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생각을 놓고 왔어요.

by 맹이의 생각들


생각 : 오늘은 쉽니다.





늘 잘 웃고 밝은 편이라 나는 내가, 타고난 긍정적인 성격의 소유자인 줄 알았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밝고 긍정적이기 위해서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타고난 성격이 변한 것 인지, 아니면 원래부터 노력형 긍정이었던 건지도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그렇다면 언제부터였을까?

모르겠다.

지금은 애써 노력한 기억밖에 떠오르지가 않는다.


그런데 요즘 들어,

바다가 너무 보고 싶었다.

하루에 '바다 보러 가고 싶다'라고 스무 번은 말할 정도로, 그만큼.


여유가 되지 않아서 여행을 많이 다녀 본 적은커녕

심지어 길치에 겁은 또 왜 이렇게 많아

혼자 여행을 가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는 내가,

자꾸만 드는 복잡한 생각들을 정리할 겸 조용히 혼자 가보고 싶었다.


다음 날,

나는 새벽 일찍 일어나 무거운 몸을 이끌고 무작정 고속버스터미널로 향했다.

승차권을 끊어 강릉으로 가는 고속 시외버스에 몸을 싣고, 선우정아 님의 도망가자 노래를 들으며 사연 있는 사람처럼 스쳐 지나가는 바깥 풍경들을 구경했다.

서울에서 강릉까지 대략 2시간 정도의 시간이 걸리는데, 그 시간 동안 신기하게도 꼬리에 꼬리를 물던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들이 백지장이 된 듯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렇게 멍하니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낯설지만 예쁜 풍경을 계속 바라보다 보니

눈 깜짝할 새에 강릉 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을 했다


나는 도착을 하자마자 얼른 바다를 보고 싶은 마음에 바로 택시를 타고 카페 거리가 있는 안목해변으로 이동하였고,


드디어 그토록 바라던 바다를 만났다.


바닷바람이 제법 쌀쌀한 날씨였지만 나는 최대한 바다 가까이에 웅크리고 앉아 탁 트인 바다를 바라보며 생각할 준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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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서둘러 나오느라 생각을 집에 놓고 왔나....



또 그렇게, 긴 시간 동안 생각 없이 멍하니 바다만 응시하였고, 그러다가 가끔 심심해지면 하늘도 바라봐주며 한참을 또 사연 있는 사람처럼 앉아있다가,

갑자기 푹 하고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나 되게 청승 떨고 앉아있네'


지금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것인지부터 시작해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등의 무겁고 복잡한 생각들을 정리하기 위해 온 것이었는데,

야속하리만큼 그 많던 생각들은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다.


결국 나는 애써 참고 있던 추위와 배고픔에 생각하기를 그만두고, 바다가 훤히 보이는 근처 별다방

2층에 앉아 에그 샌드위치와 따뜻한 허니 자몽 블랙티를 천천히.. 는 아니고 허겁지겁 먹어 치웠다.

금강산도 식후경. 바다도 식후경.


배가 어느 정도 부르고 나니 그제야 다시 바다가 보였는데, 멀리서 바라본 바다 풍경엔 바다만 있는 게 아니었다.

함께 나란히 앉아 사랑을 이야기하는 알콩달콩한 커플, 텐트를 펼쳐 쌀쌀한 바닷바람을 막아내고 도란도란 담소를 나누는 가족들, 강아지와 함께 발 맞춰 산책을 하는 여자.

가까이서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었다.


진즉, 춥고 배고프면 따뜻한 곳으로 들어와 맛있는 걸 먹을걸.

춥고 배고픈데 생각이라는 놈을 정리해보겠다고 괜히 바다랑 눈 아프게 눈씨름만 하고 왔네.

따뜻하고 배부르게 바다랑 눈 맞춤할 수 있는 것을.


넋 놓고 재밌게 사람 구경을 하다보니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서서히 지기 시작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나는 서둘러 별다방을 나와 파도 소리를 노래 삼아 들으며 모래사장을 걸었고,

한참을 걷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한결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다시 서울로 돌아오는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 바깥 풍경은 어둠이 짙게 깔려 잘 보이진 않았지만,

덕분에 가로등의 작은 불빛들이 더 크고 선명하게 보여 제법 예뻤다.


이렇게 별거 없는 나의 짧은 여행은 끝이 났고,

다시 익숙한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이번 여행은 생각 정리를 위한 여행이었는데,

계획한 대로 되지 않았고, 몸은 피곤했다.

하지만 신기할 정도로 마음은 무척이나 평온했다.


어쩌면 지금 나에겐 그저 쉼이 필요했던 게 아닐까 싶다.


복잡한 생각들이 나를 괴롭혀서, 그런 생각들을 정리하기 위해, 생각할 시간을 가지는 여행을 하려 했다니.


그런 내가 안쓰러웠는지


생각이 그만 좀 쉬라고,

'바다 보러 가고 싶다' 라며 신호를 주고, 일부러 집에 혼자 남아있었나 보다.


나는 앞으로도 가끔 혼자 여행을 가보려고 한다.


이번엔 좀 더 멀리.


이번에도 생각 없이.

(우리 가끔은 멀어지자)



잘 다녀왔습니다! (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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