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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기자 Mar 11. 2020

어느 한 여의사의 눈물

2018.04.13 조직검사


단순 결핵일 것으로 판단했지만, 어느덧 암 병동에 와있다. 그래도 아직 확진 판정을 받은 것은 아니지 않은가. 4일 뒤면 조직검사 결과가 나온다. 희망은 있다. 암, 그 무서운 암은 반드시, 아니여야만 했다. 만일 그것이면 우리 가족의 운명은 뒤집힌다. '아직 젊으니, 절대 암 일리가 없어...' 수백 번, 수천번을 되새긴다. '암'이라는 단어조차 너무 무서워서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의욕도 생기지 않는다. 동생은 환자복을 입은 채 옆에 누워있다. 동생은 태연한 척 노력하고 있었다. 하지만 분명 동생도 떨고 있는 게 분명했다. 자신이 왜 여기에 있는지 몰라하고 있었다. 지금 왜 이곳에 있는지 도무지 설명이 되지 않았다.


1초, 또 1초, 그다음 1초, 시간은 분명히 악의를 품은 채 우리 가족 곁에 천천히 맴돌았다. 무서웠다. 끔찍하게 두려웠다. 조직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것은 삶과 죽음을 결정할 한 줄기 나뭇가지를 붙잡고 있는 느낌이다.


[사진=픽사베이]


이러한 내 심정을 알아차렸던 것인가. 60~70대로 보이는 환자인 할머니가 내게 말을 붙인다. 간호사들이 자신의 침대를 수술실까지 끌고 갔을 때 죽음의 공포가 세포 하나하나 지배했다고. 그 순간 그녀는 수술실 천장에 적힌 성경구절을 발견했는데,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라는 문구였다고. 그 이후 힘차게 일어날 수 있었다면서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조언했다.


나는 기독교 모태신앙이지만, 고등학생 이후 교회에 잘 다니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나는 혼자 있을 때마다 기도를 드렸다. 단순히 소원을 비는 것이 아닌, 내 모든 에너지와 정성을 쏟아 기도했다. 나의 영혼까지 담아 기도했다. 정말 간절했다. 내게 '교회에 다녀야 한다'는 유언을 남기시고 하늘나라로 가신 할머니께도 도와달라고 눈물로 간청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것밖에 없었으니까.


세상에서 가장 슬픈 것은 사랑하는 사람이 아파하고 있는데, 정작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못할 때다.



2018.04.17 D-Day


동생이 이곳 병원에 입원한 지 2주가 지났다. 드디어 대망의 날이다. 조직검사 결과가 나오는 날이다. 폐암 확진 판정은 어렵다고 한다. 폐는 심장과 갈비뼈 등으로 려져 있 림프절 등으로 복잡하게 엮여있어 사인을 명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확진 판정은 호흡기내과, 흉부외과, 병리과 등의 교수가 몇 번의 회의를 거쳐 최종 결정한다고 한다. 그 모든 주사위는 던져졌다.


주치의인 호흡기내과 교수 회진은 오전 7~9시 사이에 진행된다. 주치의는 이날 우리 가족에게 사형 혹은 무죄 선고를 내릴 것이다. 우리 가족에게 사형선고가 내려질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이틀 전 흉부외과 교수가 동생 상태가 좋지 않다는 식으로 흘려 얘기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주치의가 아니다. 폐암 확진 판정은 최종 호흡기내과, 주치의 담당이지 흉부외과는 지원부서에 불과하다. 끝까지 어떻게든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17일 오전 8시께 병실 밖 복도가 갑자기 어수선해졌다. 주치의 회진이 시작된 것이 분명했다. 심장이 벌렁이기 시작한다. 온몸이 떨린다. 얼마 지나지 않아 주치의 교수가 여자 레지던트 2명, 인턴 5명을 대동하고 병실로 들어선다. 이들의 표정과 분위기를 살폈다. 그 순간 직감한다. '사형선고구나...' 판사와 의사는 각각 검은색과 흰색이라는 정반대 색깔의 가운을 입을 뿐, 사람을 심판하는 일은 똑같았다.


