤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들이 있으리라. 가까운 사이의 감정의 숲은, 낮게 깔려서 숲의 너머가 보이는 작은 갈대숲일 테고, 거리가 먼 사이의 감정의 숲일수록 마치 아마존의 열대우림처럼 그 너머를 볼 수 없고, 그 깊이를 알 수 없을 것일 테니까.


어릴 적 한창 사춘기를 겪을 때였다. 세상에서 가장 가깝고, 온전히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은 부모님이라고 배웠을 적, 분명 그 배움은 틀린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질풍노도를 겪는 시기에, 어머님은 내 마음을 잘 몰라주셨다. 확실히 그건 아시면서도 모른척하시는 어머니의 마음은 아니었을 것이다. 한창 신경질을 부리고, 뒤늦게 서러웠던 마음을 말하고 나서야 어머니는 그랬구나 하시며 등을 토닥여주셨다. 그때 그 사춘기 때는, 아마 평범한 인생에 있어서 부모님과 마음이 가장 멀어졌을 때였다. 그래서 부모님이나 나 자신이나, 서로에게 마음을 말하지 않으면 서로의 마음을 절대 알 수 없을 때였다.


아무리 가깝고 사랑하는 사이일지라도, 유대관계가 어긋나기 시작한다면, 금방 말하지 않아도 모르는 관계가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한창 유대관계를 어지럽히는 사춘기 시절, 자신의 아이가 직접 이유를 말해주지 않는다면 아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가늠하기 어려운, 부모님의 마음처럼 말이다. 요즘은 성인이 되어서도 사춘기를 넘어선 오춘기를 겪는 세상이라, 가까웠던 사이가 금방 멀어지기도 하고, 소원했던 사이가 금세 가까워지기도 한다. 가까운 사이라도 금방 멀어질 수 있는 관계 속에, 말하지 않아도 안다고 생각하는 사고는 관계를 멀어지게 하는 지름길이다.



나는 분명 예전처럼 행동했는데, 누가 바뀐 걸까?


분명한 건, 말하지 않아도 알듯한 당연한 것들이 서로를 멀어지게 한다. 가까운 사람과의 유대관계가 흔들리기 시작하면, 말하지 않아도 알았던 상대방의 행동들에 대해 나도 모르게 의문을 가지게 된다. 예를 들어, 평소와 다름없이 친한 친구를 만나 항상 하던 말들을 하고, 똑같은 장난을 치더라도, 친구와의 유대관계에 문제가 생겼다면, 똑같은 말들을 똑같이 받아들이지 않게 된다.


친한 사이일수록 장난의 수위가 높은 경우도 있다. 게다가 수위 높은 장난의 이유를 누군가에게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도 없다. 그 광경을 타인이 보기에는 충격이 클 수 있는데, 그 장난들에는 "장난이야"라는 해명과, 그 장난이 가능한 히스토리 같은 것들이 생략되어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사자들에게는 이미 깊은 유대관계를 토대로 행해지는 행위들이기 때문에 제삼자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관계가 틀어지기 시작하는 것 또한, 수위 높은 장난이 가능한 히스토리의 생략 때문이다.


하지만 이 단단한 유대관계가 흔들리기 시작할 때, 서로에 대한 이해를 토대로 행해졌던 불편한 장난들은, 이제 진짜로 불편한 장난들이 되어버린다. 그ᄅ면, 불편한 장난을 다시금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도록 할 수 있을까? 우리는 이미 '말하지 않아도 안다'라는 생각이 몸에 배어있기 때문에, 다시금 이전의 두터웠던 유대관계를 찾기 위해 서로를 더 존중해주고 배려하는 대화를 하기가 쉽지 않다. 이런 관계의 불상사를 겪지 않기 위해서는, '말하지 않아도 아니까'라는 나 자신을 깎아먹는 생각은 집어치워버려야 한다.


