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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JY May 15. 2023

아이를 낳고 처음으로 부부끼리 여행을 가다


처가의 배려 덕분에 아이를 낳고 처음으로 둘 만의 여행을 다녀왔다. 목적지는 천년 고도 경주. 수학여행 때도 가보고 회사에서 워크숍으로도 가본 곳이라 굳이?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어디로 가는 게 뭐가 중요한가. 부부끼리 둘만 오붓하게 갈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하지. 거기다 결정적으로 아내가 경주를 가보고 싶어 하기도 했고.



P형 남편과 J형 아내의 조합답게 여행계획은 모두 아내가 짜고, 나는 아내의 오더를 충실하게 이행했다. 오랜만에 가는 여행이다 보니 어떤 걸 타고 갈까 정하는 것부터 설렜다. KTX를 타고 갈까, 버스를 탈까 하다가 신경주역에서 시내까지 거리가 멀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버스로 결정했다. 프리미엄 버스로 예약해 봤는데 일반 고속버스와 달리 커튼도 있고, 좌석도 넓고 핸드폰 무선충전기도 있었다. 역시나 비싼 데는 다 이유가 있다.




한참을 달려 도착한 경주. 점심을 먹기 전 근처에 공원이 있어서 공원 구경을 먼저 하기로 했다. 공원입구에 표를 사려고 보니 두 가지 방법으로 관람이 가능했다. 도보 or 비단벌레버스 투어. 아내와 나는 서로를 잠시 쳐다본 후 바로 비단벌레버스 투어를 결제했다. 비단벌레버스 투어도 20분 코스라는데 도보는 도대체 얼마나 걸리는 걸까.



버스를 타고 첨성대 포함 다른 여러 유적지를 보는데 문득문득 아이 생각이 났다. '아이를 데리고 오면 참 좋아하겠다'라는 생각이 계속 드는 거 보면 이제 어쩔 수 없는 부모란 생각이 들었다. 아이 생각을 하지 않아야지 하면서도 계속 아이생각이 나는 거 보면.



경주의 핫플레이스 황리단길에서 점심도 먹고, 호텔에 짐도 풀어놓은 후 동궁과 월지 야경을 구경하러 갔다. 동궁과 월지가 뭐지 궁금했는데 예전에 안압지라고 부르던 곳이었다. 분명 학교 다닐 땐 안압지라고 배운 것 같은데 언제 바뀐 거지. 어쨌든 동궁과 월지를 구경하기 위해 근처로 갔는데 멀리서 나와 눈이 마주친 것이 있었다.





전기 이륜차!! 날씨가 조금 춥긴 했지만 바람막이로 잘 막으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이걸 타고 안에 돌아다니면 나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바로 대여를 했다. 1시간에 2만원, 2시간에 3만원이라고 되어있어서 얼마나 빌릴까 고민을 하고 있는데 주인아주머니께서 그냥 2만원만 주고 넉넉히 타고 오세요라고 말씀해 주셔서 감사했다.



신분증도 받지 않고 돈도 지불하지 않은 상태에서 빌려주시길래 뭘 믿고 이렇게 빌려주시는 거지? 우리가 이거 반납 안 하면 어떻게 하시려는 거지라고 생각했는데, 반납할 때 여쭤보니 신분증 받는 걸 까먹으셨다고 한다. 부부가 믿을만하게 생긴 얼굴이어서 까먹은 거 같다는 아주머니의 빈 말에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이걸 빌리지 않았다면 엄청 후회할 뻔했다. 보통 여행을 가면 고생하거나 특별히 힘들었던 경험들이 기억에 남는다고 하는데 우리에겐 전기이륜차가 특별한 추억이 되었다. 아주머니께서 알려주신 대로 월정교 야경을 먼저 보러 출발하는데, 이거 이렇게 차도로 그냥 가는 거 맞나? 차랑 같이??? 시속 최대로 해도 40 정도밖에 안 나오는데? 그리고 주위를 아무리 둘러봐도 타는 사람 우리밖에 없는데 이거 맞나?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거기다가 그날따라 추워서 비닐 바람막이를 채우고 나니 사이드미러도 잘 안 보이고. 그 와중에 이런 상황이 어이가 없었는지 아내와 나는 번갈아가면서 깔깔거리며 웃고. 어떻게 보면 이런게 여행의 추억 아닌가 싶다.





생명의 위협을 느낀 채 달려서 도착한 월정교 및 동궁과 월지의 야경은 너무나 멋졌다. 날씨가 조금만 덜 추웠으면 좋았을 텐데 이 날따라 쌀쌀했던 날씨가 조금은 원망스러웠다. 짧다면 짧은 시간 동안 멋진 야경을 감상한 후, 비닐 이륜차를 타고 다시 출발했다. 주차된 걸 빼기 위해 후진을 하는데 삐삐삐!!! 생각보다 너무 큰 소리가 나서 당황했다. 내가 생각했던 범위를 넘어선 소리가 나서 급당황. 당황해서 아내를 쳐다봤지만 아내는 모른척하며 어느덧 입구 쪽으로 사라져 버렸다. 부부는 일심동체라는 말은 거짓이었다.



다음 날, 다시 황리단길 구경도 하고 경주빵도 사서 서울로 복귀하면서 짧았던 1박 2일 여행이 끝나버렸다. 처가로 도착해 아이를 품에 안으니 '다시 시작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는 참 안 보면 보고 싶고, 보면 가끔은? 힘든 그런 미지의 존재 같다. 그래도 이번에 다녀온 부부끼리의 1박 2일 여행이 앞으로 얼마간의 육아생활을 버티게 해 줄 수 있는 추억이 된 것 같다.



우리 가족 내일부터 또 잘해보자.

그리고 가끔은 이렇게 부부만의 시간을 가져보도록 노력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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