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도 잘 살았다.

by 맹이의 생각들


아침 일찍 눈이 떠져 몸을 일으켜 의식의 흐름대로 가장 먼저 한 일은, 나의 지난밤동안 잠꼬대 한 흔적들을 정리하는 일이었다.

기억은 안나지만 격투기 꿈이었을까. 나의 이불은 나의 발차기에 패대기쳐져 있었다.

간밤에 힘들었는지 주름진 이불을 곱게 펴 개 드리고, 커피포트에 물을 올려 따뜻한 커피 한잔을 여유롭게 마신 후 정신을 차릴 겸 세수와 양치를 했다.

남들은 다 일을 하는 오늘, 나는 황금 같은 휴일을 맞이하였다.


일을 할 때는 하고 싶은 게 많았는데 막상 내게 시간이 주어지자 무얼 하며 시간을 보내야 할지 갈팡질팡 했다.

'여유롭게 아침 운동을 하러 헬스장을 갈까'

'아니다, 날씨도 좋은데 밖에 나가서 여유롭게 자전거를 탈까'

'아니면, 한적한 카페에 가서 여유를 즐기며 오늘도 바쁘게 출근하는 사람들을 여유로운 시선으로 구경해 볼까'

나는 최대한 이 여유로움을 동네방네 티 내고 싶었다. 얼마나 낭만(?)적인 일인가.

그렇게 나는 나름 여러 가지 고민을 하다가 시간만 보내버리고 말았다.

아까운 시간이 흘러가자 여유로움은 어디 갔는지, 그 틈을 타 조급한 마음이 살짝 나타났지만

그럼에도 선뜻 뭔가 마음에 내키지 않아 행동하기란 쉽지 않았다.


정말 심심하고 따분해서 뭐라도 하고 싶은데 뭘 해야 할지 한참을 그렇게 계속 고민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문득 베란다 너머 보이는 파란 하늘과 새하얀 솜사탕 같은 구름이 천천히 지나가는 게 너무 예뻐서

홀린 듯 베란다에 걸터앉아 하늘을 정처 없이 바라보았다.

집에만 있기엔 억울한 기분이 들었지만 갑자기 누군가를 즉흥으로 만나기란 쉽지도 않았고,

결국 친구에게 그냥 무턱대고 전화를 걸었다.


친구 : 여보세요

나 : 야 나 베란다에 앉아서 하늘 구경하고 있다.

친구 : 어쩌라고

나 : 그렇다고

친구 :........

나: 야 나 심심한데 뭐하지. 할 게 없어.

친구 : 유튜브나 TV 보던가

나 : 그렇게 시간 보내기엔 너무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친구 : 그럼 맛있는거 시켜 먹어

나 : 나 다이어트 중

친구 : 그럼 나가서 자전거 타

나 : 하늘은 예쁜데 바람이 너무 많이 불어.

친구 : 아 그럼 자던가

나 : 그렇게 시간 보내기엔 너무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친구 :!@#$%@#$^^%$#$%^&*^%%...........


정겨운 친구의 아름다운 대화를 끝으로 나는 다시 예쁜 하늘을 바라보았다.


할 게 없다고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는 것도 아니었다.

어렸을 때는 그냥 마냥 늘 즐거웠으며, 시간은 빠른 듯 천천히 느리게 흘러갔었는데,

왜 나이를 먹어가면서 즐거운 일은 손으로 꼽게 되었고, 뭘 해야 할지 생각할 틈도 없게 조급하게만 흘러가게 되었을까. 이러다 뭘 해보기도 전에 내일 환갑잔치를 열게 되는 건 아닌가 싶다.


산 중 호걸이라 하는 호랑님의 생일날이 되어

각 색 짐승 공~원에 모여 무도회가 열렸네

토끼는 춤추고 여우는 바이올린~

찐~ 짠 찌가 찌가 찐 짠 짠짠 짠짠 하더라~


시간을 늦춰보고자 괜히 동심의 마음으로 실없이 노래를 흥얼거려 본다.

효과는 미미했다.


에라 모르겠다. 그냥 나가서 시원한 커피라도 한 잔 사와서 마시자.

집 밖을 나갈 구실을 만들어주고, 편한 외출복으로 대충 갈아입은 후 드디어 집 밖을 나섰다.

자주 사 먹는 카페까지의 거리는 보통 10분 정도 걸리는데, 천천히 햇빛을 받으며 걷다 보니 20분 정도 걸렸다. 카페에 도착해 익숙하게 아이스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 설탕시럽을 한 펌프 추가해 테이크아웃 했다.

시원하고 달콤 쌉싸름한 커피와 바깥공기를 천천히 음미하며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잠깐의 산책 겸 외출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환기가 되어 기분이 좋았다.


그러다 갑자기 문득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나는 곧바로 행동했다.


베란다에 작은 상을 하나 펼치고, 노트북과 테이크아웃한 커피를 놓았더니 햇살 가득한 그럴싸한 나만의 작은 홈카페가 생겼다. 완벽한 소확행이었다. 기분이 좋아진 나는 이번엔 문자로 친구에게 실없는 농담을 던져보았다.



돼지는 키득거리며 고릴라 친구와 영양가 없는 대화를 나누었지만, 즐거운 시간이었다.

친구와 함께라면 커서도 그냥 마냥 즐겁나 보다.


파란 하늘과 새하얀 솜사탕 같은 구름, 시원한 커피와 함께 하는 여유로운 산책 시간,

나만의 작은 홈카페, 친구와 주고받은 실없는 농담들.


나의 하루 일상을 채워주고, 즐거움을 준 것들은 사소한 것들이었다.


그리고 오늘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루를 그냥 흘려보냈다.


하마터면 오늘도 열심히 살뻔했지만,

시간의 흐름에 맡겨 잘 흘려보낸 것 같아 기분이 좋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다음에 쉴 때는 좀 더 격렬하게 열정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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