상대방의 불편함이 느껴지기 시작할 때, 보통은 자신에게서 문제점을 찾으려 하기보다는, 상대방에게서 문제점을 찾으려 한다. 그 이유는 분명 나는 이전과 똑같이 행동했고 대화했으며, 비슷한 장난을 쳤기 때문일 것이다. 맞는 말이다, 한 대 맞는 말. 아무리 깊은 유대관계를 가진 사이라 할지라도, 불편한 말을 지속적으로 하는 건 상대를 지치게 만든다. 관계를 꾸준하게 깎아가고 있는 것이다. 대화의 요소 중 비판이나 비하, 장난이나 자만 등의 요소들이 그렇다. 마치 아기들에게 맞는 꿀밤은 아프지 않은데, 계속 따라다니면서 꿀밤을 때리려고 한다면 귀찮고 짜증 나기 시작하는 것과 같다. 나는 분명히 예전과 같이 행동했지만, 이제 상황은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을 빠르게 인지해야 한다.


이런 지속적인 불편함뿐만 아니라, 개인의 가치관과 상황은 주기적으로 바뀌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나의 가치관은 '친한 사이에는 수위 높은 장난을 칠 수도 있어!'였지만, 어떤 경험을 계기로 가치관이 바뀌어 '친한 사이에도 어느 정도 선은 지켜야 해!'라는 가치관을 가지게 될 수도 있고, 취업을 하게 되어 사회생활에 적응하느라 몸과 마음이 지쳐있을 때는 똑같은 장난이라도 받아줄 여력이 없을 수도 있다. 나는 분명 예전처럼 행동했다고 하지만 상대방과의 관계가 이전처럼 흘러가지 않는 건, 이미 그의 많은 삶의 기준들이 바뀌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렇게 관계가 틀어져 가는 것이 상대방의 가치관과 환경이 바뀌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되려, 나 자신이 상대방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부족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맞다. 친한 관계라고 해서, 자신이 겪는 모든 상황을 뒤로하고 불편함을 받아줄 수는 없으니까. 상대방이 변했다는 생각이 들 때는 그가 처한 상황을 이해하며 고민을 들어주거나, 그럴 수 없다면 그가 겪는 상황에 적응하여 잔잔해져서 나와 다시 볼 수 있을 때까지, 그냥 한 발 물러서 있는 것이 최고다.


이때 상대방의 환경을 고려하지 않고, '이런 건 이해해주겠지?'라고 생각하며 던지는, 배려와 존중이 결여된 불편한 장난은 불씨와 같다. 안 그래도 건조한 관계에는, 오해의 바람이 숱하게 불어오기 때문에, 순식간에 어마어마한 불길이 치솟을지 모르니까.



'말하지 않아도 안다'라는 말의 모순


'말하지 않아도 알 거야'라는 생각으로 말하는 것의 모순은, 대화에 있어서 여러 가지를 생략하게 된다는 것이다. 상대방과의 관계가 너무 편하다 보니, 그만큼 너무 간결하게 이야기하려 하기도 하여, 주어나 보어 같은 대화를 이해하는데 필요한 요소들을 생략하기도 하고, 살짝이라도 자신의 신경을 건드리는 말이면, 논리가 결여된 따가운 비난을 쏟아내기도 한다. 특히 타인에게 쏟아내는 비난은 자신의 모난 모습을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 인간의 이기심이 섞여있다. 또 어떤 사람은 관계가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모난 모습도 거리낌 없이 보여줄 수 있다고 한다. 물론 그럴 수 있다. 그 뒤에 날아올 친구들의 장난과 비하가 섞인 화살들을 웃으면서 맞아줄 수 있다면 말이다. 내가 아는 인간관계의 범위 내에서 장난과 비하가 섞인 화살을 맞은 뒤 피를 흘리지 않은 인간은 없었다. 물론 그게 장난이라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우리가 피를 흘리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 상대방이 말하지 않을 때 우리가 가장 잘 느끼는 것은, 불편함이다. 상대방이 느끼는 불편함은 상대방이 굳이 말하지 않아도 커다랗게 느껴진다. 정말 말하지 않아도 알게 된다. 그 이유는 바로 우리는 '역지사지'가 가능하기 때문인데, 덕분에 분명 자신도 상황에 따라 상대방이 불편함을 느꼈을 거란 것을 직감할 수 있으며, 또 하나의 이유는 과거에 자신도 비슷한 상황의 불편함을 느꼈던 경험 또한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처럼 어색하거나 불안한, 분노 같은 피하고 싶은 감정들은, 되려 피할 수 없을 만큼 더 잘 느껴진다. 이런 불상사를 피하기 위해서는 '역지사지'의 덕목을 불편한 감정을 가진 뒤에서야 강제적으로 느껴버리는 것이 아닌, 조금만 먼저, 말과 행동을 하기 전 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주 당연한 얘기지만, 좀처럼 지켜지지 않는 것들이다.