교수는 나와 엄마를 복도로 불렀다. 영화에서 보던 그 장면이 지금 나한테 펼쳐지고 있다. 2주일 전까지만 해도, 전혀 상상도 못 할 일들이 전개되고 있다. 교수는 힘겹게 입을 뗀다. '비소세포 선암 3기 B' 폐에 악성종양이 발견됐고 이 종양이 흉막으로 전이가 되면서 폐에 흉수가 찼다고. 수술이 불가능하며 항암치료에 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드라마 '판타스틱'에서 김현주가 유방암 판정을 받은 직후 모습 [사진=JTBC '판타스틱' 방송 캡처]

세상이 하얗게 변했다. 멍해지며 온몸에 힘이 풀려버렸다. 너무나 황당해서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 엄마는 눈물을 흘리시며 몸을 가까스로 벽에 기대어 지탱하고 있었다. 엄마는 교수에게 한마디의 질문을 던진다. "완쾌될 수 있는 겁니까?" 교수는 머뭇거린다. 나는 느꼈다. '생존 자체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구나...' 교수는 "암환자에게 완쾌라는 것은 없어요. 그래도 젊으니까 치료 잘 받으면 될 겁니다."


그리고 주치의는 나를 보며 힘주어 말한다. "(환자) 형님이시죠? 부모님 잘 보살피고, 정신 똑바로 차리고"  분명 그것은 진심이었다. 두렵고 고통스럽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내가 무너지면 모든 게 무너진다. 내 감정은 묻기로 했다. 슬픔, 혼란, 아픔, 고통, 불안 등등 이내 모든 감정들은 사치였다. 동생을 살려야만 한다. 아니, 반드시 내 손으로 살릴 것이다.


이 잔인한 말을, 이제는 내가 전해야만 하는 상황이 됐다. 홀로 회사에서 눈물로 지새우며 주치의 회진 결과를 기다리고 계실 아버지에게 이 사실을 전해야 했다. 나와 엄마는 휴가를 쓰고 동생 곁을 지킬 수 있었지만, 아버지는 이 상황을 보지도 듣지도 못하니 그 고통은 몇 배 더 컸을 것이다. 하지만 더 잔인한 것은 내 동생에게 이 소식을 전해야 하는 것이었다.


동생은 나와 엄마의 표정을 보고,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은 알아차린다. "말 안 해도 돼. 심각하구나. 인터넷에 찾아보니, 폐에 물이 차면, 심각하다고 쓰여 있더라..."라고 내게 말한다. 억장이 무너졌다. 이런 지옥 같은 세상에 살고 싶지 않았다. 원인 알면 그래도 원망이라도 하며 위안라도 겠는데... 20대의 암환자라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화가 났다. 의사에게 다시 면담 신청했다.


간호사는 주치의 교수가 일정 때문에 여 전공의(專攻醫)가 대신 설명해주겠다고 알려줬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간호사는 나와 엄마를 간호사실로 부른다. 전공의는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회진할 때마다 교수 바로 뒤에서 환자 상태를 보고하고 인턴을 지휘하는 레지던트다. 화장기 없는 수수한 얼굴로 우리를 맞이했다.


전공의는 동생의 조직검사 결과를 컴퓨터 모니터에 띄우며 최대한 쉽게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폐 CT, 객혈 검사, DNA 검사, PET CT 등 각종 검사 결과를 보여준다. 전공의의 말을 수첩에 받아 적었다.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냥 적었다. 세상 모두를 잃어버린 엄마의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젊은 전공의 얼굴도 보였다. 그녀의 눈에는 분명 눈물이 고여있었다. 그녀 역시 울음을 참으려고 애쓰며 말을 천천히 내뱉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가족이 아프다는 사실을 전해 듣고 있는 나와 엄마의 가여운 모습에 그녀 역시 감정을 다스리기 어려웠던 것이다. 보호자에 감정을 이입하고 또 그러한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것을 보아하, 그녀는 이렇게 보호자에게 잔한 말을 하는 것이 처음인 게 분명했다.


확진 판정과 함께 내게 정신 차리라고 조언한 교수. 젊은 자식이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부모님. 동생의 암 확진 사실에 무너지고 싶지만 무너질 수 없는 나. 자신의 꿈을 좇다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듣게 된 동생. 그리고 이러한 상황에 처한 우리 가족에 감정 이입하며 눈물을 글썽인 여의사까지. 그 모든 것이 참담했다. 이곳, 그 어느 누구도 행복한 사람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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