웃긴 건, 가까운 관계에서도 틀어지는 관계에서도 '말하지 않아도 알아'라는 말은 통용된다. '장난이라는 걸 말하지 않아도 네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아.', 그리고 '말하지는 않지만 네가 불편해하는 게 느껴져'.


또 하나, 관계가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우리는 상대방에게 하고 싶은 말을 숨기기 마련이다. 숨긴다기보다는 굳이 내뱉지 않는다. 틀어진 사이에는 툭 던지는 한마디도 분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로써 일어나는 침묵은, 서로의 관계를 더욱더 어둠 속으로 가라앉게 만든다. 그럴 때는, 관계의 불편함을 극도로 치닫게 만드는 것도 나쁘지 않다. 침묵으로 일관하는 것이 아닌, "왜 그런 식으로 말하냐", "왜 그렇게 행동하냐"하며, 갈등을 일으켜서 불편한 감정의 중심부를 찌르는 것이다. 서로를 향한 분노의 칼부림에 몸 여기저기 생채기가 나서 아프고, 서운함과 배신감에 마음의 상처도 쓰라리겠지만, 한껏 참았던 분노를 쏟아내고 나면 후련함이 찾아든다. 그리고 얼마 뒤에 죄책감이라는 감정이 찾아오는데, 이때가 바로 이 길고도 짧았던 관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타이밍이다. 다시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사람이 먼저, 화해의 손을 건네기만 하면 된다. 옛날에 엄마손은 약손이라는 말이 있었는데, 인간관계의 방면에서는 화해의 손이 약손이다. 이 거래만 성사된다면 몸과 마음에 난 상처들의 대부분은 단숨에 치료된다. 하지만 서로가 자존심을 부린다면, 이에 대한 해법은 없다. 인간관계라는 전쟁을 치른 탓에, 각자 몸과 마음에 상처가 가득하겠지만, 인간은 자가 재생이 가능한 동물이다. 사람에게는 시간이라는 아주 효과적인 약이 있다. 시간은 몸의 상처, 마음의 상처도 치료해줄 뿐만 아니라, 분노와 증오, 슬픔도 서서히 누그러트려준다. 여기에는 안타깝게도 기쁨과 행복이라는 감정도 포함이 되어있다. 하지만 되도록이면, 먼저 화해의 손을 내미는 것을 추천한다. 좋은 관계였었던 시간 속에서 좋았던 추억을 생각하며, 아련함을 곱씹으며, "다 지난 일인데 뭐..."하고 후회하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괜찮다는 말에 속지 말 것.


관계가 틀어졌을 때, 알아내기 가장 어려운 분류의 인간이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라는 마인드를 토대로 하는 장난에 있어서, 자신은 괜찮다는 말은 웃으면서 치는 거짓말이다. 만약 그 거짓말에 속아, 불편한 대화를 지속적으로 꺼낸다면,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그와 나 사이의 거리는 까마득하게 멀어졌을지도 모른다. 보통 남에게 싫은 소리를 잘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성향인데, 당시의 불편한 상황만 웃으며 잘 넘긴 뒤, 자신의 방 어느 한편에 불편했던 순간들을 차곡차곡 쌓아두고 있을 게 분명하다. 세상에 존중받고 싶지 않은 사람은 없다. 그와 나의 사이는 서서히, 아주 조금씩 내가 뒤돌아 있을 때마다 한 걸음씩 멀어지고 있을게 분명하다. 다시 뒤를 돌아 그를 마주할 때마다 50cm, 1m, 2m 이미 점점 멀어지고 있는 상태였을 테지만, 우리는 50cm도 가깝다고 생각하고, 2m도 꽤나 가깝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는다. 어느새 10m는 멀어졌을 때가 되어서야 "언제 이렇게 멀어졌지?"라는 생각이 들겠지만, 그때는 이미 그의 멀어져 가는 뒤통수만 바라볼 수밖에 없게 된다.


우리는 "괜찮아"라고 말하는 그에게서 보이는 불쾌함의 표현을 무시해서는 안된다. '괜찮아'라는 말은 생각보다 여러 가지로 변형되어 나타난다. 학창 시절 변형 기출문제보다 더 어렵다. "아니야 뭘 그럴 수도 있지.", "에이 뭘 그런 거 가지고!", "깊게 생각하지 마 별거 아니니까." 물론 정말 별거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괜찮다는 말의 변형 표현이 나온 것부터가, 이미 불편함을 느꼈다는 뜻이기도 하다. 작은 눈덩이가 구르고 굴러 커다란 눈덩이가 되어 나를 덮치는 법이다. 하지만 괜찮아라는 거짓말이 포착되었다고 해도, 사죄의 표현으로 그를 물고 늘어져서는 안 된다. 괜히 물고 늘어지는 것은 그를 속 좁은 사람으로 몰고 가는 것이며, 동시에 "괜찮다니까!!", "아니 괜찮다고 했지!!"라는 역정을 듣게 될 테니까 말이다. 그냥 다음부터 '역지사지'의 마음가짐으로 조심히만 행동하면 된다. 뭉쳐있는 눈덩이를 굴리지만 않으면 된다는 말이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 하지만 말하지 않으면 서운해!


이미 관계가 틀어지고 있다면, 더욱 아쉬운 마음이 들기 전에 후회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말하지 않아도 안다고 생각하는 관계는, 보기보다 말해주면 더 좋고, 말하지 않으면 서운한 것들이 더 많다. 그러니까 어떤 것이든 오해가 생기기 전에 미리 말하는 것이 좋고, 상대방이 마음의 상처를 입어 서운해하기 전에 미리 방지하는 게 좋다. 이미 틀어진 관계를 회복하기는 처음 관계를 쌓기보다 더 어렵기 때문이다. 집집마다 사탕을 팔기 위해 방문하려 할 때, 처음 방문하는 집은 설렘 반, 두려움 반이지만, 한번 쫓겨난 경험이 있는 집의 문을 두드릴 때는 두려움만이 가득한 것과 같다. 그리고 그 문이 열리지 않았을 때는, 완전히 쫓겨나 버렸구나 하는 좌절감이 든다. 혹은 "에휴, 어쩔 수 없지!" 하는 후련함이 들 수 도 있다. 그렇게 사탕은 팔지 못한 채로 말이다.


말하지 않아도 아는 관계일지라도, 공감과 이해는 언제나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는 법이다. 그가 나를 위해 힘쓰고 있다는 생각을 잊어서는 안 된다. 상대방의 가치관과 환경은 항상 변화하기 마련이고, 그로 인해 상대방이 공감과 이해의 에너지가 부족한 상태에서 나에게 에너지를 써주고 있을지도 모른다. 또, 서로가 서로에게 할애하는 에너지가 아깝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기브엔 테이크가 있어야 한다. 상대방을 생각하는 적당한 내용, 적당한 반복, 죽이 척척 맞는 공감대 같은 것들 말이다. 기브나 테이크만 있는 관계는 분명 주는 쪽에서 먼저 지쳐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테니까.


말하지 않아도 아는 그런 두터운 관계 속에서는, 더욱이 방심해서는 안된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라는 말의 가장 좋은 작용은, 상대방이 슬퍼할 때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고 위로해주는 것, 상대방이 행복해할 때 말하지 않아도 알아주고 같이 행복해주는 것이다. 우리가 말하지 않아도 꼭 알아야 할 것들은, 그런 것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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